# 21 - 3490291
#
21화 그럼 기본적인 것부터 한번 해보죠.
21화 그럼 기본적인 것부터 한번 해보죠.
권대호가 사라지는 순간, 강주혁은 재빨리 두 팔로 뒤통수를 감쌌다.
퍽!
예상대로 강주혁의 등 뒤에서 나타난 권대호는 뒤통수를 향해 꿀밤을 날렸으나 두 팔에 막히고 말았다.
권투로 치면 잽에 가까운 공격이었지만 강주혁은 주먹을 막아낸 팔이 얼얼해지는 걸 느꼈다.
“허! 이 놈이 봐라.”
권대호는 눈썹을 치켜떴다. 보통실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설마 자신의 공격을 막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때리시더라도 이유는 말해주고 때리시죠.”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뒤에서 공격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갑자기 뒤통수에서 싸한 느낌이 들더군요.”
회귀 전에 권대호의 순간이동(?)펀치에 수도 없이 당해본 강주혁이었다. 권대호가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갈기는 걸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용한 녀석일세.”
권대호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 웃어젖혔다.
“내가 어떻게 한 건지 알겠느냐?”
“제가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리 움직이셨겠죠.”
권대호는 강주혁으로부터 5미터 정도 떨어져있었다. 방향은 정면. 그러다 갑자기 사라졌고 강주혁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데에 걸린 시간은 1초도 안 될 것이다.
“쯧쯧,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답변의 전부라면 너는 내 기술을 배울 자격이 없다.”
강주혁은 좀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산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권대호가 사라졌다가 나타났을 때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가 갑자기 강해졌다. 방향도 요상했고.
단순히 무언가가 지나가서 생긴 바람은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지나간 길을 따라서 공기가 밀려나기만 했을 것이다.
강주혁이 느꼈던 바람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불어 닥쳤다. 마치 주변에서 여러 개의 폭탄이 연달아 터진 것처럼.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바람이었다. 어떻게 대기를 가로질러야 그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강주혁은 이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내공으로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펼치셨군요. 그것도 두 번이나.”
권대호가 무릎을 탁 쳤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주먹을 날려대는 건 종로투왕의 전매특허. 전성기 때에는 1초 동안 전부 다른 방향에서 열 번의 권격을 날릴 수 있었다.
회귀 전에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워낙 빨라서 당하기만 했지 그 원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좀 전의 공격은 강주혁이 따라갈 만한 속도였고 일부러 흔적까지 남겼다.
“그것이 귀멸축공보(鬼滅縮空步)의 묘리이니라.”
“그럴 듯한 이름 말고 어떻게 하신 건지나 좀 알려주십시오.”
“이 놈아! 한 번 보여줬으면 그 다음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 다 떠먹여주면 그게 네 실력이 될 성 싶으냐.”
권대호에게 친절한 가르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귀멸축공보를 느리게 써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려한 셈이다.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펼친다.’
발 근처의 공기를 그렇게 했다면 땅에 흔적이 남아야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름은 보법이지만 이건 절대 발에서 출발하는 기술이 아니다.
‘원거리에 있는 공기를 압축한다면?’
약간 떨어져있는 곳의 공기를 내공으로 압축시키면 몸이 그쪽으로 딸려갈 것이다. 반대로 그걸 펼치면 밀려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응용한 것이군요.”
권대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로 봐서 정답을 말한 모양이다.
허공섭물은 내공을 이용해서 떨어져있는 물체를 움직이는 기술. 다른 말로는, 염동력이다.
“물체 대신에 공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네가 가고자 하는 곳과 네가 서있는 곳의 중심에 있는 공기를 내공으로 움켜쥐었다가 펼치면 바람이 너를 원하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까 축지법의 공중버전이란 말씀이군요.”
“크흠...”
권대호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심오한 원리랍시고 설명했는데 그걸 저렴한 설명으로 대체해버린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축지나 축공이나 줄였다가 늘린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으니까.
“안 알려 주실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왜 또 생각을 바꾸셨습니까.”
“내가 말해준다고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안 되는 놈은 평생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고체가 아니라 기체를 움직여야한다는 점에서 귀멸축공보가 더 까다롭기는 해도 그 원리는 허공섭물과 같다.
문제는 허공섭물 자체가 워낙 어려운 기술이라는 점이다. 내공을 다루는 능력도 뛰어나야하고 내공의 양도 많아야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천재라 해도 S급에는 이르러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지금부터 최소 10년은 수련해야만 어설프게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본적인 것부터 한번 해보죠.”
강주혁은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걸 본 권대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흉내만 낸다고 할 수 있으면 누가 허공섭물을 안 쓰겠는가.
하지만 강주혁은 흉내를 낸 것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권대호는 경악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덜덜덜.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돌멩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 * *
태원공략의 대회의실. 이윤철 사장이 임원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주혁 인턴만 그 영약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까?”
히든 피스에 대해 보고를 받은 이윤철 사장이 물었다.
“네. 사장님.”
양준기 전무가 답했다. 신대성 부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그는 태원공략에서 신대성을 따르는 무리의 수장이다.
별호는 <구로쌍장(九老雙掌)>. 별명처럼 장법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곤란하게 됐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윤철의 눈은 웃고 있었다. 반면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재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강주혁 인턴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큰 손해가 될 겁니다.”
양준기 전무의 말에 김재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주혁을 쫓아내서 이윤철을 욕보이자면서 공동전선을 주장했던 양준기였으니까.
그런데 먹음직스러운 히든 피스가 자기사람인 임재경 부장의 손에 떨어지자 입장을 대번에 바꿔버렸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이윤철 사장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여기에 있는 임원들 중 이윤철의 편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예전에는 이윤철을 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윤철이 섬기는 신대길에게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다들 신대성이나 신대승 라인으로 갈아탔다.
이윤철은 사장이라는 직함과 태원공략 최강자라는 칭호로 간신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준기 전무의 지지는 큰 힘이 되었다.
“그 영약이 꼭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김재후 부사장이 따지고 들자 양준기 전무가 반박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모든 신입사원들의 업무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영약입니다. 부사장님께서는 그걸 포기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 영약이 무한정 나온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지금 나오는 양만으로도 이번 기수 신입사원 전원의 랭크를 한 단계 올릴 수 있습니다. 신입사원들이 랭크를 하나 올리는데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4년입니다. 신입사원이 곧바로 대리급 역량을 갖게 해주는 영약인데 그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돈으로 환산하면 못해도 수십억은 넘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직원들을 키우는 것은 회장님의 철학에 어긋납니다.”
“회장님의 철학이요?”
이윤철이 시비조로 물었다.
“회장님께서는 직원들이 그런 식으로 성장하는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
“회장님께서는 이곳이 학교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라는 것도요. 직원들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걸 회장님께서 마다하시겠습니까.”
신태원 회장은 원칙과 실력을 중시한다. 하지만 영약을 먹어서 실력을 증진시키는 걸 원칙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할지는 미지수다.
신태원 회장의 자식들이 동년배의 헌터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재능이나 교육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값비싼 영약을 꾸준히 섭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확신이 없어진 김재후는 말을 돌렸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강주혁 인턴의 계약을 영약이 바닥날 때까지만 연장하는 겁니다. 사무실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라고 하죠.”
“그런 대우를 받으면 강주혁 인턴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윤철 사장이 반대했다.
“강주혁 인턴은 인턴으로만 써먹기에는 아까운 인재입니다.”
양준기 전무의 말에 김재후 부사장은 부아가 치밀었다.
영약채취를 위해서 강주혁을 회사에 남겨놓는 것과 강주혁을 헌터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고작 하이오크 대전사 하나를 잡았다고 그러는 겁니까?”
“오랫동안 사투를 벌인 것이 아니라 단칼에 잡은 겁니다. 태원공략의 신입사원들 중에 그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강주혁 인턴은 연수원을 3등으로 졸업한 최석도 사원도 꺾었습니다.”
“그런 비공식적인 대련까지 평가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김재후가 코웃음을 쳤다.
“헌터에게 잘 싸우는 것보다 더 큰 미덕이 있습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공채는 왜 하는 겁니까? 신입사원들은 모두 엄격한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시험과 면접까지 치렀습니다. 태원공략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수년 동안 준비해온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만 수천입니다. 그런데 고작 눈에 띄는 활약 몇 번 했다고 인턴을 직원으로 뽑아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이윤철은 언성을 높여가면서 언쟁을 벌이는 양준기와 김재후를 바라보았다.
다른 임원들도 자신들의 리더를 지원하기 위해서 열을 올렸다. 회의장의 온도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이윤철 사장, 김재후 부사장, 양준기 전무.
이 세 사람의 뒤에는 각각 막내 신대길, 차남 신대승, 장남 신대성이 버티고 있다. 이 회의장은 태원공략, 더 나아가 태원그룹의 명운이 걸려있는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그런 곳에서 고작 인턴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특별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윤철은 강주혁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반대파들은 회사에서 자기편이 없는 사장이 자기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턴을 뽑은 거라고 멋대로 추측했다.
하지만 이윤철은 고작 인턴에게 그런 큰 기대를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인턴이 자기편이 되어준다고 해서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그저 곡괭이보다는 검이 어울리는 청년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반대파들은 강주혁을 뽑은 일로 트집을 잡아서 이윤철을 압박했지만 정작 그는 그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반드시 잡아야한다.’
하지만 강주혁은 불과 몇 주 만에 회사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회사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직급은 인턴이지만 그 거취를 임원급 회의에서 중요안건으로 다뤄야할 정도로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만.”
이윤철이 입을 열자 김재후와 양준기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는 해도 용산철검 이윤철이 이 회사의 사장이자 최강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에 더 큰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다.
“확실히 두 의견 다 일리가 있군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김재후와 양준기가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윤철의 입을 주시했다.
“강주혁 인턴에게 신입사원들이 치른 시험을 모두 치르게 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