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8화 (18/202)

#   18 - 3485319

#

18화 퇴사하겠습니다.

18화 퇴사하겠습니다.

“싫다고?”

임재경 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해도 모자랄 녀석이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다니.

분노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네. 싫습니다.”

강주혁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강주혁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본 임재경은 괜스레 불안해졌다.

싹수를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 사회초년생. 대기업 부장을 상대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임재경과 같은 공간에만 있기만 해도 긴장해서 뻣뻣해지는데 강주혁은 자기 집 안방에 있는 사람마냥 편안해보였다.

“왜? 태원공략이 마음에 든다며?”

임재경은 애서 태연한 척하면서 물었다.

“공략 3팀은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공략 1부는 별로입니다.”

“지금 누구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건지는 알지.”

“물론입니다. 부장님.”

임재경이 노기를 드러내면서 언성을 높이는데도 강주혁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공략 1부의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업적을 가로채는 게 마음에 안 듭니다.”

임재경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네가 아직 회사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그런데 어딜 가나 다 비슷해.”

“모든 곳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강주혁.”

“네. 부장님.”

“너는 인턴이다.”

“알고 있습니다.”

“두 달 후면 나갈 사람에게 실적을 주는 건 낭비야. 네가 나가버리면 그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록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 손에 쥐어주면 많은 게 달라지지.”

“만약 유덕현 팀장에게 넘겼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 유덕현 팀장은 제가 히든 피스를 찾는데 큰 도움을 줬으니까요. 하지만 부장님은 공략에 참여하지도 않는 1팀에게 주려고 하셨죠.”

“과장이란 놈이 인턴한테 별 얘기를 다했구나.”

임재경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직접 여쭤봤습니다. 제가 찾은 히든 피슨데 어떻게 처리되는 건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다. 그러니까 회사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겠다 이거지?”

“네. 부장님.”

“그럼 리스폰 안 되는 건 어떡할래?”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네가 히든 피스를 찾은 후로 그 지역에 리스폰이 안 되고 있다. 그 지역에서 더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없게 되었지. 피해금액이 수억이 넘어. 그건 어떻게 보상할 거냐?”

“그걸 제가 왜 보상해야 합니까?”

“당연히 네가 해야지. 인마.”

“제가 히든 피스를 찾았기 때문에 리스폰이 안 된다는 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않습니까. 법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임재경 부장은 할 말이 없어졌다.

“태원공략 법무팀이 만만해보여?”

“태원공략 법무팀이니까 만만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 분들도 있지도 않는 법으로 뭔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

리스폰이 갑자기 중단되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이며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현상도 아니다. 당연히 관련 법률도 없다.

나이도 젊고 아는 것도 별로 없으니 겁을 주면 설설 길 줄 알았는데 강주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일개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다.

‘우물물이 영약이란 건 아직 모를 텐데...’

강주혁은 상사들 사이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시키는 대로 가서 우물물을 한 번 더 떠왔을 뿐이다. 그걸 자신만 떠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챘겠지만 그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를 것이다.

“강주혁.”

“네. 부장님.”

“내가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직장상사로서 충고 하나 하마. 네가 회사 떠나는 순간, 회사가 널 가만히 안 둘 거다. 법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막대한 손해를 끼쳤으니까.”

“그런가요. 그럼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강주혁은 코웃음을 쳤다.

“뭐?”

“저는 잠깐이지만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히든 피스도 회사를 위해 찾은 거고요. 그런데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은 없고 근거도 없이 누명만 씌우려고 하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네요. 지금 당장 짐 정리해서 나가겠습니다.”

강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인사를 꾸벅했다.

“잠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 얘기 덜 끝났다.”

“제 얘기는 끝났습니다.”

강주혁은 임재경의 말을 무시하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임재경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주혁을 붙잡아야했다.

“왜 이러십니까?”

임재경은 이 새파랗게 젊은 인턴 나부랭이에게 매달려야하는 현실에 절망했다.

하지만 진짜로 강주혁이 나가버린다면 히든 피스도 날아간다. 히든 피스가 없으면 실적은 둘째 치고 리스폰 중단으로 인한 손해를 만회할 방법이 없다.

“네가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모르나 본데 너 이런 식으로 나가면 이 업계에서 완전히 생매장당해.”

“모든 공략회사가 한통속일 것 같지는 않은데요. 경쟁사들도 많고요.”

“몇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아. 너 어디 가서 인턴 했다고 하면 이쪽으로 다 연락 와.”

“근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네가 회사에 손해 끼친 건 생각 안 하냐.”

“근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쪽 사람들이 네 말을 듣겠냐. 내 말을 듣겠냐.”

강주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냥 이 업계를 떠나겠습니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네요.”

“헌터질 그만두면 먹고 살 수는 있냐?”

“부장님이 걱정하실 문제는 아닙니다.”

마음이 급한 쪽은 당연히 임재경이었다.

“얘기 좀 하자. 잠깐만 앉아봐”

“부장님.”

강주혁이 임재경을 빤히 쳐다봤다. 임재경은 이상하게도 그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저를 저 자리에 다시 앉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인턴으로 뽑은 건 이윤철 사장이지만 정규직원으로 뽑아주는 건 자신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불렀다. 그래야지 나중에 자기 사람이 될 테니까.

‘제기랄.’

하지만 임재경은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처음부터 입장은 정해져있었다. 강주혁의 어린 나이와 회사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서 안 그런 척하려 했을 뿐.

임재경은 강주혁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노련하고 배짱이 두둑한 놈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주혁이 갑이고 자신이 을이라는 것도.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일단 앉으시죠.”

그제야 강주혁은 표정을 풀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임재경 부장의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부장이 된 후 적어도 이 사무실에서만큼은 왕이 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자리가 왕좌가 아니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영약이었죠?”

강주혁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마셨구나.”

임재경이 눈을 부라렸다.

“던전에서 구할 수 있는 액체는 함부로 마시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몬스터에게 이로운 액체일지라도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독일 수 있다. 샘플은 채취해도 현장에서 음용하는 건 미친 짓이다.

“밖에서 알아본 거냐? 물건 밖으로 빼돌리는 거 범죄인 거 알지?”

“부장님께서는 그렇게 하셨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뭐?”

“연구팀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공략 1부 3팀에서 제출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처음 가져온 우물물을 분명 인사팀의 박동수 대리에게 제출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임재경 부장은 회사 일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몰라야할 인턴이 회사의 시스템을 정확하게 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눈치가 제법이구나.”

“사실, 우물물이 영약이라는 건 그냥 넘겨짚은 겁니다.”

임재경은 또 한 번 얼굴을 구겼다.

“액체 중에 제일 귀한 게 영약이니까요. 없는 사람 취급하던 인턴에게 갑자기 정규직을 제안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 부장님 정도의 지위를 가지신 분이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임원의 자식에게 몰아주고 싶은 것. 그 정도면 효과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영구적인 것이겠군요. 그런 건 대개 수억씩 하지 않나요?”

“허...”

임재경은 강주혁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저 나이에 뛰어난 헌터일 수는 있다. 잘 싸우고 던전에서 더 많은 걸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저런 눈치는 회사생활을 해가면서 하나둘씩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애송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영약을 저만 꺼내올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닙니까?”

“그래. 맞다.”

임재경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머리를 쓰는 걸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이거 완전 난 놈이었군.’

이 녀석이 무척 탐이 났다.

적당히 당근을 먹이면서 자기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걸 귀신 같이 알고는 오히려 협박을 해댄다.

이 정도 깜냥이라면 굳이 태원이 아니어도 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태원이 아니어도 크게 될 사람이라면 절대 태원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임재경이 태원에 충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럼 저한테 뭘 해주실 수 있습니까?”

“말했잖아. 정규직으로 뽑아주겠다고.”

“정말로 부장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겁니까?”

임재경은 대답을 잠깐 망설였다.

양준기 전무가 이윤철 사장의 편을 들더라도 여전히 김재후 부사장이라는 벽이 있다.

김재후는 신대승 라인. 강주혁을 쳐내서 이윤철을 깎아내리고 싶어 한다.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줄 수는 있다.”

“그게 다입니까?”

“그걸로 부족하냐?”

“적게 잡아도 수십억이 넘는 히든 피스를 발견한 건데 당연히 부족하죠. 일단, 제 실적을 돌려주십시오.”

“...그러마.”

인턴이라면 안 되겠지만 정식직원이 된다면 아깝지 않다. 강주혁이 가져가도 팀장인 유덕현이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직접 발견한 것보다는 조금 덜 하겠지만 팀원을 잘 이끈 공로로 실적을 챙길 수 있다. 부장인 임재경도 마찬가지고.

“공략 1팀에게 실적을 몰아주시는 건 부장님 마음이지만, 더 이상 공략 3팀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싫다면?”

“퇴사하겠습니다.”

임재경 부장은 자신 앞에서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잡아먹으려고 드는 강주혁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또?”

“계속 공략 3팀에 있고 싶습니다.”

“...유 팀장이랑 안 대리가 그렇게 좋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배지나 마찬가지인 공략 3팀인데 거기서 말뚝을 박고 싶다고 하니 아직 뭘 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네. 좋습니다.”

임재경 부장은 강주혁의 대답이 영 못마땅했다.

‘이 놈을 양준영한테 붙여주면 딱인데. 아니면 정찰팀이나.’

하지만 강주혁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아직 그 두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아마 후회하게 될 거다.”

“부당한 이유로 불이익만 받지 않으면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못 들어줄 부탁은 아니다. 나중에 공략 3팀을 떠나고 싶어 하면 다른 곳으로 빼내면 된다.

아마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좋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블린 신전에서 영약 가져오는 건 정규직원이 된 후부터 하겠습니다.”

“뭐?”

“일종의 보험입니다.”

“만약 정규직이 못 되면?”

“저는 다른 회사를 찾고 부장님은 히든 피스를 포기하시는 거죠.”

“...그래. 알았다.”

임재경은 질렸다는 투로 말했다.

“주제 넘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공손한 태도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