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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16화 (1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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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술 한 잔 사주십시오.

16화 술 한 잔 사주십시오.

“주혁아, 잠깐 나 좀 보자.”

“네. 팀장님.”

보고서를 쓰던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안다정이 고개를 들었다.

“옥상 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팀장님 담배 끊었잖아요.”

안다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다시 펴.”

“사모님께 이를 거예요.”

유덕현은 대꾸하지 않고 강주혁과 함께 옥상으로 갔다.

근무시간인데 옥상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덕현은 강주혁을 옥상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당연히 담배는 없었다. 금연을 시작한 후로 한 번도 산 적이 없었으니까.

“옥상은 처음이지?”

“네. 팀장님.”

“나도 담배 피울 때는 자주 왔는데 금연한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오게 되네.”

“사무실에서 하기 곤란한 얘기들을 주로 옥상에서 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는 거냐?”

“직장인 다루는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보냐?”

“네. 대학 때부터 즐겨 봤습니다.”

“10년 넘게 다녀봐라. 회사의 히읗 자만 봐도 구역질이 날 걸.”

유덕현은 말없이 웃는 강주혁을 빤히 쳐다봤다. 늘 그랬듯이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예의 바른 표정.

첫 날부터 그랬다.

낯선 환경에 떨어지게 되면 누구나 느끼기 마련인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연수원에서부터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이지혜도 욕을 된통 먹고 다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든 척척 해냈다.

상사들과 페이스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야할 시기에 오히려 공략을 주도했고 상사들도 만들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걸출한 녀석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한테도 사수가 있었다.”

유덕현이 공략회사들로 가득 찬 강남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엄청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었지. 왜 그런 친구 있잖아. 같이 다니면 괜히 나까지 우쭐해지게 만들어주는 친구.”

“네. 저도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내 사수가 그랬어. 안 대리만큼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헌터였지. 반면에 난 태원공략에 턱걸이로 들어올 만한 실력이었지 두각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어.”

잘 아는 스토리였고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도 알았지만 강주혁은 귀담아 들었다.

“얼마나 답답했겠냐. 부사수라고 들어왔는데 자기의 반도 못 되는 놈이었으니까.”

“지금 팀장님을 보면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이 놈 봐라.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아부를 하네.”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유덕현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싫어할 법도 한데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잘 가르쳐줬어. 덕분에 나도 회사에서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되었지.”

“감사한 분이군요.”

“그래. 근데 회사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고 나도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 때쯤 일이 터졌지.”

“일이요?”

“사수가 던전에서 발견한 마석을 빼돌린 거야. 그것도 꽤 많은 양을.”

“톨게이트에서 인사팀과 감사실 직원이 일일이 검사를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감사실 직원은 소지품 검사만 하지 마석의 양까지 체크하지는 않아. 내 사수는 인사팀 직원을 매수했어.”

“매수요?”

“그래. 팀원들 눈을 속여가면서 여분의 마석을 챙긴 후 그걸 인사팀 직원을 통해 외부로 빼돌린 거야. 제출하는 마석들 중에 실적으로 계산이 안 되는 게 있었던 거지. 톨게이트에서 공개적으로 마석 양을 일일이 체크하고 기록하는 시스템은 그 때 일로 생긴 거야.”

“그 분은 왜 그런 일을...”

“사수가 일이 터진 후 내게 털어놓더라. 자기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고.”

“그럼 누가?”

“윗선에서 시킨 거지.”

“아...”

“임원들 중 한 사람이야. 회장님 첫째 아들인 신대성 사장 라인이라고 하더라. 내 사수도 그 라인을 타고 있었던 거야.”

“높으신 분들이라면 돈도 많을 텐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자금 조성 때문이겠지. 공식적인 기록이 남지 않는 자금이 필요했던 거야. 그래서 인사팀과 걸출한 헌터를 시켜서 회사 돈을 조금씩 빼돌린 거지.”

“그 임원은 처벌을 받았습니까?”

“아니. 꼬리 자르기를 하고 살아남았어.”

“살벌하군요.”

“회사가 이런 곳이야.”

“그 사수 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공금횡령이면 퇴사하시는 걸로 끝나진 않았을 텐데.”

“<광야>로 달아났어.”

“네?”

“던전에 있을 때 일이 탄로가 났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대로 달아나버렸지.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안타깝네요.”

“그 때부터 사내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수도 이용당하다가 버려졌는데 나 같이 그저 그런 놈은 그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겠지. 그럴 듯한 미래를 보고 라인을 타기보다는 좀 손해를 보더라도 라인을 안 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유덕현은 회한이 가득한 눈으로 회색빛 도시를 훑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우리 팀이지.”

“안다정 대리가 대충 얘기해줬습니다.”

“안 대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임재경 부장님이 1팀의 양준영 대리에게 실적을 몰아주려고 해서 우리 팀이 찬밥신세라고 했습니다.”

“안 대리가 그런 얘기를 했어?”

“네. 팀장님.”

“너한테 그런 말까지 하다니...네가 진짜 마음에 들었나보다.”

강주혁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으면서 웃어보였다. 유덕현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는 다시 건물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팀장님.”

“어?”

“속에 담아두지 마시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뭐를?”

“부장님 뵙고 와서 곧장 이리로 오신 거잖습니까.”

유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장님께서 히든 피스를 넘기라고 하신 거죠?”

“허...”

유덕현은 두 번 놀랐다.

눈치에 한 번, 자신의 공을 송두리째 뺏기게 생겼는데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정신력에 또 한 번.

“그 우물물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아냐?”

“모릅니다.”

사실, 유덕현도 몰랐다.

뭔지는 모르지만 임재경 부장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걸 봤을 때 우물물이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팀장님,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혁아...”

“어차피 제게 선택권이 없는 문제니까요.”

강주혁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유덕현은 이걸 제대로만 평가받는다면 강주혁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근데 뭐를 받기로 하셨습니까?”

“뭐를 받다니?”

“임재경 부장님이 맨입으로 히든 피스를 달라고 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유덕현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인턴이 회사가 돌아가는 꼴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 걸까?

“...차장 진급을 약속받았다.”

“다행입니다. 그럼 안다정 대리는 제가 한 번 설득해보겠습니다.”

“뭐? 네가?”

“안다정 대리가 팀장님 제 때 진급 못하시는 걸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략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말도 했고요. 팀장님 생각해서 한 번만 넘어가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유덕현은 강주혁과 안다정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탓에 울컥했다. 눈에 물기가 차고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그러나 그 마음은 이내 자신에 대한 환멸과 지금 상황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던전에서 강주혁에게 생명을 빚졌다. 그런데도 자신은 강주혁의 실적을 가로채 진급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유덕현은 그런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유덕현은 자신을 다그치듯 고개를 거칠게 젓더니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리고는 황소처럼 콧김을 뿜어댔다. 당장 임재경 부장을 찾아갈 기세였다.

“방금 한 말 못 들은 걸로 해. 내려가자.”

유덕현은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팀장님.”

강주혁이 그런 유덕현을 막아섰다.

“왜?”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무슨 말?”

“팀장님 결혼하셨잖아요. 사모님이랑 따님 생각하셔야죠.”

“...주혁아.”

“네. 팀장님.”

“너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너 어차피 이 회사에 남아있지도 못하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팀장님을 챙기셔야죠.”

“인마, 너는 나랑 알게 된지 이제 고작 3주야. 날 얼마나 봤다고 네 살을 깎아가면서 나를 챙겨.”

“제가 못 주겠다고 버티면 안 뺏기는 겁니까?”

유덕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이지만 팀장님과 안다정 대리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인턴인 저한테 정말 많은 기회를 주셨죠. 갈 때 가더라도 두 분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 이 새끼야...”

유덕현은 붉게 충혈이 된 눈을 보여주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정 저한테 미안하시면...”

유덕현이 좀 진정이 된 것처럼 보였을 때 강주혁이 다시 말을 꺼냈다.

“술 한 잔 사주십시오.”

* * *

사무실로 내려온 유덕현은 안다정에게 메시지로 회식을 제안했다. 이지혜는 빼고 강주혁이랑 셋이서만.

회식이라면 질색하는 안다정이었지만 유덕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기에 순순히 응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따로 자리를 잡은 거예요? 지혜 씨는 빼놓고?”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안다정이 물었다.

직감적으로 이번 회식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유덕현이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에 설명은 강주혁의 몫이 되었다. 강주혁은 임재경 부장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를 차근차근 얘기했다.

“미쳤어요?”

예상대로 안다정은 듣자마자 폭발해버렸다.

“아니, 주혁 씨 말고 부장님이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강주혁은 안다정에게 속사정을 얘기하는 건 반드시 회사 밖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다정의 반응을 본 유덕현은 강주혁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회사 안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면 안다정은 당장 부장실에 쳐들어가서 전부 뒤집어엎거나 감사실로 달려갔을 것이다.

“아니, 무슨 회사가 이따위에요? 망하고 싶어서 환장한 거예요?”

유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니. 이걸로 주혁 씨 정규직 전환되거나 공채 다시 지원할 때 가산점 받아야하는 거 아니냐고요. 안 그래요?”

“대리님.”

안다정이 강주혁을 쳐다봤다.

“상식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거, 알고 계시죠?”

안다정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항상 최고만 뽑고 싶어 하는 태원공략이다. 한 번 떨어진 직원을 다시 뽑는 경우도 없고 인턴이 정규직으로 전화된 적도 없다.

어차피 태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헌터들은 널렸고 그들 중에는 실패자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차피 제가 쓸 수 없는 실적입니다. 이걸로 팀장님 진급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회사가 이래서는 안 돼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죠.”

“내일 감사실에 갈 거예요. 말리지 마요.”

“가도 소용없을 거야.”

유덕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에요?”

“아직 잘못한 게 없잖아. 그냥 우리 실적으로 계산되어야하는 걸 잠깐 딜레이 시켜놨을 뿐이야. 감사실에서 잡아갈 만한 짓을 한 게 아니라고. 우리가 이걸 터뜨리면 그런 소리한 적 없다고 하면서 어물쩍 넘어갈 걸.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부장을 칠 수는 없어.”

게다가 이맘때쯤의 감사실은 신대성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있었다. 같은 라인인 임재경 부장을 건드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도 우리 실적을 지킬 수 있잖아요.”

“대신 부장님한테 찍히겠죠.”

강주혁이 대신 답했다.

“차별은 지금도 받고 있어요. 나빠져 봤자 얼마나 더 나빠지겠어요.”

“팀장님의 미래가 더 어두워질 겁니다. 진급 계속 못하시면 위험하잖아요.”

안다정은 당장 누구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살기를 뿜어댔다.

“이렇게 해서 주혁 씨가 얻는 게 뭐가 있어요? 주혁 씨는 억울하지도 않아요?”

“억울하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뭔가를 얻는 게 불가능하니까 두 분께 좋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겁니다.”

강주혁은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실적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포기하려고 해도 실적이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쇼를 하는 건 이번 기회에 상사들의 마음을 확실히 얻고 싶어서였다.

“이해가 안 되네요.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예요?”

안다정은 여전히 여유 있게 웃고 있는 강주혁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선을 선택할 뿐이죠. 우리가 실적을 쌓는 이유도 결국 진급이잖아요. 실적을 양보하고 팀장님이 진급하시면 그게 더 이득이죠. 저야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실적이 있어도 도움이 안 되고요.”

안다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강주혁을 바라보다 말없이 맥주잔에 소주를 붓기 시작했다.

다음 날.

유덕현은 임재경 부장을 찾아갔다. 공략 3팀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히든 피스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

임재경 부장은 히든 피스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 공략 3팀 중 누구도 히든 피스를 찾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지혜는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지만 강주혁은 끝까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임재경 부장은 팀장급 회의에서 98-A113을 담당하는 팀을 양준영 대리가 있는 공략 1팀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임재경 부장이 유덕현 팀장을 다시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사무실 안에는 임재경 부장 말고도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가 있었다. 임재경의 심복이자 공략 1부 정찰팀의 팀장인 차지훈 차장이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임재경은 유덕현을 보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고블린 신전에서 리스폰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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