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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급이다.
15화 D급이다.
강주혁은 하수구처럼 좁은 통로를 따라 수직으로 떨어졌다.
콰콰콰!
재빨리 들고 있던 단검을 벽에 꽂아 넣자 불꽃이 튀면서 길쭉한 선이 그어졌다.
추락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으나 낙하속도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곧 통로가 끝나고 숨겨진 방이 나타났다.
탁!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10미터 정도 되는 높이다. 강주혁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낙법을 시도했다.
다행히 발목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강주혁은 고블린 샤먼이 다리를 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 샤먼도 이전에 여기에 들어왔을 때 발목을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 어쩌면 평범한 고블린이 전임자를 제물로 바쳐 이곳에 떨어짐으로써 샤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주혁 씨!”
머리 위에서 안다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리님! 저 여기에 있어요!”
강주혁은 천장에 있는 구멍을 보고 외쳤다. 아주 비좁기는 하지만 수직으로 곧게 뻗어있어서 안다정의 조그마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괜찮습니다. 아주 멀쩡합니다.”
“다행이에요. 주혁 씨가 떨어지자마자 철조망이 튀어나와서 통로가 막혔어요! 지금 당장 부술게요!”
“대리님! 잠깐만요!”
“왜 그래요?”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여기 좀 둘러볼게요.”
“주변에 뭐가 있어요?”
강주혁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우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 빛나는 돌이 벽에 박혀있어서 어둡지는 않았다.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절대 마시면 안 돼요!”
던전에서 발견되는 액체를 함부로 마시지 않는 건 공략의 기본.
“네. 대리님. 잘 알고 있습니다.”
“샘플 채취할 수 있어요?”
“가능합니다!”
“샘플만 채취하고 주변을 잘 살펴봐요. 올라올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네. 대리님. 확인하고 말씀드릴게요!”
강주혁은 우물로 다가갔다. 이 우물이야말로 이곳에 온 진짜 목표였다.
강주혁은 수통을 비워낸 후 우물 안의 액체를 담았다. 그리고 안다정의 말을 무시한 채 곧장 액체를 들이켰다.
맛은 물처럼 평범했다.
“윽!”
수통을 반쯤 비웠을 때, 몸 안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복통과 함께 단전이 있는 부분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잠시 후, 복통과 열기가 잦아들자 강주혁은 몸 안에 힘이 넘쳐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넘쳐나는 힘만큼 단전도 커져있었다.
‘D급이다.’
액체의 정체는 영약. 영구적으로 내공을 0.5성에서 1성까지 올려준다.
안타깝게도 한 사람당 한 번밖에 효과를 보지 못하며 C급 이하에게만 적용된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이 마시면 랭크가 하나 오른다.
굳이 이지혜가 빠졌을 때 이곳을 공략하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녀와 이걸 공유하기 싫었으니까.
“주혁 씨, 방금 철조망이 없어졌어요! 제가 내려갈게요!”
“아닙니다! 대리님! 그러실 필요 없어요. 볼 일 다 봤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여기엔 우물 하나 밖에 없어요. 아주 작은 방이에요.”
“알겠어요. 로프 내려줄게요.”
강주혁은 안다정이 내려준 로프를 잡고 통로를 올라갔다.
드르륵!
강주혁이 바닥으로 올라오자마자 돌이 다시 튀어나오더니 통로가 막혀버렸다.
제단도 다시 내려갔다.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후, 십 년 감수했네.”
유덕현과 안다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안다정이 걱정스레 물으며 강주혁의 여기저기를 뜯어보았다.
“멀쩡합니다.”
“떨어질 때는 어떻게 한 거예요?”
“단검을 벽에 꽂아 넣어서 속도를 좀 줄였습니다. 낙법도 쳤고요.”
“그거 보기보다 튼튼하네요.”
“고블린이 들고 다니는 물건들 중 이것보다 좋은 건 없을 겁니다.”
“우물물은?”
“여기에 있습니다.”
강주혁은 수통을 유덕현에게 건넸다. 유덕현은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전리품치고는 초라한데. 다른 건 없었어? 마석이나 아티팩트 같은.”
“네. 팀장님. 안타깝게도 이게 전부입니다.”
“쩝. 이 액체가 쓸 만한 것이길 바라야겠네.”
“이렇게 꽁꽁 숨겨놨으니 분명 가치가 있을 겁니다.”
히든 피스가 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어서 유덕현은 불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액체의 성분분석이 끝나고 효능을 알게 되면 표정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사진 찍고 마석 수거하자.”
“네. 팀장님.”
* * *
인사팀 박동수 대리는 톨게이트에서 공략 1부 3팀이 제출한 전리품을 체크했다.
하급 몬스터인 고블린만 있는 지역이라 마석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공략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오거에게 나왔다는 중형 마석. 다른 하나는 히든 피스에서 찾았다는 액체.
오거는 다른 지역에도 출몰하는 녀석이니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수통에 담긴 정체불명의 액체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게 정말 히든 피스에서 찾아낸 거라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과장님, 인사팀 박동우입니다.”
박동우는 공략 1부 지원팀의 팀장인 배재훈 과장에게 연락했다. 두 사람은 학교 선후배사이다.
“어, 박 대리. 어쩐 일이야?”
박동우는 주변에 듣는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 목소리를 낮춘 후 말했다.
“공략 1부 3팀이 고블린 신전에서 히든 피스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뭐가 나왔는데?”
“우물에서 물을 담아왔습니다.”
“성분은 확인해봤어?”
“아직요. 만약 쓸모 있는 거라면 공략 3팀이 먹기엔 좀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지. 잠깐 끊고 기다려봐.”
“네. 선배님.”
박동우는 전화를 끊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꽁초가 다 타들어갔을 때쯤, 전화가 왔다.
공략 1부의 임재경 부장이었다. 까마득한 선배였지만 임재경 역시 박동우와 동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어이, 박동우. 잘 지냈어?”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부장님도 강녕하셨습니까.”
박동우는 임재경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연신 굽실거렸다.
“나야 뭐 늘 똑같지. 우리 유덕현이가 히든 피스를 찾았다고?”
“네. 부장님. 고블린 신전 내부에서 숨겨진 방을 하나 찾아냈다고 합니다.”
“신통한 놈이네. 정찰팀이 그렇게 드나들어도 하나도 못 건졌는데.”
“강주혁 인턴이 찾아낸 거라고 합니다.”
“뭐? 강주혁이가?”
“네. 유덕현 팀장과 안다정 대리 둘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허...강주혁 그 놈 진짜 뭐가 있는 거 아니야?”
“인사기록상으로는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다른 공략회사 사장 아들이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아닙니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중소공략회사를 운영했는데 지금은 망했습니다. 아버지도 병으로 사망했고요.”
“그래. 유 과장이나 안 대리가 줄 서려고 실적 몰아줄 녀석들은 아니지. 혹시 허윤규 과장이라고 아나?”
“...비리로 그만둔 사람 말씀이신가요? 배재훈 과장 소개로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재수 없게 걸리긴 했지만 실력은 쓸 만해. 우리 쪽 사람이기도 하고.”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을 검사하는 건 연구팀의 역할이다.
규정에 따르면 박동우는 3팀이 제출한 액체를 태원공략의 연구팀에 제출해야한다. 하지만 액체가 연구팀에 넘어가는 순간, 공략 3팀이 그걸 가지고 왔다는 게 공식화된다.
“내가 미리 전화해놓을 테니까 오늘 저녁에 만나서 뭔지 알아내. 최대한 빨리.”
회사의 전리품을 외부로 빼돌리는 건 범죄다. 걸리면 옷을 벗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박동우는 밖에서 검사만 하고 들어오는 거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 부장님.”
“잘 되면 이번 건은 전부 네 공이다. 대신 걸리면 어떻게 하는지 알지?”
“네. 부장님. 걱정 마십시오.”
인사팀의 수장인 곽진섭 부장은 둘째인 신대승 라인이지만 인사팀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박동수는 학교 선배인 배재훈을 통해 임재경을 알게 되었다. 임재경은 신대성 부회장의 오른팔인 양준기 전무를 따랐고. 자연스럽게 박동수도 신대성 라인을 타게 되었다.
신대성은 신태원 회장의 장남인 만큼 후계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다.
박동수는 헌터는 아니지만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었다. 미래에 더 많은 걸 차지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임재경 부장은 박동수 대리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래. 어떻게 됐어?”
“그 액체, 영약입니다.”
“영약?”
박동수는 우물물이 가진 효능과 한계에 대해서 설명했다.
“월척이구먼.”
임재경 부장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야했다.
한 번 마시는 걸로 랭크가 하나 오를 정도의 영약이라면 최소 수 억 원의 가치가 있다.
1인 1회, 하급 헌터 한정이라는 단점만 없다면 아마 수십억을 넘겼을 거다.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물이라고 했으니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실적으로 따지면 임원 진급은 확정이다.
“수고했다. 동수야.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하마.”
“감사합니다. 부장님.”
통화를 끝낸 임재경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끈이 떨어진, 끈을 잡을 생각도 없는 3팀이 가져가기에는 너무 큰 열매다. 이걸 1팀의 양준영 대리에게 떠먹여준다면 아버지인 양준기 전무가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만 해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재경은 곧장 사무실로 유덕현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유덕현이 들어오자마자 임재경은 사무실 쪽 실내 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일단 앉지.”
유덕현은 자리에 앉았다.
“차 한 잔 마시겠나?”
“아. 네. 감사합니다.”
임재경은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손수 차를 준비했다.
“부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앉아 있어.”
유덕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받아. 태원상사에 있는 친구가 영국 출장 갔다가 사다준 거야.”
“감사합니다.”
유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받았다.
평소에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던 임재경이었기에 유덕현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어때?”
임재경은 유덕현이 차를 한 모금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향이 정말 좋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자네 과장 단지는 얼마나 됐지?”
“4년 차입니다.”
“꽤 됐네.”
“...네.”
“어제 공략에서 조금 늦게 복귀했던데?”
“히든 피스를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히든 피스는 헌터들의 노다지다. 그만큼 화제성이 크다. 그런 얘기를 꺼냈는데도 임재경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유덕현은 히든 피스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히든 피스 발견했다는 거 누가 알고 있지?”
유덕현은 왜 그걸 물어보는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톨게이트에 있는 인사팀과 감사실 직원에게 보고했습니다.”
“사무실 사람들은?”
“어제 곧바로 퇴근해서 아직...”
임재경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유덕현을 빤히 쳐다봤다.
“덕현아.”
“네. 부장님.”
“나랑 거래 하나 하자.”
유덕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3팀이 찾는 히든 피스 1팀으로 넘기자.”
“절대 안 됩니다!”
유덕현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가 부장의 부라린 눈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말끝까지 듣지.”
“죄송합니다. 부장님. 하지만 이건...”
“유 과장도 빨리 차장 달아야지. 다른 공략팀장들 전부 차장인데 혼자 과장이면 모양 빠지잖아. 안 그래?”
“그건...제가 찾은 게 아닙니다.”
“인턴이 찾았다면서?”
“알고 계셨군요?”
“보고서에도 그렇게 쓸 거야?”
“...부장님.”
보고서에는 사실대로 쓰는 게 원칙이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다른 팀 팀장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보고서를 조금씩 수정해서 올린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으이그, 이 미련한 놈아. 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원칙대로 하는 겁니다.”
“원칙이 밥 먹여줘? 몇 달 있으면 나갈 놈한테 그 귀한 실적을 주려고? 그러니까 네가 아직까지 과장인 거야. 너 1팀 정 팀장이랑 동기 아니야?”
“...네.”
1팀의 정완순은 2년 전부터 차장이었다.
자기 밑으로 들어온 양준영을 챙기면서 양준기 전무의 눈에 들었고 같은 라인인 임재경 부장이 밀어주니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유덕현은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내와 딸내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직 한참 남은 전세 대출도.
“안 대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유덕현의 말에 임재경 부장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안다정의 핑계를 댄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흔들렸다는 얘기다.
“덕현아.”
“네.”
“우리 회사에서 안 대리한테 말이 씨알이라도 먹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유덕현도 부정하지 못했다.
가는 곳마다 상사들과 트러블을 일으켜왔던 안다정이 유일하게 진득하게 붙어있는 곳이 1부 3팀이다. 툭하면 대거리를 해대고 잔소리를 퍼붓기는 해도 안다정은 유덕현을 잘 따랐다.
3팀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임재경은 그 점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
“이미 인사팀에 구두로 보고를 하고 샘플도 제출한 상태입니다.”
“내가 누구한테 이 얘기를 들었겠냐. 네가 아직 보고서도 안 올렸는데. 감사실 직원도 약칠 좀 해놨어. 내가 전부 홀드 시켜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부장님...”
유덕현은 임재경이 앞에 있는데도 한숨을 쉬었다.
임재경은 그런 유덕현을 한심하게 여겼다.
“히든 피스 빼고 보고서 올려. 어떻게 찾았는지는 나한테 따로 얘기하고. 리스폰 데이 지나면 1팀이 들어간다. 가서 안 대리랑 강주혁이 잘 설득해 봐. 다른 사람들 귀에 안 들어가게 입단속도 시키고.”
유덕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쉽게 가자. 인마, 그럼 너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거야.”
“가보겠습니다.”
유덕현은 확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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