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3화 (13/202)

#   13 - 3476309

#

13화 저렇게 된 건 제 탓이 아닙니다.

13화 저렇게 된 건 제 탓이 아닙니다.

푹!

강주혁의 검이 고블린의 목을 꿰뚫었다. 검은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딱 죽을 만큼만 파고들었다가 뽑혀져 나와 다음 타깃을 노렸다.

안다정은 후방에서 활을 쏘면서 강주혁이 휘두르는 검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어느 정도 찔러야 죽는지 아는 건가...’

뒤따라가면서 확인한 결과, 강주혁이 죽인 고블린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뼈나 가죽이 두꺼운 부분은 노리지 않았다.

둘째, 하지만 전부 급소였다.

셋째, 그러면서도 상처가 깊지 않았다.

요컨대, 최소한의 힘만으로 적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칼날이 입는 내구도 피해도 적다. 우연히 몇 번 그런 게 아니라 두 시간째 꾸준히 저런 식으로만 죽이고 있었다.

몸에 습관처럼 완전히 배어있는 동작들. 안다정은 감히 따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몇 년 동안 고블린만 잡는다면 모를까.

“실적 내놔라. 이 못생긴 땅딸보들아!”

안다정의 시선이 전방에서 고블린을 도륙하고 있는 유덕현에게로 향했다.

유덕현이 호쾌하게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들이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잘려나간 머리통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가 땅에 떨어졌다. 동작이 시원시원하고 박력이 넘쳤다.

액션 영화 주인공처럼 화려한 공격을 보여주는 유덕현.

공장의 로봇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부품을 조립하듯 기계적인 동작으로 고블린을 처리하는 강주혁.

언뜻 보면 유덕현이 강주혁보다 더 잘 싸우는 것 같다. 하지만 안다정은 실상은 정반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끝났다.”

유덕현이 투구를 벗고 땀을 훔쳤다. 예상대로 호흡이 가빠져있었다.

“잠깐 숨 좀 돌리자고.”

“네. 팀장님.”

거의 비슷한 수의 고블린을 죽인 강주혁은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호흡도 가지런했다.

유덕현은 이지혜가 챙겨준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강주혁은 담담히 칼날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모되는 체력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이번 공략에서는 고블린만 나오니 특별히 위험한 일은 안 생길 것이다.

하지만 장기공략에 들어가면 체력문제가 곧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 점에서 강주혁은 이미 유덕현보다 뛰어난 헌터다.

‘인턴 좋아하시네.’

수십 년 간 던전에서 구른 베테랑 헌터처럼 싸우면서 인턴이라니. 매번 그럴 듯한 변명을 늘어놓기는 했으나 강주혁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 없는 안다정이었다.

‘고블린 정도는 어렵지 않군.’

한편, 강주혁은 자신의 감이 회귀 전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몬스터에 따라 꼭 필요한 만큼의 힘만 투자해서 죽이는 건 오랫동안 연구해오고 연습해왔던 방법.

귀찮고 위험해보이지만 손에 익으면 장기공략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걸 확인했다.

‘음?’

강주혁은 괜스레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안다정이 갑자기 고개를 획 돌렸다.

‘눈치 챘나?’

아무리 안다정이라도 시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휘이잉.

그 때, 바람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안다정이었다.

“팀장님!”

안다정이 유덕현을 향해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강주혁이 튀어나갔다. 고블린이 쓰던 버클러를 낚아챈 강주혁은 유덕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유덕현은 투구를 벗고 있었고 방패도 바닥에 내려놓은 상태. 게다가 반대편을 보고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휘이익!

유덕현을 노리고 날아온 건 볼링공보다 더 큰 돌덩이였다.

정면에서 막을 경우 버클러로는 어림도 없을 크기와 속도.

찰나의 순간에 판단을 끝낸 강주혁은 버클러 전면부의 한 점에 내공을 집중했다.

쾅!

무극의 힘이 실린 방패에 돌덩이가 비스듬하게 스쳤다.

방패와 돌덩이가 닿는 점을 통해 전신에서 끌어 모은 내공이 전해졌다. 응축된 내공은 송곳처럼 돌덩이 속으로 파고들어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퍽!

커다란 돌덩이가 작은 덩어리들로 나눠졌다. 여기까지가 강주혁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으악!”

산탄처럼 흩어진 파편들이 유덕현을 덮쳤다. 그는 급히 팔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제외한 부분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다가 B급 탱커의 맷집이 있어서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뭐야, 저건?”

고블린 신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계곡을 옆에 낀 채 협로를 지나야한다.

계곡의 반대편에 아프리카 코끼리랑 덩치가 비슷한 오거가 보였다. 놈은 두 번째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슉!

안다정도 오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피해요!”

돌덩이와 화살이 계곡 위에서 교차했다.

강주혁과 유덕현은 옆으로 몸을 날려 돌덩이를 피했다.

푹!

“끄아아아!”

눈에 화살을 맞은 오거가 괴성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에 안다정도 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오거가 한화보다 잘 던지네.”

유덕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제발 투구 좀 쓰세요!”

안전이 확인되자마자 안다정은 유덕현에게 역정을 냈다.

“쏘리. 쏘리. 두피 통풍 좀 시켜주려다...”

던전에서는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시 된다.

방심하다가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인 유덕현은 무안해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안 대리가 탈모인의 슬픔을 알아! 머리 빠지면 마누라가 바람 필 거야.”

“사모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건 모르지. 너도 시집가서 남편 머리 벗겨지는 거 봐라. 애정이 실시간으로 사그라지는 걸 느낄 거다.”

듬성해진 머리를 잡아 보이면서 덧붙였다.

“이건 말이야.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나에 대한 아내의 남겨진 사랑이야.”

“헛소리 그만 하시고 주혁 씨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해요. 주혁 씨 아니었으면 머리카락이 붙어있을 머리도 남아나지 않았을 거니까.”

“맞다. 내 정신 좀 봐라.”

유덕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강주혁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주혁아, 정말 고맙다.”

“아닙니다. 팀장님.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너한테 정말 큰 신세를 졌다. 너 아니었으면 토끼 같은 자식이랑 여우같은 마누라 놔두고 요단강 건넜을 거야. 내가 너 정규직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이 은혜는 꼭 갚으마.”

“던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는 마세요.”

강주혁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유덕현은 고마움과 안도감 덕분인지 눈시울을 살짝 붉히기까지 했다.

“주혁 씨, 근데 방금 전에 돌덩이는 어떻게 한 거예요?”

“예전에 하이오크한테 썼던 기술을 응용한 겁니다.”

“범용성이 좋네요. 부러워요.”

“대신 내공이 전부 날아가 버렸어요.”

“그건 몬스터 잡아서 채우면 되죠.”

내공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명상. <운기행공>이라고도 부른다. 가만히 앉아서 정신을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던전에서는 쓰기 어렵다.

둘째는 영약. 내공의 최대치를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늘려줄 뿐 내공 자체를 공급하지는 못한다.

셋째는 사냥. 몬스터들이 죽을 때 뿜어내는 오러 즉, 내공의 일부를 흡수하는 것이다. 몬스터가 강할수록 많은 양이 모인다.

“비상시에 다시 쓰려면 빨리 모아야할 것 같습니다.”

“팀장님. 슬슬 갈까요?”

“오케이. 출발하자.”

유덕현은 투구를 눌러쓴 후 앞장섰다.

“그나저나 정찰팀 놈들은 와서 뭘 한 거야. 도시락 까먹고 놀다가 돌아온 거 아니야. 오거가 나왔으면 얘기를 해줘야지. 망할 것들.”

유덕현은 분노를 정찰팀에게 돌렸다. 정찰팀이 놓치는 부분 때문에 공략팀이 피해를 입으면 정찰팀의 실적이 깎인다.

“정찰할 땐 없었겠죠. 고블린들이 자기들만으로 벅차니까 옆 동네에서 불러왔나 봐요.”

“동생들 도와주러 온 힘만 센 동네 바보 형인가.”

“바보치고는 머리를 잘 쓴 것 같은데요.”

안다정은 신전으로 가는 좁은 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계곡 쪽으로는 엄폐물이 없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저격을 하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반대편에는 수풀이나 바위 같은 것들이 잔뜩 있어서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돌아오겠지?”

“눈 하나 잃었다고 포기하면 오거가 아니죠. 오히려 복수하겠다고 더 설쳐댈 거예요.”

안다정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애꾸가 된 오거는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자신의 투석기술을 뽐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유덕현은 어렵지 않게 돌덩이를 막아내거나 쳐냈다. 오거도 안다정이 반격을 하기도 전에 몸을 숨겼다.

“쿠에에엑!”

자기의 소중한 눈을 앗아간 인간 침입자들을 죽이지 못해서 심술이 난 오거는 급기야 고블린들을 집어던져대기 시작했다.

“저건 계약내용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동네 바보 형이 동생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건가.”

아무리 작아도 기본적인 몸무게가 있으니 돌덩이만큼 위협적이긴 했다.

하지만 유덕현은 무리 없이 막아냈고 강주혁은 죽은 고블린들로부터 내공을 흡수할 수 있었다.

동네 바보 형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고블린 신전 앞에서 이뤄졌다.

협로가 끝나는 지점에 오거가 수문장처럼 딱 버티고 서있었던 것이다.

“위험하니까 주혁 씨는 뒤로 빠져요.”

오거는 최소 B급 몬스터.

전투력이 랭크를 상회한다고는 해도 강주혁이 싸우기는 힘들다. 게다가 좁은 통로여서 피할 공간도 없다.

“저도 오거랑 싸워봤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오거는 생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둬놓기도 어려운 몬스터.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관리한 몬스터를 훈련용으로 쓰는 건 수지가 안 맞는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실전 훈련과 시험용으로 쓸 수 있는 건 오크가 한계다. 그것도 영양실조에 걸린 부실한 오크.

그 이상은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어서 잘 안 쓴다. 학생으로서 최고의 스펙을 쌓은 이지혜가 회사에 와서 덜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이런 교육환경 탓도 있다.

“...아니요. 집에서....”

강주혁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말끝을 흐렸다. 안다정이 황당한 얼굴로 강주혁을 쳐다봤다.

“집이요?”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던전에서요.”

뻥이다.

“언제요?”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유덕현도 당황해서 뒤를 돌아봤다.

“춘부장께서 강하게 키우셨구나.”

“아들이 스파르타식 헌터가 되기를 바라셨죠.”

강주혁은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처럼 인상을 쓰면서 답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우리는 힐러도 없으니까. 물약으로 커버칠 수 없는 부상을 입으면 모두 끝장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팀장님.”

“오케이. 시작하자.”

유덕현은 방패를 앞세우고 오거에게 돌진했다. 안다정과 강주혁이 뒤따랐다.

“우어어!”

오거는 입을 벌리고 끔찍한 괴성을 토해내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슉!

안다정은 달리면서 활을 날렸다. 오거는 팔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화살은 오거의 우람한 팔뚝에 비하면 이쑤시개처럼 보였다.

팡!

하지만 화살 안에 담긴 내공의 크기는 오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끅!”

오거는 화살을 맞은 손목을 잡고 신음을 토했다. 손목이 부러진 건지 손이 힘없이 덜렁덜렁 거렸다.

“크아아!”

오거는 남은 한 손으로 돌덩이를 던졌다.

쾅!

유덕현은 방패를 들어 정면으로 날아드는 돌덩이를 막아냈다.

다치지는 않았으나 뒤로 쭉 밀려났다.

“제가 들어가요!”

안다정은 유덕현을 뛰어넘어 오거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오거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 키만 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길이 좁아서 점프 경로를 읽혀버린 것이다.

‘쳇!’

공중에 뜬 상태라 방향전환도 어려웠다. 안다정은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를 위해 검을 세웠다.

그때였다.

오거의 다리까지 파고든 강주혁이 오거가 디디고 있는 바닥을 발로 힘껏 밟았다.

쾅!

폭발이 일어나면서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크?”

한쪽 발이 푹 꺼지자 오거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붕!

몸이 무너져 내리자 안다정을 향해 휘둘렀던 몽둥이도 허공만 갈랐다.

‘좋았어!’

안다정은 방어자세를 풀고 오거의 남아있는 눈을 검으로 찔렀다.

푹!

검은 뇌에 닿을 만큼 깊이 들어갔다. 꿰뚫린 눈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디디고 있던 바닥이 붕괴되면서 균형을 잃은 오거는 옆으로 쓰러지면서 계곡으로 추락했다.

안다정은 잽싸게 오거의 머리통에서 점프해서 지상에 착지했다.

“이런...”

피해 없이 오거를 처리한 건 좋았다.

하지만 계곡 아래로 추락한 오거의 시체에서 마석을 회수해야지만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저기까지 내려가서 마석을 가져올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대리님.”

얼이 빠져있는 안다정에게 강주혁이 힘주어 말했다.

“저렇게 된 건 제 탓이 아닙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