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2화 (12/202)

#   12 - 3474436

#

12화 저도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12화 저도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다른 이유?”

강주혁은 고블린밖에 안 나오는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잠깐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강주혁은 준비해 온 출력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

“기사네?”

“네. 팀장님. 지난 1년 간 고블린 신전을 다뤘던 해외기사들입니다.”

필리핀, 러시아, 체코, 스페인,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캐나다.

무려 7개국에서 고블린 신전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영문기사를 그냥 가져온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들만 스크랩해서 번역했기에 상사들은 강주혁이 말하자고 하는 바를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히든 피스에 대한 얘기네요.”

“네. 대리님. 모두 고블린 신전에서 발견된 히든 피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안다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고블린 신전에 대해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회귀 전에 고블린 신전에 감춰져 있는 히든 피스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강주혁이었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빠른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 좀 더 일찍 이 카드를 꺼내들기로 했다.

“저도 헌터 업계 관련 기사는 수시로 체크하는데 이건 처음 듣네요.”

“고블린이 별 볼 일 없는 몬스터라서 주목을 못 받은 것 같습니다.”

기사는 일부러 검색해서 찾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방법은 안 나오네?”

“영업비밀이니까요.”

기사들은 모두 고블린 신전에서 히든 피스를 찾아냈으며 그 결과로 어떤 이득을 보았다는 내용만 있을 뿐 발견방법은 없었다.

“나쁜 놈들, 우리 던전에서 히든 피스 찾았다고 지들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건 좀 공유해주면 안 되나.”

유덕현은 툴툴거렸다.

“우리가 자기네들한테 손을 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겠죠.”

안다정이 말했다.

공략회사가 큰돈을 받고 특별한 능력이나 경험이 있는 헌터를 다른 회사에 임대해주는 건 이 업계에서 흔한 일이다.

“근데 이미 정찰팀이 싹 다 훑었는데 뭐가 더 나올까? 고블린 신전이야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거지만 꼭 히든 피스가 있다는 보장은 없잖아.”

유덕현은 고블린 신전을 정리하고 히든 피스를 찾아보자는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고는 해도 구체적인 실현방법을 모른다.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뜬구름을 잡는 소리만 하는 것 같았다.

“발견하지 못해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공략해야하는 지역이니까요. 리스폰 데이도 얼마 남지 않았고요.”

어느 지역이든 리스폰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략을 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지만 마석을 더 많이 수거할 수 있으니까.

강주혁은 안전성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지혜 씨가 빠진 상황에서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는 곳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덕현은 고민에 잠겼다. 공략 3팀은 실적이 무척 간절한 상황. 실적이 없으면 진급을 못하는데 실적을 올릴 만한 지역은 배정을 아예 안 해준다.

모두 마석이 적게 나오는 지역이거나 마석이 많이 나와도 이지혜가 고른 지역처럼 잃을 게 더 많은 지역.

만에 하나라도 고블린 신전에서 히든 피스를 발견하면 엄청난 실적을 올릴 수 있다.

“근데 우리가 히든 피스를 찾아보겠다고 하면 욕먹을 수도 있어. 못 찾으면 비웃음을 살 거고.”

“네. 팀장님. 그래서 저는 공식계획서에서 히든 피스 관련 내용을 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빼자고?”

“우리가 히든 피스를 찾겠다고 하면 정찰팀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미 여러 차례 정찰을 한 지역에서 공략팀이 히든 피스를 찾겠다고 설치면 정찰팀은 분명히 언짢아할 것이다.

분명, 결재자인 임재경 부장은 그걸 핑계로 계획서를 반려시킬 것이다.

“주혁아.”

“네?”

“너 혹시 다른 회사에서 왔냐?”

유덕현의 질문에 이미 비슷한 의심을 했던 안다정이 피식하고 웃었다.

“태원공략이 첫 회사입니다.”

“근데 어떻게 회사 돌아가는 꼴을 그렇게 잘 아냐?”

“아버지가 중소공략회사를 운영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인사팀 녀석들은 도대체 왜 이런 녀석을 안 뽑은 거지? 너 연수원 3등 했다는 최석도도 이겼잖아. 그 자식 영약도 먹었다면서.”

“운이 좋았습니다.”

“운은 개뿔. 협회 가서 랭크 측정이나 새로 해봐. 영약 먹은 D급도 가지고 논 녀석이 무슨 E급이야.”

“네. 팀장님.”

하지만 협회에서 측정이 가능한 건 내공 즉, 오러의 양뿐이다.

아마 다시 측정해도 E급이 나올 것이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유덕현은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이지혜는 이 모든 상황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주혁 씨는 괜찮겠어요?”

안다정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주혁 씨 계획서잖아요. 이렇게 심플한 내용만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보고서는 팀별로 올리는 거지만 계획서 입안자가 누군지도 기록에 남는다. 당연히 좋은 계획서를 작성하면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중요한 건 결과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대리님께서 배려를 해주셔서 써보기는 했지만 따로 확인해보니 공식적으로 인턴은 입안자가 될 수 없는 걸로 나오더군요.”

히든 피스로 들떠있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미안해요. 내가 괜한 일을 시켰네.”

“아닙니다. 대리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고블린 신전에서 뭐가 나올지 알고 있는 강주혁은 안다정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좋아. 그럼 다음 주엔 고블린 신전으로 하자고. 지혜 씨 공략은 교육에서 복귀하면 추진해보고.”

자기 계획서가 탈락된 된 줄 알고 축 처져있던 이지혜의 얼굴에 화색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안다정의 지적에 다시 울상을 지었다.

“주혁 씨가 지적한 사항 반영해서 다 뜯어고쳐요. 그대로 내면 반려당할 테니까.”

* * *

예상대로 고블린 신전 공략계획서는 결재라인을 무탈하게 통과했다.

공략 당일.

강주혁은 지원팀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3팀의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계단에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는 사람과 마주쳤다.

“하이오크 슬레이어?”

90년대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촌스러운 5대5 가르마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피부.

이 느끼한 남자의 이름은 양준영이었다. 회사의 실세들 중 하나인 양준기 전무의 아들로 공략 1부 1팀 소속의 대리다.

“안녕하세요. 공략 3팀의 인턴 강주혁입니다.”

강주혁은 자신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양준영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양준영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강주혁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냥 어깨에 팔을 걸치는 게 아니라 은근히 힘을 줘서 누르기까지 했다.

장비까지 포함해서 많은 짐을 들고 있던 강주혁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공략 1팀의 양준영 대리님이시죠?”

“엑설런트! 어떻게 안 거예요? 우린 만난 적도 없는데.”

“직원 명부를 보고 알았습니다.”

“천잰데? 나도 아직 그거 다 못 외웠는데.”

“아무래도 자주 뵙게 되는 공략 1부 분들부터 우선적으로 외웠습니다.”

“그러면 뭐해요? 2달 후면 쓸모없어 지는데. 밖에 나가서 아는 척이라도 하려고?”

양준영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강주혁에게 비수를 날렸다.

“안에서도 아는 척을 하려고요.”

강주혁 역시 태연하게 대꾸했다.

“오오? 이거 그건가? 신입...아니, 인턴의 패기?”

“...패기까지는 아니고요.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주의입니다.”

강주혁이 꿋꿋하게 버티자 양준영은 점차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C급 헌터의 완력은 강주혁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지만 강주혁은 끝까지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희망 좋지. 3팀 상사들은 어때요? 인턴에게 희망을 심어주나요?”

“잘 해주십니다.”

“안다정 대리도?”

“네.”

“에이, 거짓말하지 마요.”

“정말입니다.”

“음...얼굴이 안다정 대리 취향인가?”

양준영은 강주혁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안다정 대리 어때요? 예쁘죠?”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 때, 제 말하면 나타나는 호랑이처럼 안다정이 계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다정 씨. 오랜만이에요.”

양준영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요?”

“아, 그냥 강중혁 씨가 요즘 우리 회사에서 핫하잖아요. 반가워서 얘기 좀 했죠.”

“중혁이 아니라 주혁 씨에요. 남의 팀 직원 괴롭히지 말고 가서 일이나 본인 일이나 하세죠.”

“괴롭히다니요? 제가?”

“일부러 어깨 누르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아, 하하.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쏘리. 쏘리.”

양준영은 어깨에서 팔을 풀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겁죠? 내가 좀 도와줄까요?”

그러더니 강주혁의 짐을 들어주려고 했다.

“양준영 대리님.”

“네?”

“좋은 말로 할 때 꺼져요.”

“..말이 좀 심한데요.”

“말로 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요.”

안다정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자 양준영의 뺨에서 땀 한 방울이 흘려 내렸다.

“그럼 실례.”

양준영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난 튕기는 여자도 좋더라.”

그냥 가는 것 같더니 뒤로 돌아보면서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재수 없는 새끼.”

안다정은 양준영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했다.

“되도록 저 인간이랑 엮이지 마요.”

“네. 대리님.”

“왜냐고 묻지 않네요?”

“저도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안다정은 보일 듯 말 듯 작게 웃었다.

“저 인간 때문이에요.”

텅 빈 복도를 따라서 사무실로 가는 길에 안다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주혁은 묻는 얼굴로 쳐다봤다.

“주혁 씨도 계획서 써봤으니까 알죠? 우리 팀한테는 실적 쌓기 힘든 지역들만 떨어진다는 거.”

“네.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매출이랑 비교해보니까 확실히 차이가 크더군요. 팀인데 인원이 부족한 것도 이상하고요.”

“공략 1부의 알짜배기는 양준영 대리가 있는 1팀이 독식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팀은 찌꺼기만 먹는 거죠.”

“혹시 높으신 분의?”

“양준기 전무님의 아들이에요.”

“난감한 상황이네요.”

“맞아요. 그래서 팀장님이 많이 기대를 하고 계세요.”

“이번 공략에요?”

“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실적을 올리기가 힘드니까요. 실적부진으로 진급도 여러 차례 누락됐었거든요. 저 상태로 몇 년 더 있으면 옷을 벗어야할 거예요.”

평소에는 대거리를 하거나 잔소리를 퍼붓기는 해도 안다정은 유덕현을 끔찍하게 아꼈다. 약간 모자라는 큰오빠를 딱하게 여기는 여동생의 마음으로.

“제가 별 소리를 다하네요. 들어 온지 2주일 밖에 안 된 사람에게 할 얘기가 아닌데.”

강주혁이 답이 없자 안다정이 어색해했다.

“아닙니다. 이런 속사정까지 말씀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주혁 씨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해서는 안 될 기대를 하게 되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도 부담 갖지는 마요. 주혁 씨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니까요.”

확실히 인턴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어서 공략 3팀과 함께 하는 건 강주혁에게 기정사실이다.

이번 생에는 유덕현이 실적부진으로 쫓겨나는 일도 안다정이 환멸감에 회사를 떠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희 왔어요.”

“다녀왔습니다.”

“오케이. 히든 피스 찾으러 가볼까.”

던전에 갈 때마다 항상 죽상이던 유덕현인데 이번에는 꼭 복권 사러 가는 사람처럼 들떠보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저 혼자 빠지니까 왠지 죄송한 기분이 드네요. 하하.”

신입교육 때문에 공략에서 빠지는 이지혜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뺨을 긁었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잖아. 일 더 잘하라고 가르쳐주는 거니까 잘 듣고 와요.”

“네. 팀장님! 그리고 이거...”

이지혜는 밖에서 사온 이온음료를 유덕현에게 내밀었다.

“첫 월급도 안 나온 사람이 뭘 자꾸 사와.”

“그냥 죄송해서요. 헤헤. 별 거 아니니까 목마를 때 드세요. 대리님 것도.”

“고마워요. 교육 끝나면 제가 따로 시험 볼 테니까 열심히 들어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혁 씨도 받아요.”

“고마워요.”

강주혁은 일단 이지혜가 챙겨주는 음료수를 받았다.

세 사람이 받은 음료수가 전부 다른 맛이어서 통의 색깔이 달랐다.

강주혁은 이지혜가 떠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음료수를 전부 버렸다.

아마 이지혜는 모를 것이다.

왜 강주혁이 자신이 없을 때 히든 피스를 찾으려는 건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