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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9화 (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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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약하면 내가 키우면 되지.

9화 약하면 내가 키우면 되지.

“석도 씨, 말해봐. 정말로 먹었어?”

공략 3부 1팀장 채우식이 최석도를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최석도는 지금 흐르는 땀이 급하게 먹은 영약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긴장해서 흘리는 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땀은 왜 그렇게 흘리나?”

채우식은 매섭게 몰아붙였다. 다른 상사들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권투나 이종격투기 경기에서처럼 헌터들의 대련에서도 영약 섭취는 금기사항이다. 만약 대련을 위해서 영약 섭취를 한 게 들통이 나면 업계에서 생매장을 당한다.

“약속시간에 늦어서 달려오느라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기도 하고요.”

일반인도 아니고 전사 계열 헌터는 그 정도 뛴 걸로 땀을 흘리지 않는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절반 이상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에이,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신입들이 대련하다 보면 긴장해서 땀 좀 흘릴 수도 있죠. 하하. 안 그렇습니까.”

보다 못한 김태현이 끼어들었다. 채우식은 신대승이 아니라 첫째인 신대성 라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대승과 완전히 척을 지기는 싫을 것이다.

김태현이 나서자 눈치가 빠른 채우식은 이 싸움을 누가 벌였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뭐, 그렇긴 하지.”

훈련장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채우식이 입을 다물자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불씨를 던져놓고 가만히 지켜보던 강주혁이 말을 꺼냈다.

“삼십 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싸우는 겁니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헐떡거리는 분이랑 곧바로 대련을 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물도 한 잔 드시고 숨 좀 돌리시죠.”

강주혁 한껏 빈정거리는 투로 답했고 최석도는 굴욕감을 느꼈다.

좀 전까지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던 상대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니 성질이 뻗쳤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뭐, 그러죠. 다들 쓸데없는 의심을 하고 계시니.”

최석도의 승낙하기가 무섭게 강주혁이 말을 받았다.

“석도 씨가 영약을 마셨더라도, 물론 이건 가정입니다만, 삼십분이면 약효가 전부 떨어질 겁니다. 그럼 석도 씨가 영약을 썼는지 안 썼는지도 알 수 있겠죠.”

최석도는 기분 나쁘게 웃는 강주혁을 보고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영약의 부작용도 줄어든다. 하지만 동시에 효과도 떨어질 것이다.

강주혁이 휴식을 위해 물러나자 김태현이 최석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냐?”

보는 눈을 의식해서인지 얼굴 표정은 웃고 있는데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묻어났다.

“내가 이거 빨리 끝내야한다고 했지.”

김태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최석도의 심장을 틀어쥐었다.

“죄송합니다. 영약 섭취는 이번이 처음이라...”

“쓸모없는 새끼.”

영약은 한약처럼 체질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게 반응하기도 한다.

본인도 몰랐지만 최석도는 영약을 먹으면 티가 좀 많이 나는 체질이었다. 부작용을 감추는 것만 신경을 쓰다가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이길 수 있겠냐?”

영약을 먹고 넘쳐나는 힘과 속도로 단칼에 끝내려고 했으나 한 번도 때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약의 힘이 떨어진다면? 일방적으로 당할 가능성이 크다.

“기권하겠다고 할까요?”

“미쳤냐? 낙하산으로 들어온 인턴한테 공채로 들어온 신입이 졌다는 게 알려지면 무슨 소리를 듣겠냐. 그리고 여기서 기권하면 약 처먹은 거 인정하는 꼴이야. 죽기 살기로 덤벼.”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지면 내가 너 죽일 거다. 그리고 만약 영약 처먹은 거 들키면 네 선에서 정리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강주혁과 싸움을 붙인 것도 영약을 강제로 먹인 것도 김태현이었지만 최석도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삼십 분이 지나자 강주혁이 다시 다가왔다. 구경꾼들도 다시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강주혁이 검을 겨눈 채 말했다.

최석도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강주혁이 그에게로 돌진했다.

“으아아아!”

최석도는 달려오는 강주혁을 향해 워해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격은 느리고 약했다. 삼십 분 전에 비해서.

아마 보는 사람들도 느꼈을 것이다.

붕!

강주혁은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워해머를 피해 슬라이딩을 했다.

서걱!

그리고 최석도의 옆으로 지나가면서 발목을 그었다.

“으악!”

최석도는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틀어 워해머를 휘둘렀다.

하지만 금방 일어날 줄 알았던 강주혁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다가 워해머가 머리 위로 지나간 후 최석도의 다리를 걸었다.

“윽!”

최석도는 볼썽사납게 뒤로 나자빠졌다.

강주혁은 곧장 덮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다.

“일어나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

최석도는 발목의 상처 때문에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강주혁이 다시 달려들었다. 최석도의 워해머는 이번에도 애꿎은 공기만 갈랐다.

최석도의 공격이 여전히 위협적이긴 했다. 강주혁은 E랭크고 최석도는 영약의 효과가 없어도 D랭크니까.

무턱대고 정면승부를 벌이면 필패다. 하지만 20년 동안 쌓아온 베테랑 헌터의 경험이 객관적인 스펙 차이를 넘어설 수 있게 했다.

서걱!

“컥!”

강주혁은 최석도의 어깨만 살짝 긋고는 물러났다.

“날 농락하는 겁니까!”

“신중하게 접근하는 겁니다. 삼십 분 전에는 분명 저보다 강해 보였으니까요. 석도 씨야 말로 일부러 봐주는 거 아닙니까? 선배님들도 계시는데 슬슬 본 실력을 드러내시죠.”

최석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으아아!”

최석도는 강주혁에게 덤벼들어서 워해머를 맹렬하게 휘둘러댔다.

사원급 헌터답게 패턴이 너무 단순했다. 삼십 분 전에는 피하기에 급급했는데 이제는 여유 있게 반격을 할 수 있었다.

퍽! 퍽!

강주혁은 검을 휘두르는 대신 최석도의 얼굴에 잽을 날렸다.

“똑바로 해! 이 새끼야! 장난치지 말라고!”

모욕감을 느낀 최석도가 고함을 질렀다.

“석도 씨나 똑바로 하시죠. 좀 전에는 안 이랬잖아요. 왜 이렇게 느려진 겁니까. 석도 씨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는데 저 혼자서 열을 올리면 그게 무슨 대련입니까.”

최석도도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싸움을 재개하자마자 계속 힘이 빠져나갔다.

“아니면 영약이라도 마신 겁니까?”

“아니라고 했다!”

“영약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는 효력이 떨어진 후에 오히려 힘이 빠진다는 겁니다.”

“닥쳐라!”

최석도는 있는 힘을 다해 워해머를 투척한 후 강주혁에게 돌진했다.

워해머를 피하면 태클을 날려서 그를 넘어뜨릴 생각이었다. 강주혁보다 덩치가 크니 승산이 있었다.

휙!

하지만 강주혁은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살짝 틀어서 워해머를 옆으로 비껴가게 했다.

척!

그리고 보지도 않고 뒤로 손을 뻗어서 날아가는 해머의 자루를 낚아챘다. 그렇게 손에 들어온 워해머를 머리부터 앞세우고 파고드는 최석도에게 휘둘렀다.

퍽!

머리를 워해머로 맞은 최석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몇 번 몸을 움찔거리기는 했으나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강주혁은 힐러를 보고는 말했다.

“끝났습니다.”

* * *

다음날 아침.

회의준비를 위해 사무실 복도를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 강주혁의 등을 팡 소리가 나도록 쳤다.

뒤를 돌아보니 배가 볼록하고 목이 두꺼운 중년남자가 강주혁을 보면서 씩 웃어보였다. 강주혁은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공략 1부의 수장인 임재경 부장이었다. 그의 뒤로 각 팀의 팀장들이 있었다.

“공략 3부 신입이랑 싸웠다면서?”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임재경 부장은 공략 3부의 채우식 차장과 마찬가지로 신대성 라인이다. 채우식 차장에게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네. 대련을 하자고 해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짜식, 겸손 떨기는. 그 놈이 약도 빨았다면서?”

“확실한 건 아닙니다.”

“웃기는 놈이네. 도토리 키 재기 하는데 약을 다 빨고.”

임재경 부장의 말에 뒤에 있던 부하직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미 다들 최석도가 영약을 먹은 걸로 간주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김태현의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다들 최석도가 영약을 먹었다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태현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최석도는 대련을 할 때는 절대 영약을 먹지 않는다는 헌터 업계의 불문율을 어겼다.

은연중에 따돌림을 당할 것이고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발로 헌터 업계를 떠나기 전까지.

“김규탁 부장 속 쓰려할 것 생각하니까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잘 했어. 인마.”

대련에 참여한 선수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대변한다.

강주혁의 승리는 곧 공략 1부의 승리.

매출처럼 실적으로 집계되는 건 아니지만 자존심 싸움도 그만큼 중요하다. 강주혁은 최석도에게 승리함으로써 공략 1부의 이름을 드높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유 팀장.”

“네. 부장님.”

맨 뒤쪽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유덕현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 녀석 데리고 회식 한 번 해.”

임재경 부장은 법인카드를 꺼내서 유덕현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카드를 받은 유덕현이 고개를 숙였다. 강주혁은 옆으로 비켜섰다.

“인사팀 놈들은 왜 일을 그 따위로 하는지 몰라. 저런 녀석 대신 약쟁이나 뽑고 말이야.”

임재경 부장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뒤따르던 부하직원들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예전 같았으면 저 말을 듣고 기뻐했을 것이다. 헛된 기대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강주혁은 임재경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신대성 라인이라는 것도.

아마 인턴인 강주혁을 정규직원으로 뽑자고 하면 극구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강주혁은 이윤철 사장의 손을 잡고 들어온 사람이니까.

강주혁이 공략 3부에게 한 방 먹인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위해 뭔가 해주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김태현은 나가리군.’

강주혁은 신대승 라인을 탈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아들인 김태현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견적이 나왔다.

대련 중간에 휴식을 취할 때 김태현과 대화를 나누면서 곤혹스러워하는 최석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하기도 싫은 일을 떠맡았다가 사회생활이 시작하자마자 끝나 버린 셈인데 김태현은 커버를 쳐주지 않았다.

아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기가 챙겨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을 것이다. 그 말을 지킬지는 의문이지만.

‘이번에도 신대길인가...’

가장 약하고 가능성이 없는 후보.

이윤철 사장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신대길을 따랐다.

아마 신대길이 아니라 그의 자식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자식교육을 얼마나 잘 시키는가도 신태원 회장이 중요하게 여긴 후계자의 덕목 중 하나였으니까.

강주혁도 그 점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지금 세력이 약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약하면 내가 키우면 되지.’

강주혁은 신대길에게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인턴이 되고 맞이한 첫 주말.

강주혁은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밖으로 나왔다.

‘김밥을 좋아하셨지.’

고시원 근처에 있는 <김밥지옥>에 들려서 김밥을 종류별로 산 강주혁은 강남역에서 전철을 타고 청계산으로 갔다.

‘이쯤이었나?’

한 시간쯤 걷다보니 낯익은 바위가 나타났다. 그 바위를 끼고 등산로를 벗어나 숲을 가로지르니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 아래 공터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휙! 휙!

강주혁은 곧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이미 아침에 고시원 옥상에서 몸을 풀어줬기에 움직임이 가벼웠다. 강주혁은 몇 시간 동안 수련에 집중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힘들 것 같군.’

나쁠 건 없었다.

고시원 옥상보다 훨씬 넓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내공도 더 잘 모였다.

가을을 맞아 청명해진 하늘과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쯧쯧쯧.”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주먹이라고.”

새하얀 머리에 수염을 산신령처럼 길게 기른 노인이 절벽 위에서 강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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