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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8화 (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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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아닌가요?

8화 아닌가요?

“대리님이랑 무슨 얘기했어요?”

자리로 돌아온 강주혁에게 이지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두 상사는 자리에 없었다.

강주혁은 대답 대신에 이지혜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얘기할 사이냐는 눈빛.

웨이포인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 후 두 사람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 어제 일은 미안했어요. 안 대리님께 혼이 나서 정신줄을 잠시 놔버렸지 뭐에요.”

이지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안 대리님이 뭐래요?”

“별 얘기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별 얘기가 뭔데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묻는 겁니다.”

“헤헤, 주혁 씨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갑자기 왜요?”

“사는 곳도 같고 팀도 같잖아요. 앞으로 자주 볼 건데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3개월이면 이 회사를 떠날 건데요?”

“그건 모르죠.”

“김태현 씨가 시켰나요?”

“네?”

“김태현 씨가 저랑 친해지라고 시켰냐고요.”

이지혜의 얼굴이 쩍하고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떻게...”

“김태현 씨가 뭐래요?”

이지혜는 강주혁이 눈치가 더럽게 빠른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주혁 씨랑 친해지고 싶대요. 태현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죠?”

“얘기는 들었습니다.”

“기분 좋지 않아요? 태현 오빠가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데.”

“글쎄요. 저는 벌써부터 저랑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랑 엮이고 싶지 않네요.”

“다른 세계라뇨. 같은 회사 다니잖아요.”

“로열패밀리랑 일반직원은 엄연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혹시 모르죠. 친해지면 주혁 씨 정규직 전환에 오빠가 힘 좀 써줄지.”

강주혁은 잠시 멈칫했다. 아니, 그런 척을 했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데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다른 일정은 없습니다.”

“잘 됐네요. 동기들이 퇴근 후에 훈련장에서 같이 연습하기로 했어요. 주혁 씨도 같이 가요. 태현 오빠도 올 거니까.”

신입사원들이 퇴근 후에 스터디를 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업무에 대한 공부보다는 상사에 대한 뒷담화가 주된 커리큘럼이지만.

공략회사의 신입사원들은 스터디 대신에 함께 훈련을 한다. 상사들도 훈련장을 찾기 때문에 자주 가면 성실한 직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죠.”

지난 생에도 있었던 일이다.

이지혜를 따라 훈련장에 간 강주혁은 김태현 패거리에게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런 식으로 인턴과 정규직의 아득한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생각했어요.”

이지혜는 대단한 적선이라도 베풀 듯이 말했다.

* * *

직장인은 사내정치를 피할 수 없다. 사내정치만 해서도 안 되지만 사내정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사내정치를 안 하면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태원공략에는 네 개의 파벌이 있다.

신태원 회장의 첫째 아들인 신대성을 섬기는 사람들, 둘째인 신대승에게 복종하는 사람들, 막내인 신대길을 믿는 사람들.

중립세력으로 회장만 섬기는 원로급 헌터들. 이들은 개국공신들이나 마찬가지라 회장의 자식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전생에 강주혁은 막내인 신대길을 섬겼다.

신대길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강주혁을 뽑아준 이윤철 사장이 신대길을 지지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 라인을 탔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회장인 신태원은 후계자에게 경영자뿐만 아니라 헌터의 자질까지 요구했다. 강주혁이 속한 파벌은 리더인 신대길이 헌터 생활을 은퇴해버렸기에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했다.

결국, 왕위계승전쟁은 신대성과 신대승의 양자대결이 되었고 강주혁은 실력으로 버티면서 간간이 캐스팅보트 역할만 했다.

‘신대승밖에 없는 건가.’

복수의 대상이 신대성과 한 배를 탈 수는 없었다. 물론, 신대성 밑에 있다가 뒤통수를 치는 방법도 있지만 성격에 맞지 않았다.

신대승을 섬기게 된다면 그의 아들인 김태현과 잘 지내야한다. 하지만 김태현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강주혁은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고민은 퇴근시간까지 이어졌으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오늘도 수고했어. 다들 퇴근합시다.”

유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머지 사람들도 짐을 정리했다.

“안 가요?”

강주혁과 이지혜가 머뭇거리고 있자 안다정이 물었다.

“저희들은 훈련장에서 연습 좀 하고 가려고요.”

“오, 열심히들 하네. 내일도 공략 들어가야 하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유덕현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강주혁의 등을 두드렸다.

“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상사들이 떠난 후 두 사람은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그 때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그거라뇨?”

“기술이요. 하이오크 대전사 잡은.”

“말해줘도 이해 못할 거예요.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강주혁의 말에 이지혜는 입을 비죽이 내밀었다. 친해지려고 하루 종일 치근덕거렸지만 강주혁은 시종일관 냉담하게 대했다.

먼저 말은 거는 경우도 없었고 말을 붙여도 꼭 필요한 말만 했다. 남자들의 일방적인 대시에 익숙해져있던 이지혜는 이 상황이 무척 곤혹스러웠다.

“어이, 곡괭이. 여기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김태현과 신입사원들이 강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완전 날려줬다면서? 사장님이 특별히 뽑은 이유가 있었네.”

김태현은 자연스럽게 강주혁의 어깨동무를 했다.

“다들 인사해.”

강주혁은 신입사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김태현은 계속 끌고 다니면서 훈련장에 있는 상사들에게 강주혁을 소개시켰다. 마치 자기 사람인양.

어제의 소문 때문인지 상사들은 대부분 강주혁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인사가 끝났을 때쯤 한 남자가 훈련장에 나타났다. 그는 곧장 신입사원들에게 다가왔다.

“어? 석도 씨다.”

“지각이에요. 지각.”

“늦어서 미안합니다. 일이 좀 밀려서.”

키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거한은 멋쩍은 듯 웃으면서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훈련장 안이 별로 덥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공략 3부 2팀의 신입사원 최석도. 연수원을 3등으로 졸업한 실력자다.

“인턴?”

남자는 신입사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강주혁과 눈이 마주쳤다.

“인턴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최석도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정색했다.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강주혁이 대꾸하자 최석도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인턴도 훈련장을 쓸 수 있는 겁니까?”

최석도는 강주혁을 무시한 채 주변사람들에게 물었다.

“됐어. 내가 오라고 했어.”

김태현의 한 마디에 최석도는 입을 다물었다.

“하이오크 대전사를 잡았다기에 실력이 궁금했거든.”

“허, 우연이었겠죠.”

최석도가 코웃음을 치자 김태현은 강주혁을 슬쩍 봤다.

강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했다.

“맞습니다. 우연히 하이오크 대전사의 머리통을 한 칼에 날려버렸죠.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도 않을 우연이었죠.”

최석도는 강주혁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더니 콧김을 뿜어댔다.

“그 잘난 실력을 한 번 구경해보고 싶군요.”

회귀 전에는 김태현이 직접 시비를 걸었다.

강주혁은 어린 시절부터 온갖 영약을 섭취하면서 내공을 키우고 최고의 교육을 받아온 김태현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는 이 정도 실력으로 태원공략에 들어올 수 있겠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했다.

‘겁을 먹었군.’

김태현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싸워서 져도 잃을 게 없는 강주혁과는 달리 김태현은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강주혁의 실력이 진짜인지 떠보려는 것이다.

“그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검이 없군요.”

“검이라면 저기에 많아요.”

이지혜가 기다렸다는 듯이 훈련장 한구석을 가리켰다. 훈련용 장비들이 비치된 진열대가 보였다.

아무나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성능은 형편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이거 어떡합니까. 내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네요.”

최석도가 빈정거렸다. 여전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습니다.”

강주혁에게도 나쁠 것이 없는 싸움이다.

이기면 정규직원으로 뽑힐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니까. 강주혁은 훈련용 검을 가져왔다.

“대련하는 거예요?”

당직을 서고 있던 힐러가 다가왔다.

헌터들은 대개 진검으로 대련을 하기에 그만큼 부상도 잦다. 그래서 항상 힐러 한 명이 훈련장에서 당직을 선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힐러가 심판처럼 두 사람의 중간에 섰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각자 훈련을 하던 상사들도 이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왔다.

강주혁과 최석도는 마주보고 자세를 잡았다. 최석도의 무기는 커다란 워 해머였다.

“먼저 시작해요.”

강주혁의 말에 최석도가 표정이 살벌해졌다. 선수를 양보한다는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

최석도는 고작 전투에서 한 번 활약한 걸로 기고만장해진 인턴을 박살내기로 결심했다.

“그러죠.”

최석도가 몸을 살짝 웅크렸다.

팡!

눌려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몸이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최석도는 공중에서 살짝 뜬 상태로 강주혁에게 돌진했다.

‘빠르다!’

신입사원들의 평균 스펙은 D급. 아마 김태현 정도만 C급에 준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최석도가 보여주고 있는 스피드는 절대로 D급의 그것이 아니었다.

“으아아!”

기합소리와 함께 최석도가 워 해머를 번쩍 치켜들었다. 강주혁은 옆으로 몸을 날리려다가 말고 살짝 틀기만 했다.

옆으로 피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쾅!

사람 머리통만한 쇳덩어리가 바닥을 찍었다.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바닥인데도 불구하고 자국이 남았다. 제 때 피하지 못했다면 두개골이 박살났을 것이다.

붕!

최석도는 땅에 박힌 망치를 그대로 옆으로 휘둘러 다리를 노렸다. 강주혁은 줄넘기를 하듯 다리만 살짝 들어서 망치를 뛰어넘었다.

휙!

바닥을 쓸던 망치가 이번에는 위로 솟구치면서 공기를 갈랐다.

강주혁은 순간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혀서 망치를 피했다. 하지만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잠시 비틀거렸다.

“계속 미꾸라지처럼 피하기만 할 겁니까.”

최석도가 여유 있게 웃어보였다. 호흡은 가지런한데 땀을 이상하게 많이 흘리고 있었다.

‘영약을 먹었군.’

영약 중에는 일시적으로 전투력을 올려줄 수 있는 것도 있다. 싼 것도 한 병에 백 만 원이 넘지만 김태현의 재력이라면 못 살 것도 없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가.’

강주혁은 팔짱을 낀 채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김태현을 슬쩍 봤다. 강주혁의 실패는 곧 김태현의 이득. 그렇다 치더라도 방법이 너무 치졸했다.

이지혜를 통해 김태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된 강주혁은 그의 아버지인 신대승을 택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직접 싸울 배짱도 없으면서 수작질이나 벌이는 김태현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식으로 콧대를 꺾어놓고 손을 내밀 수도 있으나 강주혁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원래대로 가야하나.’

강주혁은 신대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으나 그를 따르는 이윤철 사장은 좋아했다. 이윤철은 헌터다운 헌터였고 따르는 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난 생애에는 이윤철의 유지를 잇는 것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시작이 다르니 결과도 다를 것이다.

“왜 그 기술을 안 쓰는 겁니까?”

강주혁이 덤빌 생각을 안 하자 최석도가 물었다.

“살인기술을 함부로 쓸 수는 없죠.”

“뭐라고요?”

“석도 씨의 몸이 하이오크 대전사보다 튼튼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무리 힐러 분이 계셔도 뒷감당이 안 될 겁니다.”

영약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은 기껏해야 랭크 하나. 그 이상 올릴 수 있는 약도 있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영약이 아니라 독약에 가깝다.

무극은 이름처럼 극을 지향하는 기술이라 중간이 없다. 랭크를 D에서 C로 올려도 무극검 한 방이면 머리통이 박살난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S급 힐러만 가능한데 그런 고급인력은 당직을 안 선다.

“저는 이 해머로 주혁 씨로 머리를 부술 겁니다. 그 때 가서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봅시다.”

“영약만 믿고 까부는 꼴이 우습군요.”

최석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강주혁의 시선이 김태현에게로 옮겨갔다. 그 역시 최석도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근거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기껏 망치 몇 번 휘두르신 것치고는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평소에도 쓰던 무기인 것 같은데 무게가 꽤 버거우신 모양입니다.”

최석도는 뜨거운 땀방울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영약을 마시면 체온이 오르죠. 급하게 마시면 더 빨리 오릅니다. 늦게 오신 것도 숨어서 영약을 마시기 위해서였겠죠. 아닌가요?”

강주혁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듣고 보니 진짜 이상하네.”

대련을 지켜보던 상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석도 씨, 진짜 안 마셨어?”

공략 3부 1팀의 팀장인 채우식 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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