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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회장님 때문이죠.
7화 회장님 때문이죠.
“일단, 걔랑 좀 친해져라.”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없겠냐는 이지혜는 물음에 김태현이 답했다.
“네? 왜요?”
“왜긴 왜야. 그 놈한테 뭔가 특별한 게 있으니까.”
“인턴한테요?”
“지혜야.”
“네?”
“너는 하이오크 대전사랑 일대일로 싸울 수 있냐?”
“저, 저는 마법사니까...”
마법사는 군대로 치면 포병이다.
적절한 상황이 조성되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나 일대일 상황에서는 같은 랭크의 다른 클래스에 비해서 전투력이 떨어진다.
랭크가 올라가면 그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수단들이 생기지만 이지혜는 아직 그 수준이 아니다.
“나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긴가민가해. 단칼에 머리통을 날릴 수 없다는 건 분명하지.”
김태현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 사람...광부였잖아요.”
“그래. 작년에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했지.”
“그냥 얻어 걸린 게 아닐까요?”
“모르지.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니까. 네 생각은 어때?”
“아주 강한 기술인 건 맞는데...그냥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하이오크 대전사를 쓰러뜨린 후에도 강주혁은 잘 싸웠다.
강주혁의 전투력이 믿을만하다는 걸 확인한 상사들은 무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지나친 몬스터들은 많았으나 이지혜에게 닿은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중간에서 강주혁에게 갈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운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도 어느 정도는 실력이 받쳐줘야 돼. 분명 뭔가가 있는데...그 새끼, 몰래 영약 처먹은 거 아니야?”
짧은 시간 동안 전투력을 급증시켜주는 영약은 많이 있다. 문제는 그게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것이다.
“아닐 거예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좀 가난해보였어요.”
“어디 엄한 데서 돈을 빌렸을 수도 있지.”
“그렇게까지 한다고요?”
“정규직 전환이 그만큼 간절할 수도 있잖아. 걔랑 우리랑 같나.”
“하긴 그렇죠.”
“나중에 버리더라도 일단은 좀 친해져봐. 혹시 아냐. 너한테 푹 빠져서 자기 비밀을 홀라당 다 까버릴지.”
“내키진 않지만 한 번 해볼게요.”
“그래. 혹시 모르니 약점이 될 만한 것도 좀 알아보고. 아, 그리고 안다정 대리는 어때?”
“안 대리요? 그냥 잘 싸우던데요.”
“안 대리한테 엄청 깨졌다던데?”
김태현의 말에 이지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상한 걸로 트집 잡으니까 그렇죠. 강주혁 얼굴 좀 잘생겼다고 완전 끼고 도는 거 있죠. 하여간 못생긴 것들은...”
김태현은 이지혜가 씩씩 거리는 걸 보고는 냉소를 흘렸다.
안 꾸미고 다녀서 그렸지 안다정도 상당한 미인이다. 수수한 모습도 보이시하다면서 들이대던 남직원들도 엄청 많았다고 들었다. 더러운 성격 탓에 다들 떨어져나갔지만.
“계속 학교 거들먹거리면서 강주혁이랑 비교를 해대서 짜증나 죽겠어요. 자기 학벌 구려서 열폭하는 거 같아요.”
“그 여자 유학파야.”
“유학파요?”
“프린스턴 헌터 아카데미 나왔어.”
다른 학문분야도 그렇지만 헌터관련학문도 미국 아이비리그와 유럽의 전통 있는 명문대학들이 선도하고 있었다. 한국은 헌터와 던전의 유명세에 비해 아카데미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진짜요?”
“웨스트포인트에서 민간인 헌터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헌터스쿨도 졸업했어. 그리고 뉴욕에 있는 <헌터스> 다녔다더라.”
웨스트포인트 헌터스쿨은 살인적인 훈련강도로 악명이 높고 헌터스는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략회사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는 왜 온 거래요?”
“가족들이랑 있고 싶어서라던데 자세한 건 몰라.”
처음에는 질투심이 폭발했다.
하지만 질투심도 수준차이가 적당해야지 생길 수 있는 법.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대개 질투심보다는 그 사람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지혜의 경우도 그랬다.
안다정의 우월한 스펙을 확인하자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걸 방해(?)한 강주혁에 대한 증오가 더 커졌다.
“성격이 개차반이긴 하지만 잘 좀 지내봐. 강주혁도 그렇고. 어차피 같은 팀이잖아.”
“...알겠어요.”
“지혜야.”
“네?”
“나한테는 누나들밖에 없어.”
이지혜는 김태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눈만 껌뻑였다.
“할아버지가 아직 날 인정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회장이 된다면, 그 다음엔 누굴까.”
“아...”
이지혜는 보일 듯 말 듯 웃음을 지으면서 황홀한 상상에 잠겼다.
“너 집은 어디야?”
“네?”
“저녁약속 있어. 이제 가야 돼.”
“아...”
김태현이 어딘가 근사한 곳에서 저녁이라도 사줄 줄 알았던 이지혜는 김이 새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김태현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회사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이 근처에요.”
“잘 됐네. 데려다줄게.”
“아, 아니. 괜찮아요. 저도 약속이 생겨서...”
“그래? 그럼 여기서 내려. 저기 전철역 보이지.”
“...네.”
“또 보자.”
이지혜가 내리자 김태현은 요란한 엔진소리를 울리면서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포르쉐와 있지도 않는 약속이 그녀를 두 배로 비참하게 만들었다.
* * *
유덕현과 9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고시원으로 돌아온 강주혁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아들? 웬일로 네가 먼저 전화를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안부 전화한 거야. 일은 언제 끝나?”
“이제 정리해야지.”
어머니는 동네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는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셨다. 모두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강주혁은 어머니의 깊어진 주름과 거칠어진 피부를 마주해야했다. 형이 던전에서 광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살림이 좀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공부를 하게 된 강주혁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생활은 다시 빠듯해졌다. 지금도 어머니는 생활비에 보태 쓰라면서 다달이 돈을 보내주곤 했다.
강주혁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엔 형의 결혼과 출산 때문에 또 돈이 궁해졌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을 그만두지 못하셨다.
“엄마, 나 이제...”
“아들, 잠깐만. 사장님이 부른다. 이따가 연락할게.”
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10년 후쯤에야 강주혁은 회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액연봉에다가 인센티브까지 붙자 삶도 윤택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을 보지도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십 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가 병을 얻고만 것이다.
[태원공략 합격했어. 이 말 하려고 연락했어. 조심해서 들어가.]
강주혁은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거짓말이었으나 조만간 현실이 될 테니 상관없었다. 무극검을 마스터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인턴을 넘어 정식직원이 되었다. 전생의 기억과 감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일찍 희망을 주고 싶었다.
‘10년은 너무 길다.’
어머니의 예고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한 시라도 빨리 저 지독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드려야 한다.
어머니가 마음 놓고 일을 그만둘 수 있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큰돈이.
강주혁은 미래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었기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어디에 땅값이 오르고 어떤 주식이 오르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일에 관한 것이라면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특히, 가장 오래 일한 <광야>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었다.
강주혁은 기억을 더듬어 어디에 히든 피스가 있고 앞으로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는지를 차근차근 기록해나갔다. 공략업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그 결과가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도 적었다.
마지막으로 지방에서 생겨날 신생 던전의 위치들을 적어나갔다. 지방출장 때 방문했던 곳들이었다. 발생하자마자 공략하러 갔기 때문에 발생 시기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믿을 건 부동산인가.’
던전은 유전이다.
내 땅에서 게이트가 발생하면 땅에서 기름이 솟는 것이나 마찬가지. 화석연료의 가치가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는 지금, 기름보다 게이트가 훨씬 이득이다.
강주혁은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최대한 받은 후 그걸로 게이트가 생길 토지를 구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중에 던전이 생기면 토지를 공략회사나 정부에 비싼 값을 되팔 수 있을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강주혁은 출근 전에 편의점에 들러 숙취해소 음료를 샀다. 그리고 출근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나타난 유덕현에게 그걸 건넸다.
“어? 이게 뭐야?”
“어제 과음하신 것 같아서...”
유덕현은 아내가 정해준 통금만 잘 지키면 얼마든지 마셔도 된다면서 초장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유덕현보다 주량이 훨씬 센 강주혁도 취기 때문에 살짝 당황했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얘기도 제대로 안 하고 술만 마시다가 9시가 되자 자정을 만난 신데렐라처럼 집에 들어가 버렸다.
“크으, 우리 주혁이 센스 좋아. 고마워. 잘 마실게.”
안 그래도 숙취해소음료가 절실했던 유덕현은 강주혁이 보는 앞에서 뚜껑을 따서 원샷을 했다.
“주혁 씨, 잠깐 나 좀 봐요.”
강주혁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안다정이 그를 불렀다.
“네. 대리님.”
“팀장님, 회의실 좀 쓸게요.”
안다정은 파일을 하나 챙겨서 강주혁을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앉아요.”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빙빙 둘러서 말하는 스타일 아니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정체가 뭐에요?”
“네?”
“어제 던전에서 보여준 실력은 절대로 인턴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 보고서.”
안다정은 가져온 파일에서 종이를 꺼냈다.
“분 단위 디테일까지 적어놨더군요. 전투 중에 그 모든 걸 보고 기억하는 건 부장급 헌터에게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내용은 다 빼버렸고요. 내가 줬던 보고서 샘플에는 보고서 작성 기준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주혁 씨는 마치 기준을 꿰고 있는 것처럼 꼭 필요한 내용만 적었더군요. 체계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요. 오타나 비문도 하나도 없었죠.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베테랑 종군기자가 쓴 르포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첫날부터 너무 나댔구나.’
빨리 인턴을 탈출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혁 씨, 나는 이 회사에 큰 애착이 없어요. 항상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죠.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다른 회사에서 보낸 거죠?”
천하의 안다정에게 하루 만에 이런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내심 뿌듯했다. 회귀 전에는 이지혜랑 같이 엄청 깨져가면서 조금씩 인정을 받았다. 그것도 실력이 아니라 근성을.
그런데 이번에는 한 큐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산업스파이로 의심까지 받게 되었다.
“혹시 저에 대해서 좀 알아보셨나요? 궁금해하셨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알아봤어요.”
“잘 됐네요. 대리님 말씀대로 제가 정말로 다른 회사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칩시다. 그럼 뭣 때문에 광부로 1년을 보냈겠어요. 채광팀에서는 공략에 대한 핵심정보도 알 수 없는데. 차라리 실력행사를 해서 한 시라도 빨리 회사의 주류에 편입되는 게 낫죠. 아시죠, 저 1년 전에 입사시험 봤다가 떨어진 거?”
“완전범죄를 위해서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르죠.”
안다정이 정색하면서 말하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예전에는 한없이 어렵고 깐깐한 선배였는데 이제는 떼를 쓰는 후배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있다가 사장님 눈에 들어서 인턴으로 뽑힐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인턴 뽑았다가 사고 나서 인턴 제도도 없앴다면서요. 있지도 않은 제도에 희망을 걸고 광부로 세월을 보낸다는 게 많이 이상해 보이는군요. 산업스파이라면 고급 인력일 텐데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조심해가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눈에 띄게 활동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요.”
“알아요. 나도 그 점이 이상했어요. 그래도 주혁 씨가 보여준 실력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었어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이렇게 잘 하는데도 왜 떨어뜨렸을까요? 인사팀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주혁 씨 실력이면 다른 곳에 갈 수도 있었잖아요. 왜 태원을 고집한 거예요?”
“회장님 때문이죠.”
태원공략은 아직 최고의 공략회사가 아니다.
하지만 회장이자 설립자인 강남검제(江南劍帝) 신태원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헌터다.
그래서 태원공략은 매출에 비해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최강자의 밑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태원공략의 문을 두드리는 헌터도 많았다.
실제로 임원면접 때 회장님 때문에 지원했다고 말하는 것은 모범답안으로 통했다. 할 말이 없어진 안다정은 주제를 바꿨다.
“이 보고서는 어떻게 설명할래요?”
“보고서는 아카데미에서도 많이 쓰잖아요.”
“한국 최고의 헌터 아카데미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 정성들여 쓴 보고서보다 주혁 씨가 30분 만에 날림으로 쓴 보고서가 더 나으니까 그렇죠.”
“학교 다닐 때부터 보고서의 신이라고 불렸습니다. 타고난 재능이죠.”
강주혁은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안다정은 못마땅한 얼굴로 한참을 쳐다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주혁 씨가 제출한 보고서 토씨 하나 수정 안 하고 팀장님께 넘겼어요. 팀장님도 그러시겠죠. 주혁 씨가 쓴 게 우리 팀의 보고서로 올라갈 거예요. 부장님도 알게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서 일 봐요.”
“네. 대리님.”
강주혁이 나간 후 혼자 남겨진 안다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혼자 씩씩거렸다.
‘분명 뭔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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