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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마법사는 마지막입니다.
4화 마법사는 마지막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공략 1부 3팀 인턴인 강주혁입니다.”
지원팀 사무실에 내려온 강주혁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인턴?”
강주혁은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확인한 후 답했다.
“네. 대리님.”
“과장님, 우리 회사에 인턴이 있었습니까?”
지원팀 손강우 대리는 고개를 돌려 상사인 배재훈 과장에게 물었다.
“인턴? 지난번에 사고 나고 없애지 않았나?”
업계 특성 상 공략회사는 인턴을 잘 안 받는다.
미숙한 인턴이 던전에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회사가 곤란해지니까. 실제로 강주혁이 들어오기 1년 전쯤에 사고가 터져서 회사가 곤욕을 치렀다.
“대리님. 이거...”
강주혁은 자신의 사원증을 목에서 빼내 손강우에게 내밀었다.
남들과는 달리 카드 위쪽에 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3개월만 쓸 수 있는 카드. 직급도 분명 인턴.
“진짜네. 근데 용건이 뭐에요?”
“장비를 대여하려고 왔습니다.”
“장비?”
손강우 대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원팀은 헌터들이 사용하는 물품과 장비를 관리하는 부서. 대여해간 장비를 반납하면 수리하는 것도 손강우의 일이다.
“네. 아직 전용장비가 없어서요.”
“장비도 없으면서 헌터로 지원했어요?”
“회사에서 장비를 지급해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강주혁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손강우는 강주혁이 공략 1부의 수장이 될 때까지도 회사에 남아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만큼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도 많았다.
강주혁이 기억하는 손강우는 겉보기에는 까칠하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강주혁만큼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아니, 뭐, 그렇다면야. 무기는 뭐 써요?”
손강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롱 소드 하나면 됩니다.”
“사이즈는?”
“엑스라지 입습니다.”
손강우는 강주혁의 장비를 챙겨주었다.
“훈련 가는 거예요?”
“공략 들어갑니다.”
“공략? 인턴이?”
“네.”
“야, 이거 사람 하나 잡겠는데. 과장님,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공략 1부 3팀 업무 많이 밀려있어서 어쩔 수 없을 걸.”
“이건 뭐 사고 나라고 부추기는 꼴이네요.”
“신경 꺼. 인마. 회사에서 정한 건데 왜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딱히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손강우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강주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97-A33입니다.”
“잘 됐네. 온 김에 보급품도 챙겨가요.”
“네. 대리님. 그리고 저희 신입 한 명 더 있습니다.”
“그래요? 그나마 다행이네. 그 친구는 클래스가 뭐에요?”
“마법사입니다. 전용장비는 있습니다.”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요.”
손강우는 컴퓨터로 던전의 정보를 체크한 후 창고로 들어갔다.
보급품은 클래스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전사에게는 치유 물약 위주로, 마법사에게는 마나 물약 위주로 지급된다.
그리고 투입되는 던전의 규모와 출몰 몬스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던전의 규모가 크면 보급품의 양이 늘어나고 중독을 일으키는 몬스터가 있으면 해독제를 추가하는 식이다.
“다 들 수 있겠어요?”
“문제없습니다.”
강주혁은 손강우가 준 네 개의 주머니를 건넸다.
“몸조심해요.”
손강우는 강주혁의 어깨를 툭 쳤다.
“감사합니다. 대리님. 과장님, 올라가보겠습니다.”
강주혁은 뒷자리에 있는 배재훈 과장에게도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어. 수고.”
지금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8분.
강주혁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서 1분 만에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3팀 사무실로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아슬아슬하게...그건 뭐에요?”
안다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원팀에서 챙겨줬습니다.”
“안 대리가 말했어?”
유덕현 과장이 물었다.
“아뇨. 아직 얘기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오늘 공략가신다고 하셔서...저걸 잠깐 봤습니다.”
강주혁은 주뼛거리면서 달력형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이놈 봐라. 센스 좀 있는데.”
유덕현이 피식하고 웃었다.
“저기에 있는 게 던전 코드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광부로 일할 때 배웠습니다.”
“광부요?”
“인턴으로 들어오기 전에 태원공략에서 광부로 일했습니다.”
“어? 그래? 그럼 던전 짬 좀 되겠는데. 그냥 인턴이 아니잖아. 인사팀이 신경 썼네. 그렇지, 안 대리?”
유덕현은 잊지 않고 생색을 냈으나 안다정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던전 아예 안 가본 것보다는 낫긴 하겠죠. 그래도 주혁 씨, 다음부터는 시키는 일만 해요. 아직 헌터일 제대로 배운 건 아니잖아요.”
“죄송합니다.”
잔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안다정의 표정은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강주혁이 안 했으면 안다정이 직접 했어야할 일이니까.
“옷은 어디서 갈아입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갈아입었습니다.”
“탈의실은 왜 안 갔어요?”
“탈의실이 별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리상 탈의실까지 가서 십분 내로 환복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음...알겠어요.”
할 말이 없어진 안다정이 화제를 돌렸다.
“주혁 씨 자리는 저기에요. 앉아서 내선번호랑 직원이름이나 외우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진짜로 별관 탈의실이라도 갔나?”
유덕현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이지혜는 진짜로 별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
덕분에 강주혁은 오랜만에 안다정의 다정(?)한 신입교육을 구경할 수 있었다.
“미쳤어요?”
“죄, 죄송, 하, 합니다.”
이지혜는 너무 급하게 뛰어온 탓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헉헉 거렸다.
“지금 몇 시에요?”
“타, 탈의실이, 벼, 별관에 있어서...”
“묻는 말에나 답해요.”
“여, 열 시 오 분이요.”
“우리 팀 바쁘다고 했죠.”
“죄송합니다.”
“주혁 씨는 제 시간 안에 옷도 갈아입고 덤으로 공략에 필요한 물건까지 받아왔어요. 지혜 씨는 뭐하다가 이제 와요?”
“죄송합니다.”
“그 잘난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쳤어요?”
“아니요.”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웃기는 학교네요. 이렇게 덜떨어진 사람이 수석을 다하고.”
“...죄송합니다.”
“연수원 2등이 인턴보다 일을 못하네요. 던전에서도 이 따위로 할 거예요?”
이지혜의 표정을 보니 슬슬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억울합니다.”
“뭐라고요?”
“억울하다고요! 대리님이 탈의실에서 갈아입으라고 하셨잖아요!”
참다못한 이지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공략 때문에 바쁘다던 유덕현 팀장은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면서 구경 중이다.
“그럼 내가 던전에서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예요?”
“네?”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냐고요.”
“그, 그건...”
“내 명령이 절대적이니까 죽으면 되겠네요. 그렇죠?”
이지혜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안다정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대드는 건 오케이. 본인도 그걸로 유명하니까. 하지만 멘탈이 약한 건 용납 못한다. 던전에서 멘탈이 터지면 사람도 터지니까.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네.”
“좋아요. 나는 지혜 씨가 수행하지 못할 명령을 내렸어요. 10분이라는 시간과 탈의실이라는 장소는 양립불가능 하죠.”
이지혜는 안다정의 달라진 태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실을 빨리 캐치하는 게 지혜 씨의 첫 번째 임무였어요. 두 번째 임무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던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죠?”
“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도?”
“네.”
“그럼 탈의실이에요? 10분이에요?”
“...10분입니다.”
“던전에는 별의별 일이 다 생겨요. 팀장님이랑 저랑 실수를 할 수도 있죠. 오늘 던전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나 처자식도 있는 몸이야.”
유덕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다정은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결과가 항상 과정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지만 비상상황에서는 결과가 모든 걸 정당화해줘요. 일단, 결과를 만들고 그 다음에 과정을 정당화해요. 주혁 씨처럼요.”
이지혜는 강주혁을 힐끗 봤다. 자존심이 상해서 죽고 싶은 표정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네.”
이지혜가 힘없이 답했다.
“흠흠, 자, 그 정도로 하고 슬슬 공략 가자.”
유덕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게이트는 회사랑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크기가 마천루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컸다.
1990년, 강남역 사거리에 발생한 세계 최대의 게이트, 통칭 <광야>다.
게이트로 이어지는 던전의 규모도 세계 최대. 20년 후에도 완전히 공략되지 않는다.
50년 동안 공략된 땅 크기만 해도 중국대륙과 맞먹을 정도니 던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세계라고 보는 게 맞다.
어떤 공략회사도 단독으로 공략이 불가능했기에 정부는 열 개의 공략회사들을 선정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태원공략을 포함한 선정업체들은 공략의 효율성을 위해서 강남으로 사옥을 옮겼다. 다른 업종의 회사들은 안전문제 때문에 빠져나갔고.
자연스럽게 강남에는 공략회사들과 관련업체들만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강남게이트단지>가 조성되었다.
“주혁 씨는 많이 와봤지?”
유덕현 팀장이 물었다.
“네. 팀장님. 지난주까지 매일 출근했습니다.”
“잘 됐군.”
톨게이트처럼 입구가 여러 개인 건물이 게이트 앞을 막고 있었다. 실제로 헌터들이 부르는 명칭도 <톨게이트>다.
전리품이 섞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회사마다 다른 출입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행은 태원공략이 사용하는 A출입구로 들어가 인사팀과 감사실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인사팀은 사냥실적을 평가하기 위해서, 감사실은 던전에서 발견한 전리품을 빼돌리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서 이곳에 상주한다.
공략 3팀은 대략적인 일정을 통보한 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있었다.
<광야>라는 던전의 이름도 이 평야에서 따온 것이다.
“97-A33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97년도에 태원공략이 발견한 지역들 중 33번째라는 뜻입니다.”
강주혁이 답했다.
정부는 광야의 공략을 맡은 업체들에게 알파벳순으로 코드를 부여했다. 태원공략은 A를 받았다. 톨게이트에서 A출입구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시. 던전에서 굴러봐서 잘 아네. 지혜 씨도 알아둬.”
“네. 팀장님.”
이지혜는 시무룩한 얼굴로 답했다.
첫날부터 실력을 뽐내서 상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생각이었는데 뜻대로 안 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쪽이다.”
공략 3팀은 유덕현을 따라서 이동했다.
잠시 후,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돌바닥이 나타났다. 문양의 한 가운데에는 거울처럼 보이는 판이 떠있었다.
“다들 써본 적 있지? 웨이포인트”
“네.”
<웨이포인트>는 던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동장치로 마법사 계열의 헌터들이 설치한다. 설치와 유지에 엄청난 마석이 들어가기에 대개 지역 당 하나씩만 설치된다.
“잘 따라와.”
유덕현이 돌바닥에 올라가더니 거울을 건드렸다. 바닥에서 빛이 올라오더니 유덕현이 사라졌다. 안다정도 뒤따랐다.
이지혜가 먼저 웨이포인트로 올라가려고 하자 강주혁이 말렸다.
“마법사가 마지막입니다.”
웨이포인트를 이용하는 순서는 클래스에 따라서 다르다. 반대편 웨이포인트가 적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다.
방어력이 떨어지고 즉발 공격기가 부족한 마법사는 항상 맨 마지막. 랭크 차이가 나는 경우에 순서가 바뀔 수는 있으나 D와 E는 큰 차이가 아니다.
“주혁 씨.”
이지혜가 독기가 서린 눈으로 강주혁을 노려봤다.
“네?”
“제가 주혁 씨한테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사람인가요?”
“상식을 얘기한 겁니다.”
“지금 상사들에게 칭찬 한 번 받았다고 잘난 척 하는 거예요?”
“잘난 척 한 적 없습니다.”
“저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태원에 들어왔어요. 주혁 씨랑은 달라요.”
이전에는 은근한 방식으로 우월감을 드러내곤 했는데 첫날부터 깨져서 그런지 완전히 평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요.”
“팀장님과 대리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주혁은 끝까지 침착하게 말했다. 이지혜는 분을 못 이겨 씩씩 거렸다.
“먼저 가요.”
이지혜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웨이포인트를 사용했다.
강주혁도 곧바로 웨이포인트 위에 올라섰다. 거울에 지도 같은 게 떠올랐다.
일종의 터치스크린이다. 강주혁은 97-A33를 찾아서 클릭했다.
바닥에서 빛이 솟구치면서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풍경이 빛에 가려졌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풍경도 달라져있었다.
97-A33에 도착하자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무슨 아카데미인줄 알아요!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운 거예요! 내가 이런 기초적인 것까지 가르쳐줘야해요!”
안다정이 이지혜를 갈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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