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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가 되었다-3화 (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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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철저하게 밞아주마.

3화 철저하게 밟아주마.

“정식으로 인사드리네요. 인턴으로 들어온 강주혁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이지혜에요.”

이지혜는 어색하게 고개만 까딱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표정관리가 잘 안 됐다.

두 사람은 공략 1부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거기에 사는 거야...’

이지혜는 강주혁이 자신과 같은 고시원에서 산다는 사실이 몹시 신경이 쓰였다.

‘태현 오빠가 알면 싫어하겠지.’

연수원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김태현은 노골적으로 이지혜에게 들이댔다.

나쁘지는 않았다. 아무리 서자라고해도 재벌가의 자식이니까. 어머니가 잘나가던 여배우여서 그런지 얼굴도 잘 생겼다.

신입사원들을 평가하기 위해 파견된 감독관들도 김태현에게 쩔쩔맸다. 김태현이 자신을 끼고 돌 때마다 다른 여자들이 보내는 질투와 선망의 시선도 짜릿했다.

사생아라는 것도 어쩐지 멋져 보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연 많은 남자주인공 같으니까.

평소에는 좀 거칠었지만 가끔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게 또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린 거지새끼들이랑 다르잖아. 그러니 놀 때도 플렉스 해야지.’

연수원 일정이 끝난 후 김태현은 동기들을 전용 빌라로 초대했다.

초호화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곳에서 이지혜는 그동안 꿈꿔왔던 세상을 경험했다.

파티가 끝난 후 다시 시궁창 같은 고시원으로 돌아오자 김태현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거지새끼들>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대출을 갚아야 했기에 월급을 받더라도 당분간 고시원을 떠날 수도 없었다.

“타죠.”

생각에 잠겨 있는 이지혜에게 강주혁이 말했다.

인원초과로 앞에 있던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나니 둘만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강주혁은 익숙하게 5층을 눌렀다. 그제야 이지혜는 자신이 몇 층으로 가야한다는 것도 확인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저, 저기...”

“네?”

“위층에 사시는 거죠? 고시원.”

“네.”

“제가 거기에 산다는 거 다른 분들께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지혜는 일부러 생글생글 웃으면서 애교가 섞인 소리로 부탁했다.

“그러죠.”

강주혁은 그런 이지혜가 민망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지혜는 강주혁의 무심한 얼굴을 쳐다봤다.

‘확실히 잘 생겼어.’

냉정하게 말하면 김태현보다 잘 생겼다. 좀 전에 고시원에서 손을 잡았을 때엔 심장이 쿵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지혜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고시원에 사는 남자다. 이지혜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 아직까지도 인턴.

사장의 눈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광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능력하고 돈도 없는 남자. 이지혜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다.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인턴기간은 3개월이라도 들었다. 그러니 3개원 후면 사라질 인간이다.

사장이 뽑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김태현이 동기들에게 해준 얘기에 따르면 이윤철 사장은 바지사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사장이 뽑은 인턴이라는 것도 빛 좋은 개살구일 가능성이 크다.

“3팀은 이쪽이에요.”

5층에 도착한 후 강주혁은 두리번거리는 이지혜에게 말했다.

“아, 잘 찾으시네요.”

20년 전이어도 사무실 구조는 크게 달리진 게 없었다.

“표지판을 눈여겨봤죠.”

강주혁은 무뚝뚝하게 답했다.

로비에서 김태현과 딱 달라붙어있던 이지혜를 보고 그녀에 대한 기억이 모두 떠올랐다.

인턴이라는 이유로 하대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보공유를 제대로 안 해줘서 상사들에게 깨지게 만들었다.

던전에서 실수를 빙자해서 강주혁을 여러 차례 다치게 했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순진해서 이지혜가 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는지 몰랐다. 실수라고 하면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지혜의 뒤에 김태현이 있다는 걸.

‘철저하게 밟아주마.’

강주혁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3팀 섹션으로 들어갔다. 데스크는 다섯 개였지만 두 개 빼고는 모두 비어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인턴으로 온 강주혁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이지혜입니다!”

팀장 자리에 앉아있는 30대 후반의 남성과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강주혁 또래의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을 보니 반가움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달려가서 포옹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을 정도다.

“신입? 인턴?”

여성이 눈을 치켜떴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데도 또렷한 이목구비. 단발머리에 시크한 표정이 잘 어울린다.

수수한 복장과 대비되는 화려한 목걸이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은 안다정. 전생에 강주혁의 사수였다.

“팀장님?”

안다정은 싸늘한 살기를 풍기며 상사를 노려보았다.

“안 대리, 잠깐만, 흥분하지 말고. 일단, 내 얘기 좀...”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남자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름은 유덕현. 인턴이었던 강주혁을 정직원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었다.

“나간 사람은 대리인데 들어온 사람은 왜 신입이에요?”

“아니, 그게 인사팀에서...”

“우리는 팀 아니에요? 팀이면 다섯 명인데 세 명이서 버틴 게 지금 몇 달 째에요? 결국 한 명 못 버티고 또 나갔잖아요. 우리가 무슨 임원급 헌터에요! 이 인원으로 던전 돌아다니게!”

“야 이 씨, 나도 말 좀 하자!”

3팀이 떠들썩해지자 옆 팀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풍경인지 다들 키득거리기만 할 뿐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강주혁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반면, 이지혜는 배정 받은 부서의 요상한 분위기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신입, 클래스가 뭐에요?”

유덕현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안다정이 몸을 휙 돌리더니 이지혜에게 물었다.

“마법사입니다.”

“인턴은?”

“검사입니다. 대리님.”

안다정이 다시 유덕현을 째려봤다.

“힐러가 없네. 지금 우리더러 던전에서 죽으라는 거죠?”

“다음 기수에 보내준대. 진짜야.”

“인사팀장님을 만나야겠어요.”

안다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팀장인 유덕현도 같이 얼어나 그녀를 뜯어 말렸다.

“야, 참아. 참아.”

안다정이 이렇게 막나갈 수 있는 이유는 슈퍼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직급은 대리인데 실력은 차장급. 실적도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특유의 반골기질 탓에 상사들과 계속 트러블을 일으켰고 결국, 유배지나 다름없는 1부 3팀으로 좌천당하고 말았다.

“네가 부장님 찾아가면 내가 뭐가 되냐. 너는 한 판 붙고 나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나는 갈 데도 없다. 제발 좀 살려주라.”

안다정만큼은 아니지만 유현덕도 뛰어난 헌터다.

하지만 사내정치를 기피하고 중립을 고수하다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밀려 소위 ‘짬 처리’ 담당이 되었다.

인사팀에서 제대로 된 인원을 보내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쟤 연수원 2등 했대. 이 정도면 인사팀에서 많이 배려해준 거야. 네가 참아.”

유덕현은 이지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안다정이 이지혜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에요?”

“네. 2등 했습니다!”

이지혜는 씩씩하게 답했다.

1등은 김태현이었지만 로열패밀리라는 걸 감안하면 실질적인 1등은 이지혜다.

“학교도 서울대 나왔어. 맞지?”

엄밀히 말하면, 서울대학교 산하 서울 헌터 아카데미를 나왔으나 그것도 서울대 졸업으로 간주한다.

헌터 아카데미끼리 순위를 매기면 서울 헌터 아카데미가 항상 1등이니까.

“네. 수석 졸업했습니다.”

이지혜는 자랑스럽게 답했다.

“와, 인재네. 인재. 안 대리,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유덕현이 씩 웃어보였다.

“인턴은?”

“영웅 아카데미를 나왔습니다.”

다들 침묵.

강주혁을 제외한 세 사람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당연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래요. DPS는 얼마에요?”

DPS, Damage Per Second의 약자. 1초당 얼마의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

공략회사에 입사할 때 필수스펙이기 때문에 딜러들의 토익점수라고도 불린다. 측정은 헌터협회에서 한다.

“126입니다.”

딜러치고는 심하게 낮다. 같은 딜러인 안다정의 DPS는 500이 넘는다.

“...랭크는?”

“E급입니다.”

안다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유덕현을 쳐다봤다.

신입사원이 E급이면 딱 평균이다. 하지만 태원공략 같은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평균이 D급이다.

“인턴이잖아. 요즘사람들이 다들 안 대리 같은 줄 알아.”

유덕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안다정이 또 뭐라고 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자자, 이왕 이렇게 왔으니까 잘 해보자고. 나는 3팀 팀장인 유덕현 과장이고 이쪽은 내 부사수인 안다정 대리. 이름처럼 다정한 사람이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혼자 낑낑대다가 사고치지 말고.”

“아니.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해요. 귀찮으니까.”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 지금 공략가야하거든. 늦었으니까 빨리 준비해.”

공략이라는 말에 강주혁은 벽에 있는 달력형 화이트보드를 눈으로 훑었다.

팀의 한 달 치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5일, 97-A33지역.’

오늘 일정을 머릿속에 새겼다.

“공략이요?”

첫 날부터 던전에 들어간다는 소리에 이지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안다정의 냉랭한 시선을 받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주혁 씨, 장비는 어디에 있어요?”

지팡이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이지혜와 달리 강주혁은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있었다.

“아직 없습니다.”

“왜 없어요?”

“돈이 없어서 못 샀습니다.”

“...네?”

안다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인턴이라서 그런가 보지. 지원팀에 가서 하나 빌려달라고 해.”

“네. 팀장님.”

“잠깐.”

안다정이 폰을 꺼내더니 스톱워치를 보여주었다.

“10분 줄게요. 탈의실 가서 환복하고 장비 챙겨서 와요. 지혜 씨도요.”

“네. 대리님.”

강주혁은 곧바로 출발했다. 이건 신입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험이다.

“주혁 씨! 잠깐만요!”

멍을 때리고 있다가 뒤늦게 따라 나온 이지혜가 강주혁을 불러 세웠다.

“혼자 가는 법이 어디 있어요.”

“지원팀에 들러야 해서요. 시간이 없어요.”

“탈의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사실, 탈의실은 안다정이 신입들의 임기응변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다. 헌터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은 이 건물이 아니라 게이트 옆에 있는 별관에 있으니까.

제법 떨어진 곳이라 10분 내에 거기까지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걸 이지혜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모르면서 나온 거예요?”

“다른 분들께 여쭤보면 알겠죠. 시간 없으니 먼저 가볼게요.”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골탕을 먹이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그것도 모르냐면서 쌍욕을 퍼붓겠지. 공략 1부의 유구한 전통이다.

“자, 잠깐만...”

강주혁은 뭔가를 말하려는 이지혜를 무시하고 계단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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