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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인턴입니다.
2화 인턴입니다.
강주혁은 고시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세상이 밝아오고 있었다.
고시원은 회사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빌딩들 사이로 사옥(社屋)이 눈에 들어왔다.
태원공략.
지금도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공략회사지만 20년 후엔 세계 최고가 된다.
그때쯤 되면 한 해 매출이 국가예산을 가볍게 넘기고 미국의 IT공룡들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다.
던전에서 나오는 마석이 화석연료보다 효율이 좋고 대기오염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진 후 던전은 유전을 대체해가고 있었다.
던전을 관리하고 마석을 채굴하는 공략회사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고 있었다.
최고의 공략회사에 성공한다는 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시대에 강주혁의 자리는 없었다.
‘징글징글하군.’
강주혁은 애증이 섞인 시선으로 사옥의 꼭대기를 응시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잠시 생각해봤다. 태원공략의 경쟁회사에 취직하거나 아예 공략회사를 차리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는 곳은 태원공략뿐.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던 강주혁은 회사 밖의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사냥뿐이고.
미래정보를 이용해 최대한 이득을 보려면 태원공략에 갈 수밖에 없다.
‘이번엔 다르겠지.’
시선을 거둔 강주혁이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몸속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서양인들은 <오러>라고 부르고 동양인들은 <내공>이라고 부르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강주혁의 의지에 따라서 몸 안을 누비고 다녔다.
이런 식으로 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역시나.’
내공을 담는 그릇인 단전이 좁쌀 크기만큼 작아져있었다.
‘1성 수준인가.’
1성이어도 E급 헌터, 일반 공략회사 기준으로 사원급은 된다.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강주혁은 E급 헌터 자격증 소지자였다.
내공은 줄었지만 몸의 상태는 회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그 때는 오랜 격무와 불규칙적인 생활 때문에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공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데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번에는 확실히 관리해줘야겠군.’
상태점검을 끝낸 강주혁은 곧장 수련에 들어갔다.
강주혁은 검을 주무기로 하는 검사였지만 아직 전용 검이 없었다. 이맘때의 강주혁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헌터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들을 살 엄두를 못 냈다.
좀 쓸 만한 것들은 명품백보다 비쌌고 10만 원 대의 저가품은 성능이 너무 떨어져서 안 쓰니 만 못했다. 게다가 도검소지자격증을 발급받으려면 추가로 돈이 들었다.
헌터 아카데미를 다닐 때에도 강주혁은 학교에서 대여해주는 장비만 썼다. 아직 회사에서 무기를 받지 못했으니 맨손으로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휙!
우선, 자세를 잡고 정권지르기를 했다. 말아 쥔 주먹이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갈랐다. 젊어져서 그런지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검사도 비상상황에는 주먹을 쓴다. 공격의 빈틈을 체술(體術)로 메워야할 때도 많다. 특히, 대검을 사용하는 검사들은 공격의 절반 이상이 주먹질이나 발길질이다.
검사도 전문 권사(拳士)만큼은 아니어도 맨손 격투에 통달할 필요가 있다.
휙! 휙!
강주혁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고 발차기를 했다.
그렇게 몸을 좀 풀어준 후, 바닥에 떨어진 빈 캔 하나를 집어서 에어컨 실외기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전신의 내공을 정권의 한 점에 모은다는 느낌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펑!
폭음과 함께 캔이 터져나갔다. 뒤로 날아간 게 아니라 쇳가루 수준으로 분해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된다!’
만족감에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내공을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 안을 아무렇게나 휘젓고 다니도록 만드는 건 초급 헌터도 가능하지만 원하는 지점에 정확하게 모이게 만드는 건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내공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그것을 움직이는 감각은 그대로였다.
내공의 총량이 미약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하나의 극점에 모을 수 있으면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게임으로 치면 확률에 따라 터지는 크리티컬을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셈.
이 방법을 처음으로 창안해낸 강주혁의 조부는 이를 <무극(武極)>이라 칭했다.
강주혁은 무극의 묘리를 과장 무렵 통달했고 그 때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번 생에는 그걸 신입 때부터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것이 달라지겠군.’
강주혁은 대기만성형 인간이었다.
인생의 전성기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왔고 그 결실을 누리기도 전에 삶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전성기를 견인한 기술을 지금부터 사용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사장까지 노려볼 수 있을지도.’
태원공략의 설립자이자 태원그룹의 회장인 신태원은 철저한 능력주의자다. 그룹은 몰라도 태원공략 만큼은 가장 뛰어난 헌터에게 물려주겠다고 공언해왔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임원급 헌터들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절대 섬기지 않으니까.
신대성이 태원공략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장남이어서가 아니라 최강의 헌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태원공략은 지금의 태원그룹을 있게 한 핵심회사다. 태원공략을 차지한 사람은 그룹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오너 일가가 아니어서 회장은 될 수 없어도 회장 자리에 오를 사람을 고를 수는 있다. 만약 태원공략의 사장이 되어 지분까지 물려받게 된다면 신대성의 야욕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해보자.’
복수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심장을 뜨겁게 끓어오르게 했다.
* * *
“후...”
강주혁은 한 시간 동안 명상으로 내공을 모으고 그것으로 <무극권(武極拳)>과 <무극각(武極脚)>을 사용하는 수련을 반복했다.
강주혁은 아버지에게 헌터수업을 받은 이후로 단 하루도 아침수련을 거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시간이었지만 그게 수십 년 동안 쌓이자 범재에 지나지 않았던 강주혁도 기라성 같은 헌터들이 득실거리는 태원공략에서 에이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훈련을 끝낸 강주혁은 공용욕실에서 몸을 씻고 면도를 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싸구려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공략회사라고 해서 전투복을 입고 출근하지는 않는다.
던전에 안 들어가는 날도 있고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도 은근히 많았기에 기본복장은 다른 업종처럼 정장이다.
준비를 끝낸 후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여자들이 사용하는 3층에서 정장차림의 여성이 불쑥 튀어나왔다.
탁!
“으악!”
하지만 그녀는 고시원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에 걸린 듯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괜찮아요?”
강주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 네...”
여자는 아픔보다는 쪽팔림 때문인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작은 키에 아담한 체형. 예쁘장한 얼굴. 단정하게 묶은 머리.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백팩과 자기키보다 더 큰 떡갈나무 지팡이를 메고 있었다. 뒤로 넘어진 건 기다란 지팡이가 문틀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여자도 여기에 살았었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이지혜.
강주혁과 마찬가지로 태원공략에 다녔는데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아니, 아주 나빴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전부 이 여자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넘어진 사람을 앞에 두고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에 일단 손을 내밀었다. 이지혜는 강주혁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강주혁은 이지혜를 일으켜준 후,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강주혁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거리를 호흡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회사건물 앞에 도착한 강주혁은 곧장 들어가는 대신 근처에 있는 24시간 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혼자 밥을 먹고 있으니 가족들이 떠올랐다. 연락을 해볼까하다가 관뒀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면 울컥할 것 같아서였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통화가 길어질 것 같기도 했고.
퇴근하고 여유 있게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8시 반.
강주혁은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한구석의 소파에는 강주혁 또래의 남녀 9명이 모여 있었다.
연수원을 끝내고 회사에 처음으로 출근한 신입사원들이었다. 아마 사원증을 나눠줄 인사팀 직원을 기다리는 중일 것이다.
“어디가 좋을까요?”
“저는 유명한 헌터들이 있는 팀에 배정받고 싶어요.”
“상사들이 너무 잘 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긴 뭐가 힘들어. 우리가 치고 나가면 되는 거지.”
이미 연수원에서 친해졌기 때문인지 다들 친구처럼 보였다. 그들 중에는 좀 전에 고시원에서 마주친 이지혜도 있었다.
강주혁이 그들 쪽으로 다가가자 대화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몇 명은 강주혁을 인사팀 직원으로 착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했다. 강주혁과 눈이 마주친 이지혜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 저는 인사팀에서 온 게 아닙니다.”
강주혁이 정정해주자 다들 묻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럼 뭔데?”
신입헌터 중 한 명이 물었다. 초면인데 반말을 할 정도로 개념이 없다. 얼굴은 잘 생겼지만 찢어진 눈 때문에 사나운 느낌을 줬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앉아있었기에 마치 이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였다. 특히, 이지혜는 사귀는 사이라도 되는 양 옆에 딱 붙어있었다.
이름은 김태현.
태원그룹 신태원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대승이 그의 아버지다.
성이 다른 이유는 서자이기 때문.
웃긴 건 본인이 사생아라는 걸 떠벌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서자라고 해도 오너 일가의 핏줄인지라 일반직원들은 김태현을 어려워했다.
김태현 뒤에 있는 신대승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인턴입니다.”
인턴이라는 말에 강주혁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는 너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묻어나는 눈빛들. 특히, 실수로 강주혁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던 이들일수록 더 노골적이었다.
강주혁은 가소로워서 속으로 웃었다.
이들 중 10년 후에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근데 인턴이 왜 여기에?”
김태현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물었다.
“저도 여기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당신이 그 곡괭이?”
“곡괭이요?”
다른 직원들이 김태현에게 물었다.
“어. 곡괭이. 우리 사장님께서 채광팀 광부하나를 헌터 인턴으로 뽑았다던데.”
김태현의 말대로 강주혁은 처음부터 헌터로 태원공략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1년 전, 졸업과 동시에 태원공략에 헌터로 지원했으나 경기도에 있는,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헌터 아카데미를 나온 탓에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강주혁은 눈높이를 낮춰서 중소공략회사에 들어가는 대신, 던전에서 마석을 캐는 광부로 태원공략에 다시 지원했다.
똑같이 던전에 들어가지만 헌터와 광부의 대우는 천지차이다. 헌터는 각성한 초인만 될 수 있지만 광부는 몸만 튼튼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전자는 전문직 대우를 받지만 후자는 일용직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취직하기는 쉽다.
강주혁은 1년 동안 광부로 생활하면서 현장감을 익히고 돈을 모았다.
그러다 열흘 전쯤, 채굴현장에 몬스터가 출몰했고 강주혁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곡괭이를 들고 싸웠다.
떄마침 현장 근처에 있던 태원공략의 사장 이윤철이 강주혁의 무위(武威)를 목격했고 즉석에서 그에게 헌터 인턴자리를 제안했다.
“당신 맞아?”
“네. 접니다.”
강주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해졌다.
몇몇은 광부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비웃음을 머금었다. 좀 더 신중한 이들은 사장에게 제안을 받았다는 얘기에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다 모였습니까?”
그 때, 인사팀 직원이 나타났다.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김태현만 느긋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반갑습니다. 저는 인사팀의 박동수 대리입니다. 앞으로 일하게 될 부서를 알려드리죠. 호명 받은 사람은 사원증 챙겨서 올라가세요.”
신입사원들은 차례대로 사원증을 받고 떠났다.
“또 보자. 곡괭이.”
김태현은 자기차례가 되자 강주혁의 어깨를 툭 치면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회귀 전, 김태현은 강주혁을 집요하게 괴롭혔었다.
그때는 단순히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안다.
신태원 회장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다. 신대성, 신대승, 신대길.
다른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세 사람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서 투쟁 중이다.
강주혁에게 인턴을 제안한 이윤철 사장은 막내인 신대길의 사람이다.
아버지 신대승의 인정에 굶주려있는 김태현은 이윤철이 헛짓거리를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주혁이 인턴생활을 못 버티고 중간에 나가게 만들어야 했다.
“오빠, 다음에 봐요.”
이지혜가 김태현에게 인사했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슬쩍 들어보이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이지혜 씨.”
박동수가 호명했다.
“네!”
“공략 1부 3팀입니다. 사원증은 여기에.”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답한 이지혜는 사원증을 받고 곧바로 출발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하지만 박동수 대리가 멈춰 세웠다.
“강주혁 씨.”
“네.”
“이지혜 씨 따라가면 되겠네요. 1부 3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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