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가 되었다-1화 (1/202)

#

#   1 - 3454441

#

1화 부장 진급 축하한다.

“여기서 드래곤 잡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태원공략’의 강주혁 부장이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용의 숨결 때문에 새까맣게 타버렸던 들판은 이제 녹음이 우거져있었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강주혁의 부사수인 윤정석 차장이 답했다.

“아이는 잘 크지?”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사춘기 되더니 완전 되바라져가지고 말도 더럽게 안 듣습니다. 진짜 돌아버리겠어요.”

“아빠 닮아서 그런 건 아니고?”

“왜 이러십니까. 전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습니다.”

“모범 헌터는 아니었지.”

윤정석은 재능은 출중했으나 성실한 직원은 아니었다.

“신입사원 때 술 취해서 출근한 건 정말 레전드였죠.”

윤정석의 입사동기인 이경호 차장이 거들고 나섰다.

“던전 들어가는데 물약 안 챙긴 적도 많았지. 윤 차장 때문에 상사들한테 깨졌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런 차장님 덕분에 저는 조용히 묻어갈 수 있었죠.”

윤정석의 부사수인 박대일 과장이 씩 웃어보였다.

“부장님, 저 이제 차장 달았습니다. 언제까지 사원 시절 얘기로 놀려먹을 겁니다.”

윤정석이 투덜거렸다.

“너 하는 거 봐서.”

강주혁이 히죽거렸다.

“근데 부장님은 장가 안 가십니까?”

윤정석이 반격을 시도했다. 네 사람 중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강주혁뿐이었다.

“이 나이에 선 보러 다니라고?”

“이제 백세 시대 아닙니까. 사십 대 중반이면 아직 한창 때죠.”

박대일이 부추겼다.

“시끄러. 이놈들아. 네놈들 때문에 안 가는 거야.”

“저희들 때문이라고요?

“네놈들이 결혼에 대한 내 환상이 모두 깨버렸다. 네놈들 푸념 듣다보면 있던 욕구도 없어져.”

“에이, 그거 전부 웃자고 하는 얘깁니다. 해보면 얼마나 좋은데요.”

“그렇게 좋아서 시키지도 않는 야근을 꼬박꼬박 하는구나.”

네 사람은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들판을 가로질렀다.

들판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강주혁은 낭떠러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잠시 눈에 담았다.

“니들도 퇴근해야하는데 슬슬 끝내자.”

강주혁은 돌아보면서 말했다. 화기애해 하던 분위기가 한 순간에 싸늘해졌다.

“...알고 계셨군요.”

윤정석은 한숨을 쉬더니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포위하듯이 강주혁을 에워쌌다.

“정찰임무치고는 경로가 너무 이상했지. 멤버도 그렇고.”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합니까?”

세 사람은 태원공략이 속해있는 태원그룹의 신임회장 신대성으로부터 강주혁 부장을 처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나가서 치킨집을 차리라고?”

강주혁은 20년 동안 태원공략을 위해서 헌신했다.

태원공략이 업계 1위에 등극하는 데에는 강주혁의 공이 컸다.

실적만 놓고 보면 남부럽지 않은 헌터였지만 사내정치를 잘못했다.

단순히 라인을 잘못 탄 게 아니라 그룹의 부회장이자 회장의 장남인 신대성과 척을 지고 말았다.

신대성이 회장에 등극한 지금, 강주혁은 더 이상 회사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일단은 살고 보셔야죠.”

박대일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회사에겐 강주혁을 자를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한직으로 좌천시키고 온갖 수모를 줬지만 강주혁은 나가지 않고 버텼다.

“네들이 아직 신대성을 잘 모르는구나.”

사실,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신대성이 눈엣가시였던 강주혁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신대성은 재벌가의 오너보다는 마피아보스에 더 어울리는 인간이니까.

“20년 동안 칼밥 먹고 살았는데 죽더라도 던전에서 죽어야지. 모양 빠지게 치킨집에서 죽으면 쓰나.”

헌터는 죽여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만큼 피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

다른 업종이라면 옷을 벗는 것으로 끝날 파벌싸움이 공략회사에서는 패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략회사를 ‘합법적인 마피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주혁이 쓸데없는 고집으로 죽음을 자처한 게 아니다.

어차피 죽을 걸 알았기에 죽을 자리를 골랐을 뿐이다.

“왜 신 회장의 제안을 거절한 겁니까?”

강주혁은 실적이 뛰어난 직원이었기에 신대성 역시 그를 탐냈다.

하지만 강주혁은 고집스럽게 신대성이 내민 손을 뿌리쳐왔다.

“헌터는 괴물을 잡는다. 하지만 신대성은 사람을 잡지. 사람을 잡는 놈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야. 날 없애는 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들을 보내는 걸 보면 모르겠냐. 난 그런 새끼 못 섬겨.”

강주혁의 아버지는 헌터이자 중소공략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회사의 주 수입원은 가문의 선산(先山)에 생긴 게이트.

그리 큰 게이트는 아니었지만 공략 후에도 계속해서 리스폰 되었기에 중소기업을 굴릴 정도의 수입은 나왔다.

하지만 부하직원이 일으킨 사고 때문에 민간인피해가 발생했다.

헌터자격증과 게이트관리권을 박탈당한 아버지는 화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선산과 게이트는 대기업인 태원공략에게 넘어갔다.

비록 남의 것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있는 던전에서 일하고 싶었던 강주혁은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태원공략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쯤이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신대성이 강 씨 집안의 게이트를 탐냈고 직원을 매수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강주혁은 복수의 칼을 갈아왔다.

신대성의 경쟁자를 섬기면서 그를 마지막까지 견제했지만 회장자리에 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저희라고 섬기고 싶어서 섬기는 건 아닙니다.”

윤정석이 씁쓸하게 답했다.

강주혁을 제외한 세 사람에게는 먹여살려할 가족이 있었다.

강주혁을 따라 여기까지 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도 안다. 몹쓸 짓을 시켜서 미안하다. 못난 상사를 용서해라.”

“...아닙니다.”

윤정석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서 투구의 덮개를 내렸다.

나머지 두 사람도 고개를 떨구었다.

“말이 길었다.”

강주혁이 검을 뽑자 세 사람도 자세를 취했다.

“실종처리 되실 겁니다.”

윤정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중에 우리 형님한테 귀띔이라도 해줘.”

“걱정 마십시오.”

강주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역할을 했던 형과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잠시 마음에 새겼다.

도련님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형수와 삼촌처럼 되고 싶다면서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간 조카도.

강주혁은 자신을 향한 신대성의 분노가 이쯤에서 끝나기를 바랐다.

“그동안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 진급 축하한다.”

네 사람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 * *

“으윽, 이 등신 새끼....”

낭떠러지 아래의 돌바닥에 처박힌 강주혁이 신음과 피를 토해냈다.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몇 번을 말해도...”

윤정석은 차마 자기 손으로 강주혁을 끝낼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칼끝에 망설임이 서렸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낭떠러지가 해주기를 바라면서 강주혁을 밀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했을 높이였지만 S급 초인의 육체는 낙하충격을 견뎌버렸다.

‘...더럽게 아프네.’

온몸을 난자당하고 배에 구멍이 뚫렸다. 뼈도 산산조각이 나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니 죽기는 죽을 것이다. 그때까지 끔찍한 통증을 느끼겠지만.

째깍. 째깍.

가슴팍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주혁은 유일하게 멀쩡한 오른팔로 가슴주머니를 뒤졌고 낡은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다.

시침이 초침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좀 전의 들판에서 잡았던 드래곤에게서 나온 물건이었다.

정밀검사 결과, 특별한 기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엽을 감아도 시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잡동사니였으나 강주혁은 일생일대의 사냥을 기념하는 뜻에서 부적처럼 항상 품에 지니고 다녔다.

위잉.

맹렬하게 움직이던 시계에서 급기야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빛이 강해지는 것과 반대로 강주혁의 의식은 흐릿해져갔다.

‘젠장, 알게 뭐람.’

어차피 다 죽어가는 마당에 소지품이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든 말든 상관없었다.

강주혁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채워버린 회중시계를 원망했다.

펑!

발광하던 회중시계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강주혁을 집어삼켰지만 이미 숨을 거둔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 *

띠링. 띠링.

귓가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소리에 강주혁은 정신을 차렸다.

‘어?’

곰팡이 탓에 거뭇거뭇해진 천장의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강주혁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아픈 곳도 없었다.

강주혁은 손으로 몸을 더듬었다.

베인 상처도 모두 사라지고 복부에 생겼던 구멍도 없어졌다. 뼈도 모두 정상이고.

‘아직...살아있어?’

강주혁은 주변을 살폈다.

관처럼 비좁은 침대.

침대에 누워있으면 하반신이 옷장 밑으로 들어간다. 말이 옷장이지 그냥 옷걸이를 걸 수 있는 봉 하나가 달려있을 뿐이다.

침대 옆에는 17인치 모니터도 제대로 안 들어갈 것 같은 책상이 있다. 의자를 뒤로 빼면 발을 디딜 바닥이 없다.

‘여기는...거긴데?’

1.5평 남짓한 공간. 사회초년생 시절에 지냈던 고시원 방과 판박이였다.

띠링. 띠링.

그 와중에도 폰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쾅쾅!

옆방에 있는 사람이 벽을 쳤다. 벽이 흔들리면서 그 위에 앉아있던 먼지들이 떨어졌다.

“잠 좀 자자! 이 새끼야!”

방음이 안 되는 탓에 폰의 소리가 옆방까지 들린 모양이다.

강주혁은 서둘러 알람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2020년 10월 5일. 월요일. 오전 6시 1분.

‘20년 전이라고?’

강주혁은 이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원공략에 헌터로 출근한 첫날이었으니까.

폰 카메라를 셀피모드로 전환해 얼굴을 살폈다.

‘맙소사...’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아서 주물러보기도 했다.

짝!

강주혁은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갈겼다. 더럽게 아팠다.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건가?’

얼얼해진 뺨을 어루만지면서 강주혁은 회중시계를 떠올렸다.

아무리 태엽을 감아도 움직이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갑자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건 그 회중시계뿐인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팍을 더듬었지만 회중시계는 없었다.

‘시간이동을 가능하게 해준 아티팩트였나?’

20년 후의 인류도 던전의 신비를 완전히 밝히지 못했다.

어쩌면 회중시계는 인간이 가진 힘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힘을 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인생을 두 번 사는 꼴이라니...’

그냥 두 번 사는 게 아니라 회귀 이전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와 20년 동안 쌓은 경험이 젊고 건강한 육신에 쌓여있다는 얘기.

생각에 거기에 미치자 가슴이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얄궂게도 신대성의 얼굴이었다.

지난 인생에서 강주혁은 신대성이 회장자리에 오르는 걸 막지 못했다.

강주혁이 아무리 뛰어난 헌터였다고 해도 그룹 회장의 장남을 이길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지금,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