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
대어(大魚) (3) -완결편-
(500)
구건호는 일본을 가기위해 김포공항으로 갔다.
가는 도중 스마트폰으로 팍스넷에 들어가 증권시세를 보았다. A전자 주식은 거래량 터지면서 12.5%가 오르고 있었다. 소형주처럼 크게 오르진 않지만 서서히 올라가고 구건호가 처음 살 때보다도 벌써 많이 올라 있었다.
구건호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입구에 서비스로 갖다놓은 여러 신문 중에서 경제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비즈니스 석에 앉아 신문을 보았다. 최근 급격하게 오른 A전자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A전자는 최근 중남미지역 수출 증가와 유럽시장의 수출증가로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에서는 한국의 경쟁업체 뿐만 아니라 일본의 히다치, 도시바, 후지쓰를 따돌리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A전자 주식의 고공행진이 언제 끝날 줄 모르지만 이미 많이 올라와 있어 추격매수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구건호가 코웃음을 쳤다.
“중남미와 유럽시장의 확대? 좋아하네. 이유는 딴 데 있어 이 기레기야!”
구건호는 뉴오따니 호텔에서 모리 에이꼬를 만났다. 멀리 영빈관이 보이는 스위트룸에서 모리 에이꼬를 만났다. 모리 에이꼬는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고 최근 스타 대접을 받아서 그런지 더 예뻐지고 세련되어 보였다.
“오빠.”
모리 에이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구건호를 보자 깡충 뛰며 매달렸다.
“잘 있었어?”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를 껴안고 작은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촬영하느라 힘들지 않았어?”
“할만 해. 야간 촬영 때 잠을 못자서 그렇지.”
“앞으로 사극은 더 힘들 것 같은데? 분장하는데도 더 시간 걸리고.”
“그건 괜찮은데 앞으로 날씨가 더워지면 힘들 거라고 했어.”
“흠, 옷 때문에 그런 모양이구나. 옛날 옷을 겹겹이 입어야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구나.”
말을 하면서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속옷만 입은 채로 침대에 나란히 누운 모리 에이꼬가 말했다.
“마마상이 나와 함께 오래도록 동경에서 살자고 그랬어. 나중에 요정을 나한테 물려주겠데. 난 오타루로 돌아가고 싶은데.”
“또 오타루 타령이냐?”
“하긴 난 바람에 날라 가는 아자미의 깃털 같은 신세니까.”
“아자미?”
“응, 아자미. 오빠는 아자미 몰라?”
모리 에이꼬가 스마트폰으로 아자미(엉겅퀴)란 꽃을 보여주었다.
구건호는 한국에서도 본 듯한 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와 함께 영화관에도 가고 쇼핑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나이트 클럽에 가서 춤도 추었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와 함께 며칠 더 동경에 묵고 싶었지만 A전자 주식의 움직임이 궁금해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다. 구건호는 동경에서 하루만 묵고 돌아왔다.
구건호가 동경에서 돌아온 날은 A전자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하더니 오후 장에 또 상승했다.
“아직도 다 못 담았나? 이 대형 주식을 누가 그렇게 사재기 하는 거야? 아직 공시 나온 것이 없는데.... 기관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라면 혹시 차명으로 분산 매집하는 것 아닌가?”
A전자 주식은 이제 주가가 23만원을 달리고 있었다.
“23만원? 많이도 올랐네. 그럼 시가 총액이 얼마야? 이 회사 발행주식은 6,800만주라니까 .... 헉! 15조 6천 4백이네! 매출액과 비슷해졌네.”
내일이면 구건호가 주식을 취득한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구건호는 이 회사 주식을 거의 7%나 보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증권 거래소에 신고해야한다. 이렇게 많은 주식을 보유하면 보유목적도 설명해야 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모든 주식은 5%이상 보유하게 되면 5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구건호는 보유목적을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히 투자로만 신고했다. 구건호의 주식 취득 사실이 공시되자 A전자그룹의 박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회장님 총알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구건호는 얼른 둘러댔다.
“다 제 것이 아닙니다. 강남 큰손 4인방의 돈이 흘러 들어간 겁니다. 걔들은 신분 노출을 싫어하잖습니까?”
“강남 큰손 4인방?”
강남 큰손 4인방은 구건호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가공인물이었다.
“모르셨습니까? 청담동 이회장님을 비롯한 큰손 4명이 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 사채시장에선 잘 알려진 인물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계셨던가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코웃음을 쳤다.
[A전자의 톱 두뇌라고 하는 대그룹 기획조정실 사장도 별건 아니군. 공돌이 출신이 둘려먹어도 되네.]
민주 공명당의 이진우 대표가 입을 열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구건호는 상대편의 당에서 밀고 있는 정치인이 워낙 거물이라 이진우 후보로는 벅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진우 후보는 차차기를 노리는 것쯤으로 보았다. 하지만 입을 열기 이틀 전 상대편 거물은 어떤 약점을 잡히게 되었다.
“거물 정치인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 K건설 회장으로부터 2억의 뇌물을 받은 적이 있다.”
거물 정치인은 즉각 부인했다.
입장이 곤란해진 K건설 회장은 즉각 해외로 도주하였다. 민주 공명당 의원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거물 정치인을 공격했다. 거물 정치인은 계속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미 지지도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구건호가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웃었다.
[그렇지. 이진우 대표가 포문을 열려면 미리 상대부터 흠집 내고 해야겠지.]
이진우 대표는 광주 강연 회장에서 여러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 내 한 몸 던질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솔직히 믿을만한 정치인이 없습니다. 부정한 돈을 받고도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는 후안무치의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이 부른다면 나는 기꺼이 대선에 출마할 용의가 있음을 밝힙니다.]
꼭 대선에 나간다고 하지 않고 용의가 있다는 표현만 했다. 역시 정치인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만 발언했어도 신문기자들은 다투어 이진우 대표가 대선에 나갈 것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다.
[이진우 대표 대선 출마 시사.]
이 기사가 나가자 소형주 디욘 코리아는 즉각 상한가가 되었다. A전자 주식도 7.5%나 올랐다. 디욘 코리아는 다음 날도 상한가가 무너지지 않았다. A전자 주식은 4%정도 올랐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마지막을 장식해준 사람은 A전자의 늙은 노회장이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이 노인이 그린 것 같았다.
[본래 나는 정치는 좋아하지 않지만 사위이며 훌륭한 공직자인 민주 공명당의 이진우 대표가 대선에 나오면 밀어줄 생각입니다. 사위도 내 자식이니까요.]
이 기사가 나가자 A전자 주식은 또 12%이상 상승했다.
디욘 코리아는 세력이 이익실현을 하자 금방 상한가가 무너지면서 결국 종가에 장대 음봉을 보이며 하락했다. 하지만 A전자 주식은 계속 강세를 이어 나갔다.
구건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뭐? 사위도 자식이니까 밀어줘? 하필이면 가만히 있다가 지금 그 발언을 해? 혹시 이진우 대표와 A전자의 노회장이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닐까? 노회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구건호는 언젠가 한번 보았던 곱게 늙은 A전자의 회장 모습과 청담동 이회장의 얼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고수들이군. 평상시 정치를 멀리하고 사위의 정치행보를 싫어했다는 사람이 마지막 그림을 그려줘? 그동안 A전자 주식을 사재기 한 것은 이놈들이 아닐까? 하긴 나도 여기에 편승해 덕을 보고 있지만 대단한 전략들이네.]
구건호는 다음 주 정도에 A전자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A전자 주식을 꾸준히 모았던 사람들이 이제 슬슬 풀겠지. 내가 먼저 풀어야지. 또 상대의 거물 정치인이 가만히 있겠어? 이제 이진우 대표의 약점을 잡고 공격해 들어오겠지. 정치란 본래 이런 것이 아닌가? 그 안에 팔아야 내가 산다.]
구건호는 정확히 일주일 후에 A전자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주식 수량이 많아 파는데도 역시 3일이상이 걸렸다. 구건호는 6천억을 투자하여 85%의 이득을 보았다. 소형주처럼 두 배, 세배의 대박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금화한 금액은 1조 1천 1백억이었다. 증권계좌에 남아있던 돈 700억과 합치니 그의 현금은 이제 1조 1천 8백억이 되었다. 구건호 나이 39세 4월이 되던 해였다.
구건호는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1조원 이상 되는 돈을 잘 지키고 사회를 위해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을 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 부과될 세금에 대하여 연구해 보기로 하였다.
구건호의 A전자 주식은 처분되었음을 공시했다.
구건호가 있는 회장실로 지에이치 자산운용의 손근수 사장이 왔다.
“회장님 말씀대로 디욘 코리아는 상한가 두 방 맞고 나왔습니다.”
“60% 먹었는가요?”
“아닙니다. 그 전에 올라가기 시작하고 상한가를 먹었기 때문에 100%입니다.”
“이제 총알은 100억 자본금 플러스 100억인가요?”
“네, 200억입니다.”
“내년에 배당 안하고 지금 늘어난 돈 증자할 테니 열심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자산운용이 굴리는 자금이 적은 것 같아 이번에 번 돈은 증자로 회사에 남겨놓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미 조 단위의 현금이 있는 구건호에게는 급할 것이 없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짙은 5월이 왔다.
스타일 어페럴 사장에게서 강이사에게 연락이 왔다.
“방배동 빌딩을 300억에 팔겠다는 것은 해본 소리이고 280억이면 팔겠습니다.”
청담동에 전시장을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강이사는 280도 비싸다고 펄쩍 뛰었지만 구건호는 계약을 하자고 하였다.
구건호는 방배동 빌딩을 김영은 명의로 샀다. 김영은은 다니던 병원이 이사를 가서 마침 쉬고 있는 중이었다.
“당신이 근무했던 병원 맞은편 건물을 내가 샀어. 통째로 샀으니까 그런 줄 알아.”
김영은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건물 세 얻기도 힘든데 통째로 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다 아니었다. 그 건물을 아예 김영은의 이름으로 한다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해. 그래서 당신 아버님도 의사가 아니면 딸을 시집보내지 않으려고 했잖아. 내가 망하더라도 그 건물은 있어야지. 그래서 당신 명의로 하는 거야. 당신과 상민이를 위해서 말이야.”
이 말에 김영은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김영은은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자 의료법인을 만들고 선배와 후배 의사를 불러 들였다. 그리고 신경외과, 내분비 내과, 재활의학과 등 3개과를 설치하고 이사장이 되었다. 서울대 신문에 자랑스런 동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6월이 되었다.
강이사가 근무하는 지에이치 모빌 사옥 관리부는 17층으로 내려가고 구건호의 회장실은 대폭 넓혔다. 회장실 옆에 부속실도 따로 만들었다. 인테리어도 고급으로 다시 했다. 이제 18층에는 자산운용사와 부속실, 그리고 회장실 밖에 없었다. 구건호는 회장실에서 독서나 하고 지냈다.
지에이치 산하에 보내는 각사의 공문이나 손익관리, 세금 문제는 홍과장이 다 하였다. 구건호는 W그룹에서 매각하는 강남 스타빌딩에 들러리를 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인수의향서(LOI)를 써주었지만 뜻이 없어 형식적으로 아주 적게 써주었다. 이 일로 구건호는 또 한 번 신문에 이름이 나오기도 하였다. 5천 억대의 빌딩 인수에 개인 구건호가 참여하여 경제 신문 기자들은 그 큰손이 누구인가하고 취재를 나오기도 했었다.
3년의 세월이 지나 지에이치 모빌은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되어 상장을 하였고 군납으로 성공한 지에이치 정밀도 상장을 하였다. 상장 후 총알이 빵빵해진 모빌과 정밀은 건설과 전자, 중공업 등의 회사를 인수하여 덩치를 키워나갔다. 구건호가 개인적으로 짱박아둔 1조원은 건들이지도 않았다.
구건호가 48세가 되던 해 지에이치는 자산 규모가 10조원이 넘어 그룹을 선포하였다. 마침내 지에이치 그룹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