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8
대어(大魚) (1)
(498)
구건호가 금감원 전자공시 사이트에 들어가 방배동 빌딩 소유주인 ㈜스타일 어패럴의 감사보고서를 조회해 보았다. 매출 300억원 가량의 중소기업이었다. 부채도 약간 있지만 위험할 수준은 아니고 자산도 제법 되었다.
“빌딩을 팔아야할 이유는 없는 회사군.”
구건호는 회장실을 나와 근무하고 있는 강이사 책상 쪽으로 갔다.
“그 어패럴 사장은 그 빌딩에서 근무합니까?”
“아닙니다. 청담동이었습니다. 청담동도 작은 사옥이 있었습니다. 매장도 있고 자체 건물인 것 같았습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는 회장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대로 탄탄한 회사니까 건물은 안 팔겠지만 청담동에 있다면 사옥을 합칠 의사는 있을 수도 있겠군. 방배동 그 위치는 의류 샵 같은 곳을 만들 만한 곳도 아니야. 의류 매장이라면 청담동이 더 낫겠지.]
[의류회사 사장이라면 샵을 늘릴 욕심은 있겠지. 청담동도 좋고 명동도 좋고 동대문도 좋겠지.]
구건호는 강이사를 다시 불렀다.
“어패럴 사장을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
“300억 달라고 하는데요?”
“가서 찔러보는 식으로 이야기 하진 말고 진지하게 한번 이야기 해보세요. 누가 병원을 차리려고 하는데 250억이면 살 용의가 있다. 명함을 두고 갈 테니 생각 있으면 연락을 달라. 연락주면 사겠다는 사람을 데려 오겠다 라고만 하세요.”
“그러다가 연락이 안 오면 어떻게 합니까?”
“연락이 안 오면 우리도 포기 해야지요.”
“회장님, 250억이면 안양이나 성남, 아니면 제가 사는 봉천동 같으면 얼마든지 좋은 빌딩 사고도 남습니다. 꼭 거기를 고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단 접촉해 보고 안 되면 그렇게 하지요.”
“병원은 사모님이 운영하실 것 같은데 기사 두면 안양이나 의왕시도 얼마든지 방배동서 출퇴근합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죠. 일단 청담동이나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4월 초순이 되었다.
중국의 심운학 감독이 새로 만든 회사 몽환오락 유한공사의 영업집조(사업자등록증)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심운학 감독이 전화를 했다.
“회장님, 제가 보낸 영업집조는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모리 에이꼬와 출연 계약을 합니다. 이번엔 파격적으로 출연료를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얼마를 주는데요?”
“50만 달러입니다.”
“지난번에 <몽환앵화> 찍을 땐 얼마를 주었지요?”
“20만 달러였습니다.”
“흠, 많이 오르긴 했네요.”
“모리 에이꼬는 이제 연기력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또 <몽환앵화>로 얼굴이 많이 알려 지기도한 배우입니다. 그 정도는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흠, 그래요?”
“모리 에이꼬와 계약은 4월 5일 상해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동경에 가서 하지 않고 상해로 불러서 계약합니까?”
“상해에서 하는 게 좋습니다. 이것도 신문 기사감이 됩니다. 계약서 서명할 때 기자들이 옵니다. 아니면 우리가 찍어서 보도 자료로 배포해도 됩니다. 사극 <항왜영웅>에 <몽환앵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일본 여배우 모리 에이꼬가 다시 출연한다고 기사화되면 홍보에도 도움이 됩니다.”
“흠, 그렇겠군요.”
“회장님 4월 5일 상해에 한번 안 오시겠습니까?”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가 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중국 환러스지 공사의 직원들이나 심운학 감독이 자기와 모리 에이꼬와의 관계를 수상하게 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중에 조용히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모리 에이꼬는 다음에 만나죠. 안부나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출연료를 올려주는 건 구회장님의 힘이 컸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송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대출 1,200억이 실행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지에이치 개발 법인 통장으로 돈이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오늘부로 지에이치 개발의 직원들은 전부 지에이치 모빌의 신입사원으로 채용되는 것으로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 중 홍과장과 정대리가 하는 일들 중에서 많은 부분이 이곳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정지영 대리가 하던 4대 보험 업무는 이쪽 총무부에서 직접하고 홍과장이 하던 경리 일도 이쪽으로 흡수가 되었습니다.”
“흠, 그러겠네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내 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동안 내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인데....”
“그럼 정대리는 강이사가 하는 입주회사 임대료 관리하는 업무를 보조하게 하고 거기 청소원이나 경비사원들 근태업무 관리하는 것을 맡으라고 하겠습니다.”
“홍과장은요?”
“홍과장은 차라리 회장님 직속으로 기획실을 만들어 기획과장으로 근무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세무사 자격도 있다고 하니까 거기서 지에이치 산하의 회사들을 관리하고 세무조정 문제나 회장님 재산관리 업무를 맡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흠.”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내보내야 합니다.”
“기획실보다는 회장 부속실을 만드세요. 홍과장은 회장 부속실 과장으로, 비서 오연수는 회장 부속실 사원으로 발령 내세요. 발령 낼 때 직급 옆에 홍과장은 재무담당, 오연수는 비서담당으로 괄호로 묶어 표시하세요.”
“알겠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구건호는 홍과장과 정지영대리, 오연수 비서, 그리고 지하 기계실에서 근무하는 정수남 반장을 불렀다. 네 사람이 회장실에 들어와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일렬로 섰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강이사님은 어디 가셨나요?”
“청담동 간다고 나가셨습니다.”
“여러분들 소속이 지에이치 개발에서 지에이치 모빌로 소속이 변경되는 건 알고 있지요?”
“강이사님께 들었습니다.”
“여기는 지에이치 모빌의 사옥관리부가 됩니다. 소속이 변경되더라도 여러분들의 신분에는 아무 변동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대로 열심히 일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네 사람이 똑 같이 복창을 하였다.
단, 정대리와 홍과장의 업무는 직산의 모빌 본사로 많이 이전되었으니 정대리는 강이사님이 하는 업무를 더 많이 보좌해 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홍과장은 앞으로 지에이치 산하 회사들 손익관리나 세무조정 같은 일을 보시고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일을 수행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한사람씩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경리를 보았던 홍과장이 있어서 잘 알지만 개발은 그동안 이익을 못 냈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은 종업원 600명에 이익을 내는 큰 회사니까 여러분들 대우도 좀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직원들은 고개만 숙이고 말이 없었다.
“어제 강이사님이 나한테 개발의 퇴직금 지급 결재 품의서로 올렸습니다. 강이사와 정대리는 3년치, 정반장은 2년치 오연수씨는 1년치를 각각 받는 것으로 올렸었습니다. 홍과장은 근무일수가 모자라 퇴직금을 못 받았습니다. 법인이 다르다보니 퇴직급여 연계가 안되는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또 말이 없었다.
“강이사님께 물어보면 알겠지만 모빌의 송사장님도 좋은 분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겁니다. 또 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씀도 드려주겠습니다. 열심히들 합시다.”
직원들은 배시시 웃으며 나갔다. 소속이야 어떻던 월급만 잘 나오면 된다는 표정들이었다.
강이사가 회장실을 들어왔다.
“청담동은 어페럴 사장을 만나서 제 명함을 주고 왔습니다.”
“뭐라고 그래요? 그 어페럴의 여자 사장이?”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250억 제의에 대답은 하지 않고 제 명함만 한참동안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명함만 주고 나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생각 있으면 소식 주겠죠.”
“아, 그리고 개발 법인 통장으로 1,200억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 개인통장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개발은 법인세 안 내지요?”
“뭐, 벌은 게 있어야 법인세를 내지요. 하하.”
“그럼 법인세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네요.”
“그렇습니다.”
“혹시 직원들은 소속 변경이 되는데 대하여 불만이 없었던가요?”
“없었습니다. 저는 퇴직금 승계문제로 불만을 표시할 줄 알았는데 안 그렇던데요? 오히려 현금으로 계산해서 돈을 준다니까 모두 공돈 생긴 줄 압니다.”
“하하, 그래요?”
“퇴직금이 승계 안 되면 불리한데 워낙 돈들이 궁하다가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뜻하지 않은 돈이 생기니 그런 모양입니다.”
“홍과장은 못 받아서 좀 억울하겠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요.”
“홍과장 한테는 제가 그랬습니다. 회장님이 다른 더 중요한 일을 맡기지 있지 않겠냐고 하니까 눈을 반짝이는 것 같았습니다. 직원들 업무분장 재조정은 제가 송사장님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흠, 그래요?”
“그리고 6월 달에 17층 한곳이 비는데 사옥관리부는 17층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여기는요?”
“사실 회장님 방이 너무 좁습니다. 제가 모빌에 가보니까 모빌 사장님 방보다도 적습니다. 그래서 18층은 회장님 방과 비서실을 꾸밀 예정입니다. 이 이야긴 송사장님이 먼저 꺼내셨습니다.”
“난 괜찮아요.”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 문제는 6월 달에 다시 생각해 보지요.”
구건호가 회장실 소파에 앉아 졸음이 와서 비몽사몽간에 앉아 있었다. 전화가 왔다. A전자 그룹의 박사장이었다.
“잘 지내시죠? 구회장님.”
“반갑습니다. 박사장님.”
“내일 오전 11시 남산도서관 주차장으로 오세요.”
“선물 하나 주시겠습니까?”
“선물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4월 달 남산의 공기도 한번 쏘이고 싶습니다.”
구건호는 궁금했다.
뒷짐을 쥐고 회장실을 맴돌았다.
“어떤 선물을 주겠다는 건가? 300억 배당금에 필적할 만한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 받지 말아야지.”
구건호는 박사장이 어떤 선물을 줄까 기대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의리 하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도 많은데 기대하지 말자. 기대가 괜히 크면 실망도 많다고 하지 않는가?”
다음날 구건호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10시 30분쯤 엄찬호와 함께 남산 도서관으로 갔다. 박사장 차가 먼저 와 있었다. 박사장이 창문을 약간만 열고 손만 내밀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구건호가 벤트리 승용차에서 내려 박사장 차로 옮겨갔다. 오늘도 박사장은 운전기사 없이 제너시스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고 왔다.
“손수 운전하고 오셨네요?”
“가끔은 혼자 남산 드라이브를 합니다. 사실은 나도 젊었을 때 사귀던 여자 친구와 이 거리를 많이 걷기도 했었습니다.”
“하하, 좋은 추억이 있으셨네요.”
박사장이 시계를 보고나서 말했다.
“구회장님은 지난번 모빌의 배당으로 총알이 많이 있으시겠네요.”
“나갈 때가 여러 군데 있다 보니 벌써 총알이 많이 흩어졌습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구건호는 박사장의 입만 쳐다보았다. 젊었을 땐 꽤나 미남이란 소리를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 공명당의 이진우 대표님이 앞으로 열흘 후 광주에서 강연회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요즘 제가 뉴스를 안보니 통 모르겠네요.“
박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진우 대표님이 그날 대선 출마를 피력하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 정보는 대어(大魚)다!“]
구건호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좋다! 대어가 물면 난 낚시 줄을 힘껏 당기겠다!]
구건호는 긴장되었던 얼굴을 풀며 말했다.
“하하, 이진우 대표님이 아주 바쁘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