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96화 (496/501)

# 496

지에이치 개발 해산 (1)

(496)

3월 중순이 지나고 있었다. 날씨도 많이 푸근해졌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사장이 중국에서 환러스지 공사가 170억을 법인 계좌로 보내왔다는 보고를 했다.

신사장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회장님, 역시 영화가 한번 뜨면 이렇게 돈이 들어오네요. 출판보다 재미있겠는데요?”

“영화는 까질 때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돈은 일단은 법인통장에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호호.”

“그렇게 하세요.”

구건호는 돈이 들어왔으니 상해의 리스캉 국장에게 돈 잘 받았다는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았다.

“웨이, 니하오! 리스캉 국장?”

“오, 구회장 오래간만이다.”

“영화<몽환앵화> 정산된 돈 잘 받았어. 리국장이 도와줘 흥행에 성공했으니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환러스지 공사에서 돈을 보낸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받았구나. 축하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중국에 가서 술 한 잔 살게.”

“하하, 그래, 알았다.”

구건호는 정말 가난한 공무원 리스캉 국장을 위해 후원금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구건호는 회장실 소파에 앉아 그가 앉아있는 이 신사동 빌딩의 감정평가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실 노크 소리가 들려 강이사가 온줄 알았는데 심운학 감독이 들어왔다.

“어? 심감독님? 언제 오셨습니까?”

“어제 왔습니다.”

“앉으세요. 그동안 중국서 근무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시켜 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심운학 감독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말했다.

“회장님. 지난번 제가 말씀드린 사극영화 제작에 참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꼭 성공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중국인의 정서와 현재의 시류와도 맞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시나리오도 흥행 제조기라고 일컫는 펑아이링 여사가 쓴 작품입니다.”

“흠”

“시나리오도 완성되었고 감독도 <몽환앵화>를 맡았던 우옌(吳岩) 감독이 메가폰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스탭진과 배우 개스팅도 <몽화앵화> 촬영 팀이 그대로 들어오면 됩니다. 영화의 프리 프로덕션기간도 이미 준비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금년 안으로 상영이 가능합니다.”

“글쎄요. 난 사실 제조업 하는 사람이라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회장님 이번 작품은 <항왜영웅(抗倭英雄>으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일본과의 갈등으로 애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대조류에도 맞는 작품입니다.”

“흠.”

“조선의 이순신장군도 나오고 일본의 소서행장도 나오고, 중국의 수사제독 진린도 나옵니다. 명나라 장수 등자룡도 나옵니다. 이순신과 소서행장, 진린과 등자룡은 각기 자기나라에 동상들도 다 있습니다. 이웃나라와의 전쟁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백성들과 병사들에게 상처를 주는가 하는 물음도 던집니다.”

“글쎄요. 난 별로 흥미가 없네요.”

심운학 감독은 정신없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회장님. 여자주인공은 모리 에이꼬가 나옵니다. 모리 에이꼬도 <몽환앵화>에서는 일본을 배반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항왜영웅>에서는 일본을 위해 장렬하게 죽어가는 장면으로 나옵니다.”

“흠.”

“이 영화에 대한 계획은 환러스지 공사의 천바오깡 사장이나 우옌 감독도 대찬성을 하였고 리스캉 국장도 만들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회장님, 성공이 확실한 작품입니다. 준비에만 6개월 이상이 걸렸던 작품입니다.”

“글쎄요, 별로 관심이 없네요.”

구거건호의 입에서 별로 관심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자 심감독은 바로 의자에서 내려와 사장실 카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장님, 딱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심감독이 무릎을 꿇자 구건호는 크게 놀랐다.

“왜, 왜 이러십니까?”

“회장님 <항왜영웅>은 환러스지 공사가 모든 걸 하는 것이 아니고 별도 기획사를 설립하여 운영합니다. 다시 말해 수입과 지출이 보다 선명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구건호보다 십여 년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으니 구건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나십시오. 흉하게 왜 이러십니까?”

구건호는 오래전 자기가 와이에스 테크에서 경리로 근무할 때 공금 유용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사장 앞에 정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때가 생각났다.

“연세도 저보다 훨씬 많은 분이 왜 이러십니까. 제가 검토해 보겠습니다.”

구건호가 검토해 보겠다는 소리에 심감독이 다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구건호가 눈을 감고 생각을 한참 하다가 입을 열었다.

“중국으로 돌아가셔서 별도 투자사를 설립하세요. 그리고 펀딩을 받아보세요. 모자라는 부분은 제가 한번 도와주도록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신 새로 설립하는 투자사는 지에이치 이름을 넣지 마세요. 계속 말려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지에이치 빌딩의 감정 평가서가 나왔다.

지에이치 개발의 강이사가 감정평가서 서류를 들고 회장실로 왔다.

“얼마나 나왔습니까?”

“많이 올랐네요. 2,850억 나왔습니다. 역시 토지부분이 높아졌습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가 감정평가서를 자세히 보았다.

서류를 다본 구건호가 다리를 꼬며 웃으며 말했다.

“강이사님 지에이치 모빌의 송사장을 아시죠?”

“얼굴은 몇 번 뵈었습니다만 직접 대화는 못해봤습니다.”

“이 감정평가서를 가지고 직산 출장을 가세요.”

“제가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송사장과 친해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제조업 사장님이라 저하고 특별한 관계가 없을 것 같은데요?”

“이 빌딩을 지에이치 모빌에 넘길 겁니다. 매매형식이 됩니다.”

“옛? 빌딩을 판다고요?”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은 그대로 있게 됩니다. 지에이치 개발이 없어지고 여긴 지에이치 모빌 산하의 빌딩관리부 쯤 되겠지요. 지에이치 모빌의 사옥 형태가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송사장 지휘를 받게 되어 복잡하겠지만 급여는 더 올라갑니다. 강이사님은 종업원 600명의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이 되는 겁니다. 급여가 종업원 몇 십 명의 이익도 못 나는 회사의 이사가 아니라 매출 1,800억대의 제조사 이사가 되는 겁니다. 급여가 많이 올라가니까 다소 불편하고 복잡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그럼 오늘이라도 감정평가서 가지고 내려갈까요?”

“서로 통화하고 내려가세요.”

“알겠습니다.”

강이사가 감정평가서를 들고 나가자 구건호가 송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감정평가서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나왔습니까?”

“2,850억 나왔네요.”

“그럼 거기 기존융자가 얼마라고 하셨지요?”

“1,500억입니다. 임대 보증금 받아논 건 150억입니다.”

“잠깐만요. 제가 계산 한번 해보겠습니다.”

“2,850억에서 기존융자 1,500억하고 보증금 150억 빼니까 1,200억 남네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모빌에서 빌딩 인수 후 은행에서 추가융자 1,200억 받아서 회장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 우선 개발 법인계좌로 보냈다가 개발을 해산하면서 회장님 개인계좌로 가면 되겠습니다.”

“양도소득세가 많이 나올 것 같지요?”

“하하, 좀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여기 개발에 근무하는 강이사를 잘 알지요?”

“얼굴은 몇 번 본 것 같습니다.”

“강이사가 오늘 감정평가서를 들고 내려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주 강이사 내려오면서 개발의 법인 인감도장도 가져오라고 해야겠습니다. 온 김에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지요.”

“그렇게 빨리요? 허허, 아무튼 알겠습니다.”

“강이사 오면 여기 임원들도 소개해 주겠습니다.”

“빌딩 매매계약서 작성하면 여기에 있는 직원들은 그대로 인수하세요. 직급도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급여도 모빌 급여 기준에 맞추어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개발 직원은 모빌의 신규입사 형태가 되어야지 퇴직금 승계까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퇴직금은 개발이 해산되기 전에 개발에서 정산하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무적인 것은 서로 강이사 오면 상의하겠습니다.”

강이사는 앞으로 상사로 모셔야할 송사장에게 조심히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에이치 개발의 강이사입니다.”

“아, 강이사님! 회장님께 전화 받았습니다.”

“지금 감정평가서 가지고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예, 내려오세요. 자리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려오실 때 개발의 법인 인감도장, 법인등기부등본, 사업자등록증 사본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원 명단도 있으면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강이사는 서류를 대봉투에 담고 다시 회장실을 들어왔다.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송사장과 통화되었습니까?”

“예, 통화했습니다.”

“혹시 법인 인감도장 가지고 오라고 안합니까?”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럼 매매계약서 아주 도장 날인해 주고 오세요.”

“매매계약서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소파에 기대어 이번에 빌딩 매각으로 송사장이 1,200억을 보내주면 자기의 개인 재산이 얼마나 될까 계산해 보았다.

[지금 강남증권에 3,300억이 있지? 그리고 강북증권에는 2,200억이 있단 말이야. 이번에 빌딩판돈 1,200억이 들어오면 내 개인재산이 6,700억이 되나?]

[6,700억이면 이번에 민주 공명당의 이진우 대표가 립 서비스나 해준다면 1조원 목표가 어렵진 않겠어. 참 여기까지 힘들게 왔네. 앞으로 세금문제나 증여문제 같은 건 일단 1조원을 모아놓고 연구해 보자.]

[앞으로 전문가 집단을 더 채용해야겠어. 법무팀이나 경영전략팀을 두어 이들의 머리를 활용해야 돼. 나는 못배우고 무식해도 머리는 빌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강이사가 지에이치 모빌에 내려가 송사장을 만났다.

송사장이 감정평가서를 살펴보았다.

“더 이상 부풀리는 건 안 되는가요?”

“최대한도로 부풀렸습니다.”

“법인 인감도장 가지고 오셨지요?”

“가지고 왔습니다.‘

송사장은 전화로 김민화 경리이사를 불렀다.

“우리 법인도장 가지고 이리 오세요.”

“알겠습니다.”

김민화 이사가 법인도장을 가지고 왔다.

송사장이 김이사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김민화 이사는 서울 지에이치 개발의 강이사님 잘 모르시죠?”

김이사가 강이사를 쳐다보았다.

“저는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구건호 회장님을 오랫동안 보필하신 분입니다. 지에이치 개발의 빌딩은 모빌에서 인수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인수가격은 2,850억입니다.”

“2,850억요?”

“파이넨스를 일으키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하지요. 두 분 인사하세요. 강이사님은 앞으로 우리 식구가 될 분입니다. 아니 개발의 전체 직원이 모빌로 들어올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강이사도 벌떡 일어나 김민화 이사에게 인사를 하였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거기 경리담당 홍과장은 제가 잘 압니다. 지에이치 산하 경리담당 모임이 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송사장은 미리 준비한 매매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두분 날인하세요.”

김민화 이사와 강이사는 송사장이 보는 앞에서 서로 매매계약서에 날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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