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
선물 (2)
(495)
삼국지에서 촉나라 제갈공명과 오나라의 도독 주유는 조조의 대군을 깨기 위하여 서로의 전략을 손바닥에 쓰고 펴보도록 하였다. 둘이 글씨를 쓰고 손바닥을 펴보았다. 똑같이 불 화(火)자를 썼다. 적벽대전의 계책이 서로 같았던 것이었다. 서로 놀랐다. 주유는 제갈공명의 우수함에 탄복하여 이런 자를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구건호와 송사장이 서로 손바닥을 폈다. 둘의 손바닥은 똑같이 ‘빌딩’이라고 쓰여 있었다. 둘은 서로 놀랐다. 송사장이 먼저 말을 했다.
“역시 구회장님이십니다.”
구건호도 웃으며 말했다.
“송사장님은 역시 강호의 고수입니다.”
“이만하면 회장님의 장자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충분한 것이 아니라 넘쳐흐릅니다.”
마침 비서 박희정이 녹차를 가져왔다. 치를 마시면서 송사장이 다시 말했다.
“우리의 부채는 현재 350억입니다. 배당은 디욘 코리아에서 들어온 돈 가지고 해서 이번에 영업이익에서 50억은 갚았습니다. 그래서 300억이 남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흠.”
“매출 1,874억에서 세후 순이익이 133억인 회사가 가지고 있는 부채가 300억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지에이치 모빌은 신용도가 A-에서 A0으로 되었습니다. 주거래 은행에서도 돈을 얼마든지 더 갖다 쓰라고 하고 있습니다.”
“흠”
“신사동 빌딩을 지에이치 모빌에 인수시키십시오. 부채를 안고 모빌에서 인수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채가 너무 많습니다. 신사동 빌딩 부채가 1,500억이나 있습니다.”
“이자는 현재 입주자 임대료로 카버 다하고 있습니다. 1,000억 정도 융자를 더 받는다 해도 현재 모빌의 실력으로는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1,000억 이자라고 해 보았자 6부이자 계산하면 연 60억입니다. 월 5억이지요.”
“작년의 모빌의 세후 이익이 133억인 것은 아는데 세전은 얼마지요?”
“171억입니다. 여기서 60억 정도의 이자는 충분합니다. 은행 애들이 이거 계산 안하겠습니까?”
구건호와 송사장이 손바닥에 썼던 글씨는 바로 신사동에 있는 지에이치 빌딩을 말한 것이었다. 구건호는 이 빌딩을 지에이치 모빌에 팔고 싶고 송사장은 구건호의 이런 뜻을 헤아려 인수하겠다는 것을 피력한 것이다.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을 2,050억에 샀었다. 자기 돈은 400억만 들이고 모자라는 1,500억은 은행융자, 150억은 임대 보증금으로 충당하였던 것이다. 구건호가 이 빌딩을 모빌에 융자 끼고 그대로 팔면 400억이 생기는 것이었다. 또 다른 사람이 아닌 모빌이 사면 모빌의 대주주는 구건호이기 때문에 이 빌딩을 구건호가 이용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지금 모빌은 배당 후 남아있는 돈이 많지 않다. 하지만 송사장은 모빌의 매출에 비해 부채가 적으니까 얼마든지 추가 융자를 받아 400억은 내줄 수 있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다. 400억이 아니라 더 내줄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 내비치기도 한 것이었다.
송사장이 차를 한잔 마시고 이야기 했다.
“신사동 빌딩은 살 때 감정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2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감정 평가액이 달라졌을 겁니다. 새로 감정평가 하세요. 최대한 부풀려 하십시오. 새로 나온 감정평가액대로 모빌에서 인수하겠습니다.”
구건호는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송사장이 먼저 해주니 고맙기도 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감정평가를 하지요.”
구건호가 디욘 코리아에서 지분매각 대금이 들어왔던 통장을 꺼냈다.
“디욘 코리아에서 지분 매각대금 2,720억이 들어왔던 통장입니다. 여기서 2,000억은 주주 배당하고 720억이 남아 있습니다. 보관하셨다가 양도 소득세나 법인세 낼 때 꺼내 쓰세요. 여기 통장하고 OTP단말기입니다.”
“알겠습니다.”
송사장이 두 손으로 공손히 통장을 받았다. 그리고 경리 김민화 이사를 불렀다.
잠시 후 김민화 이사가 사장실로 왔다. 송사장이 통장과 OTP 단말기를 주면서 말했다.
“회장님이 방금 주신 통장입니다. 이 통장으로 디욘 코리아 지분 매각 대금이 들어왔고 여기서 이번에 주주배당 2,000억을 했습니다. 현재 통장 잔고는 720억이 들어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 통장은 김이사가 앞으로 관리하시고 양도소득세나 법인세 나올 때 활용하세요. 양도 소득세나 법인세 액수가 많으면 세무서에 분납 신청하고요.”
“알겠습니다.”
김민화 이사는 통장을 받아들고 구건호와 송사장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나갔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사장실은 자기 방이 아니라서 오래 머무를 이유도 없었다,
“나는 지에이치 정밀에 들렸다가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지에이치 정밀은 S기업의 링 케이블 매출로 지금 많이 바빠졌을 겁니다. 첫 달이기 때문에 매출이 5억밖에 안되지만 차츰 10억에 도달할겁니다.”
“박종석이 요즘 신이 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송사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3억이 든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당분간 배당을 못하는데 따른 보상금이라고 했잖습니까? 넣어두세요. 그리고 오늘 큰 선물을 주었잖습니까?”
“그럼 고맙게 알고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송사장은 3억이 든 봉투를 자기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구건호에게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송사장은 이렇게 해서 금년에 배당금 3억과 구건호가 따로 준 3억을 받아 6억의 수입을 올렸다. 6억이나 되는 돈이 생겨서 그런지 송사장도 얼굴빛이 환해 진 것 같았다.
구건호는 엄찬호와 함께 지에이치 정밀로 갔다. 사장실에 박종석이 없었다. 구건호의 얼굴을 아는 일본어 통역 양미란씨가 와서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조립 현장에 계십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가 조립 현장으로 가보았다. 20명이나 되는 사원들이 앉아서 모빌에서 가져온 제품에 이중 링을 끼고 있었다. 박종석 사장은 완제품으로 나온 물건을 검사하는 검사원 옆에 서 있었다.
“수고한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박종석은 얼굴이 좋아진 것 같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내 방으로 가.”
박종석과 구건호가 사장실로 가다가 화장실을 갔다 오는 일본인 공장장 야나기 마사토시씨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사쪼상(사장님), 아, 참. 가이또우(會頭: 회장)가 되셨다고요?”
“일 할 만 하세요?”
“박사장님이 잘 봐줘서 잘 있습니다.”
“공장장님이 계셔서 이세하라 기계에 들어가는 제품은 걱정이 없습니다.”
“하, 고맙습니다.”
구건호가 소파에 앉자 박종석은 일본어 통역 양미란씨를 불렀다.
“홍차 두 잔만 줘요.”
양미란씨가 차를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고 나갔다.
박종석은 턱으로 방금 나간 양미란씨를 두고 말했다.
“저 친구 통역으로 데리고 왔더니 지금 다방면으로 잘 써먹고 있어. 손님 왔을 땐 비서로 써먹고 통역 안할 땐 총무 일 하는 걸로 잘 써먹어.”
“그래?”
“현장직원 근무일수 파악하고 수당 산출은 저 친구가 다해. 내년에 대리라도 시켜줘야겠어.”
“박사장이 인복이 있는 모양이다.”
“형, 그리고 나 매출 많이 늘었어. 이제 월 10억 정도 해. 헤헤.”
“모빌의 송사장 말로는 지금 S기업에 들어가는 링 케이블은 5억이지만 곧 10억으로 늘어난다고 하더라.”
“헤헤, 그래서 직원들 10명 더 뽑을 계획이야. 하지만 말이야. 지금 매출이 워낙 작아서 조립업무 하지만 사실 이건 정밀에서 할 일들은 아니야. 그래서 지금 방위산업체 납품을 프로포즈하고 있어.”
“그래?”
“그래서 우리 회사 자료가지고 새로 채용한 영업과장 노희영씨가 지금 H중공업을 들어갔어. 스크류나 밸브종류 납품을 추진해 보려고 해.”
“그래?”
“노과장이 들어와서 육군 군수사령부 입찰건도 하나 땄어. 액수는 별것 아니고 한 번에 그치는 일이지만 이렇게 하다가 큰 건이 하나 안 걸리겠어?”
“흠, 그래? 육군 군수사령부는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나?”
“정부 입찰은 요즘 아는 사람 통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해. 국방부 전자조달시스템에 들어가서 응찰한 거야. 2천만 원짜리 고공 가설작업 공사야.”
“그거 조달청에서 하는 건 아닌가?”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하는 거? 그거하고 달라. 국방부는 따로 해.”
“그럼 매출 구조는 어떻게 되냐?”
“지금 이세하라 2억, 디욘 코리아는 들쑥날쑥하니까 월평균 1억 5천 잡고 S기업 이중 케이블 조립이 5억, 기타 1.5억 하면 딱 10억이야.”
“그래 잘해 봐라. 어째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두고 봐 지에이치 정밀 꼭 코스닥 등록할거야. 그리고 중공업 회사 하나 인수할거야.”
“하하, 꿈은 좋다.”
다음날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했다.
강이사를 불렀다.
“이 빌딩 감정평가한지가 오래되었죠?”
“처음 인수할 때 매도자가 했던 평가 말고는 우리가 한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감정평가 기관에 감정평가 의뢰하세요. 융자 받으려고 하니까 최대한 부풀려서 하라고 하세요.”
“융자요? 여기서 더 융자받으면 지에이치 개발이 감당하기 힘들어집니다.”
“다른 목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받아보세요.”
“혹시....”
“건물 팔라고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죠? 하하, 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강이사는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구건호가 빌딩을 팔면 자기의 밥줄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강이사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한마디 했다.
“지금 강남 부동산이 미친 집값이라고 해서 최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아마 여기도 엄청 오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강이사가 구건호 방을 나가자 구건호는 A전자그룹의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통화 가능하시죠?”
“예, 말씀하십쇼.”
“제가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어르신은 주식 양도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어차피 세금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당분간 몇 년간은 배당도 못합니다.”
“흠, 그 말씀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번 의논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주식 인수하실 때 어르신 사비로 하셨으니까 그 돈은 반환해 드리겠습니다.”
“얼마였죠?”
“15%지분에 7억 5천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틀 후에 강이사가 의뢰한 감정평가기관에서 나와 신사동 빌딩에 대한 감정평가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A전자 그룹의 박사장에게도 전화가 왔다.
“구회장님? A전자그룹의 박사장입니다.”
“예, 구건호입니다.”
“의논을 했더니 어르신은 갖고 계신 지에이치 모빌 지분 15%를 이제 양도하시겠답니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바로 민주 공명당 이진우 대표의 아버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본금 50억인 지에이치 모빌의 15%를 갖고 있는 중이었다. 구건호는 정치와 인연을 가급적 끊고 싶었다. 정권이라도 바뀌어 나중에 시끄러운 일이라도 발생하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할 만큼 했으니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박사장이 말했다.
“주식 양도대금 7억 5천만 원은 보내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보내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법인 주식양도 계약서를 등기 속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르신 인감도장 날인 후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인감증명서도 한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