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4
선물 (1)
(494)
중국의 환러스지(歡樂世紀) 공사의 사장 천바오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배급사인 양광픽쳐스 수익 배분 정산 내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구회장님이 저희에게 투자하신 금액은 650만 달러입니다. 드라마 시광여몽(時光如夢)에서 송금할 돈 150만 달러하고 새로 보내주신 500만 달러였습니다.”
“흠, 650만 달러 맞습니다.”
구건호는 드라마 시광여몽에 10억을 투자했다가 5억을 벌었었다. 구건호가 원금과 번 돈을 합쳐 15억을 돌려받았어야 했는데 당시 환러스지 공사에서는 돌려주지 않고 영화 제작비로 돌렸던 것이었다.
“영화 몽환앵화(夢幻櫻花)는 관객 2천만 명을 예상했지만 1천만 명을 조금 넘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당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많이 밀어주긴 했지만 다른 대작에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대단한 겁니다.”
“그래 얼마를 벌었다는 거요?”
“구회장님께 보낼 돈은 원금 650만 달러를 포함하여 1,670만 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 170억 정도 되는 돈이었다. 60억 투자 원금을 빼면 105억 정도를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번 돈이 된다.
“흠, 그래요?”
“사흘 안에 송금을 해드리겠습니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지에이치 미디어 법인 계좌로 송금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심운학 감독은 우리와 같이 계속 일하고 싶은데 심감독은 회장님과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는 심감독이 환러스지 공사에서 일하는 건 좋은데 그렇게 되면 미디어에서 지급하는 한국 급여는 지급할 명분이 없어져 그것도 문제가 될 것만 같았다.
[심감독의 재주를 높이 사서 중국 영화사에 근무하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국 급여가 많지 않아 심감독이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겠군. 그렇다고 미디어에서 주는 급여 150만원을 이제는 계속 줄 명분도 없어지니 심감독이 대답을 못하겠지.]
[그런데 심감독은 나한테 뭘 상의하겠다는 거지? 지난번에 말한 사극영화 찍자고 조를 건가? 그럼 이번에 들어오는 1,670만 달러는 도로 중국에 가져간다는 건데. 그럼 난 또 돈 구경 못하게 생겼네.]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을 불렀다.
“방금 중국의 환러스지 공사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배급사에서 수익 배분 정산을 해주었답니다. 영화수입 1,670만 달러를 송금한다고 하네요.”
“어머나! 그래요?”
“내가 지금 미디어에 가수금으로 집어넣은 돈이 60억이었던가요?”
“그렇습니다. 처음에 드라마에 10억, 나중에 영화에 50억, 그래서 60억을 사장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환러스지 공사에서 돈을 사흘 안에 보낸다고 했으니까 내가 임원 가수금으로 집어넣은 60억은 빼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투자 이익금으로 처리하세요. 그런데 심감독이 또 영화를 만들자고 하네요. 나머지 돈 또 나가게 생겼습니다.”
“또요? 그러면 미디어는 투자이익이 없네요.”
“이번에 1,670만 달러 들어오면 환전 후 170억 정도가 되겠지요. 170억에서 내 원금 60억 빼주면 일단 나머지 110억은 투자이익으로 처리하세요. 그리고 만일 또 영화 찍는다고 나가면 다시 투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해야 되겠지요.”
“그럼 이번에는 회장님께 돈을 안 빌리고 미디어의 투자이익금에서 처리한다는 말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흠.”
신정숙 사장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구건호가 말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찍을 생각은 내가 없습니다. 영화가 꼭 성공하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이번에 번 돈 다 날릴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 그렇습니다. 난 원래 제조업 출신이 아닙니까?”
“영화 더 이상 안 찍으면 심감독은 어떻게 되지요?”
“안 찍으면 나가야지요. 미디어에서 퇴사하는 것으로 처리해야겠지요.”
“흠.”
“지금 중국 영화사에서는 심감독을 채용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중국 급여가 작으니까 망설이는 모양입니다. 중국 영화사에서 근무하면 이제 우리와는 인연이 떨어지니 미디어에 서도 퇴직처리 해야겠지요.”
“흠,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디욘 코리아는 주가는 W케미컬 인수로 한참 치솟아 오르더니 이젠 재료 소멸로 계속 추락하였다. 거기다가 세력들이 몽땅 빠져나가버려 거래량도 한산하였다.
민주 공명당의 이진우 대표는 구건호가 보내준 배당금으로 정치자금이 넉넉해졌는지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에이치 투자운용의 손근수 사장이 구건호 방엘 왔다.
“회장님, 디욘 코리아의 주가가 다시 2만 원대에서 놀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달에 W케미컬 지분 인수로 불꽃놀이를 하더니 그동안 3개월간 흘러내리기만 했습니다.”
“그런가요? 난 요즘 디코 주식은 안보니까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그 회사는 이진우 대표의 동생이 있다니까 좀 건드려 볼까요?”
“글쎄요. 이제는 내가 들고 있는 확실한 패가 없습니다.”
“이진우 대표가 대선에 나올듯한 발언을 슬쩍 간접적으로 비추기만 해도 올라갈 텐데 요즘 그런 기미가 안보이네요. 요즘 반대당에서 영입한 후보 정치인의 관련 주가가 오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정치주 보다는 숨은 우량주들을 골라내 거래하는 것이 안 좋을까요? 밑에 있는 펀드매니저들하고 잘 상의해서 투자해 보세요.”
“수익률이 만족치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정석으로 가는 것이 안 좋겠습니까? 우선은 버는 것보다 원금 까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회장님 그 말씀은 제가 밑에 직원들에게 날마다 아침 커피 타임 때 말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수익률이 저조하다면 나중에 회장님 뵐 면목이 없어질 까봐 그렇습니다.”
“뭐라고 안 할 테니 소신대로 하세요.”
구건호가 퇴근을 하였다.
상민이는 거실에서 자기 발가락을 빨고 앉았고 김영은은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뭘 해?”
“왔어요?”
“냄새가 좋은데?”
“전 부쳐요.”
저녁을 먹으면서 김영은이 말했다.
“오빠, 우리 강아지 기를까? 집이 커서 오빠 없을 땐 무서운 생각이 나.”
“강아지? 지저분하잖아. 털도 날리고.”
“마당에서 기르면 되잖아? 이제 날도 따듯해지는데.”
“강아지 기르면 상민이가 호기심 같게 되고 자꾸 만지다 보면 위생문제와 안전문제가 있어.”
“옛날엔 큰집 살아보는 게 원이었는데 막상 큰집 사니 무섭기도 하고 일도 많아진 것 같아.”
“그럼 입주 도우미 아줌마를 오시라고 해.”
“입주 도우미? 입주 도우미도 좋은데 그럼 저녁때 우리 사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
“내 2층 서재로 당신이 자주 올라와. 그리고 상민이도 돌 지났으니까 둘째 아이 갖도록 해봐?”
“둘째? 그럼 정말 나는 육아에서 헤어나지 못해. 의사생활 못해.”
“의사생활 안하면 어때? 내가 밥 먹여 살릴 텐데.”
“그래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하잖아. 배운 것도 활용하고 사회참여도 해야 성취 욕구를 누리지.”
“그래도 하나 더 낳아. 나중에 상민이가 외롭잖아?”
상민이가 외롭지 않겠냐는 소리는 김영은에게 먹혀들어간 것 같았다. 김영은이 한참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집이 크면 집의 기(氣) 때문에 사람이 눌려 산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 아예 입주를 할 수 있는 도우미 아줌마를 찾아봐. 그리고 둘째 가져. 그러면 이 큰집이 활기가 있을 거야.”
“흠.”
“그리고 당신 말대로 단풍나무도 심고 대추나무도 심고 마당 잔디밭에서 아이들 놀면 좋잖아? 병원에서 환자들 피고름 짜는 게 좋아?”
“흠.”
“지금 다니는 병원은 이쪽으로 이사 오니 다니기가 더 좋지?”
“좀 낫긴 한데 거기도 오래 못 다니게 생겼어.”
“왜?”
“수원으로 이사 간데.”
“수원으로? 여기가 병원이 안 되나 왜 그래?”
“아무래도 강남이다 보니까 임대료가 비싼 모양이야.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고”
“흠, 그래?”
“참, 오빠 내일 시간이 있으면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 갈래?“
“예술에 전당? 내일 일해야지.”
“양평 이모님이 거기서 합동 전시회 해.”
“이모님이? 그럼 토요일 가자.”
“금요일 전시가 끝나는데......”
“그럼 내일 내가 잠깐 올게.”
“내일 온다면 오후 2시경 서울 고등학교 병원 정문 앞에서 만나.”
‘왜? 예술의 전당으로 바로 가면 안 돼?“
“나 차 안가지고 다녀. 주차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마을버스 타고 다녀.”
“그래? 알았어, 그럼. 서울 고등학교 앞으로 가지.”
구건호가 다음날 서울 고등학교 앞에서 김영은을 태우고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는 합동 전시회라 그런지 이모님은 나오지 않았다.
구건호는 새로 이사한 집이 커서 그림을 한 점 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모님 그림을 사주면 이모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내 직원에게 이모가 그린 수채화 한 점 가격을 물어보았다.
“이 작가님은 한국의 농촌 풍경을 빼어나게 묘사하는 작가분이십니다. 지금 걸린 이 그림은 250만원입니다. 계약하시고 송금해 주시면 저희가 전시회 끝나고 반출해 드리겠습니다.”
구건호가 이모님의 그림을 사주는걸 보고 김영은이 놀란 눈으로 보더니 이내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오빠. 이모님이 좋아하시겠다.”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물었다.
“이제 퇴근할거지?”
“응.”
“구건호는 김영은을 태우고 다시 방배동을 갔다. 가는 도중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물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이 어디지?”
“저기, 로타리 지나서 오른쪽에 있어. 저기 커피숍 2층에 있는 병원이야.”
병원은 작은 건물 3층에 있었다. 구건호가 보기에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았다.
“장소도 별로인데 임대료를 많이 올리나 보지?”‘
“장소도 별로고 임대료 많이 달라고 하니까 옮기는 거지.”
“저기 건너편 건물이 좋겠다.”
“거긴 회사 사옥이야. 그런데 누가 병원 임대하나?”
“누가 통 채로 사서 하면 되겠는데?”
“통 채로 사? 누가 판데? 그리고 그런 건물은 재벌이나 사지 못 사. 그리고 안 팔겠지.”
“흠, 그러긴 하겠네.”
다음날 구건호는 은행에서 1억짜리 수표 3장으로 3억을 찾았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지에이치 모빌 공장엘 갔다.
벤트리 승용차가 오자 경비원이 칼같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차단기를 올렸다. 구건호는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사장실에 올라갔다. 구건호가 쓰던 사장실은 이제 송사장이 쓰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사장실 안에 있는 회의용 테이블 중앙에 앉아있던 송사장이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구건호에게 양보했다.
구건호는 송사장이 양보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57억을 돌려 주셨데요?”
“아이고, 그건 제 돈이 아닙니다.”
“앞으로 3년간 배당을 못할지도 모르는데요?”
“10년을 배당 못해도 아닌 건 아닙니다.”
구건호가 조용히 웃으면서 봉투를 내 놓았다.
“앞으로 3년간 배당을 못하니까 1년에 1억씩 3억을 보상한다고 치고 3억을 가져왔으니 넣어두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 대신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저도 말은 안했지만 회장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회장님이 받고 싶은 선물을 먼저 말씀하십시오.”
“그럼 우리 서로 받고 싶은 선물과 주고 싶은 선물을 손바닥에 써 봅시다.”
“그럴까요?”
“둘은 싸인 펜으로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마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공명과 주유가 했던 것처럼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