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91화 (491/501)

# 491

자산 운용사 법인 해산 (1)

(491)

구건호가 차를 마시면서 박종석의 옆얼굴을 보니까 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사장, 이중 링을 끼워서 만드는 성형제품 이름을 뭐라고 그래?”

“JA오링 케이블이라고 하던데? 그건 왜?”

“송사장 이야기는 그 오링 케이블을 여기서 링을 받아다 끼워서 자기들이 납품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EP고무 성형제품을 여기로 납품하면 여기서 끼워 직접 S기업으로 납품하는 방안을 추진해 보겠다고 하던데?”

“그으래? 송사장이 정말 그랬어?”

박종석이 눈을 크게 뜨고 구건호에게 바싹 다가와 앉았다.

“정말 그걸 우리가 납품하도록 해준데?”

“확실한건 아니고 오늘 S기업 부사장을 만나러 가는데 그 문제를 의논해보겠다고 했어.”

갑자기 박종석의 안색이 달라졌다.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거 납품액이 꽤 되는데?”

“월 10억 정도 한다더라.”

“와, 그러면 지에이치 정밀도 힘 잡아. 그것 좀 해달라고 해야겠는데?”

“기다려 봐. 오늘 들어가서 협의한다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가 있겠지.”

구건호는 박종석의 안내로 현장을 한 바퀴 돌고 같이 식사를 하러 갔다. 낙지 연포탕을 먹고 있는데 지에이치 개발의 강이사 한테서 전화가 왔다.

“회장님, 강이사 입니다. 방배동 단독주택 낙찰 받았습니다.”

“오, 그래요? 얼마에 받았습니까?”

“82억 1천 10만원에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2월도 지나고 새해가 되었다. 구건호의 나이도 이제 39세가 되었다.

구건호는 청담동 이회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했다. 이진우 대표에게도 전화로 새해 인사를 하였다. 이진우 대표는 그동안 강연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목소리가 쉰 것 같았다.

“목소리가 많이 변해셨네요.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구회장. 박사장 일이나 잘 봐줘요.”

“하하, 알겠습니다.”

박사장 일이란 자기 아버지 이범식씨에 대한 배당을 진행시켜 달라는 암시였다.

구건호는 A전자 그룹의 박사장에게 새해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작년에는 박사장에게 새해 인사를 했지만 올해는 어쩐지 싫었다. 이제 회장이 되고나니까 월급쟁이 CEO들은 전처럼 우러러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지에이치 모빌이 A전자에 많은 양을 납품하고 있어 소홀히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송사장이 분명히 인사를 했겠지만 송사장이 하는 전화와 오너인 자기가 하는 전화가 격이 다르기 때문에 구건호는 전화를 해 주었다.

“구건호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기를 기원해 드립니다.”

“아이고, 구회장님이 전화 주시니 금년에도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네요.”

“사장님이 전에 제게 하신 말씀은 그런 방향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배당은 3월 달 외부감사 나오고 바로 실행하실 거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A전자에서 금년에도 지에이치 모빌의 영업에 많은 협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사실상 디욘 코리아의 지분 매각 대금 들어온 것을 가지고 지에이치 빌딩을 지에이치 모빌에 인수시키고 싶었었다. 그러면 자기에게도 돈이 들어오지만 이범식씨의 배당 문제가 걸려서 그런 결정을 못하고 배당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대선에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인데 기회를 잡은 그들에게 협조를 해 주어야지. 잘못하면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러면 오히려 기업 성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겠지.]

[저들도 이번에 내가 확실하게 밀어주면 무언가 보상을 해주겠지. 이진우 대표의 입을 선사한다고 했으니 어디 어떤 입인가 두고 보자.]

구건호는 강이사를 불렀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빌딩은 18층 일부와 17층 일부를 쓰고 있는데, 17층과 18층은 세입자 전부 계약 만료되면 내 보내세요.”

“18층에 있는 우리 앞 사무실은 작년에 비워달라고 했었습니다. 올 연말까지가 계약 만료인데 안 나가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9층에 있는 사무실이 나간다는 회사가 있어서 바꿔주기로 했습니다.”

“흠.”

“18층 입주자는 이달 15일 9층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잘 됐네요. 그리고 16층도 계약 만료되면 다른 사람들 들이지 마세요.”

“16층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16층은 3개 회사가 입주해 있는데 잔여 계약일수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방배동 단독주택은 피고 항고기간이 다 끝났나요?”

“끝났습니다. 고법에 항고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서 거기입주자를 만나러 갔었는데 못 만났습니다. 문이 닫혀있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퇴거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우선 보냈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내용증명이 송달되었다는 확인은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퇴근길에 다시 들려보려고 합니다.”

“좋게 해서 내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쁘지 않으시면 저하고 차나 한잔 하실까요?”

“지금요?”

“예, 지금 제가 지에이치 빌딩 사무실에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손사장이 구건호 사무실로 왔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에게 부탁하여 커피를 가져오게 하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일이 없어 한가하게 지냅니다. 회장님 지시대로 책이나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운용했던 SH 투자 파트너스는 해산해 버리고 새로 법인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 방법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서 그 방법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승희씨 계좌로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안 좋겠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있는 사무실 복도 건너편에 있는 회사가 이달 15일 9층으로 이사를 갑니다. 여기 로 들어오세요. 새로 법인 만들고 정식으로 투자 받아서 하는 자산 운용사를 만드세요.”

“여기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산 운용사 근무 경력이 있는 두 사람만 채용하세요. 젊은 사람으로 말입니다. 글로벌 금융에 대해서 아는 사람 위주로 채용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본금은 얼마로 하시렵니까?”

“자산운용사 최소 설립자본금은 얼마죠?”

“리츠 펀드 겸영은 70억이지만 단순히 자산운용만 한다면 20억이면 될 겁니다.”

“많진 않네요.”

“그러다보니 자산운용사의 진입장벽이 쉬워 난립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한국에 있는 자산운용사의 절반은 수익을 못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본금은 100억으로 하세요.”

“예? 일백 억이요? 아, 알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코치 못합니다. 이제 나도 확실한 패가 없습니다. 손사장님이 알아서 잘 운용해 주시면 됩니다.”

“회장님처럼 그런 대박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바닥에선 10% 수익률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까지지만 않도록 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또 솔직히 말해 저도 글로벌 금융 업무를 많이 다루어 보았지만 생소한 이름의 회사 이름으로는 일반 투자자들을 모으기도 쉽지 않습니다.”

“새로 설립되는 법인은 나 개인과 지에이치 산하의 법인 출자로 시작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지금 SH 투자파트너스 법인 통장에 있는 돈이 1,886억이 있다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그 돈 전부다 박승희씨 계좌로 옮기세요.”

“전부 다 말입니까?”

“전에 운영자금 남겨둔 건 있지요?”

“운영자금으로 1억 남겨둔 건 있습니다. 지금 경비 좀 쓰고 9천만 원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건 놔두고 전부 옮기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법인 결산해 달라고 공인회계사에 의뢰했지요?”

“했습니다. 법인세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네요.”

“공인회계사한테 법인세 계산해서 법인세는 자진 납부한다고 하세요. 법인세 나오면 나중에 내가 법인 통장으로 다시 돈 입금 시키겠습니다. SH투자 파트너스의 법인 통장은 법인세 낼 때 까지만 살려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SH 투자 파트너스는 지난 12월 31일자로 해산한 것으로 하고 폐업 신고하세요.”

“알겠습니다.”

다음날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은 1,886억을 전부 승희 누나 계좌로 옮겼다. 승희 누나 계좌에 있던 돈은 남아있는 527억을 합하여 2,413억이나 되었다. 구건호는 승희 누나를 불렀다.

“통장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잘 활용했습니다. 여기지금 2,413억이 들어있습니다.”

“힉! 2,413억!”

승희 누나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다 내 돈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투자자가 100명이 넘습니다. 돈 빼달라고 아우성대는 사람들이 일부 있어서 이번에 전부 돌려주려고 합니다. 이것을 여기 쪽지에 적어준 제 개인 계좌로 전부 보내주세요. 액수가 많아 나누어서 보내야 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은행 직원들이 물어보면 투자자들 돈 반환하는 거라고만 말하고 일체 응답하지 마세요. 앞으로 통장 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승희 누나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그럼, 나 이제부터 월급 안 나오는 건가?”

“당분간은 나갈 겁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건호는 승희 누나가 보내준 돈을 13억은 자기 통장에 남겨놓고 2,400억을 강북증권 계좌를 터서 몽땅 이쪽으로 옮겼다. 강북증권에서 즉각 지점장에게 전화가 왔지만 구건호가 몸이 불편해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이 돈을 굴려서 SH 투자 파트너스의 법인세를 만들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이로서 구건호는 강남증권에 1,600억, 강북 증권에 2,400억이 있어서 4,000억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가 되었다. 39세 1월의 일이었다.

강이사가 방배동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집주인을 만나고온 결과를 보고했다.

“주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어디 회사 사장인데 회사 채무를 금융권에서 개인재산까지 잡은 모양입니다.”

“거기도 물파산업처럼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니까 그렇게 된 모양이네요. 개인재산 담보 들어가기 전에 회사를 공중분해 해버리지 쯧쯧쯧. 이사는 간답니까?”

“지금 너무 날씨가 추우니까 구정 지나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하네요.”

“그렇게 하세요. 우리가 당장 들어가 살 것도 아닌데요.”

“이사비용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럼 구정 지나서 그 사람들 나가면 바로 리모델링 하세요. 건축물 관리대장에 보니까 건물 준공년도가 상당히 오래되었던데요?”

“그래도 워낙 고급으로 지은 저택이라 아직도 짱짱합니다. 제가 낙찰받은 분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하고 주인 양해를 얻어 내부 사진을 찍어가지고 왔습니다.”

강이사가 자기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몽땅 구건호에게 보내주었다.

“회장님 보시기에 아직 괜찮지요?”

“흠...”

“제 생각엔 리모델링보다는 내부 인테리어나 좀 하고 정원 조경이나 좀 하면 될 것 갔습니다."

”흠.“

“내부 인테리어는 우리 빌딩 지에이치 갤러리 인테리어 하던 업자 시키고, 조경은 우리 옥상정원 시공했던 사람 불러다 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사진에 보니까 방이 어둡네요.”

“아닙니다. 밝습니다. 제가 사진을 잘못 찍어서 그렇습니다. 자대가 약간 높아 채광도 끝내줍니다.”

“알겠습니다. 인테리어하고 조경은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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