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8
지분 양도 공시 (2)
(488)
구건호는 디욘 코리아 공장을 나왔다.
디욘 코리아를 150미터 정도 빠져 나왔을 때 구건호는 엄찬호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구건호는 잠시 내려서 디욘 코리아 공장을 쳐다보며 감개가 무량한 듯 쳐다보았다.
[이기려면 버려라.]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옆에 있던 엄찬호가 물었다.
“회장님, 이제 다시는 여기 안 오는 거지요?”
“그렇다.”
공장 건물 너머로 흰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정밀을 거쳐 지에이치 모빌로 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갑자기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었다.
“아산만 방조제가 있는 횟집 촌으로 가자.”
“옛? 어디로요?”
“너, 조개탕이라도 사주마.”
“지에이치 모빌 안 들리세요?”
“거긴 다음에 가자. 오늘은 이상하게 생선회가 먹고 싶다."
구건호는 횟집에서 조개탕과 생선회를 시켰다. 구건호는 소주를 반병이나 마셨다.
“찬호야, 너는 운전하니까 콜라 마셔라.”
“알겠습니다. 저는 멍게 좋아하니까 멍게 한 접시만 더 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구건호는 서울로 오는 도중 스마트폰으로 팍스넷에 들어가 디코의 현재 주가를 보았다.
“흠, 상한가가 무너지지는 않았군.”
구건호는 소주를 마셨기 때문에 이내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차가 정지하자 구건호가 잠이 깨었다. 차 안에 있던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A전자 그룹의 박사장이었다.
“디욘 코리아는 완전히 손 떼셨더군요. 지분 양도공시를 보았습니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조금 서운하신 감도 있겠네요.”
“그러긴 합니다.”
"이제 디욘 코리아에서 회수한 투자이익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 말에 구건호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투자 이익금을 뭘 하든 그건 박사장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구건호가 생각하기에 A전자그룹의 박사장이나 W케미컬 사장들은 모두 CEO들이지 구건호처럼 오너는 아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잘못 건드리면 지에이치 모빌의 매출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었다.
구건호가 잠시 침묵을 하자 박사장이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그건 내가 물어볼 성질이 아니겠지요. 다른 기업을 M&A하던 사내 유보를 시키던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일 한번 만나시겠습니까? 할 말도 있고요.”
“예, 좋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1시에 남산도서관 앞에서 만나시죠.
“알겠습니다.”
박사장은 만나면 언제나 구건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제의하곤 했던 사람이었다. 사실 H그룹의 사장이나 W케미컬 회장이나 사장을 만난 것도 모두 A전자그룹의 박사장을 통해서 였다. 확실히 박사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의 마당발이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구건혼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주식시장이 안 끝났겠군.”
구건호는 지에이치 빌딩으로 향했다. 지에이치 빌딩에 도착하여 비서 오연수가 가져온 중국 용정차를 마시고 있는데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오늘 장이 끝났습니다. 200만주 던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러다가 내일도 상한가 치면 배가 좀 아플 것 같습니다.”
“주식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릎 아래의 다리와 어깨 위의 목 부분은 다른 사람이 먹게 놔두는 게 좋습니다.”
“그러긴 합니다만.”
내일 오전장에 나머지 모두 정리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을 깨었다.
“여기는 높은 아파트인데 어디서 새소리가 들리지?”
새소리는 환청으로 들렸던 것 같았다. 일어나니 새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하였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주식시세를 보았다.
“오늘은 주식 시장 전체가 마이너스 파란불이네.”
오늘 장은 좋지 않았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다우지수 하락으로 한국 주식시장도 파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디욘 코리아는 재벌회사 인수란 호재로 빨갛게 상승은 하고 있지만 역시 시장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탄력은 없어보였다.
[어제 던진 평단가만 유지해도 좋다.]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컴퓨터를 껐다.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지금 한창 모니터 앞에 머리를 박고 있을 텐데 내가 전화하면 오히려 방해되겠지. 다 팔고 나면 손사장이 전화를 해 주겠지.”
구건호는 10시 30분경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박사장을 만나기 위해 남산 도서관으로 향했다.
구건호가 남산도서관 주차장에 당도하니 차들이 별로 없었다. 오늘 날씨가 유난히 추어서인지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학생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신형 제너시스 한 대가 와서 구건호가 박사장이 타고 온 차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제 차로 오시죠. 방금 도착한 신형 제너시스입니다.”
구건호가 벤트리 승용차에 내려서 제너시스로 갔다. 운전대 유리가 조금 내려지면서 박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시죠.”
구건호가 문을 열고 차안을 보니 오늘은 운전기사가 없이 박사장이 직접 차를 몰고 왔다.
“오늘은 직접 운전대를 잡으셨네요.”
구건호가 차에 들어와 앉자 박사장이 뜨듯한 쌍화탕을 한 병 꺼냈다.
“바깥바람이 차지요? 이거 뜨듯하니 하나 드세요.”
박사장은 손수 병뚜껑을 따서 쌍화탕을 구건호에게 주었다. 구건호가 쌍화탕을 마셨다.
박사장이 말했다.
“이렇게 단 둘이 차 안에 앉아있으니 대화하기는 좋네요.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고요.”
“뭐,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될 중요 이야기라도 있습니까?”
“하하, 있지요.”
구건호가 쌍화탕을 다 마시는걸 보고 박사장이 다시 말했다.
“구회장님이 이진우 대표님을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와 드려야지요. 제가 신세도 많이 진 분인데.”
“지에이치 모빌은 매출이 많이 늘었지요?”
“예, 덕분에 금년도엔 1,874억 매출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진우 대표님이 지에이치 모빌을 위해서 뒤에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직접 H그룹 회장님께도 말씀을 하셨고 또 사모님도 A전자의 사장한테도 당부의 말씀도 해주곤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2천억 매출은 못되었군요. 자동차나 전자제품 부품 제조사들의 이익률이 원래 박합니다. 세후 이익률 6% 넘으면 잘한 겁니다.”
“저희는 이번에 7% 했습니다. 세후 순이익 133억입니다.”
“흠, 그러면 배당을 하실 겁니까? 부채상환을 하실 겁니까?”
“배당해야 되겠지요. 사실 지에이치 모빌은 그동안 사세 확장시키고 부채비율이 높아 부채 상환을 하다 보니 3년간 한 번도 배당을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배당을 하려고 합니다.”
“그럼 사내 유보금 빼놓고 100억은 하겠네요.”
“그럴 예정입니다.”
“지분 15%을 가지고 있는 이범식씨는 15억을 배당 받아가겠네요.”
“그러겠지요.”
“15억에서 또 배당소득세 빠져나가겠네요.”
“그러겠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박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오해 없이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진우 대표를 크게 한번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사실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고 대권주자가 되면 돈이 엄청 들어갑니다. 전국을 카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적극적인 활동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흠.”
“남들은 재벌가의 사위라 이진우 대표께서 돈이 많은 줄 알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A전자그룹의 회장님은 고집이 보통 아니십니다. 정치를 엄청 싫어합니다.”
“그 이야기는 한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크게 한번 지원을 부탁합니다. 이번 디욘 코리아 지분 판돈을 배당하십시오.”
“뭐라고요?”
“디욘 코리아를 판돈 말입니다. 배당하십시오.”
“기업은 투자 이익금이 들어오면 배당도 좋지만 사내 유보를 해 두었다가 기업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또 부채도 갚고 필요하면 M&A자금으로도 활용해야 합니다. 돈 들어왔다고 쉽게 배당해 버리면 되겠습니까?”
“그 말은 구사장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선의 기회는 누구한테나 오는 것은 아니고 기회도 딱 한번 뿐입니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W케미컬에 디욘 코리아를 인수하게 한 것이 누구의 작품인줄 아십니까?”
“어렴풋이는 알고 있으니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W케미컬에서 인수한 대금이 무려 2,720억입니다. 물론 주식 보유기간이 짧으니 양도소득세도 많이 내야 되겠지요. 양도 소득세를 남겨 놓더라도 2,000억 정도는 배당할 수 있을 겁니다.”
구건호가 약간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배당 문제는 내가 결정하지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배당문제는 지에이치 모빌의 이사회에서 결정합니다. 대주주인 구회장님이 외롭게 결정해야 될 대상이지 외부에서 꺼어드는 건 분명히 경영권에 대한 간섭입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박사장이 구건호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구회장님. 도와주십시오.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동안 이진우 대표님과 박사장님이 저를 도와주신건 잘 압니다. 또 마땅히 나도 그 값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액수가 너무 많습니다.”
“2,000억 배당을 하면 이범식씨가 300억을 배당 받습니다. 정치자금은 나도 얼마가 들어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이면 많은 윤활유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구건호는 의자 뒤에 목을 걸치고 한참동안 생각을 하였다.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구건호가 눈을 감고 생각을 해 보았다.
[디욘 코리아 지분 판돈 2,720억원하고 이번 이익금을 합치면 2,853억.... 지분 판돈이 특별이익으로 회계 처리되면 법인세를 22% 맞겠는데.... 그러면 양도 소득세와 법인세를 합치면 세금이 많이 나오겠는데....]
[2,000억을 배당한다면 이진우 대표의 아버지인 이범씩씨가 300억을 가져가고 82%의 지분을 가진 나는 1,640억원의 배당을 받아가네. 송사장도 3%의 지분이 있으니까 60억을 받아가게 생겼는데? 송사장은 영업활동으로 번 돈이 아닌데 60억을 달라고 주장할까? 법적으로는 그렇게 되겠지.]
[맞아, 대선 후보자가 아무 때나 누구나 되는 건 아니지. 정당의 대표 자리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이번 기회에 정말 한번 크게 밀어줘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구건호가 박사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2천억을 배당한다면 이범식씨에게 돌아가는 것이 300억입니다. 그렇다면 박사장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겠습니까?”
구건호의 이 말에 박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대한민국의 대선주자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강력한 정당에서 미는 대선후보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선여부를 떠나서 후보로 있는 동안에도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의 입을 드리죠.”
구건호가 크게 웃으며 박사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배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