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6
구건호 회장 취임 (2)
(486)
구건호를 찾아왔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 일행이 나가자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내가 디욘 코리아의 애덤 캐슬러에게 전화를 걸 테니 통역하세요.”
“알겠습니다.”
“애덤 캐슬러? 사장 승진을 축하합니다. 우리도 당신이 사장이 되어 기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하 여러 사람들이 도와준 덕입니다.”
“나의 지분 양도에 대해서는 본사에서 뭐라고 합니까?”
“지분 양도는 계약서에도 제한하는 것이 없어서 출자사인 지에이치 모빌의 자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W그룹이 케미컬 회사를 가지고 있어 그게 좀 걸린다고 했습니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바 있습니다.”
“W그룹에서 원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자기들 공급망과 디욘의 브랜드입니다. 자기들 공급망을 이용해 디욘이라는 제품을 판매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본사에서는 이후 진행사항에 대하여 알려달라고 하였으며 상장사이기 때문에 공시 내용에 대하여도 앞으로는 꼭 보고를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내보내고 바로 디욘 코리아의 상임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예, 회장님.”
“앞으로 공시 내용은 사전에 꼭 애덤 캐슬러에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애덤 캐슬러가 사장이 되었으니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한다고 공시하세요. 상장사니까 절차는 밟아야지요. 새로운 사장은 주총 승인이 필요하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를 회장님께 협의하려든 참이었습니다. 공시하겠습니다.”
“임시 주주총회 날짜는 알아서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애덤 캐슬러와의 통화가 끝나자 강이사를 불렀다.
“지난번에 보았다는 방배동 단독주택 있지요? 얼마라고 했지요?”
“감정평가액 90억입니다. 한번 유찰되어 72억입니다.”
“서울에서 고급 단독주택은 매물이 귀합니다. 위임장 써드릴 테니 응찰하세요. 내 개인이름으로요.”
“사장님 개인이름으로요?”
“지역이 좋으니까 내가 들어가 살아도 좋고 나중에 고급 빌라를 지어도 몇 푼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은 드네요.”
“알겠습니다. 응찰해 보겠습니다.”
“경쟁자가 있을지 모르니 80억 정도로 응찰해 보세요. 내가 응찰비용은 강이사님 개인 계좌로 보내드리죠. 응찰 전에 현지답사는 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현지답사는 이따 점심 먹고 바로 가보겠습니다. 회장님 인감증명서를 두통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회장취임 통보 공문이 나가서 그런지 여러 군데서 전화가 왔다.
지에이치 정밀의 박종석 사장도 내용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고 중국의 김민혁 사장과 문재식 사장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회장님? 문재식이야. 축하한다.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내가 중방 애들한테 구사장이 지에이치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했다는 내용을 정식으로 통보했어. 안당시 장도기차 유한공사의 옌룬셩 사장이 나보고 축하 난초 화분을 보내주라고 돈까지 보내주었네.”
“난초는 무슨 난초. 돌려 보내줘라.”
“성의인데 그러면 되나? 이런 거 안 받으면 중국 사람들 오해해.”
“그런가? 그럼 보냈다고 하고 문사장 점심값이나 해라.”
“하여튼 내가 알아서 할게.”
구건호가 점심을 먹고 오니 사장실 안에 난 화분이 10개나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구건호는 강이사를 찾았으나 자리에 없어 정대리를 찾았다.
“정대리! 이게 다 뭡니까?”
“회장님 취임 축하 화분입니다.”
“참, 별짓들 다 하네.”
구건호가 난초 화분에 달린 리본을 보니까 주로 협력사 대표이사들이 보낸 것이 많았고 주거래 은행 지점장이 보낸 난초도 있었다. 안창회계법인 대표 회계사가 보낸 것도 있었고, 심지어는 중국의 리스캉 국장이 보낸 것도 있었다.
“어? 리스캉이 어떻게 알고 보냈지?”
구건호가 리스캉 국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리국장? 나야, 구건호. 웬 난초 화분을 보냈네.”
“회장 취임했다며? 축하하네. 오전에 심운학 감독에게 이야기 들었어.”
“그랬나?”
“산하에 있는 회사가 8개나 된다고 들었어. 대단하네. 존경스럽다.”
“다 작은 회사들이야. 말이 8개지 똑똑한 회사 하나만도 못해.”
“나는 구회장이 겸손한 것도 참 맘에 들어. 그래서 내가 구회장을 좋아하잖아?”
“아무튼 화분 보내준 것 고맙다.”
“그리고 영화 <몽환앵화>는 지금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환러스지 공사 사장에게 들었어. 이것도 축하해.”
“리국장이 도와준 덕택이야.”
“아냐. 영화 내용이 좋아서 그렇지 내가 도와준 것은 없어. 지난주 천진에서 열린 당 간부회의에서 내가 영화 내용을 좀 홍보했더니 자기들 지역에서 단체관람을 시키겠다고 이야기는 하더군. 아마 상영일수도 좀 늘려줄 거야.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은 될 것 같은데?”
“그래? 이번 영화로 돈 좀 벌면 술 한 잔 사지.”
“하하, 고맙다.“
오후 3시쯤 밖에 나가있는 강이사로부터 카톡이 왔다. 방배동에 경매 나온 단독주택을 여러장 사진찍어 보내주었다. 문자도 하나 왔다.
“경매물건 외관 사진 찍은 것을 보냅니다. 실내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사결과 300평은 도로에 편입된 대지를 포함한 것이고 실제는 256평입니다. 국민은행과 수출입은행에 80억이 근저당이 되어있고 세입자가 있는지는 문이 굳게 잠겨있어 조사 못했습니다. 부동산의 이야기로는 귀한 매물이란 말들은 하고 있습니다.”
구건호가 수고했다는 답신을 보내 주었다.
구건호가 경제신문사 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구건호의 전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회장님, 디욘 코리아의 공시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장이 바뀐다고요? 혹시 지분 매각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까?”
“지분 매각은 이야기만 오고갔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왜 갑자기 바뀌나요?”
“아, 그것은 합자 규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2년 동안 미국과 번갈아 사장을 합니다. 이번에 내가 임기 만료라 바뀐 겁니다.”
“이번에 회장 취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감원 전자공시 사이트에 지에이치 모빌과 지에이치 개발이 있던데 여기도 그럼 대표이사 자리를 다 내놓으신 겁니까?”
“유능한 CEO들이 있으니까요.”
“지에이치 산하의 회사는 모두 몇 개입니까?”
“예? 그런 것 까지 다 이야기해야 합니까?”
“뭐 말씀 안하셔도 되지만 비밀도 아니잖습니까?”
“국내에 몇 개 더 있고 중국에 두 개가 있습니다. 모두 작은 회사들입니다.”
“혹시 상호를 알 수 있을 가요? 바쁘신데 미안합니다.”
“지에이치 정밀과 지에이치 미디어, 로지스틱스입니다. 중국은 소주 기차배건 유한공사와 안당 지에이치 객운 유한공사입니다.”
“사업장이 많으시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디욘 코리아는 매출액이 빨리 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지분매각을 하려고 했었습니까?”
“정치 테마주가 되어 세상의 조명을 받는 걸 원치 않습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오늘 전화통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12월 15일이 되었다.
“오늘은 W케미컬에서 지분 인수대금을 보내주는 날인데? 보내주려나? 보내 주겠지.”
구건호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디욘 코리아의 주식 시세만 보았다. 오늘도 소폭 하락이었다.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이 전화를 했다.
“오늘도 조금 흘러내리네요.”
“예, 나도 지금 보고 있는데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사장님이 회장님 되셨다고 박승희씨가 그러던데요? 박승희씨가 자기 친구한테 들었답니다.”
“그래요?”
구건호는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 있는 건숙이 누나가 승희 누나에게 이야기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장님, 오늘 회장님 기사가 경제 신문에 크게 나왔는데요? 인터넷에도 나오고요? 보셨습니까?”
“아니오. 그런 게 있었나요?”
구건호가 전화를 끊고 경제신문에 난 자기 기사를 찾아보았다.
[요즘 정치 테마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디욘 코리아의 구건호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사장의 경질은 합자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구건호 회장은 지에이치 모빌과 지에이치 개발, 지에이치 정밀, 지에이치 미디어, 지에이치 로지스틱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에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인 소주 기차배건 유한공사와 고속버스 운송사업체인 안당 객운 유한공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에이치 산하의 회사들은 이번에 구건호 사장이 회장에 취임함에 따라서 그룹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구건호 회장이 최근에 디욘 코리아의 지분 매각을 검토한 것은 정치 테마주가 되어 세간의 이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구건호는 기사를 보고 입맛을 쩍 다셨다.
“젠장, 내 사진도 어디서 구했는지 대문짝만하게 나왔네. 앞으로 이거 쪽팔려서 어떻게 하지? 경제신문 기자 전화 왔을 때 확 끊어 버릴 걸 잘못했네.”
구건호가 인터넷을 보았다. 네이버와 다음의 포털사이트에도 구건호의 기사가 떴다. 기사에는 꼬리말까지 붙어 있었다.
“이 회사는 사원 모집 안하나?”
“보나마나 금수저겠지.”
“회장이 38살? 게임만 하러 다니는 백수인 나와 동갑이네. 역시 사람은 부모 잘 만나야 돼.”
“저 회사 나 지나가다가 봤어. 일은 빡세지만 월급은 잘 준다고 하던데?”
“어이, 구건호 회장, 돈 벌었으면 기부 안 해?”
“정치 테마주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그려, 정치는 멀리 해야 돼.”
“야, 기레기야,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구건호는 꼬리말을 보고 픽 웃었다.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와, 구건호 회장, 이제 보니까 어마무시한 사람이네. 회사가 8개나 있는 줄 몰랐네. 완전히 그룹회장님이네.”
“그룹 회장 같은 소리 하네. 구멍가게 몇 개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룹 회장인가? 변호사니까 잘 알겠네. 한국에서 공시 대상인 기업집단은 자산 10조원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알잖아?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대기업 집단은 매년 5월 1일 지정하잖아?”
“그건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훌륭해. 난 구건호 회장이 자랑스러워.”
“기레기들이 잘못알고 대충 쓴 거야. 믿지 마.”
“아냐, 훌륭해. 내가 왕지엔 교수와 시애틀에 있는 워싱톤 대학 친구한테도 이야기 할 거야. 우린 참 자랑스런 친구를 두었다고 말이야.”
“그러지 마라. 쑥스럽다.”
동창인 조원철이 마침 차장에 승진하여 너무 기쁜 나머지 연구소에 근무하는 동창 황병철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야, 이번에 나 겨우 차장 됐다. 이제 쪼깐 체면이 선다. 넌 어떻게, 책임 연구원 됐냐?”
“안됐어. 책임 연구원이고 차장이고 부질없는 것 같다. 오늘 아침 경제신문 봐라. 구건호 기사 크게 떴다.”
“구건호가 왜? 걔는 잘 나가잖아?”
“잘 나가는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재벌 회장이라도 되는 것 같아. 한번 봐라.”
경제신문을 본 조원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참, 경비원 아들이 출세했네. 지잡대나 다니면서 노량진에서 컵밥이나 먹던 놈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돈 버는 것 하고 공부 잘하는 것 하고는 다른 모양이야. 휴.”
조원철은 오늘따라 자기가 무척 한심해 보였다.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자기가 제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없이 자기가 초라해 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