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2
인수설 찌라시 (1)
(482)
구건호가 담담한 어조로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먼저 김전무님은 디욘 코리아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기여를 많이 하셨습니다. 부사장님으로 승격합니다.“
“한 일도 별로 없는데.... 감사합니다.”
김동찬 전무는 구건호가 승진에 대한 암시를 주었지만 임원회의에서 구건호가 공식적 발언을 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은 현장관리에 고생을 많이 하신 유희열 부장을 이사로 승격합니다. 아울러 공장장 겸직입니다.”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희열 부장도 상기된 표정으로 허리굽혀 인사를 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김전무나 유부장의 승진은 예견했던 일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상임감사님과 윤상무님, 그리고 광동성에 나가있는 이형우 전무님은 모두 유임입니다. 이 분들은 내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윤상무님께서는 12월 14일 디욘 본사에서 사장 명단이 팩스로 오면 임원인사는 그때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장 해촉이며 이사회 회장이 되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연구소장님은 촉탁 2년을 해 드렸는데 금년 말로 해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연구소장님은 회사에 공도 많고 자문을 받을 것도 많지만 회사 규정상 어쩔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승진을 하게 되면 권한이 많아지고 급여도 올라갑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책임도 따릅니다. 승진하시는 분에게는 축하를 드립니다. 아쉽게도 이번에 빠지신 분들은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시고 내년엔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대리에서 부장까지 중간관리자 승진 인사는 애덤 캐슬러 부사장님과 나머지 임원님들께서 상의해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울러 금주 안으로 W그룹 기획실에서 자산실사를 하러 나올 것입니다.”
외부 감사기관도 아닌 W그룹이라고 하니까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W그룹과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것은 실사가 끝난 후 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상임감사님은 금년도 연간 실적보고는 제가 15일부로 여기 안 나오니까 이메일로 나온 자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금년도 영업이익이 전년도처럼 20%이상 나온다면 연말 종업원 성과급 문제를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유희열 이사는 내려가시면 연구소장님을 내가 찾는다고 말씀 전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임원들은 다이어리를 접고 모두 나갔다. 임원들은 나가면서 서로 말들이 많아졌다.
“느닷없이 W그룹에서 왜 자산 실사가 나오지?”
“그러게 말이야. 뭐 큰 납품거리라도 있나?”
“글쎄. 납품처에서 거래를 새로 트면 재무제표는 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실사까지는 없는데 이상하군.”
“구사장님이 연구소장님을 찾는걸 보니 이제 집에 가시라고 말할 모양인데?”
“그러겠지. 사장노릇도 그게 힘들 거야. 나가라는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저러나 김전무님하고 유부장은 승진했으니까 오늘 저녁 그냥 퇴근하시면 안 됩니다.”
한참 후 연구소장이 초췌한 모습으로 올라왔다. 벌써 소문을 듣고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찾으셨습니까?”
60대 초반의 연구소장이 30대 후반의 사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여기 대추차 맛이 괜찮아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구건호는 비서 이선혜를 불러 대추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구건호가 연구소장을 가까이서 보니까 연구소장이 많이 늙어 보이긴 하였다. 이마의 주름과 목주름도 심해 보였다.
“소장님은 자녀분들 다 결혼을 시키셨지요?”
“하나 치우고 하나 남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구건호가 한숨을 쉬자 연구소장이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제 문제로 너무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실상 촉탁 2년이면 구사장님께서 많이 봐주셨습니다. 유부장이 이사로 승진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고맙습니다. 이번에 유부장은 이사 승진이 확정되었습니다. 연구소에 임원이 탄생하는데 촉탁 연구소장님을 계속 모시기가 난감하여 저희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사장님께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떠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촉탁은 퇴직금이 원래 없지만 제가 전별금조로 윤상무에게 이야기해서 2년치 퇴직금을 뽑아보라고 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배려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구건호의 스마트폰에서 벨이 울리자 연구소장이 황급히 일어났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십시오.”
구건호가 전화도 받지 않고 연구소장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해주었다.
구건호가 전화를 받았다. W케미컬 사장의 전화였다.
“아휴, 전화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실사단은 내일 오전 10시까지 보내겠습니다.”
“몇 명이 옵니까?”
“2명입니다. 그룹 기획실 직원들입니다. 현금자산은 통장 잔액 확인하고 고정 자산은 등기부등본 같은 것을 준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해외공장은 토지사용 승낙서나 계약서 같은 것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재고자산은 공장 내 야적된 것을 확인할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식 양도양수 계약 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빠진 게 있어요? 뭐가요?”
“여기 종업원들은 그대로 인수 조건이며 임원들도 한사람도 희생 없이 그대로 인수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양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하, 그 점은 염려마세요. 거기 있는 종업원들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확약서를 하나 보내주시겠습니까?”
“확약서? 그러지요. 내가 이메일로 보내드리죠. 명함에 나와 있는 이메일 주소로 보내면 되죠?”
“그 주소로 보내면 됩니다. 실사 들어오기 전에 오늘 중으로 보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남은 대추차를 마시고 있는데 W케미컬 사장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실사단이 가면 회사 조직도하고 종업원 명단을 요구할 겁니다. 종업원 명단은 지금 있는 그대로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임원서부터 청소원 잡급직까지 모두 포함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실사단이 오면 여기 사장은 외국인이니까 상임감사를 찾으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애덤 캐슬러를 따로 불렀다.
“지금 디욘 코리아가 정치 테마주가 되어 또 한 번 출렁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내가 정치와 관련이 있는 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 디욘 코리아에서는 손을 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옛? 뭐라고요?”
“내 지분을 제3자에게 양도해야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주목을 받는 건 원치 않습니다.”
“오, 마이 갓!”
“지분 양도는 합자 계약부터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디욘 본사에 알려도 됩니다. 단 내 지분을 양도 받는 기업은 나보다도 더 재력과 인품이 있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회사가 될 겁니다.”
“그럼 주당 얼마에 양도하셨습니까?”
“협상 중에 있습니다.”
“양도가액은 나도 흥미가 있습니다. 일단은 본사에 한국측 합자파트너가 정치적 이유로 제3자 매각계획이라는 것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구건호는 이번엔 상임감사를 불렀다. 상임감사에게는 지분 양도에 대한 언질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찾으셨습니까?”
“거기 앉아보세요.”
구건호는 상임감사에게 방금 애덤 캐슬러에게 말한 내용을 이야기 했다. 상임감사도 놀라기는 했지만 임원회의 때 W그룹 실사단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예견은 했는데 사실인 것 같군요. 하긴 사장님 성격에 정치에 말리는 것은 원하지 않겠지요.”
“이렇게 되어 여기 임직원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런데 만일 W그룹이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번져 나가면 주가가 또 한 번 출렁이겠네요.”
“그렇습니다. 한데 조심해야합니다. 인수설이 나오면 계속 올라가지만 막판에 인수가 결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주가는 곤두박질하게 됩니다. 피해를 입는 개미 투자자들이 나오지요.”
“그래서 저는 주식투자를 안합니다. 상대의 패를 알 수 없는 게 주식 아닙니까? 디욘 코리아가 정치주에 편입되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 친구들한테 전화가 많이 옵니다. 저는 주식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그래서 무주식 상팔자 아닙니까?”
구건호와 상임감사가 동시에 웃었다.
웃고 나서 구건호가 말했다.
“W그룹에서 조금 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실사단은 내일 10시쯤 여기로 올 겁니다. 2명이 온다니까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자료 요구하면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자산 실사니까 자산 현황에 대하여 제시하면 되겠네요. 유동자산과 고정자산 현황을 모두 설명해 주지요.”
“조직도 하고 종업원 명단도 제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직원들은 임원에서부터 말단 잡급직에 이르기까지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예 협약서를 보내달라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제3자 매각은 불발로 끝날 수 있다고 말해 두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실 저도 그 점이 걱정되었습니다. 양수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상임감사는 쳐내고 싶었을 겁니다.”
“제가 협약서를 보내오면 사본을 드리죠. 감사님을 그대로 두고 대신 자주 불러 현황파악은 하려고 하겠지요.”
“그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상임감사님을 더 잘 대우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사장님 덕분에 이렇게 또 2년이나 연장되어 근무하는데 고마울 따름입니다.”
상임감사가 나가고 나자 구건호는 소파에 기대어 길게 누었다.
“이제 대충 교통정리가 된 건가?”
구건호는 기지개를 켜고 다리를 탁자 밑으로 쭉 뻗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 전화였다.
“오늘 디욘 코리아 주가 보셨습니까?”
“아니오. 오늘은 내가 임원회의가 있어서 못 봤습니다.”
“오늘도 누군가가 무섭게 담는데요?”
“그래요?”
“사장님이 보내주신 총알이 다 떨어져 갑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내일 입금해 드리죠.”
“지금 많이 올라온 2만 원대가 넘는데 그렇게 담는 강심장도 있네요.”
“올려놓고 패대기 칠 수도 있겠지요.”
다음날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했다. 구건호는 승희 누나 통장에 200억을 보내고 승희 누나를 불러 200억을 다시 SH 투자 파트너스 법인통장에 보내도록 했다. 구건호가 손근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알은 큰 것 두 장 보냈습니다.”
“오늘은 너무 올랐다고 생각되는지 좀 눌러주는 것 같네요. 제가 지금 다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고생 좀 하시겠네요.”
“아닙니다. 제 일입니다.”
구건호는 손근수 사장을 잘 앉혀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100억 200억이지 그 많은 돈을 주식 사고팔려면 시간도 걸리고 눈도 보통 아픈 게 아니지. 신경을 많이 써 머리도 아프고 어깨도 걸리고 그래.”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의 김민화 경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이사요?”
“어마! 사장님. 금년 연간 실적보고는 다시 수정하느라고 이틀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흠, 그건 그렇게 하시고 내가 전화한건 다른 것 때문입니다. 혹시 안 쓰는 법인통장 있습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5개 통장 전부 쓰는 것들인데요?”
“그럼 오늘 하나 더 만드시고 통장 사본 나한테 이메일로 보내줘요.”
“알겠습니다.”
“이체한도 최대로 늘려잡고 OTP단말기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디욘 코리아 지분 양도대금 2,720억 원은 별도 관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