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81화 (481/501)

# 481

빅딜 (3)

(481)

구건호는 W그룹 회장이 전자계산기를 앞에 높고 둔한 손놀림을 하는 것이 우스웠다. 꼭 한 마리의 곰이 먹이를 앞에 높고 손놀림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남 시키지 않고 본인이 돋보기 걸치고 열심히 계산기 두드리네.]

구건호는 언젠가 W그룹 회장의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는 엄밀히 말해서 재벌 2세가 아니란 것이었다. 부친의 1조원대의 기업을 인계 받아서 10조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니 자기는 재벌 1세란 것이었다. 이 말은 언젠가 이지노팩 회장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구건호는 이 기사를 보고 냉소를 날린 적이 있었다.

[뭐? 1조원짜리 기업을 인수받아 10조원으로 키웠으니 자기는 재벌 2세가 아닌 1세라고? 창업가 정신에 불타는 프론티어라고? 개짓는 소리 하고 앉았네. 나처럼 눈물 젓은 빵을 먹어보았나? 화장실로 없고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생활을 해보았나?]

[이 양반아, 없는 사람이 1억 만들기 어렵고, 1억 있는 사람이 10억 만들기는 어려워도 1조원 있는 사람이 10조원 만들기는 어렵지 않네. 가만히 놔두어도 회사는 경제발전에 따라 커가게 되어있어. CEO들이 알아서 벌어다 주는데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했던 구건호지만 막상 만나본 회장은 그래도 열심히 계산기는 두드려볼 줄 아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당 3만원이면 하겠소? 내가 보기엔 미래가치나 영업권, 경영권을 합친다고 해도 3만원이 넘어간다면 우리도 별 재미없을 듯싶소. 안 그래요? 케미컬사장? 그리고 박사장?”

“맞습니다. 탁월하신 안목입니다.”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맞습니다를 외쳤다. 지당대감도 이런 지당대감이 따로 없었다. 구건호가 말했다.

“3만원이면 2,550억입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미래가치와 영업권, 경영권 등을 너무 낮게 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젊은 양반이 너무 욕심이 많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회장이 케미컬 사장에게 말했다.

“우리가 디욘 코리아를 인수하면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도움은 됩니다. 회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디욘의 컴파운드 노하우는 세계적입니다. 만일 W케미컬이 이 회사를 갖게 된다면 분명 우리 회사와 시너지 효과는 있을 겁니다.”

“흠.”

“또한 우리에게는 수많은 대리점이 있습니다. 우리 영업망을 통하여 디욘 코리아 제품을 생산 판매한다면 단숨에 매출증대는 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당 35,000원은 이자율을 계산하면 그리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즉. 주당 30,000원이면 인수를 고려할 수 있으나 주당 35,000원이면 채산성이 없다고 보여 집니다.”

조용히 있던 A전자그룹의 박사장도 한마디 했다.

“구사장, 디욘 코리아는 W캐미컬로 넘어간다면 분명히 영업과 사세 확장에 유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 디욘의 컴파운드 기술을 한국화 하는데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니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금 가격을 낮추어 보세요.”

“글쎄요.”

구건호도 ‘내가 너무 심하게 불렀나’하는 생각이 들어 자기도 계산기를 가지고 여러 방면으로 계산을 하여 보았다. 회장이 구건호가 계산하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확 까놓고 말하지요. 나도 화끈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요. 주당 32,000원 합시다. 지분 인수 총액 2,720억이요. 어떴소?”

A전자 박사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도 많이 양보하신 것 같습니다.”

케미컬 사장도 한마디 하였다.

“아쉬운 감은 있지만 32,000원이면 인수할 만 합니다.”

구건호가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이 웃으면서 구건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구건호가 황송하다는 듯이 두 손으로 악수를 받았다.

“젊은 분이 예의도 바른 것 같소. 지에이치 모빌은 지금 어디에 있소?

“천안 직산에 있습니다.”

구건호가 이렇게 말하면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회장에게 주었다.

“지에이치 모빌이 출자사면 지분 매각대금은 모두 지에이치 모빌로 흘러 들어가겠군. 지에이치 모빌은 구사장 지분이 몇 프로나 되요?“

“제 지분은 82%입니다.”

“나머지는 누가 갖고 있소?”

“송장환이라는 CEO사장이 3%를 갖고 있고 다른 개인이 15%를 갖고 있습니다.”

“15%를 갖고 있다는 사람이 기관이 아니고 개인이요?”

“그렇습니다.”

W그룹 회장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요.”

구건호는 회장의 미소가 소름이 끼쳤다.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영 기분이 나빴다. 회장이 15%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범식씨의 존재를 꼭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케미컬 사장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실무적인 것은 나가서 의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구건호가 허리 굽혀 회장에게 인사하고 나가는데 회장이 한마디 했다.

“구건호 사장이라고 했지요? 내가 구사장의 이름을 오래 기억해 두지요.”

“감사합니다.”

구건호와 W케미컬 사장, 그리고 A전자그룹 박사장은 회장실을 나와 처음 만났던 작은 방으로 왔다. 그 방에서 구건호는 주식 양도양수 계약서를 작성했다.

W케미컬 사장이 말했다.

“오늘이 12월 6일이니까 대금 지급 날짜는 12월 15일로 하겠습니다. 2,720억이면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우리도 파이넨스를 일으켜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도 아산에 내려가서 임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임원회의 하시고 이야기가 잘 되면 연락 주십시오. 우리가 자산 실사단을 파견해야 합니다. 재무제표상 나와 있는 자산과 맞는지 확인 절차는 해야 합니다.”

“그래야겠지요.”

“자산 조사결과 구사장님이 제출한 자료와 심하게 차이가 나면 계약은 무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회사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맥이 풀리고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내일 디욘 코리아 임원회의를 소집하려고 했더니 몸살 기운이 있어서 가기 힘들 것 같네.”

구건호는 상임 감사에게 전화를 했다. 회의 일정을 모레로 잡았다.

“모레 오전 10시에 임원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임원들 소집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감기 몸살 약을 먹고 다음날 오전 10시 정도나 되어서 늦게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했다.

뜨듯한 쌍화탕을 한 병 마시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SH 투자 파트너스의 손근수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손근수입니다. 오늘 디욘 코리아 주식 보셨습니까?”

“아니오, 안 봤습니다.”

“2만 원대에서 놀던 주식이 갑자기 5%나 오르면서 거래량이 늘어나네요. 누군가 매집을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매집을요?”

구건호는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으며 W케미컬 가장과 A전자그룹의 박사장이 생각났다.

[주식 양도 공시하면 W그룹으로 주인이 바뀌게 되기 때문에 주식이 올라간다! 내가 왜 그걸 생각 못했지? W그룹 측과 A전자 박사장 측은 은밀히 물밑 매수를 할 수도 있다.]

이름도 없는 지에이치 모빌이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가 W그룹으로 인수되면 주식은 호재였다. W그룹의 자금력과 인력, 기술력, 판매력으로 회사가 비약적으로 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어떤 회사를 삼성그룹이 산다는 소문이 있으면 그 회사의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다.

손근수 사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회사에 무슨 호재 있습니까?”

“글쎄요. 그럼 우리도 좀 사지요. 내가 오늘 100억만 보내지요.”

구건호는 승희 누나 계좌로 들어왔던 돈 1,327억 원을 전부 자기계좌로 이체 시켰었다. 구건호는 자기계좌의 돈 중에서 100억만 승희 누나 계좌로 다시 보내 SH투자 파트너스로 흘러들어가게 하였다. 구건호는 자기이름으로 돈을 보내면 잘못하면 내부 정보 이용투자가 되기 때문이다. 내부정보 이용투자는 위법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엄청난 과징금을 물어야 할뿐 아니라 심하면 수사당국에 고발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번거롭지만 이 방법을 취해야지 별수 있나.”

시애틀 디욘 본사의 안젤리나 레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디욘 본사에서 해외담당 부사장 자리는 현재 공석중이라 레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오연수가 구건호 대신 전화를 받고 말했다.

“라이먼델 디욘사의 인사위원회가 어제 열렸었답니다. 디욘 코리아의 차기 사장은 애덤 캐슬러로 내정이 되었답니다.”

“크게 환영한다고 그러세요.”

오연수가 뭐라고 하자 저쪽에서 탱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연수가 또 레인과 한참 통화하고 나서 말했다.

“발령일자가 12월 15일이기 때문에 정식 문서는 12월 14일 팩스로 보내겠답니다.”

“알았다고 하세요.”

다음날 구건호는 아침 일찍 직산으로 출발을 했다. 지에이치 모빌에 들려 송사장을 만났다.

“지에이치 모빌이 가지고 있는 디욘 코리아 지분을 팔아야겠습니다.”

송사장은 구건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옛? 디욘 코리아 지분을 팔아요? 왜요? 지금 영업이 해마다 늘고 있잖습니까?”

“정치주가 되어 사람들 주목 받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도 너무 아깝습니다.”

“아깝지 않게 돈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구건호의 이 말에 송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사회 결의록을 하나 만들어 놓으세요. 5일전 날짜로 소급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소급해서 하라는걸 보니 이미 양도양수 계약을 체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수회사는 어디입니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자산 실사 후 돈을 받기로 했으니 아직은 좀 유동적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사회 회의록은 디욘 코리아 출자자산 처분 결의로 하겠습니다.”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씀하시지 마세요. 나는 오늘 10시에 디욘 코리아 임원회의가 있어 지금 출발합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디욘 코리아에 도착하였다. 제복을 입은 임원들이 모두 다이어리를 들고 소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구건호가 맨 앞에 앉은 애덤 캐슬러의 얼굴을 보니 유달리 환해보였다. 애덤 캐슬러는 구건호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윙크를 했다.

[차식, 사장된다고 언질을 받은 모양이군.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네.]

“오늘이 12월 8일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금년 한 해도 다 갑니다.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서 이선혜가 들어와서 대추차를 한잔씩 돌렸다.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저를 포함해 5명입니다. 통역 채명준 대리까지 6명이군요. 이형우 전무는 중국파견으로 이 자리에 없습니다.”

모두 구건호가 말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디욘코리아 사장은 합자 계약에 따라 제가 물러가고 12월 15일부로 디욘 본사에서 임명한 사람이 옵니다. 어제 디욘 본사와 나와 통화를 했는데 사장 명단은 12월 14일 팩스로 보내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애덤 캐슬러 부사장이 사장을 맡는 걸 좋겠다는 의사를 디욘 본사 측에 건의한바 있습니다.”

애덤 캐슬러가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하였다.

“아울러 오늘 사장을 제외한 디욘 코리아의 임원인사를 발표합니다. 오늘 발표만하고 정식 발령일자는 모두 12월 15일자입니다. 임원인사는 저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고 이미 여기계신 몇 분과 사전에 의논했음을 말씀드립니다.”

모두 긴장한 채 구건호의 입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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