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79화 (479/501)

# 479

빅딜 (1)

(479)

12월이지만 볕이 들어 날씨가 참 따듯하다고 느낀 어느 날 정치권은 또 한 번 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민주 공명당의 반대에 있는 당에서 외부의 거물급 인사를 영입한 것이다. 거물급 인사는 대선에 나갈 것임을 은근히 비추면서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러 다녔다.

이진우 대표 진영에서도 맞불을 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진우 진영에서는 아직 침묵을 하고 있었다.

이날 구건호는 또 한 번 운명을 가를만한 충격적 제안을 받는다. A전자 그룹의 기획조정실 박사장의 제안이었다.

구건호는 박사장의 전화가 오자 얼른 받았다.

“구사장님? 나 A전자 그룹의 박사장이요. 올해도 이제 다 가는데 한번 만나 차라도 한잔 하실까요?”

박사장은 언제나 구건호가 생각지도 못한 제의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제의를 할까 궁금도 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지난번처럼 남산 도서관 앞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야트 호텔에서 만날까요? 남산 도서관에서 가까우니까요.”

“거기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라운지 카페 갤러리로 가면 되겠습니까?”

“갤러리 카페 보다는.... 룸을 잡을 테니 룸으로 오세요. 룸을 잡고 나서 문자드리죠.”

“알겠습니다.”

한참 있다가 박사장으로 부터 문자가 왔다. 룸 번호를 알려주는 문자였다. 11시까지 오라고 했으니 지금 슬슬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에게 지시하여 엄찬호에게 차를 대기시키라고 하였다.

구건호가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야트 호텔로 갔다. 구건호는 바로 박사장이 알려준 룸으로 갔다. 룸은 구건호가 올 때를 기다리는지 열려 있었고 룸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구건호가 노크를 두 번 하였다.

“들어오세요.”

구건호가 안에 들어갔더니 박사장이 혼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일찍 오신 모양이네요.”

“아니요. 방금 왔습니다.”

“차를 한잔 하시죠. 이 룸 안에 손님들을 위한 녹차와 홍차가 있네요.”

박사장은 말하면서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눌렀다. 둘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커피포트의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엿듣거나 쳐다보는 사람도 없어 둘이 대화하기는 딱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전망이 좋네요.”

호텔 룸의 통유리 너머로 멀리 한강이 보이는 곳이었다. 밤에는 야경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네요. 전망이 좋네요.”

박사장이 직접 구건호의 찻잔에 물을 따라 주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이형우씨가 입사하는 바람에 디욘 코리아가 좀 시끄러웠죠?”

“뭐, 그 덕에 저희도 주가를 누르기 위해 고점에서 좀 팔았습니다.”

“저도 공시 내용은 보았습니다. 대주주 지분을 100만주 팔았더군요.”

“그랬더니 좀 주춤해지고 추세가 꺾였습니다. 지금은 2만원 언저리에서 횡보하고 있습니다.”

“거기 발행주식이 얼마죠?”

“2,600만주입니다.”

“그러면 시가 총액이 5,200억이라는 이야기네요.”

“그렇게 되겠네요. 디욘 코리아는 부채도 없고 매출도 해마다 30%씩 늘고 있으니까 정치 테마주가 아니더라도 3년 정도 지나면 그 정도 안가겠습니까?”

“설립 된지 얼마 안 된 회사가 시가총액이 그 정도 가면 대단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실은 정치주가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이번에 대주주 지분 매각도 실은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여보고 싶은 것도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대주주 지분 매각으로 회사에 돈은 많이 들어왔겠네요.”

“400억 정도 들어왔습니다. 다른 대주주 지분 매각은 없고 오로지 지에이치 모빌 지분과 디욘본사의 지분만 똑같은 비율로 매각한 것입니다.”

“상장을 하시면서 공모주 매각한 것 까지 하면 상당한 현금이 확보되었겠군요.”

구건호는 다소 기분이 나빴다. 남의 회사 현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자꾸 물으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것을 박사장이 눈치 챈 것 같았다.

“하하,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숨길 것도 없습니다. 공모주 매각대금으로는 156억이 들어와서 지금 현금 556억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려서 대주주 지분 매각은 우리가 각자 출자 회사로 보내도 되지만 공모주 매각대금은 사내에 유보해야 되겠지요.”

“그럼 대주주 지분 매각 400억중 200억은 배당이 아닌 투자자금 회수로 처리해도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구건호가 한참 후 다시 말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소액주주 문제가 있어서 사실은 상장 철회도 검토해 보았습니다. 이익금 배분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해서 그렇습니다.”

“일본과 합작했던 덴소풍성처럼 말입니까?”

“덴소도 매출액이 많지만 비상장이더군요. 덴소 오토모티브가 원래 상장사였습니까?”

“그것까지는 나도 기억이 희미하네요.”

다시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박사장이 나에게 말 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가. 고작 사내에 있는 현금 액수나 알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박사장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말했다.

“언젠가 구사장이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디욘과 합작을 할 때 주식은 양도 가능하고 돈을 많이 주는 기업이 있다면 회사도 팔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때요? 지금 지에이치 모빌에서 가지고 있는 32.7%를 누가 좋은 값으로 쳐주겠다면 양도할 생각은 있습니까?”

“뭐, 뭐라고요? 야, 양도요?”

“그렇습니다. 현재의 시가총액은 5,200억이라고 하니까 32.7%면 1,700억이 됩니다. 매력 있는 금액이 아닙니까?”

“그렇게는 안합니다.”

“왜요? 지금 시가총액은 정치주에 편입되어 높게 나왔을 텐데요.”

“생각해 보십시오. 부채가 없는 회사라 매년 100억 이상의 세후 순이익이 떨어집니다. 매출이 늘고 있으니까 5년 후, 10년 후는 1천억이 떨어질 수 있다고 장담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빵빵한 현금도 있으니까 기업 확장도 가능합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현재 시가 총액은 5,200이면 엄청난 기회입니다.”

“현재 가치는 많이 부풀려 있다고 해도 기업은 미래의 가치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사장님 말씀은 현실가치만 반영된 숫자이고 미래의 가치는 계산이 안 되어 있습니다.”

“흠.”

“그런데 정말 A전자그룹에서 사고 싶은 의향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아닙니다. 사고 싶은 기업이 있어서 다리를 놓아달라고 해서 그렇습니다.”

“어느 기업입니까?”

“그건 지금 말하기 어렵습니다. 단, 인수하려고 하는 회사는 케미컬 제조 공장을 가지고 있어서 디욘 코리아를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구건호는 순간적으로 정치자금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 지에이치 모빌의 15%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진우 대표의 아버지 이범식씨가 배당 받을 수 있는 돈은 15억 밖에 안 된다. 지에이치 모빌이 아무리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해도 금년 세후 이익금은 불과 100억 남짓하지 않은가?]

[디욘 코리아도 배당은 100억을 넘어가지 않을 거다. 그러면 32.7%를 가지고 있으니까 지에이치 모빌로 흘러가보았자 32억 7천만 원이다. 이것을 이범식씨가 배당 받으면 불과 몇 억 밖에 안 된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선주자라면 택도 없는 돈이다.]

[이번에 대주주 지분 판돈은 처분하려면 디욘 본사와 협의를 해야 되겠지. 디욘 본사에서 회사에 유보하고 공장증설이나 M&A자금으로나 활용하자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정치자금은 엄청 모자랄지 모른다. 이진우 후보에게는 돈 많은 장인이 있지만 장인은 정치를 싫어한다니까 도움을 못 받는다면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생 이형우 전무를 디욘 코리아에 밀어 넣으면서 이형우 전무는 얼마의 주식을 매집하고 되팔았을까? 10만주? 100만주? 나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많이는 매집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지금 시세 좋을 때 팔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배당이 가능하니까 말이야.]

구건호가 계속 생각만 하자 박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내 제의가 너무 갑작스러워 그런지 생각이 많으신 모양이네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디욘 코리아에 관심이 있는 케미컬회사에 구사장이 미래의 가치를 요구한다고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큰 회사의 인수는 회장 단독 결정도 있지만 거기 기획실의 실사팀이 나와서 조사도 할 것입니다. 이사람들이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나는 디욘 코리아를 그 케미컬 회사가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욘 코리아를 인수함으로서 배합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전부 인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또 구사장님은 경영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니까 1,700억이 들어오면 얼마든지 기업을 확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미래의 가치가 반영이 안 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미래의 가치란 얼마를 요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석을 해 보아야 하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케미컬 회사 회장님께 그렇게 말씀 올리겠습니다. 구사장님도 잘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수일 내로 내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서 모시고 싶은데 남들 눈도 있고 하니까 그냥 신사동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다른 손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여기 좀 더 있다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구건호는 12시가 거의 다 될 무렵 그랜드 하야트 서울 호텔에서 나왔다.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면서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점심이나 먹고 들어가자. 삼각지 국밥집으로 가자.”

“평양집 말입니까?”

“응, 그런 것 같다. 거기로 가자. 호텔 음식보다는 그런 데가 좋아.”

“헤헤, 저도 그런 음식이 좋아요.”

구건호가 삼각지로 가는 도중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눈을 감았다.

[디욘 코리아 지분 매각 대금으로 1,700억을 우리에게 준다면 이게 고스란히 지에이치 모빌로 흘러들어 가겠지. 그렇다면 이범식씨가 얼마를 받아갈까? 세금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계산한다면 255억이네. 그럼 대선자금으로 쓸 만하겠네.]

구건호는 이런 생각이 들자 소름이 확 끼쳤다.

[무서운 사람들이군. 이걸 계산한 거야. 이형우 전무를 집어넣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니까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겠지? 나야 장사꾼이니까 누가 되던지 돈만 많이 준다면 팔수는 있지.]

[그런데 그 케미컬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재벌회사인가? 혹시 무언가 정치권에 아킬레스건을 잡혀 인수를 강요 받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도 내가 협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내 약점을 물고 늘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심해야 되겠네.]

구건호는 다시 한 번 청담동 이회장의 말이 생각났다.

[기업인은 정치권에 대하여 항상 불가원 불가근의 관계로 가야되네. 너무 멀리해서는 돈 벌기가 힘들고 너무 가까이 하면 끊임없는 요구에 시달려야 하네. 조심하게.]

[하지만 1,700억이라면 구미는 당기네. 1,700억이 지에이치 모빌로 흘러 들어온다면 나는 날개를 활짝 더 달게 되는 것 아닌가? 미래의 가치를 이야기 했으니 판다면 최소한 1,700억 이상은 받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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