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6
대주주 지분 장내 매도 (1)
(476)
구건호가 애덤 캐슬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주가를 눌러야 하겠습니다.”
“주가를 눌러요?”
“우리가 장내 매도를 통한 자사주를 매도하는 것입니다.”
“자사주 매도요? 그건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그래서 급히 당신을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각자 50%였으나 기업 공개를 거치면서 공모주와 우리사주가 들어오는 바람에 각각 34.6%가 되었습니다. 즉, 현재 발행주식 총수 2,600만주에서 디욘이 900만주, 지에이치 모빌이 900만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각자의 지분 5%를 장내 매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가는 멈추어집니다. 만약에 5%가지고 안 눌러 진다면 10%를 매도하는 것입니다.”
“그, 그러면 우리의 경영권이 약해지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10%를 팔아 치워도 20%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경영권을 행사합니다. 삼성이나 현대를 보십시오. 5%도 안 되는 재벌 회장의 지분만으로도 얼마든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지금 46,000원 할 때 100만주만 팔아버리고 선거 끝나고 다시 6천원으로 회복된다면 우리가 다시 장내 매수를 통하여 주식을 사들이면 됩니다.”
“흠, 그럼 차액이 발생하겠군요.”
“주당 4만원 차액이 발생하면 100만주면 400억의 차액이 발생합니다. 물론 우리가 장내 매도를 시작하면 대주주지분은 공시를 해야 되기 때문에 주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주당 3만원이 떨어지면 300억의 차액이 발생합니다.”
“흠.”
“실례의 말 같지만 애덤 캐슬러 부사장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근무 해보았겠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특별 이익이 발생하는 데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주가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일 즉시 본사에 알리고 답을 구하세요. 늦으면 늦을수록 회사에 복잡한 일이 발생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중국에 가 있는 이형우 전무의 형님이 정말 대선에 나오나요?”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직 이진우 대표만 알고 있는 사항이겠지요.”
“알겠습니다. 내일 출근과 동시에 즉각 본사와 상의하겠습니다.”
“대주주 지분 장내 매각은 언제나 디욘과 지에이치 모빌이 똑같은 비율로 매각하고 매수한다고 알려주세요. 디욘 코리아는 어디까지나 합자사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애덤 캐슬러는 다시 KTX를 타고 아산으로 내려갔다. 구건호는 통역 오연수를 그가 살고 있는 압구정동에 내려주고 자기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돌아왔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보니 못 보던 남자 구두가 있었다.
“이제 오나?”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신림동 장인이 오셨다. 아기를 보러 온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아니, 그런데 자네 얼굴이 왜 그런가?”
“예? 제 얼굴이 어때서요?”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회사에 바쁜 일이 많은 모양이지?”
“예, 요즘 바쁘기는 합니다.”
“나도 신문에서 기사를 보았어. 자네 회사가 정치 테마주가 되어 막 올라가고 자네가 기자들과 이야기한 것도 보았어. 자기네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는 게 좋은 것이 아닌가?”
“시끄럽기만 하지 제 손에 돈 들어온 건 아직 없지 않습니까? 주식이란 게 팔아야 내 돈이니까요.”
김영은이 와서 자기 아빠에게 뭐라고 하였다.
“아빠, 그만 하세요. 상민이 아빠 씻고 밥 먹어야지요.”
“오, 그래, 그래. 내가 그만 말 붙이지.”
아기를 재워놓고 셋이 식탁에 앉았다. 장인은 부인도 없고 자식도 김영은이 하나라 타워팰리스를 자주 왔다. 그런 장인의 모습이 쓸쓸해 보여 구건호는 장인이 오면 꼭 술대접을 해드렸다.
“술 한 잔 하시죠. 지난번 먹다 남은 중국술이 있습니다.”
“마오타이? 좋은 술이니 한잔만 할까?”
김영은은 좋은 반찬을 자기 아버지와 구건호 앞으로 밀어주었다.
“상민이 엄마가 구서방한테 잘해 줘야겠다. 얼굴이 지난번 올 때보다는 많이 수척해 졌어.”
김영은이 웃으며 말했다.
“디욘 코리아 주식이 정치주가 되니까 여러 사람들한테 시달려서 그럴 거예요. 아마 한 달 전쯤부터 시달렸을 거예요.”
구건호는 김영은의 말을 듣고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달린 게 아니네. 이 사람아. 300만주나 되는 주식을 사들이고 팔고 하다보니까 점심도 거를 때가 있어서 그러네.]
장인이 물었다.
“그런데 이진우씨 동생이 참말로 구서방 회사에 근무하나?”
“예, 그렇습니다. 해외담당 전무이사로 있습니다. 지금 중국 광동성에 가 있습니다.”
“신문에 보면 디욘 코리아라는 회사가 인도와 중국에도 공장이 여러 개라는데 그게 전부 구서방 회사 소속인가?”
이 말엔 김영은도 관심이 있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인도의 첸나이와 노이다 지역에 한군데씩 있고 중국 강소성 소주시와 천진에도 있습니다.”
“그럼 해외에 공장이 4개란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공장이라면 땅도 많이 차지할 텐데 그게 돈이 다 얼마야. 공장 하나에 천 평이 넘지?”
“공장 하나에 5천평 내외입니다. 케미컬분야 제조업이기 때문에 그 정도 가져야 합니다.”
“헉! 5천평!”
장인은 5천 평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자기가 학교 선생 할 때 근무했던 학교들과 평수가 비슷한 땅을 해외에 4개나 가지고 있다니 말이다. 장인은 비로써 구건호의 부(富)에 대하여 실감을 하였다.
“흠, 그래?”
장인은 결혼할 때 구건호가 탐탁치 않았었다. 자기 딸이 서울대 출신 의사와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구건호가 사업을 한다니 반대했다. 주위에서 사업에 성공했다는 사람보다는 실패했다는 사람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의사 아니면 고시 패스를 한 사람과 딸을 붙여주고 싶었다. 양평에 사는 처제가 구건호를 강력히 소개할 때 이런 말을 했었다.
“강남에 빌딩도 가지고 있고 알부자란 소문이 있어요. 사람도 착하게 생겼어요. 사업하는 사람처럼 생기지 않고 대기업 과장처럼 생겼으니 보고 결정하세요. 영은이도 싫다는 표정은 안 하는 것 같았어요.”
장인은 사위가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번 조그만 기업을 하는 사람으로 보았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인상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고 너무 집안간의 차이가 있어 친정을 깔보고나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승낙을 했었다.
장인은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항상 오지랖 넓은 친구들이 사위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의사나 판검사가 아니고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딸이 서울대 의대를 나온 수재 아닌가? 인물도 있고 그런데 중소기업 사장과 결혼했다니 의외로군.”
장인은 이런 소리 들을 때 마다 속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딸이 타워팰리스에 살고 남편이 제너시스를 척척 사주고 강남에 큰 빌딩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 슬슬 알려지자 사람들은 장인을 다시 보았다.
[요즘 정치 테마주로 주목받는 디욘 코리아가 사위 회사라고 하는군.]
[그래? 그럼 그 주식 사면 돈을 좀 벌까?]
더군다나 최근에 정치 테마주로 주목받는 회사가 사위가 운영하는 회사이고 사위는 이미 여러 개 기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지자 친구들은 장인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았다. 은근히 디욘 코리아의 주식을 사면 어떻겠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다.
장인은 친구들에게 술도 잘 샀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하여 매월 연금도 300만원 가까이 나오는 것도 있지만 김영은이 용돈을 풍족하게 주어서 그랬다. 김영은은 자기도 의사생활을 하고 구건호에게 생활비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버지 용돈을 잘 주었다. 그래서 장인은 친구들 간에 대접도 받고 모임 회장도 싫다는 것을 억지로 떠맡아 지금은 모임 회장도 3개나 하고 있었다.
식사 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기가 잠을 깼는지 울기 시작했다. 김영은이 안방으로 황급히 들어가 아기를 안고 나왔다.
“아빠 여기 있다.”
구건호가 아기를 받아 안았다. 구건호는 아기의 볼에 수업이 뽀뽀를 하였다. 역시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여운 모양이었다. 아기가 까르륵 대고 웃었다. 구건호는 아기를 자기 방 침대에 누였다. 아기에게서 엄마의 젖 냄새가 났다. 구건호는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기와 함께 잠이 들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하였다. 사장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주식 거래창을 띄웠다. 아직도 디욘 코리아 주식은 추세선이 꺾이지 않고 상승세가 이어가고 있었다.“
“흠, 올라도 너무 오르네. 나중에 개미들 곡소리가 많이 나겠는데.”
구건호는 약간 걱정을 하면서 아침에 온 경제신문들을 보기 시작했다. 디욘 코리아에 대한 기사가 오늘도 몇 개 보였다.
[최근 정치 테마주에 대한 묻지마 투자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디욘 코리아는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주가가 5,600원이었으나 최근 급격히 상승하여 46,000원을 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투자주의를 당부했다. 디욘 코리아가 우량 기업 인줄은 알지만 시가 총액이 1조원을 넘는 회사는 아니라고 말하였다.]
구건호는 책상에서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푹신푹신한 소파에 앉아있으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하였다. 목이 옆으로 꺾이면서 잠이 들었다. 어제 상민이가 중간에 깨어 우는 바람에 잠을 설쳤더니 더 졸음이 온 것 같았다.
전화가 온 것 같아 잠이 깨었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우량고객들을 위하여 인터넷 가입시에는 최고 50%의 가입비를 할인해 주며....”
“에이 씨! 광고 전화네.”
또 전화가 왔다.
“뭔 광고전화가 이렇게 많이 와.”
구건호가 스마트폰을 보니 애덤 캐슬러 전화였다.
“굿모닝, 보스. 통역 바꾸겠습니다.”
통역 채명준 대리가 나왔다.
“채명준 대리입니다.”
“그래, 뭔 일이요?”
“어제 사장님을 서울역에서 뵙고 바로 밤중에 시애틀 본사로 전화를 했었답니다. 한국과 미국은 시차가 있어서 한 밤중에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흠, 그랬나요?”
“본사에서 새벽녘에 회답이 왔는데 지에이치 모빌과 똑같은 비율로 3%까지 매도하시고 그래도 주가가 진정이 안 되면 5%, 10%를 늘려도 된답니다. 단 지에이치 모빌과 출자비율이 무너지면 안 된답니다.”
“알겠어요. 수고했어요.”
구건호는 강남증권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이십니까? 사장님.”
“주가가 진정이 안 되어 대주주 지분 약간을 장내 매도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매도는 강남증권에 위임 매매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님. 실은 저도 이것을 사장님께 건의하려고 했던 참입니다. 너무 이상 과열되면 손해 보는 개미 투자자들이 많아집니다.”
“우선 10만주 20만주 이렇게 50만주까지 매도하세요. 그런데 합자사이기 때문에 합자 비율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지에이치 모빌과 라이먼델 디욘 본사의 출자비율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같은 비율로 던져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대주주가 장내 매도한다면 주가는 진정됩니다.”
“오늘부터 하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