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67화 (467/501)

# 467

정치주(株) 편입 (2)

(467)

박사장은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구건호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그런 고급인력을 제가 어떻게 데리고 있겠습니까?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중소기업형 제조 공장들입니다. 여기에 그런 인재를 어떻게 씁니까? 차라리 사장님이 계신 A전자 그룹에 취업 시키는 게 낫지요.”

“그런데 그 사람 신분이.... 이진우 의원의 친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예? 친동생이라고요? 그럼 더욱 잘됐네요. A전자그룹 회장님은 바로 이진우 의원님 장인 아닙니까? 장인한테 가서 심어달라고 하면 되겠지요. 그런 경력의 소유자는 A전자그룹 같은 데가 맞을 겁니다.”

“회장님은 조용한 걸 원하십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시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자기 일 자기가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진우 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대권에 뜻이 있다면 A전자 그룹은 바람을 타게 되어있습니다. 더구나 친동생이 거기에 있다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진우 의원님이 당 대표도 되고 대선에 출마한다면 A전자그룹도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잖습니까?”

A전자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인 박사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업이 정치권에 너무 밀착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잘 나가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바람을 타게 되어있습니다. 기업은 정치권과 불가원불가근(不可遠不可近: 멀리해서도 안 되고 가까이 해서도 안 됨)이라야 합니다.”

“그러면 사위 되시는 분께 차라리 정치를 하지 말라고 만류하시지 그랬습니까?”

“정치에 뜻이 있는 분께 만류한다고 듣습니까? 그리고 우린 조용한 가운데 실리를 챙기면 됩니다.”

“흠, 실리를 챙긴다? 실리를 챙길 만한 게 있습니까?”

이 말에 박사장은 하늘만 쳐다보며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한참 후에 박사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디욘 코리아의 등기이사 임원의 임기는 몇 년입니까?”

“합자규정에 2년으로 되어있습니다.”

“디욘 코리아가 2년이 넘었으니 사람이 바뀌거나 중임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도 이번에 사장에서 물러나 이사회 회장이 됩니다. 이사회 중요 안건이나 다루지 일상적인 경영에는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미국 측에서 사장이 나오는가요?”

“그렇습니다. 미국측에서 사장을 하고 부사장은 우리가 합니다.”

“부사장도 이사 등기를 하는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사장은 한국 측 대표니까 등기이사로 해 주는 것이 좋겠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진우 의원님 동생 이형우씨를 디욘 코리아로 추천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은 투자은행에 근무했던 분이지 제조업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현재 그 회사는 250명 종업원이 있고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그러면 3, 4백명의 종업원을 관리하는데 투자은행 경력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흠.”

“더군다나 지금 거기에는 부사장으로 승진을 해야 할 전무도 있고 줄줄이 상무와 이사들도 있습니다. 윗사람이 하나 생기는 걸 달가워하겠습니까? 괜히 내부 분란만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전무이사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경력자라면 들어갈 회사도 많은데 작은 제조회사는 왜 굳이 들어오려고 합니까?”

“실은 투자은행의 차장급으로 있었습니다. 거기도 인원감축이 있어 이번에 나왔는데 다른데 가려면 중간관리자급 밖에 못 갑니다. 그래서 내 생각은 디욘 코리아에서 한 2년 경력을 쌓고 나중에 재벌회사로 가면 그 직급 그대로 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

“어차피 디욘 코리아는 등기이사 임원의 임기가 2년이니 2년만 있게 해주면 A전자그룹이나 이진우 의원도 나중에 그 보답은 할 겁니다.”

“올 연말 정기인사가 있습니다. 미국 측에서 선임하는 사장도 12월 15일 발표한다고 했습니다. 이진우 의원 동생 이형우씨는 그 이후에 영입하는 것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해야 됩니다. 혹시라도 이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핵심인사로 떠오르면 이의원의 입김으로 디욘 코리아에 낙하산으로 밀어 넣었다고 씹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급히 구사장을 만나자고 했던 것입니다.”

“흠.”

“물론 어려운 부탁인줄은 압니다.”

“내부적 반발을 무마하는 일이 있어서 그게 좀 골치 아프네요. 그 사람을 데려다 뭘 시키지?”

“디욘 코리아가 해외사업을 많이 벌린다고 하니까 해외담당 임원으로 하면 좋겠네요.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MBA를 나온 사람이니까요.”

“무리하게 밀어 넣는다면 전무이사는 가능하지만 부사장은 절대 안 됩니다.”

“전무이사라도 등기이사면 됩니다. 보유 주식이 없는 등기이사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조건 임기 2년 후에는 해임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해임이 아니라 해촉으로 표현해 주세요.”

“2년 후에 해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것도 지급 답변은 못해드리고 디욘 코리아의 현재 임원들과 상의 후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사람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올해 50이 되었답니다.”

“그럼 이형우씨 이력서를 제 이메일로 보내주시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금주 안에 답을 주시고 채용이 되면 바로 4대 보험 가입도 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 사람 채용해 주시면 구사장님 앞날에도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뭐, 지금도 신세지고 있는데요.”

구건호가 박사장을 만나고 신사동 빌딩으로 돌아왔다.

구건호는 사장실 소파에 앉아서 홍차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잘 하면 디욘 코리아가 정치주가 되겠는데?]

구건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300만주 확보하기를 잘했지. 더 이상 확보할까? 아니야, 잘못하다간 유통물량 없어져 탈이 날수도 있어. 언제나 욕심이 화를 부린다고 했잖아? 여기서 멈추는 게 좋아.]

구건호는 그러면서 디욘 코리아의 내부 반발을 생각해 보았다.

[이진우 의원 동생 이형우씨를 부사장으로 할 수는 없고 전무이사로 해? 그러면 김전무가 반발이 심할 텐데. 실상 지금 디욘 코리아 일은 그 사람이 다 하고 있지 않은가? 전무를 한사람 더 앉힌다면 김전무 입장에서는 분명히 반발할거야.]

[애덤 캐슬러는 한국측 인사라고 간여를 안 하려고 할 테고.... 미국 측에서 이번 연말 사장을 임명하면 내가 빠지면서 김전무를 부사장 시켜주려고 했었는데 미리 가서 발표해? 지금 등기이사는 나와 애덤 캐슬러 뿐인데 새로 오는 이형우씨를 등기이사 전무로 한다면 김전무도 등기이사 부사장으로 해야 되겠네.]

[가만있자. 상임감사는 나이가 많아 촉탁 비슷하게 있는데 그러고 보니 등기는 안했었네. 원래 상장기업은 상임감사를 두게 되었으니 상임감사도 등기임원으로 해? 그러면 상임감사는 2년 촉탁을 연장해 주어야 하겠네. 이번 상장에 공이 있으니 그렇게 해줄까?]

[그러고 보니 디욘 코리아는 작은 회사에 등기임원 풍년이네. 나는 어차피 들어가고 김전무와 상임감사, 이형우씨, 애덤캐슬러. 다섯 명이나 되네. 등기임원 많다고 디욘 본사에서 뭐라고 안하려나?]

[이형우씨를 채용하려면 지금 해야 돼. 정말 박사장 말대로 이진우 의원이 당 대표가 되거나 대권주자가 된 후에 이형우씨를 영입하면 시끄러울 수가 있어. 정말 나중이라도 정권이 바뀐다면 내가 다칠 수도 있어. 지금 이진우 의원이 평범한 의원일 때 데려오자.]

구건호는 홍차를 마시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디욘 코리아의 주식 시세를 보았다. 5,900원대에서 놀고 있었다.

“혹시 이형우씨 이력서를 보내왔나? 아마 이런 것은 박사장 성격상 재빨리 보냈을 거야.”

구건호가 이메일을 열어보니 정말 이형우씨 이력서가 들어와 있었다.

“미국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다국적기업 투자은행 근무? 경력이 화려하네. 영어는 잘하니까 미국 측에서 보내는 사장하고 잘 어울리겠군.”

구건호는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내주신 서류 잘 보았습니다. 제가 내일 디욘 코리아가 있는 아산엘 내려가서 임원회의를 소집할까 합니다. 내려가기 전에 그 사람 얼굴이나 한번 보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내일 아침 9시까지 그 사람을 사장님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바로 디욘 코리아의 김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제가 11시까지 디욘 코리아로 가겠습니다. 전무님과 잠깐 할 말이 있습니다.”

“저하고요? 다른 사람은 필요 없습니까?”

“다른 사람은 상관없습니다. 전무님이 주로 외근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들은 사내에 보통 있으니까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온다는 이야기들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 오연수가 사장실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저, 이형우씨라는 분이 오셨는데요?”

“들어오시라고 해요.”

50대의 건장한 사내가 들어왔다. 이형우씨를 보고 구건호는 깜짝 놀랐다. 이진우 의원과 하도 붕어빵이라 이진우 의원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이형우입니다.”

50세의 이형우라는 사람이 30대 후반 구건호에게 깍듯이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구건호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이형우씨가 자리에 앉자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러 커피를 주문했다.

“형님과 많이 닮으셨습니다.”

“허허,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디욘 코리아에 근무하고 싶다고요?”

“네, 제조업 근무경력이 없어서 디욘코리아에 가서 경력을 쌓고 싶습니다.”

“디욘 코리아는 이제 막 상장한 작은 회사입니다. 오신다면 불편한 점이 많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써주시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오신다면 원하는 직급이 아니고 담당업무도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오셔서 일 하시겠습니까?”

“등기임원이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듣자하니 디욘 코리아는 해외 공장 설립 계획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데 해외 담당을 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인상도 좋으시고 영어도 잘하실 것 같아 우리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디욘 코리아는 기존에 전무와 상무등 임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새로운 임원이 위에서 내려오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오늘 가서 이 사람들에게 새로 사람을 영입해야하는 필요성을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이해합니다.”

“채용 여부에 대한 결과는 금주 내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형우씨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아산에 내려가야되니까 엄찬호 기사한테 차 대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막 나가려고 하는데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 들어왔다.

“어머, 어디 나가시려고요?”

“예, 아산엘 갑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하도 얼굴 뵌 지가 오래되어서 사장님께 차 한 잔 얻어먹으려고 왔습니다. 호호.”

“아산 갔다 와서 차 대접해 드리죠.”

“호호, 알겠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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