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61화 (461/501)

# 461

영화 <몽환앵화> 시사회 (1)

(461)

지에이치 정밀의 박종석 사장이 일본에 간 날 SH 투자 파트너스에서는 주식45,000주를 매집했다는 문자 연락이 왔다.

구건호가 손근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까지 매집한 누적 총수량은 얼마가 됩니까?”

“113,000주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보고 드릴 땐 누적 총량도 적어서 문자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4대보험은 처리했는가요?”

“했습니다. 박승희씨가 와서 처리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박승희씨는 요즘 여기 자주 들립니다. 와서 보험가입자 권유 같은 전화도 여기서 하고 보험 계약서 같은 것도 작성합니다.”

“거기서 보험가입 권유하는 전화하면 일하는데 집중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한 가지 종목만 하기 때문에 그러진 않습니다. 팔 때는 좀 집중해야겠지요. 그리고 박승희씨는 여기 오래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박승희씨가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주식이나 채권 같은 것 사고 판다고하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종목을 취급한다는 것은 말하지 마세요.”

“그럼요. 이게 어떤 일인지는 저도 잘 압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법인카드 있으니 점심 식대는 알아서 쓰세요.”

“박승희씨도 식대 지불해 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고맙습니다.”

“혹시 올라가는 종목이 있다고 해도 다른 종목은 일체 쳐다보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른 종목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다른 종목 쳐다보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됩니다.”

“강남증권 지점장이 좋은 분을 추천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앉아 있는데 중국의 심운학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운학 감독입니다.”

“예, 구건호입니다.”

“이번 금요일 영화 <몽환앵화>의 시사회가 상해에서 있습니다. 환러스지 공사에서 사장님을 정식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시사회요? 그런데 가면 복잡한 것 아닙니까? 기자들도 많이 오고.”

“그러긴 합니다만 모리 에이꼬가 온다고 해서 말씀드립니다.”

“모리 에이꼬가요? 시사회는 여자 주인공이 빠지는 곳도 있던데 가는 모양이네요.”

“온 것하고 안 온 것하고는 광고 효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일단 기자들이 많이 오지 않습니까?”

“내가 가는 것은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신다면 제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심감독의 전화를 끊고 구건호가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 내가 크게 사업 벌리는 곳도 없고 각 사업장도 사장이나 임원들이 다 알아서 하니 중국을 한번 갔다 올까? 가서 모리 에이꼬나 만나볼까? 금요일이면 박종석이가 일본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날인데.... ]

[모리 에이꼬 얼굴이나 보고 그냥 당일에 갔다가 당일에 돌아올까? 그날 모리 에이꼬도 행사 참석으로 피곤할 텐데 내가 자꾸 호텔로 불러들이면 그것도 모양이 안 좋을 것 같긴 하네.]

구건호는 심운학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금요일 시사회 참석하겠습니다. 모리 에이꼬가 나오는 영화니 한번 가서 보지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만 알려주면 공항으로 나가겠습니다. 호텔은 어디로 예약을 할까요?지난 번 묵었던 그랜드 센트럴 호텔로 할까요?”

“호텔 예약 필요 없습니다. 당일에 갔다가 당일 돌아오겠습니다. 환러스지 공사도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갈 테니 나를 접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금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상해 포동공항으로 왔다. 심운학 감독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심감독도 오늘은 시사회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옷을 말끔히 입고 나왔다.

“시사회를 어디서 합니까?”

“남경로에 있는 군예관(群藝館)에서 합니다. 지금 환러스지 공사 애들은 전부 시사회장으로 갔습니다.”

“흠, 그런가요?”

“환러스지 공사도 이번 영화에 공을 많이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걔들도 이번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야 회사가 존속할 수 있으니까요.”

“흠.”

시사회장 건물은 좀 오래된 건물 같았다. 건축양식이 그랬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이 온 것 같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연예인인 듯한 사람들도 보였다. 환러스지 공사 직원들이 책상을 갖다 놓고 안내를 보고 있었다.

“초청장 보여주세요.”

구건호의 얼굴을 모르는지 환러스지 공사 직원들은 초청장을 요구했다. 구건호가 승용차 안에서 심감독이 준 초청장을 보여주었다. 초청장을 본 직원이 구건호의 오른쪽 어깨에 동그란 스티커를 탁 하고 붙여주었다.

“뭐요? 이게?”

“그거 붙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건호가 심감독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 문에서는 환러스지 공사 직원들이 수다를 떨면서 시사회 때 먹을 간식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다. 스티카를 붙인 사람만 나누어 주었다.

구건호는 직원들이 준 팝콘과 과자, 음료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앞자리는 VIP석인지 비어 있었다. VIP석에는 환러스지 공사의 사장 천바오깡과 감독 우옌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작가 펑아이링 여사도 앉아 있었다.

“여, 구사장 오셨습니까?”

구건호는 천바오깡과 우옌, 그리고 펑아리링 여사와 서로 인사를 하였다.

“영화 만드시느라고 고생들 하셨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구사장님께서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어 고맙습니다.”

구건호가 의자에 앉아 앞을 쳐다보았다. 무대 위에는 긴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아마 영화에 나오는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들이 앉는 자리인 것 같았다. 단상위에 커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구건호가 글씨를 쳐다보았다.

“몽환앵화(夢幻櫻花) 주제(主題) 발표회? 여기는 주제 발표회라는 표현을 쓰네. 꼭 무슨 시험문제집 내는 것 같네.”

몽환앵화 주제 발표회 글씨 위에는 환러스지(歡樂世紀) 공사 이름이 써져 있었고 아래에는 붉은 글씨로 동감공부(同甘共富)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동감공부? 같이 즐기고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인가?”

천정 위에서 스크린이 내려오고 있었다.

구건호가 뒤를 쳐다 보았다. 어느새 자리가 꽉 차있었다.

“여, 구사장 오셨나?”

구건호가 소리치는 곳을 보니 리스캉 국장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구사장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만들었어.”

“고맙긴. 비즈니스로 한 건데.”

구건호가 리스캉과 이야기를 하다가 장내 안내 멘트가 나와 그만 중지했다. 사회자가 뭐라고 한참 설명을 하더니 천장 위에서 스크린이 내려오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구건호는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음료수도 마셨다. 뒤에서 중국인들이 부스럭 대며 팝콘 먹는 소리, 음료수 마시는 소리, 옆 사람과 이야기 하는 소리들이 들려 영화가 집중이 안 되었다.

“거, 되게 시끄럽네.”

구건호는 영화를 보다가 반은 졸면서 시간을 보냈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이 위로 올라갔다. 스크린 뒤의 무대 위 긴 테이블에는 벌써 주연 배우들과 감독 등이 앉아 있었다.

사회자가 한참 뭐라고 떠들고 나서 무대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한사람씩 소개했다. 이 날의 관심은 역시 무대 중앙에 앉아있는 모리 에이꼬였다. 구건호도 고개를 빼고 무대 위에 앉아있는 모리 에이꼬를 쳐다보았다.

모리 에이꼬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아래는 테이블에 가려 바지인지 치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흰 블라우스를 입은 모리 에이꼬는 요란한 연예인 모습이 아니라 단정한 오피스걸 같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일본인다웠다.

“여자 주연배우 모리 에이꼬를 소개하겠습니다.”

모리 에이꼬가 일어섰다. 그리고 중국 배우들 보다는 더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를 하였다. 검정색 롱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영화에 출연하여 기쁩니다.”

모리 에이꼬가 뭐라고 인사말을 했다. 기자들의 사진세례가 터지고 질문들이 쏟아졌다. 사회자는 질문이 많아 세 사람만 질문 받는다는 멘트를 했다.

“춤은 언제부터 배우셨습니까?”

“일본의 춤추는 게이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교는 안다니고 춤을 배웁니까?”

“술자리에도 갑니까?”

어려운 질문에도 모리 에이꼬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차분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구건호가 뒤에서 중국인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요조숙녀같네.”

“그러게 말이야. 얼굴도 예쁘고 천생 여자네. 되바라진 중국 여배우들도 저런 모습을 봐야 돼.”

갑자기 단하에 있는 남자가 소리를 쳤다.

“모리 에이꼬의 진짜 춤 실력 한번 봅시다!”

이 소리가 나자 여기저기서 봅시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자는 무대 위로 뛰어 올라 모리 에이꼬를 무대 중앙으로 끌어내었다. 모리 에이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카메라를 전부 치켜들었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가 요정에서 추던 춤이 생각났다.

“모리 에이꼬 춤은 슬프고 청승맞은데.”

구건호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이 상황에서 슬픈 음악의 춤은 뭔가 맞지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틈에 누가 일본 음악을 준비했다. 정말 옛날 춤곡 같은 음악이 나왔다.

“춤 한번 봅시다!”

“봅시다!”

모리 에이꼬가 난감한 표정만 짓고 있다가 결심한 듯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서는 춤을 출 수 있는 조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곤란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원하니 짧게 2, 3분간만 하겠습니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까 어느 분이 준비한 음악이 일본의 하나가사온도(花笠音頭)라는 곡이네요. 거기에 맞추어 보겠습니다.”

모리에이꼬가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을 들고 춤동작 준비를 하였다.

“쟁반을 들었네? 부채가 없어서 그런가?”

음악이 크게 울리고 춤동작이 시작되자 일순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 졌다. 경쾌한 리듬의 동작으로 모리 에이꼬가 웃으며 춤을 추었다. 중간 중간에 발을 살짝 올리기도 하는 춤이었다. 구건호가 처음 보는 춤이었다. 정말 멋있게 보이는 춤이었다. 경쾌한 춤동작이라 지금의 분위기와도 맞았다.

“와!”

사람들이 감탄하여 장내가 떠나갈 듯 박수를 쳤다. 카메라 셔터가 요란하게 터지고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멋진 춤을 구경하였다고 떠들었다.

모리 에이꼬의 춤은 3분 만에 끝났다. 박수 소리 또한 오래도록 울렸다.

시사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일부 돌아가기 시작하고 극성팬들은 모리 에이꼬에게 싸인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저, 사장님.”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더니 심감독이 꽃다발 하나를 주었다.

“모이 에이꼬 축하해 주셔야지요.”

구건호는 심운학 감독이 참 센스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구건호가 준비해간 봉투를 안 포켓에서 꺼냈다. 그리고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에이꼬, 축하해.”

“어머! 오빠!”

팬 싸인을 하고 있던 모리 에이꼬가 벌떡 일어났다. 구건호가 꽃다발과 봉투를 주었다. 봉투 속에는 3천 달러가 들어있었다.

“고마워요, 오빠.”

“축하해주러 오늘 왔어. 수고했어. 난 오늘 돌아가야 해. 그럼 일 잘보고 가. 오빠 갈게.”

모리 에이꼬가 웃으면서 오른손을 어깨까지 올리고 흔들어주었다.

[사람들만 없으면 꼭 깨물어 주고 싶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의 이런 모습이 정말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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