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54화 (454/501)

# 454

미우라 정밀 인수 (4)

(454)

구건호가 한남동 순천향대학 병원에서 박종석과 일본인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건호가 박종석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사장? 지금 어디냐?”

“지금 서울역에 내려서 가고 있는 중이야.”

“지하철로 오나?”

“아니야, 택시 잡았어. 지금 이태원이야. 곧 도착할게.”

구건호가 차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박종석이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엄찬호가 얼른 차에서 내려 박종석에게 갔다.

“구사장님 차에 계세요.”

“어, 그래?”

박종석이 벤트리 승용차를 타면서 물었다.

“어, 형. 일본 사람들은?”

“아직 안 왔어. 지금 퇴근시간이라 차가 밀리는 모양이야.”

“그래? 그럼 기다려야겠네.”

“찬호야 우리 먼저 요정으로 가자.”

“제가 요정 앞에 사장님 모셔드리고 다시 이곳에 와서 기다리죠.”

구건호와 박종석이 요정으로 들어서자 임태영과 그의 부하들이 나왔다.

“형님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잘들 있었어?”

“오늘은 큰형님, 작은형님 다 오셨네요.”

“사업은 잘들하고 있지?”

“예, 잘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일본사람들이 오니까 잘들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구건호와 박종석이 안으로 들어갔다. 장마담이 나와서 또 호들갑을 떨었다.

“어서 오세요. 사무라이처럼 생긴 분도 오셨네요. 호호. 이제 구면이네요.”

박종석은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내가 왜 사무라이요?”

“눈빛이 그래요. 밖에 있는 태영이도 꼼짝 못할 것 같네요. 호호.”

장마담은 늘 그랬던 것처럼 학 무늬 방석을 내왔다.

“일본인들은 아직 도착이 안 된 모양이네요. 뜨듯한 차 한 잔씩 드리지요.”

잠시 후 밖이 소란해지며 사람들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미우라 정밀 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왔다. 구건호와 박종석이 일어났다.

“구사장님과 박사장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셨네요. 차가 밀려 늦었습니다.”

“가운데 앉으시죠.”

“가운데는 구사장님이 앉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손님이니까 가운데 앉으셔야 합니다.”

구건호는 미우라 정밀 사장을 가운데 앉혔다. 곱게 한복을 입은 장마담이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저희 집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옆에 있던 요시타카 선생이 앞에 있는 여자가 이곳 요정의 마마상(마담)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오오, 마마상데스까?”

장마담은 요시타카 선생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도 오래간만이네요.”

“아직도 장마담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네요.”

두 사람은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구건호가 물었다.

“두분 원래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네요.”

“알지요. 요시타카 선생이 특파원 시절에 일본 고관들을 모시고 저희 집에 몇 번 오신 적이 있었지요.”

“그랬었군요.”

“더구나 요시타카 선생은 일본 아카사카에 있는 제 언니도 잘 아는 사이가 아닙니까?”

“흠,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반가운 사람들이 모였으니 또 술 한 잔 해야지요. 이집에서 자랑할 만한 요리는 다 가져와 보세요.”

“호호, 구사장님은 이제 완전히 회장님 티가 나요. 몇 년 전 우리 집에 왔을 땐 순진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젠 전에 구사장님이 아니에요.”

“그만큼 때가 묻었다는 이야기지요?”

“호호, 그건 아니고 더 세련되고 의젓해지셨다는 말입니다. 들리는 소문엔 가지고 있는 회사가 코스닥 상장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축하합니다.”

“그런 소문이 여기까지 전해졌나?”

“상 올리겠습니다.”

미우라 정밀 사장은 방안에 놓인 자수병풍과 문갑이나 벽에 걸린 전통 산수화 그림들을 유심히 보았다.

“이 집은 고급 술집인 것 같네요. 제가 전에도 사업상 한국엔 여러 번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급 요정엔 처음입니다. 구사장님 덕분에 제가 호강합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흰 와이셔츠를 입은 청년 두 명이 음식이 담긴 교자상을 양쪽에서 잡고 들어왔다. 신선로와 갈비찜이 나오고 더덕무침이나 송이버섯 구이 등이 나왔다. 술은 사기 호리병에 든 안동소주가 나왔다.

일행들은 구건호의 제의로 술잔을 부딪쳤다.

“지에이치 정밀을 위하여!”

“미우라 소이치 사장님의 건강을 위하여!”

술잔이 두어 번 돌자 가야금을 든 두 명의 여자들이 나타났다. 일본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딩다당.”

가야금이 울리자 미우라 정밀의 사장과 공장장은 굉장히 좋아했다. 자기들의 정서에도 맞는 가락이라고 하였다. 다시 문이 열리며 예쁘장하게 생긴 한복 도우미들이 들어왔다.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미우라 사장과 공장장은 20대의 여성들이 옆에 앉자 부담을 느끼는 표정이었으나 이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자 되게 좋아했다.

“오오, 일본어가 아주 유창들 하시네.”

가야금 연주 속에 미우라 정밀의 사장과 부사장은 미인의 품에서 뿅 가버렸다.

목요일이 되었다. 목요일은 직산과 아산으로 가는 날이지만 가지 않았다.

“찬호야, 오늘은 직산 안 간다. 신사동 빌딩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 내려주고 일본인들 김포공항까지 태워줘라. 렌트카는 어제 가버렸다. 박종석 사장이 그 차타고 천안 내려갔어.”

“하하. 박사장님은 마침 렌트카가 있어서 잘 내려가셨겠네요.”

구건호는 사무실에 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디욘 코리아 주식은 그동안 너무 급격하게 빠져서인지 오늘은 거래량 줄어들며 보합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정밀의 박종석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잘 내려갔지?”

“헤헤, 잘 왔어. 마침 내가 일본 사람들에게 빌려준 렌트카가 있어서 그 차타고 내려왔어.”

“잘됐구나.”

“지금 모빌의 서차장이 여기 와있어. 일본에 계약금 송금하는 문제 도와주려고 왔어.”

“그래? 무역담당자 한명 채용해야겠구나.”

“광고를 낼까 하는데 마침 서차장이 자기 동생을 추천하네.”

“동생을? 영어를 할줄 알아야지.”

“잘 하는 모양이야. 미국 유학 경력도 있고 일본에서 보따리 무역도 해서 일본어도 곧잘 한다고 하네.”

“그래? 그럼 면접이나 한번 봐라.”

“그리고 나 다음 주에 인도하고 중국에 갔다 오기로 했어.”

“디욘 코리아 기계설치 때문에 그러냐?”

“인도의 노이다 지역에 새로 산 공장에 가서 한 3일 있어야 돼. 김전무 이야기로는 거기 파견 나갈 엔지니어를 자체에서 구하기 어렵다고 우리 직원 중에서 보낼만한 사람이 없겠냐고 하네.”

“흠, 그래? 보낼만한 사람이 있나?”

“여기보다 월급 1.5배 준다니까 희망자가 둘이나 나왔어.”

“그래?”

“한 친구는 하사관 출신인데. 자동차 정비와 용접기사 자격증도 있고 전기도 곧잘 봐. 공무 경력은 10년 정도 되었는데 아이들 학비 때문에 가고 싶다고 하네.”

“흠,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일단 인도는 이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어. 여기는 그동안 공장장이 관리하기로 했어.”

“공장장 두었나?”

“헤헤, 여기가 직원이 12명밖에 없어도 조직은 조직이라 직급을 주었어. 사회 경력에 따라 공장장, 부장, 과장, 반장 같은 직급을 두었어. 쇠 깎는 선반 작업하던 나이 많은 사람 기억나? 그 사람이 공무경력이 20년 넘어 공장장 시켰어.”

“그래?”

“그리고 그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공장장을 했던 경력자라 잘 하더군.”

“다행이구나.”

“그래서 중국 천진에 가서 기술지도하는 건 공장장을 보내려고 해. 그동안 디욘 코리아 기계는 8대나 조립을 해 보아서 잘해.”

“그런가?”

“내가 중국까지 가긴 어려울 것 같아. 왜냐하면 인도에서 돌아오면 바로 미우라 정밀 기계들이 한국에 들어오거든. 굉장히 바빠질 것 같아.”

“흠, 그러겠구나.“

“미우라 정밀 기계 들어오면 밸브나 베어링 같은 건 김전무가 아는 업체 소개해 준다고 했어.”

“그래?”

“그동안 미우라 정밀에서 납품하던 양 만큼 이세하라 기계에 물건 납품하고, 한국 업체에도 정밀 가공 제품이 들어가기 시작한다면 지에이치 정밀도 해 볼만은 할 것 같아.”

“그래, 열심히 해라. 박사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기분이 좋다.

전화를 끝내고 잠시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심운학 감독이 들어왔다.

“이곳의 일은 다 보았습니다. 이제 중국 들어가겠습니다.”

“<몽환앵화>가 중국 극장가에 걸리면 나도 한번 보러 가야겠네요.”

“예감은 좋습니다. 저도 기대가 많습니다. <몽환앵화>가 성공해야 사장님께 두 번째 영화를 찍을 것을 제안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하, 영화 제작에 썩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자꾸 그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물론 사장님께서는 이미 큰 기업을 가지고 계시고 코스닥 기업도 가지고 계셔서 영화에는 흥미가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영화는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되었든 뭐가 되었던 외화벌이를 한다면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저는 이미 두 번째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유명 작가인 펑아이링 여사에게 부탁을 해 논 상태입니다. 펑아이링 여사도 제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아마 지금 집필 중에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내가 제작에 참여 안한다면 펑아이링 여사에게 줄 원고료만 날리는 거 아닙니까? 무슨 영화를 만드는데 그렇게 매달리십니까?”

“노량해전에 관한 영화입니다.”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 나오는 노량해전 말이요? 그걸 중국서 왜 만들어요? 한국에서 만들면 몰라도.”

“노량해전에서는 명나라 장수가 참전합니다. 명나라 수사제독 진린(陳璘)이 참전했고 등자룡(鄧子龍)이란 명나라 장수는 노량해전 전투 중에 사망합니다.”

“그랬던가요?”

“노량해전의 영웅은 물론 이순신입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소극적으로 참여 한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진린이나 등자룡을 일본에 맞선 항왜(抗倭) 장군으로 추앙하여 그들의 고향에 거대한 동상을 세워놓았습니다.”

“흠, 그런가요?”

“중일전쟁에 패해 자존심을 살리자는 취지도 있었겠지요. 제가 만드는 영화에서는 이걸 부각시키는 겁니다.”

“정말 동상을 세웠습니까?”

“진린의 고향 광동성에는 엄청남 크기의 동상을 세웠고, 등자룡의 고향인 강서성 풍성에도 엄청난 동상을 세웠습니다.“

“흠.”

“중국 영화니까 이들의 활동을 좀 부풀려 만들자는 겁니다. 마침 상해에서 가까운 무석시에는 사극을 촬영할만한 영화촬영소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무석시에 있는 영화촬영소는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큰 맘 먹고 지은 촬영소입니다. 우시잉스청(無錫影視城)이라고 하잖습니까?”

“나도 가 보았습니다.”

“유명한 영화 소오강호와 사조영웅전도 여기 촬영소에서 찍었습니다. 거대한 호수 태호(太湖)변에 있는 촬영소이기 때문에 노량해전 같은 해전 촬영도 용이합니다.”

“그럼 모리에이꼬는 무얼로 나온다는 겁니까?”

“일본 장수의 애첩으로 나옵니다. 화살에 맞은 자기 애인을 대신하여 아녀자의 몸으로 전장에 나와 장렬하게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완전히 일본을 위한 역할을 합니다.”

“글쎄. 뭐 아이디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성공하겠어요?”

“성공을 저는 확신합니다.”

“더구나 노량해전의 주역인 이순신의 공이 가려져 쓰겠어요?”

“이순신도 나옵니다. 조선의 영웅으로 나옵니다.”

“어쨌든 이 문제는 나중에 봅시다. <몽환앵화>나 성공시키도록 노력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공항으로 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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