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52화 (452/501)

# 452

미우라 정밀 인수 (2)

(452)

구건호는 미우라 정밀의 사장과 공장장을 신사동 빌딩 건너편에 있는 일식집으로 안내했다.

“천안까지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얼른 식사를 하고 가지요. 길 건너편에 스시(초밥)집이 있습니다.”

“오, 이 근처에도 스시집이 있군요.”

구건호는 초밥을 시켰다. 식사를 하는 도중 지에이치 정밀의 박사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박사장? 나다.”

“아, 형. 일본 사람들 왔어?”

“왔어. 지금 같이 식사중이야. 밥 먹고 얼른 출발할게. 두시 안으로 가도록 할게.”

“거기 몇 사람 타고 오지? 통역을 하는 요시타카 선생까지 타면 차 안이 비좁겠는데?”

“할 수 없지. 뭐. 내가 앞좌석에 타고 나머지 세 사람은 뒷좌석에 타야지.”

“내가 기흥 휴게소로 나가지. 거기서 기다렸다가 내차에 나누어 타면 되잖아?”

“뭐, 그럴 필요야.”

“아냐, 내가 휴게소로 나갈게. 지금 출발할게. 휴게소에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느긋하게 커피 마시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알았다. 그럼 기흥휴게소에서 만나자.”

구건호가 미우라 정밀 사장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먹는 스시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아주 맛이 있습니다.”

주방장은 구건호 일행이 일본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특별 서비스를 해 주었다. 스끼다시가 많이 나왔다. 미우라 사장이 걱정스러운 듯이 요시타카 선생을 보고 말했다.

“음식을 그만 시키시죠. 식사 값 많이 나오겠습니다.”

요시타카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마음껏 드십시오. 스끼다시는 일본에서는 접시마다 돈을 받지만 여기서는 모두 공짜입니다.”

“오, 그래요? 쏘데스까? 몰랐네요.”

식사 후 모두 벤트리 승용차에 올라탔다. 구건호가 앞자리에 앉았다.

“뒤에 세분이 타서 불편하겠네요. 차가 밀리지 않으면 한 시간이면 도착 가능하니까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트리 승용차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일본 사람들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승용차가 기흥 휴게소에 도착했다. 박종석 사장이 나타났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미우라 소이치 사장님, 야나기 마사토시 공장장님.”

박종석을 보고 미우라 정밀의 사장과 공장장은 놀랐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멀리 일본에서 귀한 손님이 오니까 박사장이 직접 여기까지 마중 나왔네요.”

두 사람은 굉장히 고마워했다.

“이렇게까지 따듯하게 맞아주어 고맙습니다.”

구건호가 박종석의 차를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밴트리 승용차를 타고 먼저 직산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 공장을 들렸다. 미리 연락을 받은 송사장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송사장이 직접 현장을 안내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공장에서 질서 있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미우라 사장은 다소 감탄하는 눈치였다.

“훌륭합니다. 기계도 깨끗이 다루고 모두 숙련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송사장님이 관리를 철저하게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공장을 운영하는 구사장님도 존경스럽습니다.”

요시타카 선생도 공장을 보고 많이 놀랐다. 구건호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종업원이 많고 큰 공장인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지에이치 미디어는 여기의 한 부서도 못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 종업원이 몇 명이라고 하셨지요?”

“700명입니다.”

“하하, 우리 지에이치 미디어는 15명입니다.”

구건호도 그 소리에 웃고 말았다.

공장 투어를 마치고 나오면서 미우라 사장은 송사장에게 일본산 실크 넥타이 하나를 선물했다.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귀중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우라 사장은 일본인답게 고개를 몇 번이나 까닥거리면서 인사를 하였다.

일행들은 백석 농공단지에 있는 지에이치 정밀에 도착했다. 손님이 온다고 청소를 해서인지 공장은 평상시보다 깨끗했다. 현장에 너저분하게 있던 부품이나 공구들은 질서 있게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구건호가 속으로 웃었다.

[차식, 요즘 여기도 ISO14001과 TS16949 인증 취득한다고 하더니 부품 식별표시도 다 해놓았네.]

직원들은 일본인들을 곁눈질로 보면서 더욱 일을 열심히 하는 척 했다. 선반과 롤러를 작동시키고 아크 용접을 하는 척 했다.

미우라 정밀 사장은 공장 주위를 한번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실험장비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만져도 보았다. 못 보던 실험장비가 있어 구건호가 박종석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야, 저 실험장비는 못 보던 건데 새로 샀니? 여기서도 저걸 다루니?”

“헤헤, 모빌에서 잠깐 빌렸어. 일본사람 온다고 해서 잠깐 폼으로 갖다 놓은 거야.”

공장을 다 둘러본 미우라 사장이 박종석에게 말했다.

“저 트윈 스크류는 여기서 직접 깎은 겁니까? 여기서는 저런 걸 만들기가 어려울 텐데요?”

“저건 사온 겁니다.”

미우라 정밀 사장은 트윈 스크류를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 말했다.

“어디서 사온지는 모르지만 한국도 정밀기계 깎는 기술은 상당하네요.”

“한국 제품이 아닙니다. 미국에 있는 웨스트 몰딩사에서 가지고 온 겁니다.”

“오, 어쩐지. 웨스트 몰딩사라면 저도 압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회사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회사하고 보잉사 국제입찰에 경쟁했다가 우리가 밀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캄 샤프트를 납품하는 입찰이었는데 성능은 우리 것이 좋은 것 같았는데 가격에서 밀렸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생산하다보니 해상 운송비와 관세가 붙어 우리가 불리했었습니다. 그것만 터졌다면 우리도 좋았을 텐데.”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그럼 우리도 보잉사의 국제입찰에 참여가 가능 하겠네요.”

“캄 샤프트 분야에서는 해 볼만 합니다. 한국은 인건비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원가경쟁에서 유리하면 보잉사도 받아줍니다.”

일행들은 박종석의 안내로 지에이치 정밀 사장실로 들어갔다. 경리 여직원이 하얀 사기 컵에 녹차를 타 가지고 왔다. 일본 사람들이 온다고 해서 경리직원은 곱게 화장까지 한 것 같았다. 머리도 새로 한 것 같았다.

차를 마시면서 구건호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여기서 미우라 정밀에서 하던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장 크기나 전기용량은 여기 규모면 좋습니다. 인력도 12명이나 있다고 하니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직원들이 40대가 많은 것 같은데 일본보다는 젊은 것 같아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단지 우리 기계는 여기서 다루는 기계보다 좀 더 진보된 것이어서 오퍼레이터의 교육은 반드시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흠.”

“더구나 여기는 보니까 쇠를 깎는 작업보다는 조립 위주의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립도 기술은 기술이지만 직접 깎는 기술보다는 난이도가 덜합니다.”

“잘 보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지에이치 정밀에서 미우라 정밀을 인수한다면 상당기간 일본 기술자를 상주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 기간이라 함은 어느 정도를 말합니까?”

“적어도 3명이상 기술자를 6개월 이상 상주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구건호가 박종석 얼굴을 쳐다보았다. 박종석이 얼굴을 끄덕였다.

“잘 보셨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박종석은 바로 미우라 사장의 말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나는 기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기술자 상주문제는 미우라 사장님이나 여기 지에이치 정밀의 박사장이 모두 수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수한다면 그런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인수비용 문제입니다.”

“인수비용은 지난번에 내가 3억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대만도 구사장님과 같은 금액을 제시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만 업체는 재무구조가 너무 취약하고 공장도 지방 깊숙한 곳에 있어 여기보다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여기는 서울에서도 가깝고 평택항도 가까이 있습니다.”

“또 여기는 인수를 할 만한 기술 인력도 대만보다는 우수합니다. 더구나 여기는 세계적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 선생이 인정하는 박사장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에이치 정밀이 인수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내가 제시한 3억 원을 수용하시겠단 말씀입니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영업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30년 넘게 거래하던 이세하라 기계를 넘겨주는 조건입니다.”

“그럼 영업권은 얼마를 받겠다는 겁니까?”

“한화 1억을 제시합니다.”

구건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영업권 1억은 곤란합니다. 지에이치 모빌처럼 성형업체들은 꼭 그 회사에 납품하는 금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쇠를 깎는 미우라 정밀은 금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쇠를 곱게 깎는다는 것뿐인데 영업권이 가능하겠습니까?”

미우라 정밀 사장이 서류 하나를 내 밀었다.

“이것은 이세하라 기계가 인증한 품질 인증서입니다.”

“이것 가지고는 약한데요.”

“여기 이세하라의 공급계약서가 있습니다. 계약 조항에 을의 회사가 작업을 더 이상 못하는 사유가 발생할 때는 을이 지정하는 기술과 인력이 있는 회사가 승계할 수 있다. 단 잔여 계약기간만 효력이 발생한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잔존기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2년입니다.”

“흠.”

구건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10분간 휴식하고 다시 의논하시죠.”

“알겠습니다.”

박종석 사장은 밖으로 나와 담배만 피워댔다. 구건호가 박종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네 생각은 어떠냐?”

“글쎄. 생각지도 않은 영업권 문제가 튀어나오네.”

“영업권 주고 인수하는 게 좋으냐? 아니면 포기하는 게 좋으냐?”

“글쎄.”

박종석은 이렇게 말하고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야, 화끈한 박종석이 오늘은 어째 글쎄 소리만 하고 담배만 피우냐.”

“글쎄. 그것 참.”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다.

구건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무리해서 인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영업권 1억 원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영업권만 판다면 일본에서도 충분히 1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협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우라 사장이 한숨을 쉬고 박종석 사장도 한숨을 쉬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다 못한 요시타카 선생이 한마디 했다.

“제가 낄 자리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 중간선인 5천만 원은 어떻겠습니까?”

다들 눈만 반짝하고 또 말이 없었다. 침묵만 흘렀다. 마침내 미우라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말했다.

“좋소. 영업권은 5천에 합시다. 내가 지에이치 정밀 아니더라도 밥 못 먹고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서명하시면 오늘 계약금 보내드리겠습니다.”

미우라 사장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면서 말했다.

“아쉬운 감이 있지만 그렇게 합시다. 여기 계약서는 가지고 왔습니다. 이세하라 기계의 물품 공급 계약서도 가지고 왔습니다.”

“계약은 회사 인수방식이 아니고 기계를 우리가 구매하는 방법으로 합니다. 그게 간단하고 편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공작기계 매매계약서로 가지고 왔습니다.”

“흠.”

“계약서에 인도기한이나 하자 보수기간, 계약의 해지에 관한 사항이 나와 있습니다.”

“혹시 기계 리스트도 가지고 오셨나요?”

“물론입니다.”

옆에 있던 야나기 마사토시 공장장이 자기 가방을 열며 두툼한 서류를 꺼냈다.

“여기 기계 리스트입니다. 총 30가지입니다. 제작연도와 가격이 나와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작기계 감정평가서도 첨부했습니다.”

“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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