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
미우라 소이치 사장의 눈물 (3)
(447)
신쥬꾸 요정에서 술이 몇 순배 돌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사미센을 든 중년 여자 셋이 들어왔다. 그리고 기다리던 모리 에이꼬가 짙은 화장과 화려한 꽃무늬의 기모노를 입고 들어왔다.
술상은 정 중앙에 구건호가 앉고 좌우 양쪽에 박종석과 요시타카 선생이 앉았다. 박종석은 모리 에이꼬를 보고 감탄을 하였다.
“이 사람이 게이샤라는 겁니까? 정말 엄청 예쁘네요.”
모리 에이꼬는 의례 손님에게 대하듯 다다미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다다미에 집고 머리를 거의 바닥에 대며 말했다.
“모리 에이꼬 인사 올립니다.”
“흠, 오래간만이다. 모리 에이꼬.”
옆에서 있던 세가와 준꼬가 구건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사미센이 울리며 슬픈 가락의 곡이 울려 퍼졌다. <기원소패(祇園小唄)>라는 노래였다. 게이샤의 슬픈 사랑을 노래하는 곡이었다.
모리 에이꼬가 천천히 일어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박종석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달은 몽롱하게 히가시야마(東山)에 걸려있고
매일 밤 흐릿한 등불 아래 꿈에서도 망설이는 붉은 사쿠라.
남몰래 품은 연정을 기모노의 옷자락 후리소데(振袖)속에 넣고
아, 게이샤의 사랑아, 힘없이 늘어트린 오비(帶:허리띠)여.]
구건호가 듣기에도 참으로 청승맞은 가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안경을 벗더니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런 요시타카를 보고 세가와 준꼬도 눈물을 흘렸다.
“요시타카 선생님 제 술 한잔 받으세요.”
요시타카는 세가와 준꼬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마셨다.
“저도 한잔 주셔야지요.”
마마상 세가와 준꼬는 영업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옛 사랑이 생각나는지 한때 연인이었던 요시타카 선생에게 한잔 따라 줄 것을 요청했다.
세가와 준꼬는 술을 한잔 마시더니 부채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사미센 소리에 맞추어 <기원소패>의 2절을 모리 에이꼬와 함께 춤을 추었다. 20대 초반의 요정 같은 여자와 40대 후반의 농익은 요염한 여자가 둘이서 사미센 반주에 맞추어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새하얀 목덜미를 부채로 가리고
감추었던 눈물이 구찌베니(입술연지)를 적시네.
아, 게이샤의 사랑아, 힘없이 늘어트린 오비(허리띠)여.]
세가와 준꼬는 정말 울고 있었다. 놀랍게도 모리 에이꼬도 울고 있었다. 이들은 둘이 똑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우는 것 같았다.
세가와 준꼬는 신문사의 젊은 기자 요시타카의 구애를 거절하였었다. 게이샤가 돈 없는 평범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금물이었다. 이렇게 되면 게이샤를 키워준 기원의 부채를 갚지도 못한다. 결국 세가와 준꼬는 아버지뻘 되는 광산회사 사장이 머리를 얹어주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었다.
모리 에이꼬 역시 구건호의 곁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30대 후반의 처자식이 있는 구건호와 20대 초반의 모리 에이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미센 소리는 어느덧 3절을 향하고 있었다. 구건호의 눈에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모리 에이꼬의 눈물이 붉은 그의 입술을 적실 때 정말 눈물이 났다.
박종석도 요염한 두 여자의 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춤이 끝나자 구건호가 박수를 쳤다.구건호가 박수를 치는 것을 보고 요시타카 선생과 박종석도 박수를 쳤다. 사미센을 반주하던 중년여성 세 명이 나가고 모리 에이꼬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에이꼬, 내 옆에 앉아라, 오빠 술 한 잔 따라주고 가야지.”
“에이꼬가 다다미에 무릎을 꿇은 채 세가와 준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세가와 준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자 모두 울어서 그런지 얼굴의 하얀 분단장이 얼룩이 져있었다.
모리 에이꼬는 무릎걸음으로 구건호에 다가와 방긋 웃으며 술을 따랐다.
“오빠 언제 왔어?”
“어제 왔다. 사업상 왔다가 여기 들린 거야.”
박종석은 놀랐다. 방금 춤을 추던 천상의 선녀 같은 여자가 구건호에게 한국말로 ‘오빠 언제 왔어?‘ 하는 것이 아닌가!
박종석은 비로써 알게 되었다. 구건호가 여기를 자주 다니고 모리 에이꼬라는 미모의 여자가 구건호의 숨겨 논 애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건호 형이 대단한 실력자네. 나보고 디욘 코리아의 우리사주 실권주를 사라고 하고 지에이치 정밀을 만들라고 하고 하는 것을 보면 역시 형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야.]
[거기다가 유창한 중국말을 하면서 중국서도 사업을 벌이고, 일본서도 이런 미인들과 어울리고 뭘 하는 것 같으니 나 같은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쫓아갈 것 같네. 건호 형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어쩌면 나한테는 큰 행운일 수가 있어.]
구건호에게 술을 따라준 모리 에이꼬가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대며 절을 했다.
“모리 에이꼬 물러가겠습니다.”
모리 에이꼬가 방을 나가자 요시타카 선생이 마마상 세가와 준꼬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소, 세가와 준꼬. 내가 술상을 받아놓고 준꼬의 <기원소패> 춤을 감상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뜻밖에도 소원을 풀었소.”
“오늘 제가 화장도 하고 꽃무늬 기모노를 입은 것은 모두 요시타카 선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요시타카 선생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소.”
요시타카 선생은 준꼬의 잡은 손을 더욱 힘차게 쥐었다.
10월 중순이 되었다.
구건호는 계속 직산과 아산을 내려가지 않고 신사동 빌딩 사무실에서 디욘 코리아 주식의 움직임만 관찰했다. 주식은 구건호가 판 이후로 계속 빠지더니 이제 사자와 팔자의 세력도 줄어들고 공모가인 26,200원 근방에서 횡보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원 위치 찾아왔군.]
주식 유통 물량도 많지 않은데 모두 사자나 팔자의 세력이 없으니 하루 거래량은 1만주도 못되었다. 종목토론방에 올라오는 글도 뜸했다. 간혹 올라오는 글은 액면 분할하라는 소리밖에 없었다.
“야, 구건호! 주가 부양 안 할 거야?”
“이러려면 왜 상장했냐?”
“액면 분할해라. 그래야 유통 주식이 늘지. 이렇게 거래가 없어 어떻게 할 거냐?”
“유통 물량 없으면 이 회사는 상장 폐지 시켜라.”
구건호는 승희누나 증권계좌로 다시 돈을 보냈다. 한꺼번에 보내지 않고 분할해서 보냈다. 그리고 승희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승희 누나? 나 구건호입니다.”
“오, 그래 구사장.”
“혹시 지난달에 증권사에서 전화 같은 것 없었어요?”
“왜, 있었지.”
“뭐라고 그래요?”
“단주매매 같은 것 하지 말라고 한번 전화 왔었어. 단주 매매는 나도 전에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냥 예, 알겠습니다 하니까 그 후로 전화 없던데?”
“하하, 그렇습니까?”
“아 참, 한 번 더 있었다. 증권사 지점장이 직접 전화를 했었어. 돈을 왜 빼 가냐고 하면서 좋은 종목을 추천하겠다고 해서 내가 돈이 좀 쓸 일이 있다고 했어. 그런 것 까지 일일이 내가 구사장에게 신경 쓰게 하면 되겠어? 내 선에서 처리해야지.”
“하하, 고맙습니다. 연말에 수익률 환산해서 남은 것 있으면 제가 보답은 해 드리겠습니다.”
“보답은 무슨! 됐어. 지에이치 정밀 화재보험 들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하여튼 내 계좌가지고 열심히 주식거래 해봐. 난 재미를 못 봐서 이제 주식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데 구사장은 아는 것도 많으니 한번 잘해봐.”
“고맙습니다.”
“구사장은 돈 많으니 한 1억 가지고 하나? 너무 많이는 하지 마. 나처럼 돼.”
“명심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웃었다.
[승희 누나가 나중에 자기계좌 보면 놀라겠네. 100억 정도가 왔다 갔다 했으니 말이야. 이번에도 이익실현을 한다면 양도세는 신고해 줘야겠네. 주식이야 거래세가 있어 세금 문제는 없지만 이익이 20억 이상이라면 문제는 되겠지. 양도세가 발생하겠지.]
[세금문제는 자진신고 해서 승희 누나가 불이익이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 놓아야겠지. 큰돈이 움직일수록 세금 문제는 깨끗해야 하니까. 나중에 차명계좌 이용으로 거래했다고 시끄럽게 굴면 과징금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지.]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은 차명계좌가 무려 1천개가 넘는다고 했지? 어마어마하네. 나는 이번만 승희 누나 계좌 이용하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연말에 승희 누나도 내가 보상을 좀 해주면 어려운 형편에 고마워하지 않겠어?]
구건호는 디욘 코리아 주식을 26,000원대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구건호가 1만주 정도 사들이니까 주식이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나오는 물량이 없으니까 조금만 사자 주문을 내도 주식이 올라갔다.
“벌써 3만원 올라갔잖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3만원이 넘어가는 주식을 사들일 필요는 없지.”
구건호는 자기가 산 1만주를 야금야금 다시 팔아 치웠다. 주식은 26,000원 이하로 곤두박질 쳤다. 구건호는 그러면 다시 또 사들였다.
구건호가 한참 주식거래를 하고 있는데 디욘 코리아의 김전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통화 가능합니까? 김전무입니다.”
“예, 가능합니다.”
“인도의 노이다 지역과 중국의 천진 지역에 각각 계약할 공장을 찾았습니다. 인도는 이종근 부장이, 중국 천진은 딩딩이 알아본 공장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두개 다 부지 5천평 내외이고 건물은 3천평 내외입니다. 공장을 신축한지 10년 미만짜리들이라 바로 들어가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전기 용량도 충분합니다.”
“아직 계약은 안했지요?”
“그럼요. 계약은 사장님 승인을 받고 해야지요. 공장 전경 사진은 제가 바로 카톡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무님이 직접 가본 데는 아니지요?”
“인도는 지난번 출장 갔을 때 본 공장입니다. 첸나이 지역의 공장과 비슷합니다. 중국은 이야기만 듣고 사진은 받았지만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인도는 매입대금이 얼마나 합니까?”
“32억입니다.”
“인도는 전무님이 직접 가본 데니까 이종근 부장에게 이야기해서 계약하라고 하세요. 계약금은 상임감사한테 이야기해서 외화송금 하라고 하세요.”
“사장님 사진 안보시고 결정하실 겁니까?”
“전무님 보셨으면 됐습니다.”
“중국은 어떻게 할까요?”
“중국은 전무님이 직접 천진 공장을 한번 보고 오세요.”
“제가 가도 좋지만 중국은 애덤 캐슬러를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애덤 캐슬러가 간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애덤 캐슬러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김전무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주식 시세판을 보고 있는데 이번엔 아래층 미디어에 근무하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요시타카입니다.”
“예, 구건호입니다.”
“방금 일본서 전화가 왔었는데 미우라 정밀의 사장이 한국엘 한번 오겠답니다.”
“그래요?”
“한국에 와서 지에이치 정밀도 한번 들려보고 구사장님과도 다시 만나 할 이야기가 있답니다.”
“오는 거야 뭐 그 사람들 자유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올 때 미우라 정밀의 공장장 야나기 마사토시란 사람하고 같이 오겠답니다.”
“알겠습니다. 오면 내가 지에이치 정밀 공장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숙박편의는 요시타카 선생이 봐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에이치 정밀 공장을 갈 때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도 동행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날짜를 한번 맞추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