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46화 (446/501)

# 446

미우라 소이치 사장의 눈물 (2)

(446)

구건호 일행은 간나이 역에서 멀지 않은 노게 오뎅 집으로 갔다.

“이 집이 100년이나 되었다니!”

“이 집이 메이지36년(1903년)에 생겼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음식은 단출했다. 다진 닭고기나 삶은 무, 오뎅 같은 것들이 나와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같았다. 그래서 사카다 이쿠조 선생이 이 집을 추천한 것 같았다.

“밥의 색갈이 왜 이렇지?”

“차메시(茶飯)라 그렇습니다. 찻물로 지은 밥입니다.”

“어쩐지...”

사카다 이쿠조 선생이 박종석에게 물었다.

“그럼 지에이치 모빌을 그만 두시고 따로 지에이치 정밀을 차린 거요?”

“예, 그렇습니다. 창업자금의 80%는 구사장님이 투자하셨고 제 지분은 20%입니다. 디욘 코리아 기계장비를 납품합니다.”

“기계장비를? 트윈 스크류는 제작이 불가능할 텐데?”

“트인 스크류만 수입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부품을 사다가 만듭니다.”

“호, 그러시군. 그건 할 수 있겠지. 그런데 트윈 스크류 생산 공장은 디욘 본사에서 잘 안 가르쳐 주는데?”

“우리가 겨우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디욘 코리아 납품가격보다는 좀 비싸게 들여오고 있습니다. 대신 인건비나 다른 부품에서 원가 절감하고 있습니다.”

“흠, 그러시구나. 그럼 스크류는 어떤 회사에서 들어오나요?”

“시애틀에 있는 웨스트 몰딩입니다.”

사카다 이쿠조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이쿠조 선생에게 물었다.

“오뎅이 담백하고 맛이 좋습니다. 밥도 좋고 절임배추도 좋고 된장국도 시원합니다.”

“하하, 그래요? 많이 드세요. 그리고 구사장님은 미우라 정밀의 기계장비를 인수할 의사는 있는 겁니까?”

“글쎄요. 그것은 먼저 박종석 사장이 결정해야겠지요. 제가 기술을 모르니까 기술적 검토가 먼저 따라야 하겠지요.”

박이사가 오뎅 국물을 마시고 나서 말했다.

“기계가 많이 자동화가 되어있어서 조금만 배우면 장비는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 계신 분들은 나이도 많으신 분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최신식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체 제작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우라 정밀 사장 미우라 소이치도 나처럼 어려서 가난했습니다. 우리 같은 단카이 세대들은 당시 물자가 부족해 많이 어려웠었습니다. 소이치도 공고 실습생으로 거길 들어가 선배들에게 매를 맞아가며 기술을 배웠습니다.”

“매를 맞아요?”

“지금은 그런 풍조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많이 맞고 배웠습니다. 특히 기계를 다루는 건 위험하기도 해서 조금만 실수하면 안전 문제가 따르잖습니까? 그래서 사정없이 뺨을 맞곤 했습니다.”

“그랬나요?”

“지금은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 맞은 사람은 당장 회사 그만두고 집으로 가버립니다. 하하.”

“집에 가는 게 아니라 때린 사람을 발로 걷어차고 가겠지요.”

이쿠조 선생은 된장 국물을 맛있게 떠먹고 나서 다시 말했다.

“구사장님, 혹시 한국인 방적업자 서갑호씨를 아십니까?”

“서갑호씨요? 잘 모르겠네요.”

“판본방적 사장이었습니다.”

“판본방적이요? 일본회사입니까?”

“아닙니다. 한국의 영등포에 있던 회사입니다. 나중에 방림방적으로 회사 이름을 고친 회사입니다.”

“방림방적도 처음 들어봅니다.”

“세대가 다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그러면 서울 영등포에 있는 타임스퀘어를 아십니까?”

“알지요. 거기 가서 옷도 사고 그랬던 적이 있는데요.”

“그 자리가 바로 방림방적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그래요?”

“제가 왜 서갑호씨 이야기를 하나 하면, 그 사람이 수없이 일본인한테 맞아가며 방적기술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흠, 그랬나요?”

“나중에 사장이 되었을 때 그의 몸은 가죽혁대로 맞아 생긴 상처가 온몸에 지네가 기어간 것처럼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가요?”

“서갑호씨는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절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와 오사카에서 방적 기술을 배운 사람입니다. 잇쇼겐메이(一生懸命)를 나보다 먼저 한 분이지요. 마침내 그는 오사카의 판본(阪本)방적의 사장이 되었고 한국의 영등포에 방림 방적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랬나요?”

“기술을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미우라 소이치가 이제 늙어 신장질환으로 투석을 받는 신세가 되고 기계를 매각한다니 저도 실상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 기술들이 내가 좋아하는 후기지수(後起之秀) 박종석 사장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흠.”

“기계를 팔고 접는다는 말을 나에게 하고는 눈물을 짓던 죽마고우 미우라 소이치를 보고 나도 눈물이 났었습니다.”

구건호와 박종석은 똑같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지에이치 모빌이나 지에이치 정밀의 생산 기계 장비를 판다면 똑같이 눈물을 흘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은 이쿠조 선생의 비장한 말에 모두 숙연해져서 오뎅만 먹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네프킨으로 입을 닦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쿠조 선생님이나 박종석 사장님을 보면 꼭 사무라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그냥 사무라이가 아니고 미야모도 무사시같은 뛰어난 검객 같은 이미지가 듭니다.”

이쿠조 선생도 웃으며 말했다.

“나도 니텐이치류(二天一流) 검술의 명인(名人) 미야모도 무사시를 좋아합니다.“

일행들은 식사 후 이쿠조 선생을 자택이 있는 모토마치에 내려주었다.

“저희는 이제 호텔로 가겠습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십니까?“

“아닙니다. 하루 동경 관광을 하고 갈 겁니다. 박종석 사장이 동경구경을 못해서 시켜줄까 합니다. 이쿠조 선생도 같이 동행해도 좋습니다.

“하하, 저는 여기에 남겠습니다. 관광 재미있게 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미우라 정밀을 인수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은 저희들도 한국에 가서 좀 더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일행들은 요꼬하마 항구가 보이는 로얄 파크호텔로 출발을 했다.

다음날 일행들은 동경으로 왔다.

먼저 도꼬 타워도 올라가보고 한국인에게는 원한에 사무친 야스쿠니신사도 가보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구건호가 요시타카 선생에게 말했다.

“요시타카 선생은 신쥬꾸의 마마상 세가와 준꼬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거기엔 요시타카 선생의 옛 연인이 있고 또 나의 연인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 사장님은 한창 진행형이지만 저는 옛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왔으니 만나고 가세요.”

“만나면 뭘 합니까? 요정에서 호기롭게 술 한 잔하고 매상 올려줄 것도 아닌데요. 제 신분으론 그런데 가기 어렵습니다.”

“예약하세요. 오늘 저녁 거기로 가지요.”

“옛? 사장님이요?”

“나도 모리 에이꼬를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야 그렇지만 저까지.....”

“셋이 다 같이 가지요. 요시타카 선생이 예약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박종석이 옆에서 듣고 말했다.

“형, 지금 요시타카 선생하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요정 어쩌구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음, 박종석 사장도 동경에 왔으니 일본 요정에 한번 들리자고 했어.”

“요정?”

“남자가 태어났으니 일본 요정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

“한국 요정도 한번 가려면 엄청 비쌀 텐데 일본 요정은 더 비쌀 것 아니야?”

“비싸지. 그러니까 내가 가자는 거야.”

“싫어. 그런데 가면 괜히 바가지 써.”

“요시타카 선생이 잘 아는 집이라고 했어. 바가지 쓸 염려가 없는 집이야.”

박종석이 요시타카 선생에게 물었다.

“요시타카 선생님, 일본 요정에는 한번 가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요?”

“글쎄요. 한국에 룸싸롱 가는 것 보다는 더 들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고급 음식도 나오고 가무를 하는 사람들도 나오는데 말입니다.”

“가무도 있어요?”

“사미센 음악에 맞추어 하는 게이샤 오도리도 있는데요.”

“게이샤 오도리? 와, 한번 가보고 싶다. 그런데는 아마 나보다 훨씬 잘났던 조원철, 황병철, 이석호 같은 형들도 못 가봤을 거야. 그런데 돈이 많이 든다니 어디 가겠어?”

그러면서 박종석은 구건호의 눈치만 보았다.

구건호는 미소를 지으며 박종석을 쳐다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놈아. 이번에 내가 디욘 코리아 주식을 사고팔고해서 한 달도 안 되어 65억을 벌은 사람이다. 일본 요정 몇 개는 사고도 남는다.]

구건호는 박종석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마라. 내가 아무려면 사랑하는 아우 박종석 사장에게 일본 요정 구경 한번 못시켜주겠냐? 못한다면 인간 구건호가 아니지.”

“정말이야? 헤헤.”

요시타카 선생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유창한 일본말로 통화를 했다. 아마 마마상 세가와 준꼬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요시타카 선생은 굉장히 씩씩하게 전화를 했다.

“마마상과 통화가 되었습니까?”

“통화가 되었습니다. 구사장님이 손님으로 간다니까 깜짝 놀라네요.”

“그래요?”

“어떻게 된 여자가 옛 연인 나보다는 구사장님이 온다니까 더 놀라네요.”

“하하, 그래요?”

“모리 에이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했습니다. 손님도 있고 하니 다른 손님 대하듯이 와서 게이샤 댄스를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저녁 6시가 넘어 세 사람은 아이시스 렌트카를 타고 신쥬꾸에 있는 요정엘 갔다.

“이라샤이 마세(어서 오세요).”

마마상 세가와 준꼬는 오늘 옅은 화장을 하고 화사한 옷을 입었다.

“오래간만입니다. 마마상.”

“구사장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다다미방으로 올라오시죠.”

세 사람이 다다미방에 앉자 다시 세가와 준꼬가 손을 다다미에 집고 절을 하였다. 아마 처음 보는 박종석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마마상 세가와 준꼬라고 합니다.”

박종석은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몰라 자기도 다다미에 두 손을 집고 인사를 하려고 하였다. 구건호가 얼른 박종석의 뒷덜미를 잡고 말했다.

“너는 그대로 앉아 있어.”

세가와 준꼬가 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구건호는 그동안 모리 에이꼬와 연애를 하느라고 일본어를 약간 배운 적이 있었다.

“마마상이 옷을 그렇게 입으니까 10년은 더 젊어 보이십니다. 옛날 날렸던 그 미모가 살아나는 듯합니다.”

“별 말씀을. 이 기모노의 꽃무늬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좋아하는 무늬라서 새로 꺼내 입었습니다.”

이 말에 요시타카 선생이 굉장히 좋아하였다. 아마 옛 추억이 생각났는지 금방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일본 전통 음식이 나오고 일본 술 사케가 나왔다.

“오늘 술은 쿠보타만쥬라는 사케입니다. 옛날 요시타카 선생이 좋아했던 술입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요시타카 선생이시네요. 오늘 술값은 요시타카 선생이 내세요.”

“제, 제가요? 저 돈 없습니다.”

이 말에 모두 웃었다. 마마상 세가와 준꼬는 입을 막고 웃었다.

세가와 준꼬가 제일먼저 구건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번에 모리 에이꼬를 중국 영화에 출연시켜주어 고맙습니다. 이 어려운 때 출연료도 한꺼번에 받게 되어 기쁩니다. 모리 에이꼬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허허, 뭘요. 영화 흥행이나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구사장님이 많이 투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술은 성공을 비는 잔입니다.”

박종석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줄 몰라 눈만 껌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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