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45화 (445/501)

# 445

미우라 소이치 사장의 눈물 (1)

(445)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 사카다 이쿠조 선생이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 박종석 선생!”

사카다 이쿠조와 박종석은 서로 반가운지 얼싸 앉았다.

“사쪼상(사장님)도 오래간만입니다. 요시타카 선생도 오래간만입니다.”

구건호가 이쿠조 선생을 보니 아직도 건강하고 꼬장꼬장해 보였다. 멜빵달린 바지에 베레모 비슷한 모자를 쓰고 나왔다. 엔지니어 기술자가 아니고 그림 그리는 예술가 같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뵈니 반갑습니다.”

구건호의 말에 이쿠조 선생은 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디욘 코리아가 이번에 빠브리끄 캄페니 (Public Company: 상장회사)가 되었다니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주위에 계신 분들 덕택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구건호가 웃었다. 구건호는 이쿠조 선생이 퍼브릭을 빠브리끄라고 발음하는 것이 우스웠다.

구건호가 자기 신용카드를 꺼내 요시타카 선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렌트카를 빌려 보세요.”

“하잇, 알겠습니다.”

“공항에 렌트카가 있지요?”

“토요타 렌트카가 있습니다.”

잠시후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아이시스(ISIS) 미니 벤을 빌려왔다. 운전기사까지 데리고 왔다. 구건호는 차가 참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꼭 일본사람 같아.]

렌트카의 문은 슬라이딩 도아였다. 네 명이 함께 타고 짐은 트렁크가 작다고 해서 빈 의자에 실었다.

“다까다니시로 가주세요.”

앞자리에 탄 이쿠조 선생이 길 안내를 하였다.

구건호가 차창 밖 풍경을 보다가 요시타카 선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차 이름 아이시스가 무슨 뜻입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기사 양반에게 물어보지요.”

요시카카 선생이 운전을 하고 가는 50대 기사에게 물었다.

“도라이버상(기사님), 아이시스가 무슨 뜻이요?”

“아이시스요? 이지쁘또(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신 이름입니다.”

차가 한참을 달려 다까다니시로 왔다.

“저 앞의 로타리에서 좌회전 하세요. 저 앞의 두 번째 공장이에요.”

연락을 받았는지 공장 정문 앞에 작업복을 입은 노인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노인 두 사람은 비록 작업복을 입었지만 아주 단정해 보였다. 공과대학의 원로 교수같은 인상이었다.

“어서 오시게 이쿠조.”

“잘 있었나? 미우라 소이치(三浦壯市).”

서로 친구지간인 이쿠조 선생과 미우라 소이치는 반갑게 악수를 하였다. 이쿠조 선생은 구건호를 소개했다.

“한국 지에이치 모빌의 대표이사 구건호 사장님이네. 이쪽은 미우라 정밀 사장입니다.”

구건호가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60대 후반의 사장이 30대 후반의 구건호에게 크게 허리를 굽혀 맞절을 하였다. 서로 머리를 부딪칠 뻔하였다. 일본인들은 역시 인사를 공손히 하였다.

“이분은 지에이치 모빌의 공장장이었던 박종석 선생이야. 지금은 지에이치 정밀의 사장이지.”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이 분은 같이 오신 한국 지에이치 미디어의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네.”

“일본인이군요 반갑습니다.”

미우라 정밀 사장은 옆에 나이든 남자를 소개했다.

“미우라 정밀의 공장장 야나기 마사토시 선생입니다.”

서로 똑같이 또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미우라 사장은 일행을 인솔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은 크지 않았다. 지금 박종석이 있는 농공단지 공장보다 작으면 작았지 크진 않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앞에 기계 앞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베어링이나 볼 스크류를 만들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캄 샤프트 같은 것을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아, 그것은 저쪽에서 만듭니다.”

박종석은 작업하는 기계들이 진동과 소움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직감적으로 자기(磁器) 롤러임을 알았다.

“자기롤러이군요.”

“그렇습니다. 자기 베어링롤러입니다.”

“이 기계는 어느 회사에서 만든 겁니까?”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오, 그렇습니까?”

박종석이 주위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작은 소리로 박종석에게 말했다.

“괜찮니?”

“좋은데? 기계가 고속으로 돌아가는데 소리가 안나.”

“저 사람들 저쪽으로 간다. 작업장이 또 있는 모양이다.”

새로 가본 작업장은 CNC(컴퓨터 활용 가공) 선반이 있었고 보링 기계들이 있었다. 자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밀링 보조기계들도 있었다. 캠 샤프트는 여기서 만드는 모양이었다. 작업자들은 나이들이 많아보였다.

구건호가 박종석에게 물었다.

“어떠냐? 인수 할 만 하냐?”

“글쎄. 나는 수공으로 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전부 자동화 기계들이네. 젊은 사람들이 해야 될 일들인데 나이든 분들이 하네.”

“이 기계들 떼어서 지에이치 정밀에 설치하면 어떻겠냐?”

“나 혼자 못해. CNC선반 가공 기술자들 채용해야 하고 여기 일본인들이 우리 공장에 와서 몇 달 기술 지도도 해주고 그래야 돼.”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욕심은 나는데....”

“욕심나면 하자.”

“만드는 건 세월이 가면 배우겠지. 하지만 영업이 문제야. 디욘 코리아의 김전무 같은 사람이 있어야 돼.”

“그래?”

“김전무는 공과대학을 나온 사람은 아니지만 몇 십 년 영업을 하다보니까 기술도 이론적으로는 잘 알아. 거기다가 타고난 구라까지 까니 상대방들이 안 넘어가겠어?”

“영업이라....”

요시타카 선생이 구건호에게 와서 말했다.

“미우라 사장이 사장실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합니다.“

“그럴까요?”

일행들이 미우라 사장실로 갔다.

사장실은 옛날식 오동나무 책상이 있었고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실용 탁자가 있었다. 일행이 의자에 앉자 일본 전통차인 말차가 나왔다.

미우라 사장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공장이 작고 협소합니다. 오셔서 실망을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공장이 깨끗하고 기술력도 우수해 보였습니다. 특이 소음이 없는데 놀랐습니다.”

“여기도 10년 전만 해도 소음 때문에 주민 민원이 많았습니다. 소음 잡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소음 잡고 나니까 이렇게 늙어버렸네요. 허허.”

미우라 사장은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구건호가 질문을 했다.

“실례지만 매출은 어느 정도 올리고 있습니까?”

“12명 직원이 미화 7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립니다.”

“제품이 주로 어디에 들어갑니까?”

“도요타 자동차에 들어갑니다.”

“직납입니까?”

“직납은 아니고 이세하라(伊勢原)기계를 통해서 들어갑니다.”

“이세하라 기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근방에 있습니다.”

“12명 직원이 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면 그런대로 이익이 나는듯한데 공장을 왜 처분하려고 합니까?”

“제가 몸이 아픕니다. 현재 신장이 나빠 투석 중에 있습니다. 이제 공장을 할 만큼 했으니까 처분하고 쉬고 싶습니다.”

옆에 있던 이쿠조 선생이 말했다.

“네가 아마 이 공장을 19살 때부터 했지?”

“그랬지. 공고를 나와 19살 때부터 여기서만 평생 일했으니까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지났네.”

“여기서만 50년입니까?”

“그렇습니다.”

구건호와 박종석은 갑자기 숙연해 졌다. 그리고 한자리에서만 50년을 일했다는 미우라 사장에게 존경심이 갔다.

“내가 공고 3학년 때 실습생 신분으로 여기에 와서 일하다가 48세 때 전임 사장으로부터 이 공장을 인수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장노릇 한지도 20년이 넘었네.”

이렇게 말하는 미우라 소이치 사장의 눈가에 물기가 잡히는 듯 했다.

“아드님이 인수할 생각이 없다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예술을 하고 있어 공장에는 흥미가 없는 모양입니다.”

“직원들 분 중에는 인계 맡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아까 보셔서 알지만 전부 60대입니다.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 후반입니다. 그냥 월급쟁이로 있는 게 낫지 골치 아프게 사장을 맡지는 않겠답니다. 또 생각이 있다 해도 인수자금 때문에 피하는군요.”

“대출받아서 인수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쪽 지역이 재개발되어서 공장을 옮겨야할 입장입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인수받을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없네요. 60세가 넘어 대출까지 받아가며 사업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만약에 한국으로 넘긴다면 이세하라 기계에 납품은 유지할 수 있는가요?”

“이세하라 사장도 제 친구입니다. 거기는 다행히 규모도 있고 아들이 또 인수 받는다고 해서 상무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복이 많은 친구지요. 며칠 전 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이 공장을 한국이나 대만에 넘긴다면 납품을 받아주겠냐고 했더니 품질과 가격이 지금과 같은 수준이면 받겠다고 했습니다.”

“넘긴다면 얼마에 넘기실 예정입니까?”

“허허, 글쎄요.”

구건호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이 공장의 토지와 건물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고 기계장비와 약간의 재고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입니다. 거기다가 기술지도비를 포함한다고 해도 그리 높은 가격은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구사장님 생각에는 얼마를 예상합니까?”

“하하, 저보다는 이곳 물가를 잘 아시는 미우라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미우라 사장이 머리를 긁고 있는 동안 옆에 있던 박종석이 스마트폰에 얼른 글자를 적어 보여주었다. 박종석이 적어준 글자에는 3억이란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글쎄요. 저는 50만 달러를 받고 싶습니다.”

구건호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 매각대상 기계 리스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습니까?”

옆에 있던 공장장이란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있습니다.”

공장장이 서류를 가져와 구건호에게 주었다. 구건호와 박종석이 같이 서류를 보았다. 구건호가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기계들 연식이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기술개발에 대한 프레미엄과 기술지도료를 얹혀 드린다고 해도 30만 달러를 넘어가지 못할 것 같네요.”

“30만 달러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르네요.”

“잘 알다시피 일본과 한국은 자유 무역협정이 맺어진 나라도 아닙니다. 수입 관세율이 아주 높습니다. 저도 일단 돌아가서 한국 관세청에 HS코드(Harmonized System Code: 통일상품 분류기호)를 알아봐야 합니다.”

“우리들도 대만기업과 한번 판매조건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만기업은 내일 여기에 오기로 하였습니다.”

“대만 측과의 협상은 자유입니다. 누가 되든 서로 인연이 있으면 양도양수가 가능하겠지요. 인연이 닿기를 바랄뿐입니다.”

구건호 일행은 미우라 정밀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요꼬하마 시내 쪽으로 나왔다.

“이쿠조 선생이 살고계신 모토마찌 쪽에 가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그럽시다. 간나이의 노게(野毛)오뎅 집으로 갑시다. 100년도 넘은 식당입니다.”

“100년요?”

구건호와 박종석은 서로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식당이 잘되나요?”

“잘됩니다. 잘되니까 100년도 넘었지요.”

“한국에선 불가능합니다.”

“왜요? 식당은 맛만 좋으면 오래가지 않습니까?”

“한국은 식당이 잘되면 바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립니다. 한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지요. 그래서 오래된 가게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세상에. 서로 윈윈하는 작전은 쓰지 않나요?”

“그래서 건물주와 세입자의 빈부 간격은 점점 커집니다. 하루 밤 자고나면 건물 부동산 값도 올라가니까요.”

“아니, 인구가 줄어드는데 건물 값이 올라가요? 일본은 떨어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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