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8
자사주 매집 시작 (1)
(438)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밍쉬엔이라는 음식점에서 나와 상하이의 와이탄(外灘)으로 갔다. 어느덧 어둠이 깔렸다. 와이탄에는 황포강이 흐르고 고층빌딩이 많아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구건호가 모리에이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좋지?”
“응.”
와이탄은 옛날 조계지가 있었던 곳이므로 옛날 건축물들도 있었다. 상해시 정부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도시 미화를 위해서인지 고건물에 형형색색의 전등을 달아 환상적 분위를 연출해 주었다.
모리 에이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와이탄의 밤거리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고혹적이라 구건호는 그만 에이꼬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였다.
“사랑해, 에이꼬.”
에이꼬는 눈을 감았다. 에이꼬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구건호의 코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구건호는 에이꼬의 손을 잡고 걸었다.
10월이라 낮의 기온은 좋은데 밤공기는 차가왔다. 구건호가 에이꼬의 손을 더욱 꼭 쥐고 말했다.
“추워?”
“아니, 괜찮아요.”
“출연료는 다 받았어?”
“어제 받았어요.”
“얼마나 받았는데?”
“15만불 넣어준다고 했어요.”
“그럼 그동안 5만불만 주었었나?”
에이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동안 5만불만 주고 사람 부려 먹었구나.”
“주었으니 됐어요.”
에이꼬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출연료 같은 것은 세가와 준꼬와 얼마의 비율로 나누나?”
“마마상이 저한테 많이 주어요.”
“얼마나 주는데?”
“로꾸지 빠센토 (60%)요.”
“흠, 그래?”
한참 가다가 구건호가 다시 물었다.
“나누는 건 몇 살까지 하지?
“싼쥬 마데(30살 까지).”
에이꼬가 웃으며 손가락 3개를 펴보였다. 상민이가 딸랑이를 흔들며 까르륵 거리는 표정이 생각나 또 에이꼬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건호와 모리 에이꼬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부지런히 벌어야겠구나.”
에이꼬는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30세가 넘으면 아무래도 춤추는 게이샤의 입장에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탄에서 그랜드 센트럴 호텔까지는 멀지 않았다.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였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손을 잡고 호텔까지 왔다. 호텔 도어맨이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에이꼬 룸은 몇 층이지?”
“8층.”
“내방에 가서 더운 차 한 잔 하자.”
구건호는 에이꼬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오빠 방은 넓고 좋네.”
“그래 앉아. 오빠가 차를 타 줄게.”
구건호는 호텔 샵에서 산 용정차를 조금 덜어 차를 끓여 주었다.
“호텔에 있는 오룡차보다는 맛이 좋을 거야. 마셔봐.”
“차 맛 좋은데?”
에이꼬는 차 맛이 좋은지 물을 더 부어달라고 요청했다.
“여기 호텔 냉장고에 맥주도 있어. 한잔 할까?”
에이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냉장고에서 캔 맥주와 땅콩 같은 안주를 꺼냈다. 둘은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구건호가 에이꼬의 옆모습을 보았다. 속눈썹이 긴 그의 얼굴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에이꼬는 의외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혼자 무엇을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말이 없던 에이꼬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오빠 결혼 했지?”
“겨, 결혼?”
구건호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구건호는 어떻게 대답할까 난감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지?”
구건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으나 모리 에이꼬는 굳은 표정이었다.
“이 나이에 결혼을 안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럼, 아이도 있겠네.”
구건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 에이꼬가 와락 구건호를 껴안고 말했다.
“그럼, 우리 오타루에 못 가는 거야?”
“오타루? 한번 갈수는 있지만 오빠는 사업하는 사람이라 거기서 살수는 없겠지.”
“오빠, 우리 오타루에 가자.”
구건호는 울고 있는 에이꼬를 침대에 눕혔다. 에이꼬의 얼굴은 방금 마신 맥주 때문인지 볼이 약간 불그레했다.
“오타루에 안가도 이렇게 만나잖아.”
에이꼬는 춤만 추던 여자라 그런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모습을 가끔 보였다. 그리고 첫 정을 준 남자에게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나, 배우도 싫고 마쯔리(축제)에서 춤추는 것도 싫어!”
에이꼬는 계속 울기만 하였다. 구건호는 에이꼬를 달래가며 천천히 옷을 벗겼다. 에이꼬는 구건호가 옷을 벗기는데도 반응하지 않았다. 구건호도 옷을 벗고 에이꼬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울고 있는 에이꼬를 향하여 미친 듯이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구건호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오전 10시경 구건호와 에이꼬는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내가 먼저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작별해야겠다.”
에이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에이꼬, 우옌 감독이 12시에 여기로 온다고 했지? 항상 건강하고 오빠가 곁에 있다는 것 잊지 마.”
구건호는 에이꼬의 등을 한번 토닥여주고 호텔 정문을 향해 갔다. 구건호는 정문 앞에서 뒤를 돌아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리 에이꼬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구건호는 면세점에 가서 김영은에게 줄 선물을 살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선물을 사가면 오히려 오해를 받을 것만 같았다. 대신 아이 장난감만 몇 개 샀다.
인천공항에 엄찬호가 나와서 기다렸다.
“회사 별 일 없지?”
“예, 없었습니다.”
“신사동 빌딩으로 가자.”
“타워팰리스로 안 가십니까?”
“신사동 빌딩 사무실에서 할 일이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신사동으로 모시겠습니다.”
신사동 사무실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강이사가 구건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항에서 오는 길입니까?”
“그렇습니다.”
강이사는 사장실로 따라 들어오면서 말했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이십니다. 비즈니스가 바빴던 모양이네요?”
“예, 조금.”
구건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픽 웃었다.
[바빴지요. 비즈니스가 바빠도 너무 바빴지요. 밤새도록 바빴으니까요.]
구건호는 계속 미소를 띤 채 강이사에게 말했다.
“밖에 손님이 계신 것 같은데요?”
“예, 입주회사 사람입니다. 우리가 발급한 임대료 세금계산서를 분실했다고 재발급 해달라고 왔습니다.”
“그럼, 나가서 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강이사가 나가고 비서 오연수가 들어왔다.
“뜨듯한 둥굴레 차 있으면 한잔 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커다란 사장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디욘 코리아 주식 좀 볼까? 바닥에서 횡보하던 주식을 흔들어서 –7%까지 떨어지게 만들었네. 개미들 곡소리 나겠네.”
구건호는 네이버에 들어가 디욘 코리아 종목 토론장에 들어가 보았다. 개미들의 아우성대는 글이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내가 종가는 –3% 수준에서 맞추어 놓아야겠군. 너무 무지막지하게 이래도 못쓰니까.”
구건호는 슬슬 매집을 해주었다. 거래량이 워낙 작은 종목이다 보니 구건호가 1천만 원어치를 분할해서 사자 –3%까지 올라갔다.
주식은 여유자금을 가지고 해야 한다. 가뜩이나 손실이 나서 죽겠는데 갑자기 또 -7%나 –3% 정도로 주가가 곤두박질친다면 빚을 내어 투자한 사람은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디욘 코리아에 투자한 개미들은 오늘밤 소주병깨나 따겠는데?”
구건호는 주식 차트를 유심히 살폈다.
“하락할 대로 하락한 주식이 이렇게 갑자기 빠지면 월요일 부턴 ‘사자’ 세력이 들어올만 하겠군.”
구건호가 강남증권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어이구, 구사장님. 잘 계셨습니까?”
주식에 남다른 감각이 있는 구건호가 잘 모르는 척 하고 질문을 했다.
“디욘 코리아 주식이 왜 그렇게 빠지는 거요?”
“많이 빠져요? 제가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지 잠시 뜸을 들인 후 지점장이 말을 했다.
“정말 많이 빠졌네요. 이제 올라가겠지요 뭐. 회사에서도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없지요.”
“내버려두세요. 이러다가 또 갑자기 올라가니까요.”
“내가 좀 건드려 볼까요?”
“대주주 매집을 하면 올라가겠지요. 세력이 그걸 노리는 지도 모르겠네요. 대주주 매집하고 주식이 올라가면 걔들은 던지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세력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하지 마세요. 사장님이 장내 매수하면 공시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사장님 지분이 높아지는데 디욘 본사에서 아무 말 안하겠어요? 합자비율 50:50이 깨지는데 말입니다.”
“흠.”
“혹시 외국인이 사는가나 잘 보세요. 디욘 측이 살수도 있으니까요.”
“외국인 매매동향은 미미합니다.”
“그러면 디욘 측은 무리하게 합자비율 깨트려가며 매집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봐야 되겠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사장님은 사업만 잘하시면 됩니다.”
“세력이 있다면 이놈들 혼내줄까요?”
“하하, 사장님 실력으론 혼자서도 충분히 그놈들 혼내줄 수도 있겠지요. 어차피 주식시장이니까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손실이 날수 있습니다. 사장님 같은 대주주가 거기에 끼어드는 것은 모양이 안 좋습니다.”
“그럴까요?”
“나중에 액면 분할 할 때나 연락해 주세요. 그때는 디욘 코리아 주식이 한번 요동을 칠겁니다.”
“여러 가지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혹시 다른 주식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추천주를 문자 보내주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되었습니다. 다른 주식은 관심 없습니다. 다만 우리 회사가 너무 빠지니까 조금 걱정이 되어서 전화해 보았습니다.”
“주식은 날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거기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으면서 한마디 했다.
“차식, 에프엠 같은 말만 하네.”
구건호는 푹신푹신한 사장용 회전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허리를 기대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세력들에 맞설 필요는 없겠지? 증권사 지점장 말마따나 디욘 코리아 시가 총액은 1천억이 조금 넘는 수준의 금액이므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놀겠지. 당장 현금화시킬 돈이 1,700억이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래, 세력들 하고 같이 움직여야 해. 그래야 탈이 없어. 이놈들이 들어오면 나도 들어가고 이놈들이 빼면 나도 빼자. 내가 더 여유가 있으니까 느긋하게 하자. 오늘 시간외 거래에서 빨간불이나 만들어 줘 볼까?]
구건호는 주식 거래 창을 화면에 띄웠다. 주식거래가 움직이지 않았다.
“흠, 그렇지. 오후 3시 30분이 넘었네. 오늘 장이 끝났네.”
주식 거래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이다. 디욘 코리아 주식은 아까 구건호가 만들어 놓은 –3%선에서 종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간외 단일가에서 빨간불 만들어 놓을까?”
시간외 단일가 거래는 장이 끝나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였다. 시간외 거래는 정상 거래시간처럼 실시간 거래가 아니고 10분 단위로 체결이 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군.”
구건호는 길게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바람이나 쏘이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