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37화 (437/501)

# 437

상하이의 밤 (3)

(437)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가 촬영장으로 가고 나서 할 일도 없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은 없지.”

사실 그랬다. 지에이치 산하의 모든 회사들은 알아서 잘 굴러가고 있었다. 더구나 유능한 사장이나 관리자들이 있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건호가 간섭을 하거나 하면 관리가 더 잘 안될 수도 있었다.

구건호는 단지 사장이나 관리자들의 경영에 대한 실적을 보고받고 이에 따른 상벌만 내려주면 되었다.

구건호는 호텔에 앉아서 중국 TV를 보다가 간편복 차림으로 호텔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중국 시내 구경이나 하자.”

번화가인 남경로를 걸었다.

“정말 인간들 많네. 여기에 오면 중국에 인간이 많이 산다는 걸 알 수 있어.”

구건호는 한참 걷다보니 안서로까지 가게 되었다.

“저기 왕바(網巴: PC방)라고 쓴 간판이 보이네. 가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할까?”

구건호는 왕바(망파) 안으로 들어갔다. 구건호는 한국 인터넷에 들어가 주식 시세를 보았다.

“오늘도 저점에서 횡보하네. 빠지진 않았어. 세력들 움직일 때 같이 움직여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수계좌 가지고 장난한다고 증권 거래소에서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 될 수 있어.”

구건호는 왕바에서 놀다가 저녁 무렵 호텔로 돌아왔다.

소주에 있는 김민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국에 왔다며? 어디야?”

“와이탄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 호텔이야.”

“온다고 왜 이야기 안했어. 같이 가라오케라도 가야지.”

“아니야. 내가 여기서 할 일이 있어.”

“내가 지금 차 가지고 그곳으로 갈까? 소주에서 상해까지 얼마 안 걸려.”

“다음에 만나자. 나 정말 여기 일이 있어.”

“그래? 기왕 온김에 같이 술이나 한잔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나.”

“미안하다. 회사는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거래처도 이젠 많이 안정된 상태야. 디욘 차이나도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어.”

“흠, 그래? 딩딩이 수단이 좋으니 잘 할 거야.”

“딩딩은 여기서 친구들 한테도 인기가 좋아. 큰 회사 사장이니까 요즘 목에 힘주고 다녀.”

“하하, 그래?“

“아마 딩딩도 한국에 있는 동사장이 왔다고 하면 달려올걸?”

“그런가? 하여튼 소주에는 너희 부부가 있어 든든하다. 그리고 고맙다.”

“고맙긴, 내가 고맙지.”

“딩딩이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한테 도움이 많이 돼.”

“딩딩은 요즘 서울 본사의 애덤 캐슬러와 영어로 업무보고를 주고받고, 지난번에는 디욘 인디아에 브랜든 버크 사장과 영어로 통화하는 것을 보았어. 아마 거기서 딩딩을 인도로 놀러 오라고 하는 모양이야.”

“흠, 그래?”

“그래서 딩딩도 브랜든 버크 사장을 중국에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더군.”

“서로의 공장을 방문해보고 좋은 점이 있다면 채택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딩딩도 요즘 디욘 코리아가 상장을 했다는데 대하여 상당히 긍지를 갖는 것 같아. 구건호 동사장이 역시 유능한 사업가라고 추켜세우던데?”

“내가? 하하. 별소리 다한다. 그래 그럼 푹 쉬고 우리 또 다음에 만나자.”

“상해에서 즐거운 밤 보내도록 해라. 가라오케도 가봐.”

“하하, 알았다.”

구건호가 마사지 방에 가서 발마사지를 받고 호텔 안에 있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한창 식사도중 귀주성 안당시에 있는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국에 왔다며? 여기는 안 올 건가?”

“거기까지 못가. 민혁이도 여기로 온다는데 못 오게 했어.”

“그래? 바로 귀국 할 건가?”

“하루 더 있을 거야. 일이 좀 있어.”

“영화 쪽 일인가?”

“뭐, 그 일도 있고 개인적 일도 있어.”

“그래? 중방 애들이 동사회의를 하자고 하던데?”

“언제는 터미널 지을 돈 안 가져와서 안 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돈 안 가져 오냐고 하도 지랄들 해서 구사장이 이번에 상장된 회사도 가지고 있는데 여기 터미널 지을 돈이 없겠냐고 했어. 토지만 양도 가능한 전량토지로 해준다면 구사장은 바로 돈을 넣을 거라고 했어.“

“잘 했다.”

“터미널은 건물 거의 다 올라간 상태야. 이제 마감 공사해야 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데 걱정이라고 하던데?”

“토지 명의 변경도 안 해주면서 터미널 공사비 이야기 자꾸 하면 이렇게 이야기해라. 내가 2차 출자금 보내려다가 토지 명의도 안 해줘서 안당시에 고급아파트 5채 사놓았다고 이야기해라.”

“KFC하고 피자집하고 한국 치맥집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정식으로 말할까? 이놈들이 사업을 하는 줄은 아마 알긴 알거야. 하지만 정식으로 이야기 해준 적은 없으니까 아예 이 기회에 정식으로 이야기 해줄까? 구사장이 여기도 투자했다고 말이야.”

“흠, 그건 네 와이프가 하는 것으로 놔둬라. 그래야 중방 애들이 너를 함부로 무시하지 않을 거야.”

“참, 그리고 여기 화계화원 아파트는 추석 지나고 매물이 없다고 하네? 수요는 많은가봐.”

“그래?”

“부르는 게 값이래. 요즘 서울의 강남 부동산하고 같아.”

“흠, 그래?”

“집을 산 사람들이 한 주택만 산 것이 아니고 여러 채를 사서 그런 모양이야. 홍콩부자가 여러 채 샀고 당 간부들도 여러 채 사서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나처럼 월세 받겠구나.”

“신문에 빈부격차가 심하고 화계화원 같이 고급 아파트들이 미친 듯이 올라가니까 옹유세(擁有稅: 보유세)올리겠다고 발표했어.”

“그랬나?”

“하지만 여기 방지산(부동산) 전문가들은 옹유세 천원 올라가면 아파트 가격 상승은 100만원 올라가간다고 떠들던데?”

“하하, 그래? 보유세가 아파트값 상승을 못 쫓아가지. 거기 지방정부에서도 보유세도 올리고 은행 대출도 제한한다고 칼을 빼드는 시늉은 하겠지. 하지만 아파트는 이미 올라간 상태에서 횡보하다가 조금 잠잠해 지면 또 다시 올라갈 거다.”

“그런가?”

“지방정부의 당 간부들도 다 고급 아파트에 살 것 아닌가?”

“정말 당 간부들이 많이 살더군. 우리 순영이 엄마가 그러는데 모임에 보면 당 간부들 부인이 많다고 들었어.”

“당 간부들이 자기 살 도려내는 행동을 하겠어? 자기들도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겠지.”

“사람이니까 그렇긴 하겠다.”

“거긴 계속 올라갈 테니까 몇 년 묵혀둘 마음을 갖고 있어.”

“지금 중국과 미국이 무역마찰이 심하고 문 닫는 기업도 늘어나는데 마냥 올라가겠어? 더구나 여기도 청년 실업이 늘고 있는데.”

“그래도 화계화원은 올라간다.”

“그럴까? 여기 시 정부의 높은 사람이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더군. 모든 인민이 화계화원에 살 필요는 없다 라고 했어. 내가 화계화원에 살아보니까 안다 라고 했어.”

“흠, 그래?”

“그런데 우리 순영이 엄마가 보니까 그 사람 우리 아파트에 산다고 했어. 그 사람 부인도 잘 안다고 하던데? 킥킥킥.”

“내가 보니까 화계화원 주위에 인프라가 잘 되어있어. 그러니 올라가.”

“역시 너는 안목이 있는 사업가야.”

“하하, 별소리 다한다. 그래, 그럼 수고해라.”

구건호는 저녁을 먹고 침실로 올라와 중국 TV를 보고 있는데 심운학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리 에이꼬가 전화를 해 달라고 해서 전화 드립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모리 에이꼬는 새벽 2시까지 촬영이 있습니다. 호텔에 들려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7시에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해야 합니다. 내일 점심시간이 되어야 끝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스케줄이 그러면 촬영에 열중하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다음날 상해 미술관도 구경하고 동방명주 건물도 올라가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모리 에이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촬영 다 끝났어?”

“고고니지고로 아이마쇼까? (오후 2시경에 만날까요?)”

“촬영 강행군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푹 잠을 자고 저녁때나 만나자. 6시경에 만나자. 지금 멀리 떨어진데 있어.”

“그래요. 그럼 6시에 만나요.”

“6시에 로비로 내려와 맛있는 것 사줄게.”

“고마워요.”

구건호는 아이도 있는 사람이 자꾸 모리 에이꼬를 못 잊어하는 것이 집에 미안했다. 김영은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별고 없지?”

“예, 잘 있어요.”

“나, 여기서 하루 더 있다 가야할 것 같아. 오늘 가려고 했는데 비즈니스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어.”

“일 보고 천천히 와요.”

“사랑해 당신, 그리고 상민이도 사랑해.”

구건호는 이렇게라도 집에 전화를 해놓으니 안심이 조금은 되었다.

구건호는 관광지 한군데를 더 보고 호텔로 갔다. 잠시 쉬었다가 6시경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에 모리 에이꼬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건호가 로비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모리 에이꼬가 오지 않았다.“

“잠이 들었나?”

저녁 6시 30분경 구건호가 모리 에이꼬에게 전화를 했다. 모리 에이꼬가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마 로구지데스(지금 6시야).”

“어머, 죄송해요.”

“피곤한 모양이구나. 그럼 더 자.”

“아니에요. 일어났어요. 내려갈게요.”

저녁 7시가 거의 다 되어 모리 에이꼬가 나타났다. 모리 에이꼬는 구건호를 보더니 깡충 뛰면서 팔짱을 끼었다.“

“미안해, 오빠.”

“피곤한데 더 자게 할 걸 그랬지?”

“많이 잤어요. 괜찮아.”

먼 객지에서 구건호를 만나서 그런지 모리 에이꼬는 좋은 모양이었다. 자꾸 미소를 지었다.

“저녁 먹어야지?”

“맛있는 것 사줘.”

“그래, 나가자.”

구건호는 호텔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탔다. 구건호가 유창한 중국어로 말했다.

“다오, 밍쉬엔(名軒)!”

“하오더(알겠습니다.)!”

밍쉬엔은 상해의 서가회로에 있는 유명한 요리집이다. 서양식 별장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전통음식이 나온다. 국가의 고위층 당 간부나 세계 각국의 재벌기업 사장들이 오면 즐겨 찾는 곳이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 수백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되었다.

모리 에이꼬는 식당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어머 식당이 대단히 좋아요. 이런 데가 있었네요?”

구건호가 종업원에게 빠오샹(包廂:특별석)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였다.

별도로 된 방으로 안내되었다. 구건호는 종업원에게 에이꼬가 좋아할 만한 식사를 시켰다.

“싼황요찌(三黃油鷄: 닭튀김 종류) 하나, 홍샤오후이위(紅燒鮰魚” 민어구이) 하나.....“

구건호가 중국 종업원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음식을 시키는 것을 보고 모리 에이꼬가 놀랐다.

“와, 오빠 중국어 잘한다.”

모리 에이꼬가 일본어로 말하자 종업원은 구건호가 일본인인줄 아는 모양이었다. 일본어를 아는지 대뜸 일본어로 말했다.

“난, 한국인이요.”

“그렇습니까? 중국어가 상당히 유창하시네요.”

종업원은 구건호가 한국인이라는데 놀라는 눈치였다.

“여자 분이 엄청 예쁜데 혹시 연예인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우, 그렇습니까?”

종업원은 얼른 메모지를 꺼내 모리 에이꼬에게 싸인을 부탁하였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와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모리 에이꼬도 배가 고픈지 잘 먹었다.

“맛있지?”

“응.”

“많이 먹어.”

구건호는 음식을 집어 모리 에이꼬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구건호는 포도주 한 병을 시켰다.

“포도주하고 먹으면 더 좋아.”

남자 종업원이 나가고 여자 종업원이 들어왔다. 포도주 한 병을 흔들며 말했다.

“프랑스산 포도주인데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럽시다.”

구건호와 모리 에이꼬는 포도주와 함께 천천히 중국식 만찬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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