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33화 (433/501)

# 433

주식 세력과의 싸움 (2)

(433)

추석도 지나고 10월이 되었다. 구건호는 초조했다.

“내가 40세가 되기 전에 1조원을 만들겠다고 하고선 이게 뭔가?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인 작은 기업이나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구건호는 지에이치 산하 기업들을 어떻게 하면 크게 키울까 궁리했다.

“지금이 10월이니까 내 나이도 38세 10월이네. 이제 두 달만 있으면 39세인데 1조원은 물 건너 간 건가?”

구건호는 직산의 지에이치 모빌 공장으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계속 눈만 감고 생각을 하였다.

“사장님,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아요.”

운전을 하고 가던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응? 나, 뭣 좀 생각을 하느라고.”

구건호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차는 계속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구건호는 눈을 감고 있으니까 절강대학 다닐 때의 가을이 생각났다. 그리고 젊은 엘리트 교수였던 왕지엔의 강의가 생각났다.

[인간에게는 5가지의 욕구가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가 주장한 학설입니다.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맨 먼저 채우려 하며, 이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하게 되면 안전해지려는 욕구를, 안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소속의 욕구를, 소속의 욕구가 채워지면 존경의 욕구를, 그리고 더 나아가면 자아실현 욕구를 차례대로 만족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 맞아. 나에게는 지금 자아실현의 욕구까지는 아직 안 갔어. 아마 나는 네 번째 단계인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단계일 거야. 1조원을 만들고 대기업의 회장이 되고 싶은 욕망만 지금 내 머리 속에 있으니까.]

[그럼, 청담동 이회장은 어느 단계일까? 돈과 명예를 가진 분이 포천의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아마 이회장은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단계를 걷고 있는 중이겠지.]

구건호가 직산에 도착하여 모빌의 2공장과 1공장의 생산 현장을 차례대로 방문하였다. 생산부의 차장과 부장들은 박종석 이사가 없어도 승진 의욕 때문에 더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다만 상사가 없으니 부서간 갈등은 더 심해보였다.

“저, 폐기물은 왜 저기다 쌓아 놓은 거요?”

“아, 그건 저희가 한 것이 아니고 생산2부에서 그렇게 한 겁니다. 제가 옮기라고 하겠습니다.”

“저기 납품 차량들은 주차가 좀 무질서하네요?”

“2공장에 오는 차들입니다. 제가 가서 뭐라고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연말 인사를 앞당겨 할까도 생각을 하였다.

구건호가 2층 사장실로 올라갔다. 구건호가 오래간만에 나타나자 비서 박희정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흠, 잘 있었어요?”

“커피를 가져올까요? 녹차를 가져올까요?”

“커피 가져와요. 경제신문 하고.”

“예, 알겠습니다.”

송사장이 사장실을 들어왔다.

“현재 A전자와 H그룹의 매출이 같아졌습니다. 두 개 다 우리 매출의 30%가 넘습니다.”

“흠, 그래요? 그럼 월 매출이 150억은 되겠네요.”

“많은 달은 160억을 찍은 달도 있지만 대체로 150억 잡으면 맞습니다. 전반기 실적이 120억을 올린 달이 많아 금년도 연간 매출은 1800억을 조금 넘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금년에 임원 승진 대상자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다.”

“총무이사나 경리이사, 품질담당 이사 등은 이사가 된지 얼마 안 됩니다. 생산부장 두 명중 한명이 이사 후보자가 있습니다.”

“흠, 그래요?”

“제 생각은 생산1부장을 이사 승진시키고 생산2부장은 제2공장으로 발령을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생산 2부장이 맡던 자리는요?”

“2공장에 있는 차장이 이번에 부장 승진 후보자입니다. 그 사람을 승진시켜 생산 2부장 자리로 발령을 낼까 합니다.”

“그럼 생산 2부장은 승진도 못하는데 2공장으로 가면 불만 없을까요?”

“어차피 2공장은 인원이 더 늘어납니다. 2공장으로 발령을 내면서 승진은 못 시켜주지만 공장장 직함을 줄까 합니다. 제2공장 공장장으로 말입니다.”

“그럼 부장급 공장장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박종석 이사도 부장급 공장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되긴 되겠네요.”

“그 대신 2공장으로 가는 생산2부장은 조용히 불러 2공장 인원이 많아지니 당신이 가고 공장장 역할을 해야겠다고 하면 불만은 없을 겁니다. 공장장은 공장장 직책 수당이 30만원 붙으니까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흠, 인사 문제는 송사장님 안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연구소장이 지금 상무이사 대우입니다.“

“흠, 그렇지요.”

“연구소장은 그동안 S기업뿐만 아니라 A전자 신제품과 H그룹 신제품 개발에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전무이사급 연구소장으로 하고 싶습니다.”

“흠...”

“연구소장은 뮌헨공대를 나와 BMW연구소를 거쳐 H그룹 연구소에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지금 그의 동창들 대부분이 전무나 부사장급이 많습니다. 연륜이나 회사 공헌도를 보아서도 시켜줄 만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고 아직 인사 발표 전이니까 그때까지는 이야기 하지 말아야 되겠지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비서 박희정이 들어와 녹차 두 잔을 가져오고 빈 커피 잔을 가지고 나갔다. 송사장이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리고 엊그저께 지에이치 정밀을 가보았습니다.”

“박종석이는 잘 하고 있던가요?”

“예, 벌써 직원들도 채용하고 디욘 코리아 기계 제작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가서 사업 초창기라 모빌에서 판 트윈 스크류 대금은 한 달 후에 받겠다고 했습니다. 디욘 코리아 수금되면 갚으라고 하니까 엄청 좋아하더군요.”

“흠, 그런가요?”

“그리고 다이캐스팅 머신을 구매하라고 했습니다.”

“다이캐스팅을요?”

“우리가 A전자에 들어가는 어셈블리 도아에는 아연합금의 금속 제품 링이 들어갑니다. 이게 양이 제법 됩니다. 이걸 저희가 몇 군데서 납품을 받고 있는데 지에이치 정밀에서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아마 박종석 사장은 다이 케스팅 중고품 하나를 들여 놓았을 겁니다.”

“중고품은 고장이 잘 나지 않는가요?”

“아이고 사장님, 지에이치 정밀은 날고 긴다는 기술자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아마 고장이 나면 전보다 더 성능 좋은 기계로 후딱 고쳐놓을 겁니다.”

송사장이 나가고 경제신문을 보고 있는데 총무이사가 들어왔다. 총무이사가 봉투 하나를 구건호에게 내밀었다.

“뭐요? 그게?”

“상품권입니다.”

“상품권? 그걸 왜 날 주는 거요?”

“추석 전에 사장님께서 우리 임원들에게 10만 원짜리 상품권 3장씩을 나누어 주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건 사장님 몫입니다.”

“나까지 챙길 필요는 없는데.”

“사장님도 엄연히 저희 회사 공동 대표이사로 사업자등록에 올라 있습니다. 법인에서 지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사장님도 드려야지요.”

“”허허, 알겠습니다. 운전기사하고 비서들에게 나누어주지요.“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구건호는 비서 박희정을 불렀다.

“나, 지에이치 정밀로 갑니다. 엄기사 차 대기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가지고 백화점 가서 물건 살 것 있으면 사세요.”

구건호는 방금 총무이사가 가져온 상품권 3장 중에서 한 장을 뽑아 비서 박희정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비서 박희정이 상품권을 받고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엄찬호가 현관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가자. 지에이치 정밀로.”

구건호는 방금 총무이사가 준 상품권을 꺼냈다. 3장중 1장을 비서에게 주고 나머지 2장을 엄찬호에게 주었다.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이다. 옷이나 하나 사 입어라.”

“고, 고맙습니다.”

엄찬호는 상품권을 받고 기분이 좋은지 악셀레이더를 힘차게 밟았다.

“야, 천천히 가자.”

“죄, 죄송합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정밀이 있는 백석 농공단지로 갔다. 전에는 조양기계란 간판이 있었는데 지에이치 정밀로 바꿔진 간판이 새로 달려 있었다. 지에이치 로고가 산뜻해 보였다. 간판을 본 엄찬호가 말했다.

“사장님, 우리 회사 로고가 멋있어요.”

“그러냐? 누가 만들 줄 알지?”

“누가 만들었어요?”

“지에이치 미디어의 디자인 팀장이 만들었다.”

“아, 미디어에 있는 여자 말이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거 잘 만드는 모양이에요. 기회가 되면 태영이 형이 하는 용역회사 로고도 좀 부탁드려야겠네요.”

“하하, 그래라.”

박종석은 현장에 있지 않고 경리가 일하는 책상 옆에서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형 왔어?‘

“뭐 하냐?”

“B2B는 어떻게 하고 있나 구경하고 있었어.”

“흠, 그래? 그럼 일 봐라. 나 현장 좀 둘러보고 올게.”

“아냐, 나랑 같이 가. 아직은 형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뿐이니 내가 안내해야 돼.”

현장에는 벌써 몇 사람이 달라붙어 디욘 코리아 기계를 조립하고 있었다.

“아직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

“그래?”

박종석은 일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그거 한 번 더 조이고 조립해. 태핑유(Tapping油) 좀 더 칠하고!”

구건호가 박종석에게 물었다.

“야, 너는 직원들한테 반말 하냐?”

“어때? 나보다 어린놈인데.”

“그러다가 불만 가지면 어떻게 해?”

“불만 없어. 내가 잘해 주잖아.”

현장에는 7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너, 현장 직원 8명 뽑는다고 하지 않았니?”

“한 놈은 내 보냈어. 경력사원을 뽑았는데 완전 엉터리가 한 놈 들어와서 보냈어. 그런 놈은 일도 못하지만 잘못하다 현장에서 산재 사고나. 빨리 보내야 돼.”

“흠, 그런가?”

“경력 좋고 기술 좋은 사람 두 사람은 반장으로 했어. 다들 잘해. 그런데 절반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이쪽 일은 힘이 들고 그래서 그런지 젊은 사람이 별로 없어.”

“흠, 그런가?”

박정석은 구건호를 안내하고 가다가 일하는 기술자를 불렀다.

“형님! 그건 나무 받침대 채우고 하세요. 뒤로 밀려요.”

“응? 알았어.”

“형님, 그리고 인사해요. 우리 회사 대주주인 구사장님이에요.”

“안녕하십니까?”

현장에서 일하던 남자가 모자를 벗으며 구건호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모자를 벗으니까 번쩍하고 그의 대머리가 빛이 났다. 나이가 50가까이 되어보였다.

“저건 뭐냐? 다이캐스팅이냐?”

“헤헤. 두 대 샀어. 중고기계야. 일본 도시바 제품 열 가압식 다이캐스팅이야.”

“송사장이 사라고 한 건가?”

“맞아. 어셈블리 도아에 들어가는 것이 불량이 가끔 나와 내가 문제를 제기했더니 송사장이 여기서 한번 만들어 보라고 했어.”

“그래?”

“저 기계면 비교적 융점이 낮은 아연합금이나 납 합금 같은 건 문제없이 찍어내.”

“얼마주고 샀니?”

“두 대 7천 8백만원 주었어. 돈은 두 달 안에 주면 돼.”

“기술자도 별도로 뽑아야 되잖아?”

“저기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이 다이캐스팅 머신을 다루어본 경험이 있어서 우선 작업하라고 했어.”

“얼마나 납품 하냐?”

“월 2억은 될 걸? 그럼 여기 직원들 월급은 나오지 헤헤.”

“저기 사무실로 들어가는 젊은 남자들은 누구냐? 양복 입었는데?”

“총무와 영업도 경력사원 한명씩 뽑았어. 시청이나 구청같은데 출입하는 일도 있고 직원들 4대 보험도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총무 뽑았어. 천안 단국대학 나온 친구야. 영업은 기술영업이라 공과대학 나온 사람 채용했어. 내가 다니는 한국 기술교육대학 출신이야. 둘 다 나보다 어린놈들이라 빠릿빠릿해.”

“그래?“

“형, 나 여기서 배우는 게 참 많아. 경리나 총무, 영업에서 제들이 올리는 결재서류 보고 싸인 하면서 나도 많이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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