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
주식 세력과의 싸움 (1)
(432)
추석이 되었다.
구건호는 곶감과 갈비짝을 차에 싣고 인천 구월동 아파트로 갔다. 차례 준비가 있어 좀 일찍 갔다. 엄마와 아빠는 구건호와 김영은을 제쳐놓고 상민이를 먼저 반겼다.
“아이고, 우리 새끼 왔네.”
엄마와 아빠는 서로 상민이를 뺏어가려고 하였다. 상민이 역시 옹알이를 하면서 가끔 까르르 소리를 내니 귀여워서 죽겠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누나가 보이질 않아 구건호가 엄마에게 물었다.
“누나와 매형이 안보이네?”
“시댁에 갔어.”
“시댁? 매형 고향이 전북 정읍이라고 하지 않았나?”
“정읍 읍내에서도 좀 떨어진 데야. 어디라고 했는데 내가 잊어버렸네.”
옆에서 아기를 안은 채 아빠가 말했다.
“태인이야.”
“맞아, 태인이라고 했지.”
구건호는 태인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단지 먼 곳이라는 느낌만 받았다. 전에 와이에스테크 사장이 정읍이라고 했는데 정읍도 지역이 넓으니 서로 모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와이에스테크 사장은 정읍 읍내가 고향이라는 소리를 얼핏 들었었다.
“매형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겠네요?”
“많아. 그동안 네 누나가 살기가 팍팍해서 시댁엘 잘 못 갔는데 올해는 형편이 괜찮은지 선물을 가득 싣고 갔어.”
“태인이라는 곳에서 좋아하겠네요.”
“거기 가면 우리 정아가 공주 대접 받는다더라.”
“하하, 그래요?”
구건호가 엄마와 이야기가 길어지자 김영은이 일어났다.
“차례 상은 제가 차리지요.”
“다 해 놓았어. 요즘은 옛날처럼 음식 잘 안 해먹어. 나도 떡이나 전 같은 것은 전부 사온거야. 그냥 데우기만 하면 돼.”
“내년부턴 저와 상민이 엄마가 명절 하루 전날 오도록 하지요.”
“그럴 필요 없다. 아직 아기도 어린데. 옛날처럼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음식 만드는 시대도 아니잖아? 그냥 오늘처럼 오면 돼.”
“그래도 명절인데.”
“전에 처럼 음식 많이 할 필요도 없어. 먹을 사람도 없어서 쉬 상해.”
엄마가 차례음식을 사왔다고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많았다. 엄마와 김영은이 앞치마를 두르고 차례 상 준비를 했다. 아기는 아빠가 보았다. 구건호는 안방에 앉아서 TV를 보기가 미안해 주방으로 갔다.
“뭐, 도와줄 일 없어요?”
“없어. 남자가 주방에 오는 것 아니야.”
“요즘 세상에 남자가 주방에 안가면 쫓겨난 데요.”
“그래? 하하, 우리 아들 쫓겨나면 안 되지. 그럼 차례 상 펴고 음식이나 날라라.”
구건호는 거실에 큰 상을 두 개나 펴고 음식을 날랐다.
김영은이 과일 같은 걸 접시에 담다가 전화를 받았다.
“형님이세요?”
형님이라고 한걸 보니까 건숙이 누나인 것 같았다. 잠깐 통화를 하고 김영은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건숙이 누나지? 뭐래?”
“올해는 시가에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준비 잘 하고 있느냐는 전화야.”
“흠, 그래?”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네. 거기는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시골이라 식구도 많은 모양이야. 음식을 이틀 전부터 직접 했데. 허리가 아플 정도라고 하네.”
“허, 거참. 간단히 지낼 수 없나?”
“시골은 전통문화가 더 강하지. 그래도 정아가 가고 하니까 거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하네.”
“잘 갔네.”
엄마가 말참견을 하였다.
“전에는 정아 아빠가 가면 거기에 있는 정아 큰아버지나 삼촌들이 정아아빠를 우습게 여겼는데 이젠 정아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더라.”
“하하, 그래요?”
“운송회사 사장됐지, 좋은 차 타고 왔지. 선물 잔뜩 사가지고 갔지. 그러니 대접 안하겠어? 정아 할아버지 틀니도 말 들으니까 정아 아빠가 해주었다더라.”
“흠, 그래요?”
“정아 아빠 회사에 있는 트럭기사는 벌써 네 명이나 정아아빠 고향 사람들 갖다 썼다더라.”
“효심이 좋은 모양이네요.”
“전에는 명절 때 고향도 안가고 하더니 이제 살만하니까 고향 찾네.”
“어려우면 명절도 다 부담이 되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정아 네가 살게 된 것도 다 건호 덕분이지.”
“아니에요. 엄마. 그런 소리 마세요. 매형과 누나가 열심히 하니까 그런 거예요.”
엄마와 김영은은 음식을 준비하고 구건호는 음식을 차례 상에 날랐다. 아빠는 안방에서 아기와 함께 놀았다.
차례를 지냈다. 김영은은 얼굴도 모르는 구건호의 조상에게 절을 하였다.
“절을 예쁘게 하네. 신림동 사돈어른이 교육을 잘 시킨 모양이네.”
아빠가 덕담을 해주었다.
차례가 끝나고 식구가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다. 누나 식구가 빠지니까 식구가 갑자기 단출해진 느낌이었다.
“누나네 식구가 빠지니까 텅 빈 것 같네요.”
“너, 아기 하나 더 낳아라.”
“그럼, 이 사람 의사생활 못해요.”
“아기가 하나니까 섭섭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요즘 아기 잘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기르기가 힘들잖아요.”
“옛날에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쑥쑥 자랐는데 요즈음은 그게 아니긴 하지. 정아란 년 보니까 피아노도 배우지, 과외도 받아야지. 완전히 돈 덩어리야. 하지만 넌 여유 있으니 하나 더 낳으면 좋겠다.”
이 소리에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무 소리 안하고 밥만 먹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엄마가 화재를 돌렸다.
“아까 네가 가져온걸 보니까 곶감하고 갈비 가져왔더구나. 앞으로 비싼 건 사오지마.”
“그래도 명절에 빈손 들고 올수는 없잖아요?”
“사오려면 차례에 쓸 술하고 과일이나 사가지고 와.”
“과일요?”
“응, 과일하고 술은 마트에서 사가지고 올 때 무거워.”
“그렇게 하지요.”
아빠가 스마트폰을 보자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당신은 술 마시다 말고 뭐해요?”
“아까 상민이 사진 찍은 것 잘 나오나 보려고.”
엄마가 구건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 아빠 요즘 주민 센터에서 하는 스마트폰 사용 강의 받으러 다녀.”
“스마트폰은 그냥 사용하면 되지 강의도 해요?”
“나도 강의 받아보았는데 스마트폰 기능이 아주 많더라. 스마트폰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잘 만들었어.”
“그럼, 인터넷도 하세요?”
“그럼, 인터넷 보고 뉴스도 보는데?”
“그럼 인터넷 들어가서 구건호 라고 쳐보세요.”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구건호를 쳤다.
“자, 봐. 문자도 이렇게 찍을 줄 알어.”
“엔터 쳐봐요.”
“엔터? 어머, 어머. 우리 건호 사진이 나왔네?”
아빠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네. 사진이 큼직하게 떴는데?”
김영은도 궁금한지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구건호를 쳐보았다. 구건호의 사진이 나오고 기업인이라는 직업이 나왔다.
엄마가 감탄을 하였다.
“어마나, 지에이치 모빌 사장이라고 나오고 디욘 코리아 사장이라고 나오네. 너 유명한 사람이 되었구나.“
아빠가 물었다.
“그런데 디욘이란 뜻이 뭐야?”
“미국 회사 이름이에요. 거기하고 합자를 해서 디욘 코리아가 된 거에요.”
“음, 그래? 건숙이 이야기 들으니까 코스닥 상장했다며?”
“예.”
“장하다. 우리 집안에 조상의 음덕이 이제 작용을 하나보다.”
아빠는 구건호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구건호는 아빠가 따라준 술을 조금 마셨다. 옆에서 김영은이 팔꿈치로 구건호를 툭툭 쳤다.
“신림동 가야 하잖아? 운전할 텐데 많이 마시지 말아요.”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고모가 왔다.
“이 집이 먹을 것이 많다며? 나 건호 애기 보러왔어.”
구건호와 김영은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고모님.”
고모는 많이 늙어보였다. 고모는 건호 엄마와 나이가 비슷했다. 전에는 고모가 피부도 더 탱탱하고 엄마보다 훨씬 젊어보였는데 이제는 역전이 되었다. 엄마가 훨씬 더 젊어보였다. 역시 돈의 위력은 사람까지도 젊게 만들고 있었다.
고모는 상민이를 보더니 입이 벌어졌다.
“아이고 눈이 초랑초랑 한 게 자기 엄마 많이 닮았네.”
고모가 상민이의 오물거리는 손을 잡고 흔들어주었다.
“까르륵”
아기가 웃자 모두 손뼉을 치고 좋아하였다.
“재웅이는 잘 있죠?”
“지 마누라하고 잘 있겠지.”
“왜? 명절에 안 만나셨어요?”
“아침에 와서 차례 상에 절만하고 휭 가버렸어. 지 마누라는 아프다고 오지도 않았어.”
“저런. 몸살이라도 난 모양이지요?”
“몸살은 얼어 죽을 몸살! 오기 싫으니까 핑계 덴 거지.”
“재웅이는 노동청 잘 다니죠?”
“잘 다니겠지. 이제 와서 후회인데 내가 괜히 공무원 하라고 그랬어.”
“왜요? 공무원 좋잖아요?”
“밥은 먹는지 모르지만 언제 한번 건호처럼 기를 펴고 살겠어?”
김영은이 고모에게 물었다.
“식사하셔야지요?”
“아냐, 나 먹고 왔어. 과일이나 있으면 내와.”
김영은이 일어서서 과일을 깎아다 주었다. 고모는 과일을 먹으면서 거실 귀퉁이에 놓인 곶감과 갈비 상자를 자꾸 쳐다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고모의 얼굴에 들이대었다.
“이것 봐. 인터넷 치면 건호 얼굴이 나와.”
“엉? 정말이네. 어디 봐. 어쩜! 건호야, 너 참 출세했다. 이제 아주 유명인사가 되었구나. 인터넷에도 나오고. 지에이치 모빌대표이사? 회사 이름이 지에이치 모빌인 모양이지? 어쩜!”
고모는 과장되게 이야기 하였다.
고모는 정신없이 자기 며느리 욕을 했다. 엄마와 아빠는 커피를 마시며 듣고 있었다. 김영은은 듣기가 민망했던지 일어나서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였다. 구건호가 도와주었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도 이집 며느리처럼 저러면 좀 좋아?”
아빠가 점잖게 한마디 하였다.
“며느리 욕 그만하고 가끔 칭찬도 해주고 그래라. 어째 너는 입만 열었다 하면 며느리 욕이냐?”
“아이고, 오라버니. 우리 며느리가 이집 며느리 반만 쫓아가도 내가 이런 소리 안 해요.”
“끙.”
엄마가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갔다.
“설거지 다 했구나.”
“네.”
“그럼 이제 신림동 가봐라. 상민이 외할아버지 기다리시겠다.”
“천천히 가도 되요.“
“저 곶감하고 갈비는 신림동에 갖다 드려라.”
“아니에요. 차에 또 있어요.”
“그래?”
엄마는 그러면서 곶감과 갈비를 약간 덜어서 비닐 통에 담았다. 비닐 통을 고모에게 주면서 말했다.
“건호가 사온 곶감하고 갈비야. 내가 조금 덜었으니 이따 갈 때 갖고 가.”
“어머 나까지? 호호, 오래간만에 갈비 먹게 생겼네.”
고모의 얼굴이 갑자기 펴졌다.
“그리고 비닐 통 가져가면 제때에 다시 갖고 와. 지난번에 김치 가져간 통도 안 가져 왔잖아?”
“내가 안 가져 왔나? 정신이 통 없어서. 다음에 가져오지. 고마워 올케.”
구건호는 고모한테도 다음에 올 때는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물을 보내주면 자꾸 자기 아들과 비교를 해서 또 집안에 분란만 일으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차에 있는 츄리닝이 생각났다. 엄찬호에게 10벌을 주고 5벌이 남아 있는 것이 생각 났다. 차에 가서 츄리닝 4벌을 가져왔다.
“이거 츄리닝인데 엄마, 아빠 입으시고 두벌은 고모님 가져가요. 고모하고 고모부 아침 조깅할 때 입으시라고 하세요.”
“어머! 나까지? 고마워. 이 집에 오면 뭔가 얻어갈게 있다니까!”
구건호는 인천 구월동 집을 나와 신림동으로 향했다. 구건호는 추석이 끝나면 주식 동호회를 포함한 세력들과의 한판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김영은이 말을 걸었다.
“”오빠, 괜찮아? 아까 술 마시던 것 같은데.“
“괜찮아. 정종 딱 한잔밖에 안 마셨어.”
“츄리닝 두벌 더 갖고 올수 없어?”
“왜?”
“차에 있는 것 한 벌 신림동 아버님 드리고 한 벌은 양평 이모님하고 도우미 아줌마 줄려고 그래.”
“알았어. 가져올게. 그리고 수고 했어. 설거지 하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