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
보궐선거 당선 (1)
(429)
승희 누나는 공장 화재보험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눈을 반짝였다.
구건호가 물었다.
“보험료 견적 산출하시려면 공장 직접 가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꼭 안 그래도 돼. 법인 등기부등본하고 공장 임대차 계약서, 그리고 공장 외관과 내부 사진 찍어 보내주면 돼. 기타 필요한건 우리가 발급받을게.”
“흠,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구건호는 승희 누나의 눈가에 생긴 주름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좀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재 보험료는 공장도 크지 않아서 몇 백만 원일 텐데 수수료가 떨어져야 얼마나 떨어지겠어요? 대부분 보험회사로 들어가고 보험모집인이 얼마나 받겠어요.”
“그거라도 해야지 어쩌겠나? 나이 들어 어디 취직할 것도 아닌데.”
“증권계좌 빌려준 값으로 매월 30만원 보내드리죠.”
“30만원을?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한데.”
“미안할 것 없습니다.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지요. 그리고 승희 누나 증권계좌로는 1년에 한두 번만 거래하고 다시 돌려드릴 겁니다. 날마다 하는 데이트레이딩 같은 건 안합니다.”
“그럼 계좌번호 나중에 문자 보내줄게. 내가 그냥 빌려줘도 되지만 요즘 보험 권유 실적이 안 좋아서 고맙게 받을게.”
“고맙습니다. 그래야 서로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승희 누나가 돌아가고 나서 박종석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형, 맞는데!”
“뭐가 맞아?”
“증권사에 직접 가서 물어보았는데 현재 내 돈은 8억 1천 6백만원이고 이틀 후 전액 인출 가능하데!”
“야, 목소리 좀 낮추어라. 귀청 떨어지겠다.”
“나 지금 흥분해서 그래.”
“넌 내말은 안 믿고 증권사 직원 말만 믿냐? 많은 돈 생겼으니 축하한다.”
“형, 고마워.”
박종석은 목이 메이는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종석아! 어? 이 자식 대답이 없네. 내말 들리냐?”
“들려.”
“인생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돈이 나갈 때도 있지. 들어온 돈 잘 지키도록 해라.”
“고마워 형.”
“천하의 박종석이가 그것 가지고 목이 메이면 되겠어? 앞으로 지에이치 정밀 상장시키면 떼 부자 될 텐데.”
“정말 지에이치 정밀 상장시키면 디욘 코리아처럼 이렇게 튈 수도 있는 거야?”
“당연한 소릴 하네. 그 대신 회사를 부지런히 키워야 해.”
“알겠어. 형.”
“내가 내일 직산 내려가는 날이니까 백석 농공단지 들릴게.”
“알았어. 공단 들어오다 보면 두영테크라는 회사 간판이 보일거야. 그 안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조양공업이라고 쓴 공장이 보이는데 거기야. 아직 간판 안 바꿔 달았어.”
“알았다.”
“형, 나 증권사에서 돈 찾으면 국민은행에 아파트 담보 잡힌 것 1억 6천 갚고 지에이치 정밀 자본금 20%인 1억을 형한테 보내줄게.”
“그렇게 해라.”
신정숙 사장이 구건호가 있는 18층으로 올라왔다.
“디욘 코리아 상장을 해서 그런지 이제 포털사이트에 사장님 이름 치면 바로 사진이 뜨는데요?”
“난, 사진 제공한 사실도 없는데요?”
“사진도 뜨고 학력, 경력, 다 뜨던데요? 직업은 기업인이라고 나오고요.”
“그래요?”
구건호가 인테넷에 들어가 자기 이름을 쳐보았다. 정말 기업인이라고 하면서 사진이 떴다. 학력은 절강대학교 상과대학 졸업으로 되어있고 지에이치모빌과 디욘 코리아의 대표이사로 되어 있었다.
“제 말 맞죠?”
“흠, 그러내요. 난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네요. 그런데 사진은 몇 년 전 것이 나왔는지 젊게 나왔네요.”
“지금도 젊었잖아요? 호호.”
오연수가 차를 가지고 왔다. 오연수는 신사장을 좋아했다. 신사장이 문화 예술에 대한 지식이 많고 미술에 대한 안목이 있어 잘 따랐다. 오연수는 지에이치 개발 보다는 자기 또래 젊은이들이 많은 지에이치 미디어의 사무실에 가기를 좋아했다. 틈만 나면 17층에 가서 노닥거려 강이사한테 혼난 적도 몇 번 있었다.
더군다나 개발 사무실은 빌딩을 관리하고 있어 청소원이나 경비원들도 자주 드나들고 어느 때는 임대료 문제로 입주자들과 강이사가 다투는 소리도 들려 싫었다. 그래서 오늘도 신사장이 올라오자 얼른 녹차를 타가지고 헤헤 웃으면서 들어왔던 것이다.
구건호가 물었다.
“오연수씨는 신사장님만 들어오면 좋아하네.”
오연수 대신 신사장이 대답했다.
“오연수씨가 절 잘 따릅니다. 오연수씨는 영어도 잘하고 인물도 좋고 일도 잘해 제가 가끔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요?”
오연수가 듣기가 민망한지 얼굴이 빨개진 채 사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저, 지에이치 정밀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습니까?”
“그랬습니다.”
“거기에 박종석이라는 분이 우리 미디어의 디자인 팀장에게 간판디자인하고 명함 로고 좀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보내주세요.”
“거긴 뭐하는 회사입니까? 정밀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무슨 기계 같은 것 만드는 회사 같은데요?”
“예, 맞아요. 트윈 스크류가 들어가는 대형 압출기와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요.”
“트윈 스크류가 뭡니까?”
“압출기 안에 들어가는 부품 이름입니다.”
“예, 그렇군요. 그럼 거기 대표이사는 박종석이라는 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금년 말 정기인사에서는 사장님이 아무래도 회장님 하셔야겠어요. 지에이치 산하 회사가 많아졌어요. 사장으로 계시는 건 어울리지 않아요. 사장은 저도 사장인데요. 뭐. 호호.”
“아직 나이도 젊어서 회장은 좀....”
“젊지도 않아요. 내일 모레 사십 아닙니까? 지금 지에이치 산하 회사가 모빌, 디욘코리아, 지에이치 정밀, 지에이치 개발, 지에이치 미디어,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벌써 6개 회사 아닙니까? 거기다가 중국에도 강소성 소주시와 귀주성 안당시에 2개가 있으니까 8개 회사가 되네요. 회장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회사는 8개지만 다 조막만한 회사라 그게 좀... 차라리 똘똘한 회사 1개 있는 게 낳은데 말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강남 아파트도 여러 채 보다는 똘똘한 집 한 채 갖는 것이 낫다고 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지에이치 모빌하고 디욘 코리아는 똘똘한 회사 같은데요?”
“하하, 그런가요?”
신정숙 사장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상해에서 심운학 감독님은 촬영 잘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달 중순이면 촬영은 끝나고 편집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그리고 저, 지에이치 정밀의 간판디자인 같은 건 용역료 청구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지에이치 정밀의 사업자등록증은 팩스로 온 것이 있어요. 내가 경리 홍과장한테 보관하라고 했으니까 나가시다가 홍과장에게 한부 복사해 달라고 하세요. 계산서 발행할 때 필요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금요일이 되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을 하였다.
구건호가 현장을 둘러보았다. 현장의 부장들은 승진 기대감들이 있어서 더욱 열심히 일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 9월 달이라 연말 인사가 얼마 안남아 그런지 구건호에게 더욱 잘 보이려고 하였다. 임원 인사는 구건호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건호가 현장을 둘러보고 2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비서 박희정이 책상에 앉아 작은 거울을 꺼내놓고 화장을 하다가 구건호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섰다.
“커피 한잔만 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송사장이 들어왔다.
“디욘 코리아가 상장을 하니까 직원들이 일은 안하고 우리사주 계산들 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것 같네요.”
“현장에 둘러보니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생산직은 그렇지요. 작업시간이 있으니까. 문제는 사무직들입니다. 요녀석들이 일들은 안하고 우리사주 이야기들만 하고 있어서 공문을 하나 만들어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무슨 공문입니까?”
“근무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주식시세를 보거나 주식이야기로 잡담을 하거나 하는 직원이 있으면 사규에 따라 엄중 조치한다고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직원들한테는 주식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놓고선 제가 주식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오늘 디욘 코리아 주식 보니까 또 파란불입니다. 7%정도 빠졌네요. 주식이야 뭐, 장중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니까 또 올라가겠지요. 이번 상장으로 디욘 코리아는 회사로 돈이 많이 들어왔겠네요.”
“들어왔겠지요.”
“현재주식 25,000원만 잡더라도 모빌 지분은 450억이네요. 보호예수기간 지나서 전량 매도한다면 그대로 450이 모빌로 들어오네요.”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지요.”
“박종석 이사는 이번에 돈 좀 만졌을 것 같네요. 우리사주를 팔았는지 안 팔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박이사가 저한테 실권주를 몽땅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요?”
“누군가 코치를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종석 이사의 머리론 그런 생각을 못합니다.”
“하하, 그런가요?”
“어쨌든 우리 식구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지에이치 정밀을 가보았습니다.”
“공장 보니까 어떻습니까?”
“공장은 아담하고 좋습니다. 평수도 기계 제작하기는 딱 좋습니다. 건물이 겉으로 보아선 괜찮은데 좀 낡아있는 것이 흠입니다.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양호한 편입니다.”
“흠, 그래요?”
“제 이름으로 난초 화분 하나 갖다 주었습니다. ‘축 발전’이라고 써서 갖다 주었습니다. 박이사가 좋아서 저한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그리고 웨스트 몰딩에서 들어온 트윈스크류는 들어온 가격 그대로 주었더니 입이 귀밑까지 째졌습니다.”
“하하, 그래요?”
“박이사가 무엇보다도 젊고 의욕적이니 좋습니다. 사장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디욘 코리아의 김전무하고 통화했는데 애덤 캐슬러 명의로 ‘축 발전’ 난초 화분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지에이치 정밀이 직원들도 빨리 모집을 해야 될 것 같네요.”
“경리는 한사람 채용한 것 같던데요?”
“그래요? 잘 되었네요. 옆에서 박이사를, 아니 박사장을 받쳐줄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진우 장관은 당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네요. 한때는 아나운서 후보와 힘든 싸움을 했는데 말입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지금 다시 역전되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무슨 생각이요?”
“이진우 장관 곁에 누군가 유능한 참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자방 같은 참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장자방요?”
구건호는 송사장의 장자방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진우 장관이 자기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구사장은 나의 장자방이요.]
장자방은 옛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게 한 역사상 최고의 모사였다. 이진우 장관은 구건호가 고마운 나머지 구건호를 나의 장자방이라고 칭찬했던 것이다. 오늘은 송사장이 장자방이라는 소리를 해 구건호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진우 장관 곁에 있는 장자방이 마치 스페인의 투우사 같습니다. 마지막에 소의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것 같습니다.”
“하하, 투우사요? 하긴 마타도어란 말의 어원이 거기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