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
보궐선거 (3)
(416)
구건호는 애덤 캐슬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기업을 하려면 때론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내거나 정당 후원금을 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합자사 설립 후 한 번도 이런 돈을 낸 사실이 없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미국의 기업도 사회단체 기부나 정치헌금을 많이 합니다. 이번에 우리도 천만원 정도의 정치 헌금을 해야겠습니다. 단, 공식적으로 보내는 정당 후원금이 아니고 개인 후원금입니다. 따라서 영수증 정리는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 세 사람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통장 사본이 있으니까 개인 용역비로 정리 하세요. 교육비로 정리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네요.”
“돈은 어디로 보냅니까?”
“500만원씩 두 번에 걸쳐 보내면 됩니다. 첫 번째 보내는 500만원은 여기에 있는 두 사람에게 160만원씩 부쳐주세요. 강민호라는 사람은 180만원 부쳐주세요. 그러면 500만원이 맞추어질 겁니다. 감사님이 직접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다음 달에도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500만원을 보내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보궐선거가 끝나는 다음 달까지만 보내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애덤 캐슬러가 물었다.
“이 사람들 하고 보궐선거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깊은 관계는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보내면 됩니까?”
“지금 바로 보내시고 송금했으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원천징수 세금이 많지 않으면 우리가 대납해 주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두 달만 보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애덤 캐슬러와 상임감사가 구건호 방을 나가자 구건호는 비서 이선혜에게 대추차를 한잔 더 주문했다. 대추차를 마시고 있는데 상임감사가 다시 들어와 보고를 했다.
“첫번 째 500만원을 보냈습니다. 160만원씩 두 사람, 그리고 한 사람은 180을 보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상임감사가 나가자 구건호는 시민단체에 있는 강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구사장. 보내준 돈은 잘 받았어. 우리가 너희 회사 직원들에게 인문학 강의한 교육비지?”
“뭐라고?”
“교육 효과가 나오는 건 며칠 지나서 일거다.”
구건호는 강민호가 보안 때문에 말을 이렇게 하는 것으로 짐작했다.
“다음 달에도 교육 잘 부탁한다.”
“알았다. 수고해라.”
일본에 가 있는 심운학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또에 와 있는 심운학 감독입니다.”
“촬영은 다 끝났어요?”
“오늘까지입니다. 원래는 어제 끝났어야 하는데 도에이 우즈마사 영화촌에 관광객들이 몰려 좀 늦었습니다.”
“그래요?”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새벽과 야간 촬영을 많이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내일 바로 상해로 돌아가겠습니다. 에이꼬는 휴가를 줘서 동경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도 여기 일을 다 보셨기 때문에 내일 돌아가실 겁니다. 망가(만화) 전시회가 열리는 미야꼬메세의 코스프레 사진 촬영은 다 끝냈다고 합니다.”
“흠, 그런가요?”
“미야꼬메세의 망가 페어는 이번에 현지 촬영나간 환러스지 공사 스탭들도 잘 보았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리고 사장님이 우리가 수고한다고 술값을 보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여기 와 있는 스탭들이 그렇지 않아도 촬영 끝내고 술 생각나는데, 요시타카 선생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고 난리였습니다.”
“허허, 그래요?”
“오늘 저녁 여기 꾜또의 재래시장이 있는 니시키(錦市場) 시장에 가서 한잔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구건호는 돈이란 좋은 물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베풀고 나서 받은 사람들이 고마워하면 구건호 자신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중국 사람들이 그랬지? 돈은 귀신도 움직인다고. 내가 시민단체에 있는 강민호에게 돈을 보내니 정치도 움직이지 않는가? 내가 직접 영화감독이 되거나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이 될 필요가 없어. 강남 큰손이 되어 그들을 뒤에서 조정만 하면 되겠지.]
구건호는 점심을 먹고 지에이치 모빌로 갔다. 오늘은 거꾸로 디욘 코리아를 먼저 들렸기 때문에 오후에 모빌을 가게 되었다.
모빌 공장에서 제너시스 승용차 한 대가 빠져 나왔다.
“찬호야, 누구 차냐?”
“송사장님 차 같은데요? 어디 가시는 모양인데요?”
“흠. 그래?”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차 돌리는데요? 우리 차 보고선 돌리는 것 같은데요?”
“그래?”
구건호 차가 공장 정문을 지나 현관 앞에 섰다. 구건호가 내리자 뒤따라오던 제너시스가 멈추고 송사장이 내렸다.
“어디 가시는 모양인데 그냥 가시지 그랬습니까?”
“보고가 있어서요.”
“무슨 일 있습니까?”
“갑자기 A전자 오더 물량이 늘어나네요. 오늘 아침에 A전자 ERP시스템(전사적 자원관리)에 발주량 뜬것 보고 놀랐습니다.”
“원래 가전제품은 찬바람 나면 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많이 늘어났네요. 도아 아셈블리는 현재 우리가 30%, 기존 경쟁업체가 70%였는데 이 비율이 차츰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구건호는 순간 이진우 장관이 생각났다.
[내가 지역구를 찾아간 것이 약발이 받아서 그런가?]
“생산은 가능하지요?”
“가능은 합니다만 뽑아놓은 50명이 들어와야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종석 이사가 내일 돌아온다니 생산 할당은 박이사가 오면 할 겁니다.”
구건호는 슬쩍 송사장을 떠보기로 하였다.
“박이사는 디욘 인디아의 새로 부임한 브랜든 버크 사장이 달라고 하는데요? 디욘 인디아의 공장장으로 하겠답니다.”
“박이사를요? 그건 안 됩니다. 여기가 큰일 납니다.”
송사장은 펄쩍 뛰었다.
“여긴 부장들도 있고 차장들도 있으니까 안 될까요?”
“안됩니다. 브랜든 버크라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요. 박이사는 세계적 기술자인 사카다 이쿠조씨에게 도제식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좀 거칠어서 가끔 저한테 혼나기는 해도 박이사 없으면 여기 안 됩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리고 참, 민주 공명당의 사무총장과 아까 통화를 했는데 보궐선거가 많이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구사장님이 고맙게도 정치헌금을 1억씩이나 해 주었는데 만족할 결과가 안나올까봐 걱정이랍니다.”
“이민우 장관님 지역구 말이죠? 잘 될 겁니다.”
“지금 여론 조사로는 아나운서 출신 후보자와 막상막하인 것 같은데요? 안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A전자에서 우릴 많이 도와주려고 하는데 나쁜 결과가 나올까봐 걱정이 됩니다.”
“다, 잘될 겁니다.”
“예?”
“정치란 것이 원래 내일 일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뒤집어 질수도 있겠지요. 참, 어디 가시는 것 같았는데 가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S기업에서 협력사 사장단 회의가 있습니다. 모시고 계셨던 거기 회장님이 가끔 저를 찾으셔서 안갈 수가 없네요.”
“거기 부회장으로 있는 아드님은 회사를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현재까지는 큰 잡음 없이 이끌고 가긴 합니다. 문제는 이지노팩인데 이지노팩 회장 아들은 좀 문제가 많은 사람 같습니다.”
“그것 참.”
직원들 몇몇이 현관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 먹으로 들어오다가 구건호와 송사장이 서있는 것을 보고 슬금슬금 도망을 갔다.
“이지노팩 회장도 지금쯤 아드님을 회사에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탈이 날까봐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지노팩 회장아들은 지금 미주지역 사장 아닙니까?”
“사장은 맞지만 미주지역 일은 거기 부사장으로 있는 친구가 다 합니다. 거기 부사장도 제가 잘 압니다.”
“흠, 그래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예, 얼른 가보십시오.”
구건호가 사장실로 올라와 총무이사를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창고는 계약 했나요?”
“아직 못했습니다.”
“왜요? 돈을 더 달라고 해요?”
“그런 건 아니고요, 거기 땅주인 부부가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갔답니다. 오늘이나 내일쯤 돌아오실 것 같은데 돌아오면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흠, 그래요?”
“그리고 이건 우리가 빌리려고 했던 교회에 관한 정보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무슨 정보요?”
“그 대형 교회가 건물을 멋있게 지어놓고도 신도수가 감소되니까 그 건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팔라고 내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자는 이야기입니까?”
“그냥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거긴 종교부지입니다. 종교부지라 양도소득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주변 땅값보다 쌀지 몰라도 우리가 사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교회를 너무 크고 멋있게 지어 놓았는데 우리가 사무실로 쓰면 몰라도 공장으로 쓰지는 못합니다. 더군다나 거긴 지목이 공장도 아니잖습니까? 전기나 상수도, 오폐수 시설도 공장과 거리가 멀어서 안 됩니다.”
“우리가 사자는 말씀은 아니고 그냥 정보사항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총무이사님은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갔다는 창고 주인이나 돌아오면 싸게 임대받을 생각만 하세요. 우리 종업원들이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면 노동 생산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풀제 실시도 연구해 보시고 이 공장 주변의 버스 노선도 잘 알아보세요. 지방도시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어서 문제인데 시간만 잘 맞추면 대중교통 수단도 권장해 볼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차를 안 가져 오는 사원들한테는 교통수당도 달아주는 것도 고려해 보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왕 오신 김에 내가 숙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숙제요?”
“차 한잔하면서 말씀드리죠.”
구건호는 비서 박희정을 불러 녹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구건호가 차를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
“지금 우리가 납품을 하고 있는 곳은 30여 군데나 되는 건 알지요?”
“압니다.”
“그중 제일 납품을 많이 하는 곳이 그동안 S기업과 만동전장, 이지노팩 같은 회사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A전자와 H그룹의 물량이 터져 납품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S전자와 H그룹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기업은 오늘 내일을 모릅니다. 이 순위가 내년이 되면 어떻게 또 바뀔지 모릅니다. 재벌도 10년전 재벌 순위하고 지금의 재벌 순위가 많이 바뀌고 있잖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공장이 천안시 직산읍에 있지만 납품처의 지역은 어디가 제일 많습니까?”
“당진과 창원, 그리고 울산, 수원, 구미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럼 공장이 여기보다는 당진과 창원에 있는 게 낳겠지요?”
“그, 그야 그렇겠지요.”
“S기업은 해외 자회사 말고 국내에 공장이 몇 개 있는 줄 알죠?”
“5개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도 당진과 창원에 제3공장, 제4공장이필요합니다.”
“그건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공장으로 활용 가치가 없는 대형 교회를 건물 깨끗하고 싸다고 덥석 살것이 아닙니다. 당진과 창원의 부동산 시세와 경매시장에 매물 나온 물건이 있는 가 조용히 알아보세요. 급한 건 아니니까 미래를 위해서 알아보란 이야기입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