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모리 에이꼬 오디션 (3)
(404)
뉴오따니 호텔 소 연회실 쓰루(鶴)에서 간단한 오디션이 있었다.
먼저 우옌 감독이 말했다.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한번 해 볼래요? 마음을 편안히 갖고 해보세요.”
모리 에이꼬가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고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구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해보라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우옌 감독이나 심운학 감독은 일본어를 모른다. 에이꼬의 얼굴 표정이나 동작을 보고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
모리 에이꼬가 앞으로 나왔다. 에이꼬도 사실은 연예인들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지방의 행사에 나가 전통 춤을 추는 것보다는 영화나 드라마가 돈도 잘 벌고 인기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일본의 영화가 아니고 중국 영화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선뜻 응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에이꼬가 잠시 주저하다가 연기를 시작했다.
“오빠, 우리 오타루에 가서 살아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거기 가서 살아요. 거기 가서 오빠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고 나는 어부의 아내가 될 거예요.”
구건호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언젠가 에이꼬한테 들었던 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에이꼬의 진지한 연기에 우옌과 심운학 감독은 눈을 크게 떴다.
“오빠, 사랑해요. 우리 같이 오타루에 가서 가난해도 함께 살아요. 휴일이면 함께 손을 잡고 오타루의 운하 변을 걷고 사카이 마치도리도 함께 걸어요.”
에이꼬는 연기를 하면서 정말로 우는 것 같았다.
“그만!”
우옌이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잘 했습니다.”
에이꼬가 연기를 중지하고 구건호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구건호도 박수를 치며 복잡한 마음을 갖고 미소를 보내주었다.
우옌이 또 어려운 과제를 내었다.
“이번엔 과일을 파는 아저씨에게 만원을 냈는데 아저씨가 천원을 받았다고 해서 싸우는 장면을 해봐요.”
에이꼬가 망설이다가 연기를 했다.
“만원을 드렸잖아요. 지금 주머니 속을 다시 뒤져보세요. 나는 거짓말 안 해요. 거기에 만원 짜리가 있잖아요? 뭐라고요? 이건 다른 손님한테 받은 거라고요?”
“그만.”
우옌 감독이 중지를 시켰다. 그리고 촌평을 하였다.
“이 장면은 좀 어색했습니다. 그냥 책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연기는 지도를 받으면서 영화 촬영을 해야 할 것 같군요. 물론 에이꼬 양은 중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중국의 성우가 더빙을 하지만 표정과 액션은 진짜처럼 해 줘야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캐스팅 여부는 제가 심운학 감독님과 상의를 하겠습니다. 심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연기는우리가 조금씩 지도하고 저는 캐스팅 쪽에 한 표를 던집니다.”
구건호도 이런 일엔 끼어들지 않지만 한마디 했다.
“여기서 결정하고 갑시다.”
자본주 구건호의 말에는 언제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우옌 감독이 얼른 말을 받았다.
“좋습니다. 실은 저도 캐스팅 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에이꼬양은 의자에 앉으세요.”
에이꼬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우옌 감독이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마시며 말했다.
“촬영은 시나리오대로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 게이샤 오도리를 보고 느낀 건데 중간 중간에 게이샤 오도리를 많이 집어넣을 생각입니다.”
이번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에이꼬양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려야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것이 캐스팅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입니다.”
“에이꼬 양을 캐스팅 한다면 어제 들렸던 신쥬꾸의 요정 마마상하고 같이 해야 합니다. 게이샤의 세계에서 마마상은 연예인들의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럼 오늘 오후라도 들릴까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화는 내가 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중국에 돌아가면 시나리오 대본은 일본어로 번역을 해서 에이꼬 양에게 한부 보내드리겠습니다. 작품의 분위기는 익혀야 하니까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코를 긁으며 계속 이야기 했다.
“에, 또 그리고 에이꼬 양이 상해로 가게 되면 현지에서 일본어 통역 한사람을 붙여줘야 합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분장사가 한명 따라가야 합니다.”
“분장사요?”
“물론 중국의 영화사에서도 분장사들이 있겠지만 게이샤의 화장은 분장사들이 합니다. 게이샤 혼자 스스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분장사들은 남자가 많지만 해외 동반이기 때문에 여성 분장사와 함께 가는 것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러지요.”
"지금 시간이 12시입니다. 여기서 식사하시고 우리가 마마상을 만나러 요정으로 갈까요? 아니면 이리 오라고 할까요?“
"협의를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협의해 보죠.”
요시타카 선생이 마마상 세가와 준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마상? 마츠이 요시타카입니다. 감독님들이 에이꼬 양을 캐스팅하기로 했답니다. 출연계약을 하는데 오셔서 입회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요시타카 선생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오후 1시까지 이리로 오겠답니다.”
“그럼 여기서 식사들을 합시다.”
호텔 종업원들이 바로 음식을 소 연회장으로 가져왔다.
“세분이 같이 식사하세요. 나는 에이꼬와 함께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건호는 일어서서 에이꼬와 함께 옆 테이블로 옮겨갔다. 에이꼬가 구건호에게 손을 잡는걸 보고 일행들은 다소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구사장하고 에이꼬 양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네.”
“글쎄, 그러네요. 에이꼬 양이 구사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남다른데요?”
일행들은 멀리 영빈관이 바라다 보이는 창 쪽에 앉은 구건호와 에이꼬를 힐끔 힐끔 돌아다보았다. 에이꼬와 구건호가 서로 웃어가며 대화도 하고 맥주잔을 부딪치는 모습을 보았다. 에이꼬의 옆얼굴은 마치 조각 같았다. 세 사람은 에이꼬와 함께 앉아있는 구건호가 부러웠다. 그리고 구건호의 젊음도 부러웠다.
일행들은 식사를 하고나서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마마상 세가와 준꼬가 왔다. 세가와 준꼬는 이런 일을 여러 번 해 보았는지 에이꼬의 통장 사본과 여권 사본도 가지고 왔다.
“중국 상해의 영화제작사 환러스지 공사의 사장은 천바오깡입니다. 저는 부사장이지만 출연자 캐스팅에 관한일은 제가 다합니다. 오늘은 대리인 자격으로 게이꼬양과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하잇.”
“촬영은 메인 프로덕션 기간인 다음 달 부터 맥시멈 4개월간 합니다. 그 안에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 4개월은 넘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잇.”
“촬영은 60회 내지 100회의 촬영이 있습니다. 촬영 기간 동안은 중국에 체류하셔야 하며 왕복 항공료와 숙박 편의를 캐런티와 별도로 제공해 드립니다.”
“하잇.”
“동행인은 분장사 한명에 한해서 동반 출장을 허용합니다.“
“하잇”
“출연료는 20만 달러로 합니다.”
“주연 배우가 아닙니까?”
“주연은 맞습니다만 에이꼬는 아직 신인입니다. 이번 작품 흥행에 성공하면 다음 작품에서 올려드리겠습니다.”
마마상 세가와 준꼬가 모리에이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이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가와 준꼬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 출연 계약서에 나와 있는 조항들은 일반적인 것들입니다. 갑과 을의 의무관계, 상품화와 손해배상 등은 관례에 따르면 됩니다. 중요한 사항만 제가 구두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영화제작엔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 영화도 제작비가 1천만 달러가 소요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마침 제작비의 절반을 옆에 계신 구사장님께서 흔쾌히 투자해 주셔서 이번 영화의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오, 소데스까(그렇습니까)?”
마마상 세가와 준꼬는 존경어린 눈빛으로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세가와 준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세가와 준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세가와 준꼬가 에이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구사장님이 모처럼만에 오셨으니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라.”
세 사람은 세가와 준꼬의 말을 듣고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구사장과 이야기를 나눠? 정말 보통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세가와 준꼬가 가고나자 구건호가 세 사람을 향해 이야기 했다.
“귀국 비행기가 내일 오전이니까 푹 쉬시고 이따 저녁때나 만나죠. 동경에 왔으니 또 한잔 해야죠.”
“저, 사장님.”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저녁 식사는 최지연 사장이 있는 한식당으로 하면 어떨까요? 오래간만에 불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한식당으로요? 그러시죠. 최사장 식당은 여기서 걸어가도 되니까요.”
“그럼 제가 최사장에게 전화를 해 놓겠습니다.”
구건호는 아무리 보아도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이상했다. 동경에 처자식이 있다면 집에라도 한번 들려야 할 텐데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
[독신인가? 얼핏 들으니 처자식도 있었다는 것 같았는데....]
그럼 저도 일어서겠습니다.
구건호는 에이꼬를 데리고 호텔 정원으로 나왔다. 연못 속의 비단잉어를 구경하다가 에이꼬가 말했다.
“우리 걸어요.”
“어디로 갈까?”
“음... 시부야로 가요.”
“그래, 거긴 에이꼬의 집이 있는 다이칸야마가 가까우니 그리로 가자.”
구건호와 에이꼬는 시부야로 가서 고엔도리 거리를 걸었다. 에이꼬는 기분이 좋은지 구건호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이제 상해 왔다 갔다 하려면 옷이나 구두 같은 것도 있어야겠지? 오빠가 하나 사줄게.”
구건호는 시부야의 이치마루큐 백화점에 들어가 모리 에이꼬의 옷과 구두, 모자, 선글라스까지 몽땅 사주었다. 구건호는 물건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리 에이꼬를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김영은은 물건을 사다주면 비싼 건 뭐 하러 사왔냐고 하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모리에이꼬는 꼭 고마워하고 소중히 물건을 받았다.
거리를 걷고 쇼핑을 해서 그런지 다리도 아프고 배도 출출했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시부야역 근방에 있는 미도리 스시집에 들려 초밥을 사먹었다.
“참, 오빠 오늘 저녁 6시에 같이 오신 분들하고 저녁 먹기로 약속하지 않았어요?”
“가기 싫다. 모리 에이꼬하고 함께 있고만 싶다.”
구건호의이 말에 모리에이꼬가 환하게 웃었다.
“쇼핑을 해서 짐이 많아요. 저도 이 짐을 다이칸야마의 맨션에 갖다놓고 신쥬꾸 요정으로 가봐야겠어요.”
쇼핑한 짐을 각자 나눠들고 구건호와 모리 에이꼬는 다이칸야마의 맨션으로 왔다.
“이집 오래간만에 와본다.”
벽에 못 보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에이꼬가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어느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친구들은 똑같이 유카타를 입은 것으로 보아 동료 마이꼬상들인 것 같았다. 짐을 들고 와서 그런지 모리 에이꼬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구건호가 자기 손수건으로 모리 에이꼬의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
구건호가 모리 에이꼬를 껴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모리 에이꼬는 눈을 감았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샤워도 안했는데.”
“괜찮아.”
모리에이꼬의 몸에서는 향수 냄새와 땀 냄새가 났다. 구건호는 자기의 처 김영은에게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색다른 냄새였다.
“답답해.”
모리 에이꼬가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구건호는 잠시 껴안은 손을 풀었다가 다시 에이꼬의 앙증맞은 작은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포개었다.
둘은 서로 꼭 껴 앉은 채 오랫동안 침대를 둥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