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403화 (403/501)

# 403

모리 에이꼬 오디션 (2)

(403)

구건호가 네 사람을 데리고 호텔로 왔다. 뉴오따니 호텔을 보고 우옌은 멋있다는 소리를 연발하였다.

“오우, 피아오리앙(멋있다)!”

심운학 감독도 400년 된 전통 일본식 정원을 보고 감탄하였다.

로비로 들어간 구건호는 네 사람의 방을 체크인 하였다.

“젠장 비서라도 데리고 다니든지 해야지 사장인 내가 체크인을 하고 있네.”

구건호는 룸 키를 받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제 각자 자유시간입니다. 오후 6시에 여기로 모이면 됩니다. 여기서 호텔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신쥬꾸 요정으로 이동합니다.”

심운학 감독이 질문을 하였다.

“우리도 팁을 준비해야 합니까?”

“안하셔도 됩니다.

구건호가 요시타카 선생을 불렀다.

“마마상 세가와 준꼬에게 전화를 해 주세요. 나를 비롯한 영화감독 두 사람하고 요시타카 선생이 6시까지 간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리 에이꼬를 단장 시켜놓으라고 하세요. 연회가 시작되면 영화감독 두 사람에게 마에꼬(藝妓) 오도리를 보여주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요정에서 마에꼬 오도리를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구건호는 우옌 감독을 불렀다.

“일본의 요정은 다다미방인데 의자가 없습니다. 바닥에 그냥 앉는데 괜찮겠습니까?”

중국인들은 침대생활을 많이 하여 한국식 온돌방이나 일본식 다다미방에는 잘 앉지를 못했다.

“방석 두 개만 포개 주시면 괜찮습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은 구건호가 우옌 감독과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오, 구사장님이 중국어를 아주 잘 하시네요.”

오후 6시가 되어 이들 일행은 신쥬꾸의 요정엘 갔다. 전통가옥에 담장 밑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우옌 감독과 심운학 감독은 누가 말할 사이도 없이 요정 건물을 사진 촬영했다. 구건호가 핀잔을 주었다.

“그건 뭐하러 찍는 거요? 집주인 알면 기분 나쁘게.”

“영화를 찍을 때 필요해서요. 이와 같은 모습의 건물을 찍어두면 중국에 가서 세트장을 만들 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다다미방으로 안내되었다. 일행이 좌정해 앉자 방문이 열렸다. 기모노를 입은 중년여인이 무릎을 꿇은 채 앉은 자세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중년여인은 일행 앞으로 와서 또 무릎을 꿇고 다다미 바닥에 손을 집고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오시사시부리데스, 구 사쪼상 (오래간만입니다. 구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마마상.”

우아하게 생긴 중년 여성은 이 요정의 마담 세가와 준꼬였다.

“마마상, 오래간만입니다. 나 마츠이 요시타카요.”

“아, 요시타카 선생님!”

“마마상은 아직도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군요.”

“하, 아리가도 고사이마스(고맙습니다).”

구건호가 짧은 일본어로 옆에 앉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분은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우옌 선생이십니다.”

“하핫, 그렇습니까? 저는 이 요정의 마마상 세가와 준꼬입니다.”

“또 이분은 한국의 유명한 감독 심운학 선생이십니다.”

“하핫, 반갑습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은 마마상과 구면인 것 같아 소개를 생략합니다.”

오시타카 선생과 마마상은 서로 얼굴을 본채 웃었다.

세가와 준꼬가 옥같이 하얀 사기 주전자에 말차(抹茶)를 따라서 한잔씩 주었다. 차를 마시면서 구건호가 말했다. 구건어는 한국어로 말하고 요시타카 선생이 통역을 하게 하였다.

“지금 중국에서 <몽환앵화>라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모리 에이꼬를 출연시켜볼까 합니다.”

“방송국에 잠깐 출연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영화 출연입니다. 두 분 감독의 오디션에 통과해야 되지만 영화에 출연을 시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가 게이샤와 중국 첩자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애인을 쫓아 일본을 배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괜찮겠습니까?”

“좀 후가이(찝찝하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상관은 없습니다.”

“중국의 배우들은 그런 장면을 연기하면 사회에서 매장이 되다시피 합니다.”

“그래요?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는군요.”

구건호는 우옌 감독이 지금까지의 대화를 궁금하게 여기는 것 같아 짧게 통역을 해주었다.

“찝찝한 스토리지만 영화고 예술이니까 받아들이겠답니다.”

우옌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면에서는 중국은 아직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민국시대(중화민국이 대륙을 통치하던 시대)에 삼국지의 조조 역할을 했던 배우가 민중들의 돌에 맞아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허, 그래요?”

구건호가 말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만일 에이꼬가 오디션에 합격한다면 마마상한테 출연료는 어떤 방식으로 지불하면 됩니까?”

“에이꼬의 몫이니까 에이꼬의 통장으로 넣어주면 됩니다.”

구건호는 마마상과의 배분에 대하여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기원(祇園: 유곽을 지칭함)세계의 불문율인데 자기가 간여할 바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에이꼬 개인통장을 마마상이 관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오늘 모리 에이꼬의 오도리를 감상하고 내일오전에 두 분 감독이 오디션을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마상이 나가고 난 뒤에 술상이 들어왔다. 정갈한 생선회 종류의 주안상이었다. 사미센을 든 여자들이 들어와 전통가락을 연주하는 속에 일행들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

나갔던 마마상이 다시 들어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모리 에이꼬를 들여보내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럼 음식상은 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마상이 박수를 치자 핸섬하게 생긴 남자 종업원들이 들어와 음식상을 내가고 차를 따르는 탁자만 남겨 놓았다. 방문 밖에서 문을 반쯤 열고 무릎을 꿇은 게이샤 치장을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이꼬상(藝妓)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모리 에이꼬였다. 모리 에이꼬는 다시 조심스럽게 들어와 앞에 앉은 네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부채를 앞에 놓더니 네 사람을 향해 코가 다다미에 닿도록 절을 했다.

“오오.”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해본 우옌 감독이 신음 소리를 냈다. 중국에서는 부처한테 절을 할 때나 무릎을 꿇지 장례식장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민족이었다. 모리 에이꼬의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모리에이꼬가 춤을 추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다.

“헉!”

구건호를 뺀 세 사람이 모리 에이꼬의 미모에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음.”

세 사람은 동시에 신음소리를 냈다. 구건호는 탁자 위의 차를 마시며 세 사람의 이런 모습에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미센 소리가 크게 울리었다. 사미센을 키던 중년 여인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좀 슬프기도 하고 청승맞은 노래였다. 모리 에이꼬는 천천히 일어나 부채를 폈다. 기온고우타(祇園小唄)라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하늘의 선녀 인양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춤이 끝나자 모리 에이꼬는 또 무릎을 꿇고 네 사람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네 사람은 박수를 쳐주었다. 모리 에이꼬가 나가려고 하자 우옌이 모리 에이꼬를 불러 세웠다. 영어로 말했다.

“자스트 모먼트.”

우옌 감독은 구건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빠른 곡의 춤을 볼 수 있겠습니까?“

구건호가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을 보며 말했다.

“방금 우옌 감독이 빠른 곡의 춤을 볼 수 있겠냐고 합니다.”

요시타카 선생은 구건호의 말을 듣고 사미센을 들고 있는 중년여인에게 물었다. 중년여인이 모리 에이꼬를 향하여 고개를 까닥이자 모리에이꼬도 고개를 까닥였다.

다시 사미센 소리가 울려 나왔다. 좀 빠른 곡이었다, 다이도꾜 온도(大東京音頭)라는 곡이었다. 모리에이꼬가 이 음악에 맞추어 빠른 동작의 춤을 선보였다. 이 춤은 구건호도 처음 보는 춤이었다.

“정말 잘하네.”

이번엔 네 사람이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춤이 끝나자 우옌 감독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 춤은 정말 일본식 춤 같네요. 오케이 용모와 춤은 합격입니다.”

우옌이 박수를 치자 나머지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었다.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리 에이꼬에게 구건호가 말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뉴오따니 호텔로 나와라. 마마상한테는 이야기 해 놓겠다.”

“하잇!”

고개를 약간 들던 모리 에이꼬는 다시 고개를 다다미에 닿을 정도로 숙이며 ‘하잇’소리를 했다.

모리 에이꼬가 나가고 나서 심운학 감독이 신음을 하듯 말했다.

“정말 귀여운 요정같이 생겼네요. 성형한 얼굴 같지도 않네요.”

“그래도 한국의 연예인들은 미인이 많지 않습니까? 설빙이나 리아 같은 배우들은 얼마나 날씬하고 좋습니까?”

“키는 개들이 모리 에이꼬보다는 크지만 용모는 못 쫓아 갈 것 같네요. 설빙과 리아는 얼굴을 많이 고친 사람들 아닙니까? 모리 에이꼬는 미인이지만 아주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어 펑아이링 여사의 작품인 <몽환앵화>의 여주인공 감으로 딱 어울립니다. 실제적으로 와서 보니까 설빙이나 리아보다도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구건호가 이번엔 우옌에게 물었다.

“아까 모리 에이꼬가 용모와 춤은 합격이라고 했는데 리아보다는 어떻습니까?”

“리아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우선 예의가 있고 예쁘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아주 일본적이지 않습니까?”

“내일 내가 오전 10시까지 뉴오따니 호텔로 오라고 했으니까 간단한 연기력을 테스트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심운학 감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연기력 테스트를 어디서 하지요?”

구건호가 심감독을 쳐다보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심감독님이 원하신다면 뉴오따니 호텔 대강당을 통째로 빌려드리지요.”

“예?”

구건호가 마마상을 불렀다.

“오늘 아주 잘 놀았습니다. 여기 옆에 계신 세분도 아주 만족 하시답니다. 이거 비자카드인데 오늘 술값 계산하시고 이 봉투는 현금이 들었으니까 사미센을 들고 온 사람들하고 심부름한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하핫, 고맙습니다.”

마마상이 비자카드와 현금을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았다.

우옌이 웃으며 말했다.

“푸웡(富翁: 갑부)과 함께 다니니 저희가 호강을 합니다.”

구건호는 세가와 준꼬에게 다시 말을 했다.

“그리고 내일 오전 10시까지 모리 에이꼬를 뉴오따니 호텔로 보내주세요. 두 분 감독께서 간단한 연기력 테스트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하잇,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건호는 뉴오따니 호텔 소 연회실인 쓰루(鶴)를 통째로 빌렸다. 5명이 식사를 한다고 하면서 빌렸다. 전에 톱스타 설빙에게 프로포즈할 때 통째로 빌렸던 장소였다. 구건호는 장소를 심운학 감독에게 보여주었다.

“연기테스트는 여기 있는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해보세요.”

“너무 과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장소도 빌려주시고.”

구건호가 로비로 들어서는 모리 에이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모리 에이꼬가 뛰어와 얼른 구건호의 팔짱을 끼었다.

“오빠!”

“어제는 수고했어. 오늘 감독들이 간단한 연기력 테스트를 한데. 잘해봐.”

구건호가 화장기도 없이 대학생처럼 하고 온 에이꼬를 데리고 오자 소 연회실에 대기하고 있던 세 사람은 또 놀랐다.

“오, 이 학생이 모리 에이꼬입니까? 전혀 모르겠네요. 귀여운 부잣집 대학생 같네요.”

우옌이 놀라움을 감추고 말하자 심감독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화장기 하나도 없는 얼굴인데 정말 자연 미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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