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
모리 에이꼬 오디션 (1)
(402)
구건호가 오후에 디욘 코리아로 갔다. 김전무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중국의 딩딩 회사가 내일 공업원구 공장으로 이사를 한답니다.”
“그래요?”
“지금 직원도 없고 그래서 김민혁 사장이 당분간 뒤를 봐주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김민혁 사장 공장에 있는 공무팀 직원을 보내 공장 정비할 곳이 있으면 정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생산직과 관리직 인원은 채용공고를 냈답니까?”
“인재 시장에 공문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빌에서 디욘에서 쓰는 기계를 조립하고 있는데 우선 중국 사정이 급하니까 여기에 있는 1호기, 2호기를 뜯어서 중국에 보낼까 합니다.”
“기계만 보내는 게 아니라 배합과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을 보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연구소의 과장급 한명과 공무팀의 과장급 한명을 중국으로 발령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 두 사람 가지고 되겠습니까?”
“며칠간 유희열 부장과 공무팀 안차장을 보내 지도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유부장과 안차장은 일주일 정도 있다가 귀국 시킬 겁니다.”
김전무는 중국공장 전보발령 품의서를 구건호 앞에 내밀었다. 김전무와 애덤캐슬러의 서명이 들어간 품의서였다.
“이 두 사람은 본인 간다고 지원했습니까?”
“사내에서 희망자를 모집했는데 3대1 정도로 희망자가 몰렸습니다. 중국에 가면 급여를 1.5배 받으니까 희망자가 나옵니다.”
구건호가 전보발령 품의서에 싸인을 하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방금 서명하신 전보발령 품의서는 총무에서 각부서로 공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계 1호기, 2호기는 포장해서 중국으로 내일 보내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발령자들도 빨리 보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인도는 아직 공장 수리중이니까 중국 마무리 지어놓고 사람 보낼 예정인가요?“
“중국은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도는 간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반 강제적으로 발령을 내고 인센티브를 좀 더 주도록 해보겠습니다. 급여의 1.5배는 물론 고과에 우선권을 주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인도 역시 배합은 유부장이, 공무는 안차장이 중국 갔다 오면 바로 인도로 가서 지도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흠.”
“앞으로 디욘 코리아가 중국과 인도뿐만 아니고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순환보직 시스템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해외는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근무하고 해외 경험이 없으면 승진심사에서 무조건 제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김전무가 나가고 나서 상임감사가 들어왔다.
“증권사 직원들은 다녀갔습니다. 재무제표에 나온 것 이외에 외상 매출금과 외상매입금 현황도 파악하고 원재료와 재공품, 완제품 재고도 모두 조사하고 갔습니다.”
“기업가치 분석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렇죠. 유가증권 분석은 해야겠지요.”
“주간사 증권사에서는 다른 말 없었습니까?”
“금년 1월부터 6월말까지의 실적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반기 결산자료를 빨리 만들어달라고 회계사 사무실에 독촉해달라고 했습니다.”
“감사님이 거래하는 안창 회계 법인에 독촉하세요. 빨리 만들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빨리 만들어달라고 이낙종 회계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잠시 침묵 후 상임감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저, 사장님. 그럼 반기 결산 자료가 나오면 바로 코스닥 예비심사 청구할 예정이십니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IR(Investor’s Relation: 투자설명회)에 대비하여 사업 설명서 자료는 만들어 놓아야 하겠군요.”
“코스닥 예비심사를 청구하던 안하던 간에 사업 설명회 자료는 한번 만들어 놓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하고 경리 조명숙 차장하고 영업의 성일기 과장하고 같이 만들겠습니다.”
“생산계획도 나와야 하는데 세 사람 가지고 되겠습니까?”
“성일기 과장이 배합실 출신이니까 생산 감각도 있습니다. 모르는 건 물어서 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퇴근길에 차 안에서 내내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다.
[지금 발행주식 200만주인데 상장하게 되면 신주모집을 30%는 더 해야 된단 말이야. 상장을 하게 되면 내가 모든 걸 움켜쥘 수는 없고 어느 정도 유통 주식은 있어야 하겠지. 그러면 내 지분이 좀 더 쪼그라들겠는데.]
[상장하면 주식 가격이 올라가서 내 재산은 불어나겠지만 내 지분은 줄어드니 그것도 좀 찝찝하네.]
금요일이 되었다.
인터넷 뉴스에는 요즘 매일 이진우 장관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보궐선거에 강력한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구건호가 보기에도 당선은 될 것 같았다. 우선 경쟁자가 아나운서 출신인데 가끔 말 실수를 해서 그다지 인기를 못 얻고 있었다.
이진우 장관은 과거에 국회의원을 해 보았던 사람이라 능글맞게 노련했다. 기자들의 예리한 질문에 잘도 피해 다녔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의 지에이치 개발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이진우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후원금은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오, 우리 당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후원금입니다. 후원하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당선으로 꼭 보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약간 코믹스런 기분이 났다.
[뭘 이걸 가지고 이런 외교적 발언을 하나? 옆에서 누가 듣는 사람이 있나?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이런 형식적인 말을 하나?]
[보궐선거 보다는 돈은 당선 후 더 들어가겠지. 당권 경쟁도 해야 하고 차차기 대권을 위한 행보를 해야 되니까. 지금 모빌의 매출은 아직 약해. 좀 더 밀어주면 내가 그만한 보상은 해줄수 있는데 겨우 30% 내지 40% 매출 증가에 그친다면 나도 많이 내 놓을 수는 없지. 안 그렇소? 장관님.]
비서 오연수가 우편물 하나를 가져왔다. 펼쳐보니 서울대 정책대학원에 같이 다녔던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청첩장이었다.
“딸이 결혼하네?”
구건호가 청첩장을 자세히 보았다.
[르메르디앙? 리츠칼튼 호텔이네? 지난번에 내가 증권사 지점장하고 같이 밥 먹은 곳이군. 검사장도 평소에 알아두는 게 좋겠지. 사람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야. 다음 주 토요일이 결혼식이면 내가 동경에 갔다 와서 참석해도 되겠군.]
[그런데 화환은 보내? 말아? 어느 회사 명의로 보낼까? 돈 잘 벌고 규모가 큰 지에이치 모빌 명의로 보내지. 가만있자. 거긴 내가 공동대표이사니까 이번엔 디욘코리아 대표이사 명의로 보낼까? 앞으로 상장도 할 회사니까!]
구건호는 디욘 코리아의 조명숙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구사장이요.”
“어머, 사장님. 웬일이세요. 투자 설명회 때 가지고갈 사업 설명서 자료는 거의 다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한건 아니고 다음 주 토요일 오후 1시에 르메르디앙(리츠칼튼) 호텔에서 결혼하는 사람에게 축하화한 하나 보내주세요. 청첩장은 내가 사진 찍어서 보내 줄게요. 대표이사 구건호 명의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얼마짜리로 보낼까요?“
“10만원 짜리 보내줘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심운학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 내일 한국 들어갑니다. 법원에서 열리는 채권자 집회는 월요일 오전 10시입니다. 채권자 집회 끝나고 바로 사장님께 들리겠습니다.”
“서울에서 동경 가는 비행기 표는 끊어 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월요일 뵙겠습니다.”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심운학 감독이 온다고 해서 직산엘 내려가지 않았다. 구건호가 점심을 먹고 사장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심운학 감독이 왔다. 일이 잘되었는지 표정은 밝았다.
“법원 일은 잘 끝났습니까?”
“예, 잘 끝났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채권자 집회라고 해서 채권자들이 몰려오는 줄 알았는데 채권자들은 하나도 안 왔습니다.”
“허, 그래요?”
“판사가 제 신분 확인을 하고선 심운학씨 채권자 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라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 됐네요.”
“그러니까 판사가 됐다고 하면서 피고인은 가셔도 됩니다. 하던데요?”
“이제 판사가 변호인의 청구 취지대로 판결할 겁니다. 채권자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럴까요? 변호사는 그렇게 될 거라고 합니다만.”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럼 판사가 부채 탕감도 해주고 내 수입 안에서 조금씩 갚으라고 판결하면 급여가 압류되거나 그런 일은 없겠네요?”
“없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10시까지 김포비행장으로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우옌 감독한테는 내일 꼼짝 말고 하네다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내일은 동경에 도착하면 뉴오따니 호텔에 묵을 겁니다. 점심 먹고 호텔에서 좀 쉬다가 저녁에 신쥬꾸에 있는 요정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요정이요?”
“공개적인 공연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게이샤의 오도리를 구경하려면 일류 요정에 가야 합니다.”
“어이쿠, 그럼 돈이 많이 들어가겠는데요? 한국도 아닌 일본 요정을 말입니다.”
“그건 심감독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님과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을 만나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이거....”
“그게 뭡니까?”
“사장님께서 중국 용정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한통 사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나가시면서 비서 오연수한테 주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심감독이 사장실을 나가자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방금 심감독님이 나가시면서 저에게 중국차를 주었습니다.”
“흠, 그래요? 그건 그렇고, 일본 동경의 뉴오따니 호텔에 방을 네 개만 예약해 주세요. 내일부터 이틀 묵는 것으로 하세요. 세 개는 싱글 룸이고 하나는 스위트룸으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호텔에 묵을 사람은 나와 심감독, 그리고 일본인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과 우옌이란 사람입니다. 우옌은 영문 스펠링이 ‘Wuyan’ 이고 심감독과 요시타카 선생 이름 영문 스펠링은 전화로미디어 사무실에 믈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스위트룸 이용자는 사장님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화요일 오후 10시에 구건호는 공항에서 심감독과 요시타카 선생을 만났다. 구건호는 양복 정장에 넥타이를 맺지만 심감독은 아래 위 옷이 모두 하얀색 옷에 모자까지 하얀색이었다. 요시타카 선생은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머리를 꽁지머리 모양으로 묶고 턱수염까지 길러 두 사람은 영락없이 예술가 타입이었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영화 만드시는 분들 같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동경 나들이라 그런지 한껏 들떠 있었다. 더구나 막강한 물주 구건호 사장과 같이 가니 든든했다.
하네다 공항에는 우옌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옌의 모습도 요란했다. 나이가 40이 넘은 사람이 떨어진 청바지에 청바지 색깔과 같은 이상한 잠바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구사장님.”
“잘 계셨소?”
구건호는 악수를 하고 콜택시를 탔다. 운전석 옆에 앉은 구건호가 드라이버상에게 뉴오따니 호텔로 가자고 하였다. 뉴오따니 호텔 소리를 뒤에서 들은 요시타카 선생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뉴오따니 호텔 데스까? 비싼 곳으로 잡았네요. 그렇게 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가서 점심 드시고 푹 쉬세요. 저녁 6시에 춤추는 게이샤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점심은 생각이 없네요. 기내식을 먹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