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
우옌(吳岩) 감독 (2)
(401)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여기 차 두 잔만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구건호가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지에이치 미디어에 근무하시면서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신사장님도 과분한 대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가족은 동경에 계신가요?”
“그, 그렇습니다.”
구건호는 가족관계를 더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요시타카 선생은 가족관계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시타카 선생을 처음 제게 소개해준 사람은 아카사카의 한식당 최지연 사장이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이분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할 때 한국인 지인들과 함께 동경에 가면 자주 들렸었습니다. 최지연 사장은 영화배우 출신이라 젊었을 때 인물이 아주 좋았습니다. 인기도 좋았지요. 자주 가다보니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흠, 그랬군요.”
“또, 제가 한국말을 잘해 통역도 해 주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 최사장은 일본어가 유창하지만 처음에 식당할 때는 일본어가 서툴렀습니다.”
구건호가 차를 한잔 마시고 입술을 적신 다음 다시 말했다.
“신쥬꾸의 요정에 있는 마마상 세가와 준꼬를 아십니까?”
구건호의 입에서 세가와 준꼬 이야기가 나오자 요시타카 선생은 눈을 크게 떴다.
“구사장님이 어떻게 그 여자를 아십니까?”
“사업상 거래하는 사람들과 몇 번 가보았습니다.”
“흠, 그랬군요. 저 역시 한국의 고위층들을 모시고 몇 번 가보았습니다. 제가 손님을 자주 모시고 오니까 저를 좋아했습니다. 가끔 제 주머니에 용돈도 찔러주곤 했지요.”
“최근엔 자주 못 갔던 모양이지요?”
“재벌이나 고관대작들이 이제는 저를 안 부릅니다. 젊고 싱싱한 통역들이 많은데 뭐 하러 저같이 늙은 사람을 부르겠습니까?
구건호가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이달 7월 13일 제가 일본에 갑니다. 함께 신쥬꾸의 요정에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세가와 준꼬의 요정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갑자기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의 안색이 환하게 빛났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일본엘 가십니까?”
“비지니스입니다. 요시타카 선생도 잘 아시는 심운학 감독이 상해에 가 있는 건 잘 아시죠?”
“압니다. 심운학 감독의 사업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심감독님이 이번에 <몽환앵화>라는 영화를 제작합니다.”
“그 이야기는 저도 한번 들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너무 출연료를 많이 요구해 결렬이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직접 게이샤를 출연시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춤추는 예기(藝妓)를 말입니다.”
“오, 마이꼬상(춤추는 어린 게이샤를 지칭함)을 말입니까? 아이디어는 좋은데 마이꼬상들은 가무(歌舞)는 배워도 연기수업은 받지 않습니다. 할 수 있을까요?”
“세가와 준꼬가 데리고 있는 마이꼬상들 중에서 연기를 좀 해본 게이샤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마이꼬상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심운학 감독은 물론 중국인 감독 우옌이란 사람하고 7월 13일 동경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옌은 상해에서 직접 동경으로 가고 심감독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 한국에 잠깐 들렸다가 동경으로 갈 겁니다.”
“그럼, 사장님과 감독 두 분과 저, 이렇게 네 명이 가는군요.”
“그렇습니다.”
“스카우트가 결정되면 나는 바로 중국의 영화제작사인 환러스지 공사에 500만 달러를 보내야 합니다.”
“헉! 500만 달러!”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에게는 나와 함께 상해의 일로 일본에 출장 간다고 하고 요정에 들린다는 말은 일체 하지마세요. 여자들은 그런 거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런데 아까 심감독이 만든다는 영화 제목 이름이 뭐라고 하셨지요?”
“<몽환앵화>입니다.”
“몽환앵화라... 일본 말로 ‘무겐 사쿠라’라는 말이네요. 누가 지었는지 제목이 멋있네요. 거기다가 진짜 게이샤가 출연한다니 발상이 아주 좋습니다. 마이꼬상이 누군지는 몰라도 연기력만 받쳐준다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요시타카 선생의 성공할 것 같다는 말에 구건호도 기분이 좋아져 너털웃음을 지었다.
구건호는 바로 심운학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시타카 선생도 7월 13일 동경에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심감독님 하고 같이 간다니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잘 되었네요.”
“우옌 감독은 그럼 동경 공항에서 만나자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우옌 감독이 아주 유명한 감독입니다.”
“그래요?”
“요즘은 좀 저조하지만 전에는 히트작이 많았던 감독입니다. 우옌도 이번 작품은 춤추는 게이샤가 연기력만 조금 받쳐주면 히트작이 될 걸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심감독의 전화를 끊고 요시타카 선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심감독도 요시타카 선생이 일본에 같이 가기로 했다니까 무척 좋아하네요.”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비행기표는 세 장만 미디어에서 끊어 놓도록 하세요. 나와 심감독과 요시타카 선생 세 사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미디어의 총무담당 노형숙씨에게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의 직산 공장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구건호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공무팀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공무팀은 창고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는데 뒤에 천막 같은 것을 치고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종석 이사가 공무팀들이 작업하는 것을 쭈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손에 면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이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공무팀 직원 한사람이 구건호를 보고 얼른 박이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뒤에 사장님 오셨어요.”
“어? 형 왔어?”
“수고한다.”
“지금 디욘코리아 기계장비 조립하고 있는 중이야. 미국에서 가져온 트윈 스크류가 잘 안 맞네.”
“안 맞으면 어떡하나?”
“조금 쇠를 깎아야지.”
공무팀 안쪽에서 선반 기계소리가 들리고 쇠를 깎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디욘 코리아에서 고장 났다는 기계 아직 저기 있구나.”
“저건 샘플로 놔두고 디욘 코리아는 벌써 한 대 만들어 주었어.”
“그래?”
“이번에 미국에서 가져온 트읜 스크류 장착하고 나머지 부품은 국내에서 조달해서 만들었어. 아침에 거기 공무팀 안차장하고 통화했는데 제품 잘 나오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대로 만들면 되겠지.”
“그래? 그럼 세금계산서를 디욘코리아에 발행 했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어. 송사장이 알아서 하겠지. 기계 판매 가격은 영업에서 책정할 거야. 내가 부품 사온 것은 모두 영업 쪽에 영수증 넘겼으니까 거기서 인건비나 전기료 같은 것을 집어넣어 계산하겠지.”
박종석 이사가 선반 기계를 돌리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소리쳤다.
“형님! 다 됐어요?”
“다 됐어.”
“직급을 불러야지 형님이 뭐냐?”
“헤헤, 습관이 되어서.”
“깎은 기계를 들고 나오던 공무팀장이 구건호를 보고 황급히 인사를 하였다.
박이사가 웃으면서 공무팀장을 가리키며 구건호에게 말했다. 존대 말로 이야기 했다.
“이 분이 디욘 코리아 기계는 눈 감고도 분해 조립합니다.”
“오, 그래요?”
공무팀장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구건호가 사장실로 올라갔다. 구건호가 온 것을 보고 송사장이 들어왔다.
“공무팀 들려서 오십니까?”
“예, 기계 조립하는걸 보았습니다.”
“한 대는 벌써 만들어 디욘 코리아로 보냈습니다.”
“세금계산서 발행하셨나요?”
“저쪽에서 그 기계를 이용해 생산하는 제품이 제대로 나오는 걸 확인하고 발행하려고 합니다.”
“흠, 그래요?”
“세금계산서만 발행을 안했지 내부적으로 가격은 결정했습니다.”
“얼마에 가격을 결정했습니까?”
“1억 5천만원으로 했습니다. 조립을 위한 기계 부품이 30여 가지가 들어갔는데 원가는 4,500만원 정도 들어갔습니다.”
“흠.”
“그 정도면 리전어블 프라이스입니다. 어차피 미국에서 그 기계 세트로 가져오려면 돈이 더 들어가는 건 사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제품이 제대로 나온다는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발행하세요.”
“그리고 H그룹에서 새로 오더를 준 엔진 브라켓은 연구소 실험 끝나고 시제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또 연락이 올 겁니다.”
“그것도 원가계산 산정해서 들어갔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즘 원가계산은 서차장이 하고 있는데 곧잘 합니다.”
“흠, 그래요?”
“그쪽만 터져준다면 월매출 150억도 가능합니다. 브라켓은 종류만도 3종류입니다.”
“원재료는 디욘 코리아 것을 씁니까?”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H그룹에서는 자기네들 계열사인 H화학에서 생산하는 원재료를 썼으면 하는데 디욘 코리아 것이 품질이 더 우수하고 세계적인 기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토를 달진 않았습니다.”
“흠, 그래요?“
“엔진 브라켓은 H그룹에서 승인 소식이 나오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무팀장이 이번에 디욘 코리아 기계 조립에 애를 쓰는 것 같으니 호봉 조정을 한번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호봉조정은 연말의 정기 승급 때 조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조립 일이 끝나면 공무팀장하고 생산부의 부장들을 시애틀에 있는 웨스트 몰딩과 라이먼델 디욘 본사 공장을 견학 보내려고 합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조립해서 디욘 코리아에 보낸 첫 번째 기계는 GHMM-0101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GHMM요?”
“지에이치 모빌 머신이라는 뜻입니다. 01은 대형기계를 말합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소형을 만든다면 그것은 02로 나갑니다. 기계에다 이 이름하고 제작 연월일을 기재한 금속 스티커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제작 일자가 붙어있어서 추후 기계가 이상이 있더라도 제작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흠, 잘 하셨습니다.”
“디욘코리아는 언제 코스닥 상장합니까?”
“연말 결산자료 나오는걸 보고 할까 생각했었는데 반기결산자료 나오면 빨리할까도 생각중입니다.”
“네, 그렇군요. 아, 참 그리고 H그룹의 최사장님은 원래부터 잘 아시었던 분입니까? 최사장님이 원래 협력사 임원들을 잘 안 만나시는 분인데 직접 불러서 안부를 물으니 저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냥 좀 아는 사이입니다.”
“H그룹의 구매팀 간부나 임원들이 최사장님 하는 말을 듣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구사장님 덕인 것 같았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송사장이 나간 후 구건호는 무얼 생각하다가 경리담당 김민화 이사를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금년도 우리 사내 유보금이 얼마나 되지요?”
“오늘 현재로 51억입니다.”
구건호는 전화로 송사장을 다시 불렀다. 송사장이 구건호 방을 들어왔다.
“민주 공명당에 정치헌금을 해야겠습니다.”
“엣? 정치 헌금을요? 얼마나 하시렵니까?”
구건호가 송사장 말엔 대답을 하지 않고 경리이사를 쳐다보고 말햇다.
“공식적으로 영수증 받고 당에 헌금하는 거니까 손비(損費)처리가 되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1억만 인출해 오세요. 수표 한 장으로 말입니다.”
“옛 1억요?”
송사장과 경리이사가 동시에 놀랐다.
“다, 우리 회사의 장래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민화 이사는 수표를 찾아다 송사장님을 드리세요.”
“알겠습니다.”
“송사장님은 김이사가 수표를 가져오면 직접 들고 민주 공명당을 방문해서 갖다 주세요.”
“민주 공명당 사무총장이 제 고려대학교 동창입니다.”
“그럼 잘 되었네요.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서 전달하세요. 영수증은 꼭 받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