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95화 (395/501)

# 395

H그룹 최사장 (4)

(395)

구건호는 이날 이상하게 공이 잘 맞았다. 하지만 구력이 오랜 세 사람에게는 상대가 안 되었다.

세 사람은 여유 있게 버디를 잡고 나갔지만 구건호는 보기 플레이만 했다. 공을 칠수록 흔들렸다. 4번 홀까지 왔다.

“조심해 여긴 웅덩이가 있어.”

구건호는 여기서 오버스윙을 했다. 결국 공이 해저드에 빠지고 말았다.

최사장이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구사장 게임비 낼 일만 남았네.”

그늘집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H그룹 최사장이 구건호에게 물었다.

“사업은 잘 되시죠?”

“뭐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

아랫배를 내놓고 음료수를 마시던 이진우 장관이 최사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최사장이 많이 봐줘요.”

옆에 있던 A그룹의 박사장이 이진우 장관에게 말했다.

구사장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현재 H그룹에 들어가고 있답니다.

“오, 그래요? 오늘 그럼 잘됐네. 구사장을 잘 불렀네. 그래서 구사장이 일부러 골프를 져주는 거 아니요? 최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세 사람이 모두 하하 하고 웃었다.

“아닙니다. 제가 워낙 골프를 못해 지금 방해만 하고 있습니다.”

또 계속 코스를 밟아 나갔다. 18홀를 돌았다. 이 장관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최사장, 샤워하고 나서 식사는 여기서 합시다. 여기 클럽하우스의 레스토랑도 좋아요.”

“예, 좋습니다. 저도 여기 몇 번 와 보았는데 식사 할 만합니다.”

“잘 하겠지. 한화호텔&리조트의 식음료팀에서 제공하는 건데.”

넓은 레스토랑은 주중이라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식사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네 명이 같이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며 최사장이 물었다.

“이장관님은 민주 공명당에 입당하신다고요?”

“벌써 이야기는 다 되었습니다. 입당하면 세상에 주목을 받기 때문에 이제는 여기 계신 분들과 운동하기도 어렵습니다.”

“모시고 있는 회장님께는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은 건강하시죠?”

“예, 건강하십니다.”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구건호는 A전자 매출이 보잘 것 없는데 이진우 장관의 부친인 이범식씨의 주식이 지나치게 많이 가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정치와 연관된 거래는 함부로 이야기할 성질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A그룹의 박사장이 말했다.

“민주 공명당은 재정상태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썩 좋지는 않습니다.”

“당비 후원금으로 10억을 보내겠습니다. 회장님께 재가는 받았습니다.”

H그룹 최사장이 말을 받았다.

“저희도 회장님께 재가는 받지 못했지만 A그룹 수준에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당비 지원금은 영수증을 받으니 회계 처리시 손비(損費)로 인정은 되는데 야당이 알면 시끄럽기는 합니다.”

구건호도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어차피 손비 처리가 된다면 세제 혜택이 있으니 나도 이럴 기회에 인심이나 한번 크게 써볼까? 정치는 불가원 불가근의 관계지만 이럴 때 지원해 주어야 더 큰 게 얻어 걸리지 않을까?]

구건호도 통 크게 말했다.

“저희 회사도 매출 1천억의 작은 회사지만 손비 인정이 된다니 당비 지원금을 조금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 구사장은 됐어요.”

“아닙니다. 이장관님은 저에게 주례도 서주시고 서울대 정책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라 장관님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1억만 보내드리겠습니다.”

“1억을?”

세 사람이 동시에 놀랐다.

이 장관이 껄껄 웃었다.

“그러면 최사장께서 구사장을 동생처럼 잘 봐주셔야겠네요. 기왕에 납품을 한다니 잘 좀 봐줘요.”

“알겠습니다. 하하.”

박사장이 야채 샐러드를 먹으며 말했다.

“당비 지원금은 입당하시고 보름 정도 지난 후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보기에 이 자리는 아무래도 A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인 박사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았다. A그룹은 대졸 신입사원이 입사를 하려면 인적성 시험을 보고 3차 면접에 통과해야 들어가는 일류기업이다. 경쟁률도 100대1이 넘는다. 종업원도 그룹 전체를 합치면 수만 명은 된다. 여기서 사장까지 올라간 사람이면 보통사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는 박사장이 꾸몄어. A전자의 오너 일가에 잘 보여야 자기 자리도 롱런할 수가 있겠지. H그룹을 끌어들여 당비 후원금을 내게 하고 또 양념으로 나까지 끌어들여 매출을 올리도록 유도한 거야. 지에이치 모빌이 H그룹 매출은 좀 올라가겠군.]

이후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강호의 고수들이라 몇 번 검을 섞고 이내 천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진우 장관이 구건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구사장 많이 들어요.”

“네, 많이 먹고 있습니다.”

최사장도 계속 벙긋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구건호가 H그룹의 최사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게 표정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군. 저러니 H그룹의 사장이 아니겠어?]

구건호는 골프를 치고 돌아왔다. 토요일이라 차가 밀려 저녁때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이진우 장관과 박사장은 칸트리 클럽 내에 있는 투스칸 빌리지에서 하루 밤을 더 자고 차가 덜 막히는 내일 새벽에 서울로 온다고 하였다.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은 직산과 아산으로 출근하는 날이지만 가지 않았다. 대신 자기돈 1,700억이 들어있는 증권사 지점장을 불렀다.

“강남증권 지점장입니다.”

“나, 구건호입니다.”

“앗! 구사장님. 접니다. 오래간만에 전화 주셨네요.”

“오늘 바쁘지 않으면 점심이나 같이 할까요?”

강남 큰손이 만나자는데 일개 지점장이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예, 좋습니다. 시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이쪽이 신사동이고 지점장님 계신 곳은 역삼동이니까 중간정도에서 만날까요?“

“그렇다면 신논현역 옆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 일식당 ‘하나조노’가 어떻겠습니까?”

“하나조노?”

“그렇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조용합니다. 리츠칼튼 호텔 3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제가 예약을 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구건호가 리츠칼튼 호텔로 갔다. 벌써 지점장이 와 있었다. 지점장은 작은 일식 정원이 보이는 룸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여기는 호텔 안에 이런 정원을 꾸며놓았네요.”

“예, 그래서 운치가 더 있습니다.”

지점장은 만나는 사람이 강남 큰손인지라 최고로 비싼 코스 요리로 시켰다. 구건호와 지점장은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나오는 생선회를 사케와 함께 천천히 먹었다.

“요즘 증권시장은 어때요? 나는 요즘 증권투자를 안하니 잘 모르겠네요.”

“좋지 않습니다. 구사장님처럼 큰손들이 증권보다는 안전성 자산인 채권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증권시장이 침체된 상태입니다.”

“흠, 그래요? 그럼 증권사는 뭘 먹고 살아요?”

“아이고, 그래서 지금, 죽을 맛입니다.”

구건호는 말없이 생선회만 먹었다.

“저, 구사장님. 지에이치 모빌은 상장 안합니까?”

“안합니다. 자금 조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장님의 재산이 튀는데 안하다니요.”

“상장하면 소액 주주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게 싫습니다.”

“전에 보니까 매출이 천억 가까이 되었던 것 같던데요.”

“작년에 1,100억을 했고 올해는 1,500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500이요? 그러면 세후 순이익이 100억은 떨어지겠는데요.”

“그러면 됐지, 내가 뭐 하러 상장해요.”

지점장은 오늘 왜 구건호가 자기를 만나자고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장업무를 협의하는 게 아니네. 그럼 채권을 주식으로 갈아타려고 하나? 구사장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들은 있는 재산 지키려고 하지 위험자산에 투자는 안하겠지.]

[그럼, 오늘 날 만나자고 하는 건 뭘까? 혹시 돈을 빼가겠다는 건 아닌가? 그건 안 돼. 강남 큰손 하나를 잃으면 나는 당장 다른 지점으로 쫓겨 갈지도 몰라.]

구건호가 사케를 한잔 마시고 말했다.

“내가 충남 아산에 합자회사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라이먼델 디욘사라는 회사와 합작을 한 겁니다.”

“아, 그러십니까? 저는 그때 지에이치 모빌 공장만 가봐서 합자사는 잘 모르겠네요.”

“이 회사를 상장시키고 싶습니다.”

“옛? 합자사를요?”

“그렇습니다. 강남증권을 주간사증권사로 할까요?”

지점장이 구건호 앞으로 더 바싹 다가앉았다.

“거긴 매출이 얼마나 됩니까?”

“작년에 528억을 했습니다. 금년에 1천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 정도 규모면 아주 좋습니다. 합자사가 언제 설립이 되었죠?”

“2년 조금 못되었습니다.”

“그러면 조금 기다리셔야 하겠는 데요. 코스닥은 기업 설립 후 3년이 지나야 합니다.”

지점장은 숙였던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구건호가 사케 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 회사가 이번에 벤처 지정을 받았습니다.”

“벤처 지정을 받았다고요?”

증권사 지점장은 다시 고개를 구건호 쪽으로 숙였다.

“그럼 상장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거기 부채는 얼마나 됩니까? 그리고 작년에 528억 매출을 올리셨다는데 이익은얼마나 나왔습니까?”

“합자사이기 때문에 부채는 없습니다. 이익은 90억 정도 되어 이번에 자본 전입했습니다.”

“구사장님, 저희가 상장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일감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저희와 업무 위탁 계약을 맺지요.”

“합자사와 증권사간에 상장추진에 대한 업무 위탁 계약을 맺게 되면 먼저 무슨 일부터 합니까?”

“금감원에 기업등록을 하고 우리가 유가증권 분석을 해야 합니다.”

“유가증권 분석?”

“증권사가 먼저 의뢰 기업의 기업 가치를 평가합니다. 코스닥 예비심사 청구를 하게 되면 코스닥 위원회에서는 기업의 질적 가치를 평가하니까 사전에 증권사가 먼저 조사를 하는 겁니다. 과연 이 회사가 코스닥 상장 신청을 할 만한 기업인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지요.”

“흠,”

“뭐, 시장성이나 수익성, 재무상태, 기술성이나 경영의 투명성 같은 것을 봅니다.”

“지금이 6월입니다. 6개월 기다리면 금년도 회기년도가 끝나는데 금년도 실적을 보고 상장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매출이 팍 늘 텐데 말입니다.”

“매출증가에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업무 위탁 계약은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신청 들어가는 것만 우리가 조정을 하는 것으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자회사를 먼저 상장시키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럼 시간이 있을 때 아산으로 오십시오. 회사 구경도 하고 관계자들도 내가 소개시켜 드리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그 합자사는 지에이치 모빌에서 출자한 것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미국과 50대 50이고 회사 상호는 디욘 코리아입니다.”

“그럼 주주는 법인 둘뿐이겠네요.”

“아참, 이번에 종업원들에게 우리사주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10%가 500명의 소액주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주식 분산을 위한 신주 모집은 생략해도 되겠군요. 주주 명부는 가지고 있지요? 500명 주주일 것 같으면 책자가 한권 분량은 될 텐데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현재 발행주식은 얼마나 됩니까?”

“액면 1만원짜리로 190만주입니다.”

“흠, 그렇습니까?”

“코스닥 등록 신청하면 상장까지는 기일이 얼마나 걸립니까?”

“통상 4개월 정도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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