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
H그룹 최사장 (1)
(392)
구건호가 이진우 장관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했다.
앞 단상위에는 스크린에 이진우 장관이 펴낸 책의 표지가 크게 비추어져 있었다. 강당 안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오, 구사장 아니오?”
돌아보니 정책대학원의 원생들이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말 많던 국회의원도 왔고 다른 부서의 장관도 왔었다. 말이 없었던 쓰리스타 사령관의 얼굴이 보여 악수를 하였고 지검장도 와서 인사를 하였다. 얼굴 검은 경찰 치안감의 얼굴도 보였다.
“구사장, 이리와요.”
미리 와서 앉아있던 A그룹 전략기획실 사장 박사장이었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A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이나 구건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출 좀 늘어요?”
“조금씩 늘긴 합니다. 최근에 공장 옆에 2공장을 사서 생산 케파를 늘리도록 했습니다. 오더만 더 주면 얼마든지 제품을 생산할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오늘 이진우 장관의 출판기념회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출사표입니다. 잘 봐 두세요.”
“정당에 가입하십니까?”
박사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등 뒤에서 머리가 하얀 키 큰 신사가 박사장의 어깨를 툭 쳤다.
“박사장 왔소?”
“오, 최사장.”
구건호가 옆자리로 가면서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양보하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최사장이란 사람이 구건호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박사장이 최사장을 보고 말을 했다.
“참, 서로 인사하지. 지금 자리 비켜준 사람은 지에이치 모빌의 사장이야. 그리고 이분은 H그룹의 최사장이고.”
H그룹 최사장이란 말에 구건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H그룹이면 최근 우리가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구건호가 얼른 일어나서 최사장이라는 사람에게 명함을 주었다, 최사장도 구건호에게 명함을 주었다. 최사장이 구건호의 명함을 유심히 보았다.
“지에이치 모빌? 들어본 이름 같은데?”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H그룹에 저희 회사에서 만든 이그니션 케이블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 그래요?”
옆에 있던 박사장도 놀라는 눈치였다.
“지에이치 모빌이 H그룹의 1차 벤더였나?”
박사장이 처음 듣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최근에 H그룹의 5스타 품질인증도 받았습니다.”
“오, 그래요?”
이때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의 대화는 자연히 중단되었다. 구건호는 사회자의 멘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출판 기념회 끝나고 나오면서 H그룹 최사장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까? 납품 량을 늘려달라고 말이야. 아냐 그러면 결례가 되겠지? 차라리 박사장이 최사장을 잘 아는 것 같으니 박사장한테 이야기 해서 최사장에게 넌지시 부탁해보라고 할까?]
갑자기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었다. 입장하는 사람은 이진우 장관이 아니었다. 좀 젊은 사람이었다. 구건호 또래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A그룹의 부회장이었다. 바로 A그룹 회장 아들인 이진우 장관의 처남이었다. 그는 오늘의 주인공은 아니므로 웃으면서 손만 흔들고 다른 사람들처럼 앞줄 의자에 앉았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이진우 장관이 나와 책 소개를 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양극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 늘 심각한 걱정과 고민을 해왔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하여 국가의 미래에 대한 해법을 나름대로 짚어보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구건호가 이진우 장관의 말을 들으니 국가와 민족은 이장관이 혼자 다 걱정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정치할 것 같구먼.]
구건호는 최사장이나 박사장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도 아니라 포기했다. 출판 기념회가 끝나고 찬조금을 낸 후 책만 몇 권 얻어가지고 왔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돌아왔다.
“오연수씨 커피 좀 부탁 할까요?”
구건호는 커피를 마시며 이진우 장관이 쓴 책을 보았다. 별로 재미도 없는 책이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구건호는 10페이지 정도 읽다가 덮어놓았다.
중국 안당시의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야, 문재식이야.”
“오, 그래. 수고한다.”
“선로패 2대 받은 건 운행 들어갔어.”
“매출 좀 늘겠다.”
“큰 도시 운행차량이 아니고 좀 작은 도시에 들어가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지는 않아.”
“어디를 운행하는데?”
“육반수시(六盤水市)라는데 하고 하지시(河池市)라는 데야. 역시 황금노선은 귀양시(貴陽市)야. 거긴 증차만 해주면 돈을 쓸어 모을 텐데 안 해 주네. 이번에 거기도 2대 선로패가 나왔는데 우리 합자사에 안주고 객운공사 본사에 주었네. 개새끼들이!”
“혈압 높이진 말라. 그놈들 그럴 줄 알았다.”
“말은 출자금 안 보내니 선로패 우리 줄 걸 돌렸다고 그러네. 꼭 약 오르지? 그러는 것 같았어.”
“하하, 그래? 터미널 건물은 계속 올라가나?”
“1층 다 올라갔고 터미널 바닥 공사해. 오늘 보니까 터미널 바닥공사 한걸 아줌마들이 수십 명 달라붙어 문지르고 있던데? 광택을 내는 모양인 것 같았어.”
“공공 시설물이니까 바닥을 잘해야겠지. 하루에도 수천명이 밟고 지나가는 데니까.”
“그러긴 하겠지.”
“치맥집은 오픈 했겠구나. 정황이 어떠냐?”
“KFC보다는 못하지만 차츰 늘고는 있어. 한번 와본 손님들이 다시 오니까 기대는 돼.”
“개업빨 반짝 하는데 보다는 차츰 느는 게 좋지.”
“하루 수입이 6천위안 정도는 돼.”
“흠, 그래? 한국돈 100만원 정도구나.”
“내가 계산해 보니까 6천 위안이라고 해도 남긴 남을 것 같은데? 많이 못 남아서 그렇지. 순영이 엄마는 지금 KFC하루 매상 3만위안, 치맥집 2만위안을 목표로 하고 있어.”
“그럼 5만 위안이네. 한국 돈으로 하루 매출이 850만원이니까 그럼 할만하다.”
“헤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봐야지.”
“2층 피자집은 언제 오픈 하냐?”
“거기도 지금 인테리어 하고 있는데 금요일 오픈 계획하고 있어. 거기도 점주 교육이 있어서 교육받고 오느라고 개점이 조금 늦었어.”
“점장들은 따로 다 있지?”
“있어. 전부 20대 젊은 여성들이야. 월급 많이 준다니까 일도 아주 잘해.”
“2층 오픈 끝나면 좀 바쁜 건 많이 지나가겠구나.”
“아무래도 그러겠지. 여기 거리가 KFC들어오고 한국식 치맥집 들어오니까 확실히 거리가 젊은 사람들이 늘은 것 같아.”
“그래?”
“그건 내가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이 근처 가게 하는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야. 서류 복사집 주인도 그러고, 늘 골목에 웃통 벗고 알몸으로 앉아있던 노인들도 그러더라고.”
“거리 칼라가 바뀌는 건 좋겠지.”
문재식의 전화를 끊고 나자 이번엔 상해의 심운학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심운학 감독입니다. 계속 통화중이라 전화걸기 힘드네요.”
“아, 중국 안당시의 문사장과 통화하느라고 그랬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환러스지 공사에서 영화제작을 위한 회의를 했습니다. 영화는 제작하기로 공식적인 결정했고 감독도 내정되었습니다.”
“감독은 심감독님이 하십니까?”
“저도 하지만 총감독은 우옌(吳岩)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스탭과 배우들이 모두 중국인일 테니까요.”
“우옌 감독은 지금 만드는 일일 드라마 <시광여몽>을 맡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맞습니다. 진행감독과 촬영감독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심감독님은 뭘 맡았습니까?”
“저는 제작 총괄을 합니다. 스탭 구성도 끝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스탭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 회합도 했고 시나리오 스토리 보드도 다 만들었습니다. 배우들 캐스팅까지 마치면 프리 프로덕션 단계는 끝나는 겁니다. 투자자 유치 설명회를 곧 한답니다. 환러스지공사 사장 천바오깡은 사장님 이메일로 투자 설명회 안내 공문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스탭들은 대부분 환러스지 공사에 있는 사람들이고 시나리오도 다 만들어진 상태고 사실상 스탭들도 내정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 접촉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투자 설명회가 끝나고 배우들 캐스팅만 끝나면 곧 메인 프로덕션 단계로 들어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투자 설명회도 절반은 구사장님이 투자 하신다고 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아닙니다. 단지 홍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홍보요?”
“한국 자본가들이 돈 싸들고 온다. 어떤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의 자본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가? 뭐, 이런 기사일 테지요.”
“하하, 알겠습니다. 남자주인공은 드라마에 나왔던 중국 배우를 캐스팅할 예정인가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첩자 인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접촉하기로 했습니다.”
“첩자 인상이 따로 있는가요?”
“하하,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영화니까 스파이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해야겠지요. 지금 <시광여몽>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너무 여성적으로 생겨 애정 물에만 잘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여주인공은 리아를 쓸 건가요?”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BM엔터테인먼트에 공식적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았습니다. 출연료 요구를 많이 할까봐 그게 걱정이기는 합니다.”
“흠, 그런가요?”
“그리고 사장님께 죄송한 말씀 한 번 더 올려야겠습니다.”
“무슨 말이죠?”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법원의 예치금 명령이 나왔답니다. 저 일반회생 신청한 것 말입니다.”
“얼마나 나왔답니까?”
“800만원 나왔습니다.”
“흠, 그럼 800만원이 더 필요하겠군요.”
“지난번 제가 천만원 가불한 것 중에서 변호사 선임비 주고 조금 남은 것이 있습니다. 500만원만 추가로 가불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
“500만원 보내주지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가불 형식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미디어의 신사장에게 이야기 해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불증 싸인은 제가 법원의 채권자 집회 때 가게 되면 회사에 들려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5백만원은 심감독님 개인 통장으로 송금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심감독의 전화를 끊고 신정숙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예, 사장님. 신정숙입니다.”
“중국에 가있는 심감독에게 5백만원만 송금해 주세요. 가불증은 나중에 한국 들어오면 서명해 드리겠답니다.”
“또요?”
“하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돈이 또 필요한 모양이네요. 해주세요. 못 갚으면 내가 책임을 지지요.”
“알겠습니다.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근간 영화 제작에 대한 투자자 설명회가 상해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신사장님이 거기 한번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요?”
“가셔서 거기서 제공하는 식사나 하시고 자리에 앉으셔서 미소만 지으시면 됩니다.”
“호호, 그래요?”
“그리고 나중에 인베스트먼트 레터에 서명이나 해 주시고 오면 됩니다.”
“언제 가면 됩니까?”
“일정 안내가 메일로 온다고 했으니까 오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만 피해주시면 됩니다.”
“토요일 무슨 일 있습니까?”
“집안에 혼사가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