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시애틀의 밀회 (3)
(391)
브랜든 버크가 먼저 돌아가고 구건호와 한수영 교수만 남았다.
“오늘 환상적인 통역 고마웠습니다.”
“통역이면 통역이지 환상적인 것은 또 뭡니까?”
“너무 매끄럽게 하신 것 같습니다. 발음도 좋으시고요.”
“그런데 비즈니스의 세계란 역시 재미있네요.”
“재미없습니다. 지금 내가 한 짓거리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아니요, 재미있습니다.”
“나는 내일 돌아갑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디 가서 시원한 맥주나 마실까요?”
“다운타운에 가면 치킨벨리가 있습니다. 거기로 가시죠.”
둘은 치킨 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브라보 한잔 하실까요?”
“좋지요. 자, 미국 북서부의 외로운 사나이를 위하여!“
“하하, 한국에서 날아온 위대한 자본가를 위하여!”
둘은 맥주잔을 부딪치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대고 마셨다.
“그런데 구사장님 하나 물어봅시다.“
“예, 물어보세요.”
“아까 브랜든 버크 부사장하고 이야기 할 때 소액주주를 비롯한 모든 주주에게 무상증자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지요.”
“버크 부사장은 이것이 구사장님에게 이익이란 듯이 말했는데 뭐가 이익이라는 말입니까?”
“예를 든다면 전체주식 100만주인 회사에서 10%인 10만주는 500명의 개인이 가지고 있고, 90만주는 어느 대주주 한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한 주당 금액은 1만원이라고 하지요.”
“그럼 자본금이 100억이네요.”
“그렇지요. 500명 소액 주주의 몫이 10억이고, 대주주 한사람 몫은 90억이 됩니다.”
“그러겠지요.”
“그런데 이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주식 평가액은 튑니다. 주식은 미래의 가치를 보고 가격이 결정되는 거니까요.”
“당연히 튀겠지요.”
“그럼 1만 원짜리가 5만원이 됩니다. 대주주 몫이 450억이 되고 소액주주 몫은 50억이 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100억을 벌어서 배당하지 않고 100% 무상 증자한다면 1만 원짜리 주식이니까 대주주에게는 90만주, 소액주주는 10만주가 배당이 됩니다. 그러면 대주주는 180만주, 소액 주주는 20만주가 됩니다.”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상장을 했는데 5배는 튀지 않고 주식수가 많다고 4배만 튀었다고 가정하지요. 주식 1만 원짜리가 4만원이 되었다면 대주주의 주식 평가액은 720억, 소액주주는 80억이 됩니다.”
“흠.”
“그렇다면 대주주는 720억을 챙기는 게 이익입니까? 아니면 100억 이익 난 것 중에서 90억 배당받고 상장해서 5배 튄 450억을 합쳐 540억을 챙기는 게 낫겠습니까?”
“720억이 낫겠죠.”
“그렇죠? 720억이 낫겠죠? 무상증자는 떡밥입니다. 종업원들인 소액 주주는 무상증자가 나오니까 일단 기뻐하겠지요. 하지만 뒤에 있는 대주주는 더 많은걸 챙기게 됩니다.
“흠”
“브랜든 버크는 이게 배가 아픈 거지요. 자기는 막강한 파워가 있는 부사장이지만 주주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브랜든 버크가 구사장님한테 ‘종업원들이 이뻐서 무상 증자하는 게 아니고 본인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했군요.”
한상수 교수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지요. 아까 스크류라고 했던가요? 난 기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기계를 만드는 사장을 설득하는 일은 구사장님의 몫이라고 브랜든 버크씨가 이야기 하는데 뭘 가지고 설득하란 이야기 입니까?”
“돈이지요.”
“돈요?”
“그 기계가 1억원에 라이먼델 디욘 본사에 납품하는데 내가 1억 5천만원을 준다면 그 스크류 만드는 사장은 귀가 솔깃할까요? 안할까요?”
“솔깃하겠죠.”
“틀림없이 디욘 본사와 그 스쿠류 사장은 기계 납품 계약서(Machine Delivery Agreement) 같은 것을 맺었을 겁니다. 그 업체는 계약서상 ‘을’이 되어 있겠지요.”
“흠”
“그리고 그 계약서에는 ‘을’은 ‘갑’의 승인 없이 경쟁업체에 납품해서는 안 된다. 뭐, 이런 조항이 있었겠지요. 이른바 갑의 횡포지요.”
“흠.”
“그런데 그런 계약 조항이 있더라도 스크류 제작사 사장은 1억 짜리 기계를 1억 2천도 아니고 1억 5천을 준다면 고민하겠지요?”
“몰래 팔 가능성도 있을 거란 이야기겠네요.”
“미국은 이런 속담이 있다면서요? ‘Money Talks Everything’이라고. 계약이고 신의고 뭐고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 말한다고 말입니다.”
“흠”
“설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하는 겁니다.”
한수영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맥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나는 역시 학삐리에 불과해.”
구건호가 시애틀에서 돌아왔다.
월요일이 되어 구건호가 직산 지에이치 모빌 공장으로 출근을 했다.
먼저 제2 공장부터 들렸다. 박종석 이사는 없고 부장급 한사람이 뛰어나와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기계 세팅은 다 끝나는가요?”
“끝났습니다.”
“박종석 이사는 여기 안 오는가요?”
“가끔 오십니다. 저만 여기서 상근하도록 배치를 받았습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가 부장의 안내로 사출 작업장, 반제품과 완제품 창고, 검사실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구건호가 현장을 돌아다니면 작업자들은 더욱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였다. 반장이나 조장들만 와서 인사를 하였다.
“저쪽 공장에서 생산할 때와 이쪽에서 생산할 때하고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쪽 공장에 몇 명이 근무하나요?”
“현재 100명이 근무합니다. 앞으로 새로 뽑는 사원들은 전원 이쪽으로 배치한다고 했습니다. 송사장님이 오늘 아침 간부회의 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저쪽에 400명이 근무하는가요?”
“그렇습니다.”
“뭐 불편한건 없어요?”
“제2공장에 식당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1공장의 식당까지 이동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불편합니다.”
“송사장님에게 말씀은 드렸나요?”
“오늘 아침에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넵.‘
생산부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가 1공장의 현장도 돌아보았다. 100명이나 솎아서 2공장으로 보냈다는데도 아직까지 기계나 사람이 밀집해 있는 것 같았다.
박이사가 자기 방에서 중간관리자들과 함께 도면을 펼쳐놓고 토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건호는 박이사를 불러낼까 하다가 그대로 2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비서 박희정이 구건호의 방으로 우편물들을 가져왔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이진우 장관이 보낸 것이었다. 발신자 주소가 여의도의 오피스텔로 되어있는 곳을 보니 여의도에 개인 사무실을 낸 것 같았다. 봉투를 개봉해 보았다.
“출판기념회 초청장?”
구건호가 초청장을 펼쳐보았다.
“어? 내일이네. 하마터면 못 가볼 뻔 했네.”
구건호는 소파에 기대어 차를 마시면서 생각해 보았다.
[출판기념일에 찬조금을 얼마하지? 10만원 하기는 약소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장관과 나 사이인데. 그렇다고 많이 하면 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아닌가? 100만원만 할까?]
[아니야, 100만원도 많아. 100만원이면 책이 100권이야. 50만원만 할까? 그래, 50만원이 적당하겠다.]
구건호는 김민화 경리이사를 불렀다.
“이진우 장관 출판기념회 초청장입니다. 찬조금 50만원만 봉투에 담아줘요. 5만 원짜리 새 돈으로 10장 담아요.”
‘알겠습니다. 초청장은 복사하고 다시 갖다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찬조금 전표 정리하려면 필요할 테니까.”
잠시 후 빳빳한 새 돈 50만원이 든 봉투와 초청장 원본을 경리이사가 다시 가져왔다.
“송사장님 계신가요?”
“아까까지 계셨는데 지금 나가셨는지 안 보이네요. 찾아볼까요?”
“아니, 됐어요.”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경리이사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구건호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회사 제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꾸역꾸역 회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구건호는 비서 박희정을 불렀다.
“지금 저기 들어오는 저 사람들은 누구요?”
“신입사원 원서 모집마감이 내일까지입니다. 아마 응시자들인 것 같습니다.”
“접수는 온라인 접수 아닌가요?”
“공고는 그렇게 했습니다. 온라인도 가능하고 방문접수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직접 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아마 회사규모를 보러 온 것 같습니다. 또 인력회사가 아닌가 하는 것도 보러 오려고 한 것 같습니다.”
“흠, 그래요?”
오후가 되어 구건호는 디욘 코리아로 왔다.
해외 출장 나갔던 임원들이 전부 구건호방으로 들어왔다.
“아예 회의실로 갑시다. 상임 감사님하고 유부장도 들어오라고 하고요.”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임원들 전원이 회의실로 몰려갔다.
“오늘은 정식 회의가 아니니까 해외 갔다 온 이야기나 듣죠. 계약은 다 하고 온 거지요?”
“했습니다.”
윤상무와 김전무가 동시에 대답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김전무가 먼저 하겠다고 하였다.
“제가 계약한 곳은 쑤저우 공업원구 동쪽에 있는 공장을 계약했습니다. 건물은 지은지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특별히 수리할 데는 없는 것 같습니다.”
“흠.”
“토지 4,800평이고 연건평 2,600평입니다. 토지는 양도 가능한 토지이지만 사용권이 기한이 있는 토지입니다. 공업단지 안에 있는 토지라 인프라는 잘 되어 있습니다. 진출입 도로나 전기, 수도, 폐수처리는 다 잘되어 있습니다. 전기가 현재 끊겨있는 상태인데 복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가격은 2억 보증금에 월 임대료 600만원입니다.”
“오, 임대입니까?”
“우선은 딩딩이 가지고 있는 현금 중에서 1천만 원만 계약금으로 치렀습니다. 딩딩 말로는 이 공장에 잔금 지불하면 바로 창고를 폐쇄하고 사무실도 전부 공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요?”
“임대료 부담이 조금 걱정인데 한두 달간은 적자가 예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욘 차이나의 상표로 제품이 생산되어 나가기 때문에 수요는 점차적으로 클 걸로 예상됩니다.”
“흠, 수고하셨습니다.”
김전무는 회의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공장 전경사진과 내부 사진을 보여주었다.
“와, 좋네.”
공장이 아직 새 건물처럼 보여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다음은 윤상무가 보고를 하였다.
“인도 타밀라드주 첸나이공단 외곽에 있는 공장은 5,200평이며 연건평 2,800평입니다. 이 공장은 지은 지 12년 되었고 관리상태가 미흡하여 손을 좀 봐야할 데가 많이 있었습니다.”
“흠.”
“도로는 양호하고 전력도 그런대로 괜찮은데 물 사정이 원활한 편은 아닙니다. 매도회사가 파손된 곳은 감안하여 가격을 깎아주어 28억에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금은 500만 루피를 주었는데 우선은 이종근 부장이 가지고 있는 회사 돈으로 치렀습니다.”
“흠.”
“이곳은 임대가 아니고 매매이기 때문에 금액이 많아서 외환신고를 해야 합니다.”
“수리비는 얼마가 들어갈 것 같습니까?‘
“대략 우리나라 돈으로 5천만원 정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물탱크도 뚜껑도 달아나고 부식도 되어 SMC(Sheet Molding Compound)물탱크로 교체하고 펌프 달면 수압 낮은 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 지휘 감독은 누가 할 거요?”
“아무래도 라인 깔데 까지는 제가 가야할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 또 고생되시겠네.”
“할 수 없지요. 아무리 보아도 갈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수리할 데가 많다면 건설 전문가가 가야되겠지요. 거기 영어나 힌디어를 할 통역은 있는가요?”
“의외로 힌디어나 타밀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유학생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