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89화 (389/501)

# 389

시애틀의 밀회 (1)

(389)

수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엄찬호가 구건호를 출근시키기 위해 벤트리 승용차를 가지고 왔다.

“오늘은 직산으로 가자.”

“예? 오늘은 수요일 아닙니까?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는 날 아닙니까?”

“모빌의 제2공장 일이 궁금하다. 정리 다 하고 기계들 설치 했나 모르겠다.”

“그럼 아산 공장도 들리시겠네요.”

“아산 디욘 코리아도 당연히 가야지. 지금 거기 임원들이 인도와 중국에 출장 갔기 때문에 나라도 가서 자리를 지켜줘야겠다.”

“저, 그리고 사장님.”

“왜?”

“어제 사모님이 SM5 파실 거라고 하면서 중고차 시세가 얼마 가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상민이 엄마가?”

“예.”

“음. 팔 거야.”

“제가 중고시장에 알아보니까 그 정도 운행한 차량은 500만원 정도 갑니다. 제가 가져가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제가 타는 건 아니고요. 태영이 형이 차가 필요해서요.”

“임태영이?”예, 태영이 형이 데리고 있는 동생들 중에서 차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가져가라고 해.”

“태영이 형이 400에 말씀드려보라고 하는데요? 안된다고 할까요?”

“된다고 말해 줘라.”

“고맙습니다.”

“대신 명의 변경은 확실히 해가라고 해.”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의 제2 공장에 들렸다.

유압 프레스기 세팅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종석 이사가 공무팀 직원들 작업하는 걸 감독하고 있었다.

“형 왔어?”

“창고는 다 됐지.”

“다, 됐어. 가볼까?”

창고는 벌써 내부 작업이 완료되었다. 회사별 납품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실내에서 작은 지게차가 웽웽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물망 안에서 창고관리 직원이 책상을 갖다놓고 입출고 전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창고는 저기 앉아있는 직원 이외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

“흠, 그런가?”

박종석은 다시 구건호를 유압프레스 설치장소로 안내하였다.

“설치는 다 된 것 같은데?”

“이제 전기선 연결하고 작업다이 만들어 줘야지.”

“그럼 여기는 언제부터 가동 되냐?”

“내일 바로 해. 여긴 뭐 시험하고 할 것도 없어. 고난도 제품 찍는 곳도 아니니까.”

“흠, 그래?”

“형, 나 그리고 은행 융자 받았어.“

“얼마나 받았니?”

“1억 5천 받았어.”

“은행에서 바로 해주데?”

“은행직원이 그러는데 내가 신용 2등급이래.”

“넌 빚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헤헤, 내가 싸움은 하고 돌아다녔어도 빚진 건 없어. 무슨 큰 사업 했던 사람도 아니고 월급만 받고 살아서 그런 모양이야.”

“그래, 넌 또 돈 욕심도 없었던 사람 아니까.”

“송사장한테 우리사주 실권주 달라고 했어.”

“실권주가 얼마나 나왔나?”

“총무이사한테 물어보니까 12% 정도 나왔데.”

“그럼 돈으로 얼마야?”

“1억 7천 5백이라고 하던데?”

“융자 받은 것 모자라겠네.”

“적금통장 하나 깼어.”

“그래?”

“일 년만 묵혀보지.”

“송사장은 아무 말 안하니?”

“내가 실권주 전부 인수하겠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자네 돈 많은 모양이군’ 그러더라고. 그 사람은 꼭 그렇게 찍는 소리를 해.”

“하하, 그래?”

“융자 받았다고 했어.”

“그랬나?”

“그러니까 아마 오르긴 오를 거야 하면서 다른 말은 안했어.”

“흠, 그래? 그리고 너 오후에 시간 있으면 디욘 코리아 잠깐 넘어와라.”

“왜?”

“그냥 한번 와봐.”

“알겠어.”

구건호가 오후에 디욘 코리아로 갔다. 구건호가 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생산현장도 보고 연구실도 가보았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구건호가 2층 사장실로 올라가고 있는데 퉁역 채명준 대리와 비서 이선혜가 보였다. 이들은 복도 한쪽 구석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이 여기서 뭐해?”

채명준 대리와 비서 이선혜가 깜짝 놀라 황급히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채명준 대리는 애덤 캐슬러 부사장이 인도 출장을 가서 좀 한가하겠네?”

“예, 좀 그렇습니다.”

“무역 업무를 채대리가 본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인도와 중국 수출 물량은 잘 나가고 있지요?”

“예,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 친한 모양이네?”

“예? 아닙니다. A4용지가 떨어져 이선혜씨에게 부탁 중이었습니다.”

구건호가 비서 이선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선혜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구건호가 속으로 생각을 하였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하군.]

구건호가 사장실에 앉자 이선혜가 따라 들어와 대추차와 경제신문을 가져다주었다.

오후 2시가 넘어 박종석 이사가 디욘코리아 사장실로 왔다.

“앉아라. 대추차 한잔하자.”

구건호가 비서 이선혜를 불러 대추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여기 오래간만에 와보지?”

“요즘은 자주 못 왔지. 와서 보니까 이제는 인원도 많아지고 틀도 많이 잡혀진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런데 어째 임원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네.”

“중국과 인도 출장 갔어.”

“출장? 왜?”

이선혜가 대추차를 가져왔다.

“디욘 코리아의 특산물이다. 마셔라.”

박종석 이사가 대추차를 마시며 말했다.

“인도와 중국은 왜 간 거야?”

“거기 공장 만들어. 인도 첸나이와 중국 강소성 쑤저우에 여기 규모만한 공장 세우려고 해.”

“그래?”

“그래서 애덤 캐슬러와 윤상무는 인도에 가고 김전무는 중국 갔어.”

“돈도 많이 들어가겠는데?”

“둘이 합쳐서 100억 가까이 들어가겠지.”

“100억? 와, 대단하네.”

“너 왔으니 현장이나 한번 내려가 보자.”

“좋아. 그러지.”

구건호가 박이사를 데리고 현장엘 내려갔다. 몇몇 간부들이 구건호와 박이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유희열 부장이 와서 인사를 했다.

“공장장님 오셨네요?”

“이제 틀이 많이 잡혔네요. 유부장님이 공장장 맡고나서 더 틀이 잡힌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아직은 모빌에 많이 배워야 합니다.”

공무팀 안차장이 장갑을 낀채 와서 인사를 하였다.

“아우님도 오셨네.”

“형님, 잘 계셨어요?”

“아우님, 일 보시고 이따가 나 좀 만나고 가요.”

“무슨 일 있어요?”

“냉각수가 자꾸 넘쳐흘러서 자문 좀 받으려고 그래. 사장님 수행하시고 이따 와. 내가 커피 타줄게.”

구건호가 박종석 이사만 대동하고 다른 라인을 갔다. 여기서도 기계들이 웽웽거리며 돌아갔다.

“너 저 기계들 잘 만지지?”

“웬만큼은 알지. 사카다 이쿠조씨한테 많이 배웠지.”

“저런 기계는 우리나라에서 못 만드나?”

“우리나라에도 압출기 생산 공장이 있지. 하지만 저건 대형이라 스크류 자체가 틀려. 또 만든다고 해도 수요가 한정되어있으니까 채산성이 없어서 안 만들겠지.”

“지금, 중국과 인도에 공장 계약이 되면 기계 장비가 들여가야 하는데 디욘 본사에서는 저걸 꼭 비싸게 팔아먹는단 말이야.”

박종석이 기계를 주먹으로 두둘겨 보면서 말했다.

“이 기계장비는 스크류가 쌍스크류(Twin Screw Type)란 말이야. 전기유압 도면하고 이것만 주문해서 가져오면 나머지는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쌍스크류와 전기유압 도면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해 볼까?”

“구할 수 있어?”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고 기계 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저 거대한 쇳덩어리들은 어떻게 만들어?”

“저런 건 주물공장에 부탁해서 가져오면 돼. 필요한건 우리가 납품 받아서 해야지 직접 다는 못 만들어.”

구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저녁에 집에 왔다. 반찬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김영은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좋은 일 있어?”

“응, 애가 혼자 뒤집기를 해서.”

“그래?”

“그리고 이거.”

“이게 뭐야?”

“자동차 키. 오늘 제너시스 인수받고 키 받았어.”

“마음에 들어?”

“역시 좋던데? 엔진 소리도 안 들려.”

“그 정도는 타야 내 체면이 서지.”

“체면 되게 좋아하네. 실속이 있어야지.”

“그리고 SM5는 찬호가 가지고 가기로 했으니까 SM5키는 날 줘. 트렁크 안에 있는 짐 모두 꺼내고.”

“키 여기 있어. 가져가요. 짐은 미리 다 꺼내놨어.”

“직원이 가져간다고 해서 400원만 받기로 했어.”

“엄찬호씨가 500만원은 간다고 했는데....”

“그런 줄만 알아. 차는 내일 엄찬호가 가져갈 거야. 밥이나 먹자.”

“내일 나 애기 데리고 양평 간다.”

김영은이 웃으며 구건호에게 달려들어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모 집에? 제너시스 새 차 타고 가봐. 폼 나지.”

“그래서 이렇게 뺨에 뽀뽀해 주잖아.”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하였다.

경제 신문을 보다가 갑갑하여 옥상엘 올라갔다. 북카페 안에는 여전히 강남 아줌마들 몇 명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빌딩 입주회사의 젊은 사원들이 올라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늘엔 구름 몇 조각 밖에 없네.”

구건호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중국과 인도를 생각하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곤 일본과 미국을 생각해 보았다. 미국을 생각하면 디욘 본사의 번쩍이는 대머리 브랜든 버크 부사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일본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요정 모리 에이꼬가 생각났다.

구건호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내가 디욘 본사의 브랜든 버크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 테니까 이렇게 전해줘요.”

오연수가 메모 준비를 하였다.

“내가 내일 시애틀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간 김에 브랜든 버크 부사장과 조용히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다. 내가 연락하면 내가 묵는 호텔로 나와 달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전화를 걸었다.

“브랜든 버크 부사장님? 디욘 코리아의 구건호입니다.”

“오우! 구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통역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바꾸어주자 오연수가 영어로 종알대기 시작했다. 구건호가 말한 대로 다 말을 했다.

말을 마치자 오연수는 스마트폰을 손으로 막고 말했다.

“좋답니다.”

“내가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쉐라톤 호텔로 갈 테니까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오연수가 또 몇 마디 종알대다가 전화를 끊었다.

“수고 했어요. 그럼 이제 호텔하고 항공권 예약 좀 해줘요. 호텔은 인테넷에서 시애틀 쉐라톤 워커힐 호텔 검색해서 찾으면 될 거에요.”

“알겠습니다.”

“내 영문이름 알지요?”

“예, 적어 놓은 것 있습니다.”

오연수는 또 한건 했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사장실을 나갔다.

구건호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김영은에게 말했다

“나, 회사 일로 내일 미국 시애틀 출장을 가. 사흘만 있다 올 거야.”

“그럼, 준비물 지금 챙겨야 되는 거 아녜요?”

“챙길 것도 없어. 양평은 잘 다녀왔지?”

“이모님이 계속 아기 업고 다녔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

“그래?”

“내가 운전하기 때문에 차 안에서 아기를 볼 수 없잖아? 그래서 도우미 아줌마도 같이 양평에 갔었어. 도우미 아줌마도 옛날에 시골 살아서 그런지 굉장히 좋아하던데?”

“그랬어?”

“저 식탁위에 있는 호박 이모님이 주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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