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우리 사주 배정 (3)
(386)
심운학 감독은 가방에서 무얼 꺼냈다.
“그게 뭡니까?”
“영화 시나리오 <몽환앵화>입니다. 번역본이 다 되어서 가지고 갑니다.”
“다 읽어보셨나요?”
“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삼분의 일 정도 보았는데 내용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역시 중국의 유명작가 펑아이링 여사입니다.”
“흠, 그래요?”
“제목도 좋습니다. 꿈꾸는 듯한 환상적인 사꾸라라는 말 아닙니까? 앵화는 사꾸라 꽃이지만 소설에서 일본 게이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국의 첩자가 일본에 스며들어 일본 게이샤를 사랑한다는 러브 스토리지만 조금 살을 붙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흠.”
“이 작품에 한번 목숨을 걸어볼까 합니다.”
“잇쇼겐메이(一生懸命)한단 말입니까?”
“예?”
“일본 말에 한 가지 일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지요. 그걸 잇쇼겐메이라고 한답니다. 전에 사카다 이쿠조란 일본인 기술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 예...”
“어쨌든 좋습니다. 그런 정신이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서 열심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심운학 감독은 구건호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사장실을 나갔다.
구건호는 최근엔 일찍 집엘 들어갔다. 그것은 아들 상민이가 100일이 가까워지자 이제는 웃기도 하고 옹알이도 하기 때문이었다. 아기만 쳐다보면 만사 시름을 잊을 것 같았다. 구건호가 침대에 누워 김영은에게 말하였다.
“휴직원은 제출했나?”
“제출했어. 산후 휴가 끝나고 바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상민이 웃는 모습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그리고 휴직원을 제출했는데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잘했어.”
“봐서 이 근처 개인병원 부원장 자리를 알아봐야겠어.”
“병원 차려줄까?”
“아직은 안 돼. 실력을 더 쌓아야 돼.”
“우리 상민이 백일 잔치는 어디서 할까?”
“아무래도 어른들이 오시기 좋은 데로 해야겠지.”
“그럼 인천서 오시기 좋고 우리도 여기서 가기 좋은 여의도로 하지.”
“좋아요.”
이렇게 해서 상민이의 백일잔치는 여의도서 하기로 하였다. 음식점은 김영은이 자기의 동창들한테 물어서 여의도 콘래드 호텔 경복궁에서 하기로 하였다.
여의도의 한정식 집 경복궁에서는 아기의 사진촬영을 위한 상차림도 세팅을 해주었다.
아기 백일 때는 가족들이 다 모였다. 부모님도 오시고 누나 내외와 정아도 왔다. 그리고 신림동 장인과 양평의 최 화가도 오고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사장이 선물을 들고 왔다.
“회사 직원들은 안 불렀구나.”
엄마가 아기를 안아보며 말했다.
“네, 번거로울 것 같아 안 불렀습니다. 가족들만 이렇게 하니 조용하고 좋잖아요?”
“전에는 애기 백일이면 모두 와서 금반지도 선물로 주고 갔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는 모양이야.”
“그래도 금반지 들어왔네요. 누나도 사오고 양평 이모님도 사오고, 신정숙 사장님도 사오셨네요.”
“하하, 그래?”
아기 100일 잔치도 끝나고 5월이 되었다.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KFC개장을 하네.”
“그래? 축하한다.”
“지금 순영이 엄마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아. 인테리어하고 주방기기 들여오느라고 그동안 고달팠던 모양이야.”
“원래 가게 개업할 땐 살이 빠져.”
“더구나 북경에 가서 KFC본사 가맹점 업주 교육받느라고 고생도 했어. 아기를 떼 놓고 갈수가 없어서 가정부랑 아기랑 같이 가서 여관생활도 했었어.”
“그랬나? 고생 했겠구나.”
“먹자골목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KFC 간판 올라가니까 우리 동네도 KFC들어온다고 관심이 많아. 중국 얘들도 미국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들이야.”
“하하, 장사 잘되겠는데?”
“순영이 엄마는 KFC개점하고 곧 치맥집도 오픈할 모양이던데? 치맥집도 집기만 안 들여왔지 기본적인 인테리어는 다 했어. 생맥주도 팔 거야.”
“점장들 한명씩 따로 두어야겠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터미널은 공사 시작해서 1층 올라가고 있어. 중방 애들이 건물은 올라가는데 2차 출자금 안 들어온다고 눈 부라리고 아주 쌀쌀 맞게 굴어.”
“허허, 그래?“
“그러면 내가 터미널 부지만 합자사로 넘겨주면 은행에서 얼마든지 합자사에 돈도 빌려주는데 왜 안 그러냐고 따져. 그러면 중방 애들이 이 토지는 합자사로 비준한 땅이라는 소리만 해. 등기가 되어야지 행정명령 문건만 있으면 뭐하냐고 내가 또 반박하고 매일 그 타령이야.”
“그러면서도 건물은 올라가는 구나.”
“하다가 돈 막히면 또 와서 지랄하겠지.”
“선로패는 정말 안준다는 거야?”
“창춘 부사장이 와서 선로패가 나오던 안 나오던 뚜이팡 꽁쓰(對方公司: 상대방 도시의 운송회사)와 운행 협의는 하자고 하네.”
“그건 해라. 아마 줄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앞으로 운행할 도시의 회사에 내일 같이 가기로 했어. 술 깨나 마시게 생겼네.”
“하하, 잘 다녀와라.”
구건호는 문재식의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KFC가 내일 개업이면 내일부터 돈이 들어오겠네. 지금까지는 돈만 나갔지만 돈이 매일 매일 들어오면 조바심은 줄어들겠지. KFC야 노량진의 쌀국수 집과 달라서 매출이 제법 발생하겠지.]
[그런데 문재식의 와이프는 억척이군. 아기를 북경까지 데리고 가서 교육을 받았다니 말이야. 헝그리 정신이 있어서 그래. 자기 일에 목숨을 걸줄 아는 여자임엔 틀림이 없네.]
목요일이 되었다.
구건호가 직산 지에이치 모빌 공장으로 출근을 했다. 새로 산 옆 공장에 지에이치 개발의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많이 보여 공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사를 하고 있었다. 페인트와 화장실 공사는 끝나고 내부 창고시설 같은걸 하고 있었다. 공사 감독을 하던 총무이사가 구건호를 보고 인사를 하였다.
“잔금은 치렀죠?”
“예, 다 치렀습니다. 페인트 공사도 끝나고 화장실 공사도 끝났습니다. 정화조도 새로 청소를 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창고 안에 용접작업 하는 것은 지금 박이사가 감독하고 있습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박이사가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감독하고 있었다. 이제 직접 용접 같은 것은 안 하는 모양이었다.
“수고한다.”
“어, 형 왔어?”
“창고 설치하나?”
“창고 시설이야 큰 작업은 아니니까 오늘 끝나. 창고니까 누가 들어오면 안 되니까 망을 치고 회사별로 대차장소를 설정해 주어야해. 창고관리자가 이 앞에서 입출고 전표를 관리하게 될 거야.”
“흠, 창고가 넓군.”
“물건 들어오면 좁아. 통로가 있어야지. 때로는 지게차도 이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일부 생산도 한다고 했지?”
“생산은 맞은편 파란색 지붕이 있는 건물에서 할 거야. 유압 프레스기들은 다 이쪽으로 올 거야.”
“흠, 그래?”
구건호는 창고를 휘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참, 모빌도 직원들 우리사주 나누어준다는 공문이 내려 왔나?”
“왔어. 디욘에서 온 공문을 보고 여기서도 송사장 이름으로 전 직원들에게 292주를 나누어 준다는 공문이 각 부서별로 보내왔어.”
“직원들 반응은 어떠냐?”
“제 각각이야. 나중에 큰돈이 될 거라는 직원도 있고 어떤 직원은 디욘 코리아가 상장시점에 주식시장이 안 좋으면 말짱 허당이라고 했어.”
“흠, 그래?”
“디욘 코리아는 김전무가 직접 직원들을 강당에 몰아넣고 사두면 이익이 될 거라고 이야기 한 모양이야. 사장님의 큰 선물이라고 하면서 주식 대금도 급여에서 까기로 한 모양이야. 그것도 분할로 해준다고 했어.”
“흠, 그래?”
“디욘은 직원들이 95%나 신청했다고 하던데? 실권주는 5%인 모양이야.”
“여기는 어떠냐?”
“여기는 5월말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아직 잘 모르겠어. 디욘 코리아까지는 못하더라도 90%까지는 신청을 할 것 같던데? 저 밖에 서 있는 총무이사가 그러던데? 실권주는 10% 정도밖에 안 나올 거라고.”
“흠, 그래? 그럼 말이다. 이렇게 해라.”
“뭘 어떻게?”
“우리사주 신청 마감 직전 일에 송사장을 조용히 네가 찾아가라. 그리고 실권주는 네가 인수받겠다고 해라.”
“실권주 10%를? 헹,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여기 종업원이 500명이야. 10% 실권주가 생기면 50명분이 생기는 거다. 한 사람당 292주씩 돌아가기로 되어있으니까 50명분이면 14,600주가 돼.”
“그야, 그렇게 되겠지.”
“지금 한 주당 금액이 1만원씩이니까 14,600주면 1억 4천 6백만 원이다, 네가 실권주를 몽땅 사라.”
“헹, 돈이 없다니까. 있는 돈 탈탈 털어서 두정역 앞에 있는 푸르지오 아파트 샀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
“은행융자 받아서 사라.”
“융자 받아서 사라고? 그게 나중에 올라갈 건가? 하긴 형이 그쪽 정보는 빠삭해서 잘 알겠지만 그래도....”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올라 간다에 무게를 두고 싶다.”
“융자 받으면 이자도 나갈 텐데. 안 올라가면 나는 이자만 개 피 보는 거 아니야?”
“이자는 내가 보상해 주마.”
“형이 보상해 주겠다고?”
박종석은 멍하니 구건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박종석의 어깨를 툭 쳤다.
“난, 간다. 잘 생각해서 해라. 어디 가서 지금 내가 한말 옮기지는 말고.”
박종석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못하고 구건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모빌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비서 박희정이 사내 전화로 보고를 했다.
“디욘 코리아 인도 지사장이라고 하는데 바꾸어 드릴까요?”
“응, 바꿔 봐요.”
“인도의 이종근 부장입니다.”
“아, 예. 수고하십니다.”
“첸나이 지역에 매물로 나온 공장을 찾았습니다. 약 5천평 되는데 첸나이 공단 중심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격은 얼마에 나왔습니까?”
“2억 루피에 나왔습니다.”
“2억 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한 30억 됩니다.”
“건물은 깨끗하지요?”
“지은 지는 10년 되었다고 하는데 직접 제가 가보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하나 더 나온 건 있는데 3천평이라 너무 적은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가격은 1억 5천만 루피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계속 더 알아볼까요?”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번엔 약속이라도 한 듯 김민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장 두 군데 알아봤어.”
“그래? 어디 쪽이냐?”
“쑤저우 공업원구에서 상해 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공장이야. 5천평 정도 돼.”
“공장이 지금 가동 중인가?”
“100% 가동은 아니고 20% 정도만 가동하는 모양이야. 원래 시반야(西班牙: 스페인)에서 투자한 신재생 에너지 관련 장비를 만들던 공장인데 지금 대부분 철수하고 일부분만 가동해.”
“얼마 달라고 해?”
“담당 징리(經理: 임원)가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달러로 이야기 하네. 300만 달러 정도 한다고 했어.”
“나라가 커도 땅값은 비싸구나. 우리 돈으로 30억이 넘네.”
“인프라에 들어간 돈이 있어서 그럴 거야.”
“알아본 데는 한 군데 뿐이냐?”
“7천평 짜리도 보았는데 공장 구조가 우리하곤 잘 안 맞는 것 같아.”
“뭐하는 공장인데?”
“의류공장이야. 공장은 넓은데 무슨 창고 같아. 땅 넓으니까 나온 가격도 많고 공장 비워 주는 것도 몇 개월 걸린다고 했어.”
“알았다. 조만간 내가 가든지, 다른 사람이 가든지 할게.”
“또 매물 나온 것이 있으면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