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
비밀 요정의 회동 (1)
(382)
구건호는 공상은행 통장에서 문재식에게 4억 8천만원을 송금해 주었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두 부부가 알아서 하겠지.”
구건호는 ‘지에이치’호라는 커다란 선박을 어디로 항해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 코리아에서 큰돈을 벌고 싶었다. 사실 미디어나 중국의 김민혁과 문재식의 사업, 그리고 로지스틱스는 여러 개 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과시욕과 구색 맞추기지 큰돈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손실 안 나고 짭짤한 배당도 하고 있어 기특은 하였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 코리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송사장과 상임감사를 조용히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먼저 송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내일 저녁 시간이 있습니까?”
“내일 저녁에 별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제가 저녁을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내일 오후 6시까지 서울 신사동 지에이치 빌딩으로 오시죠.”
“알겠습니다.”
“소문 내지 마시고 혼자 조용히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다음은 디욘 코리아의 상임감사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시간 있으십니까?”
“있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저녁이나 같이하면서 뭘 좀 물어보려고 합니다.”
“김전무님도 같이 갑니까?”
“아닙니다. 재무 쪽에 조용히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러니까 혼자 조용히 오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건호는 김전무를 같이 부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김전무가 오면 좀 분위기기가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서울 신사동 지에이치 빌딩으로 오십시오. 저녁 6시까지 오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한남동 요정 장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마마, 이게 웬일이세요? 구사장님이 전화를 다 주시고.”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려 미안합니다.”
“청담동 이회장님한테 들으니까 결혼하셨다면서요? 마나님한테 꽉 잡혀서 못 오는 거 아녜요?”
“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내일 저녁 예약 좀 해주세요.”
“또 미국 사람들 옵니까?”
“아닙니다. 한국인 두 사람입니다. 나까지 세 명입니다. 6시 30분까지 가지요.”
다음날 저녁에 상임감사가 KTX를 타고 용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신사동으로 왔다. 송사장은 집이 용인시 수지에 살고 있어 제너시스 차를 직접 운전하고 왔다. 이들은 18층에 있는 지에이치 개발 사장실로 올라왔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 18층이라 전망이 좋은데요? 어휴, 신사동, 압구정동 일대가 다 보이네요.”
구건호가 비서 오연수를 불러 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오연수가 차를 가져오자 송사장이 한마디 하였다.
“여기는 비서 아가씨도 이렇게 예쁘네.”
아가씨란 소리에 오연수가 입을 삐죽 내밀고 나갔다.
“여기 앉아 계시면 직산이나 아산에 오기 싫겠는데요?”
“그래도 공기는 그쪽이 좋잖아요.”
“오늘 식사는 이렇게 세 사람 뿐입니까? 누가 또 옵니까?”
“아닙니다. 세 사람입니다.”
“그럼 슬슬 이동하시죠. 제 차는 이 빌딩 지하에 넣어 놓았습니다. 마침 엄찬호를 아래에서 만나 걔가 유도를 잘 해주었습니다.”
“지하로 가지 마시고 현관으로 가세요. 엄찬호가 현관 앞에 차를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송사장님 차는 지하에 그냥 두시고 제차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식당은 이 근처에 있는 곳이 아닙니까?”
“한남동입니다.”
“한남동요?”
구건호가 오래간만에 한남동 비밀요정 ‘솔’에 왔다.
엄찬호가 세 사람을 문 앞에서 내려주었다.
“찬호야, 너도 여기 오래간만이지?”
“헤헤, 그러네요. 아까 사장님이 여기 오신다고 해서 태영이 형한테도 연락해 놓았습니다.”
“그래?”
상임감사가 요정 주변을 둘레둘레 쳐다보았다.
“여기는 그냥 가정집 같은데요?”
“여기가 식당입니다.”
“예? 간판도 없는데요?”
“저기 있잖습니까? ‘솔’이라고요.”
“어이쿠, 저렇게 간판이 작아서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세 사람이 정원으로 들어서자 깍두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큰형님.”
임태영을 보고 구건호가 손을 내밀어주었다.
“잘 있었어?”
송사장은 임태영이 구건호에게 큰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허, 이 친구가 큰형님이라고 하네. 구사장님이 여기 자주 오시는 모양이네요.”
“자주는 못 옵니다.”
장마담이 나와 호들갑을 떨면서 방으로 안내를 했다.
자수 병풍 아래 교자상이 있고 꽃무늬 방석이 4개 놓여 있었다. 장마담이 하얀 사기그릇 주전자에 있는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구사장님은 더 의젓해지셨어요.”
“내가 언제는 의젓하지 않았나요?”“호호, 그런 뜻이 아니고 더 세련되셨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앞에 앉으신 두 분 오빠는 아주 점잖으신 분 같네요.“
송사장이 갑자기 장마담의 손을 잡았다.
“어머!”
“당신 내가 점잖은지, 안 점잖은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이분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다.”
“나도 당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호호, 농담도 잘 하시네.”
음식이 나왔다. 신선로가 나오고 갈비찜이 나오고 더덕구이가 나오고 굴비도 나오고 정갈한 음식들이 계속 나왔다. 술은 바렌타인 17년산 양주로 하였다. 구건호가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두 분이 회사 일에 너무 골몰하신 것 같아 머리도 식히시라고 여길 왔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이 집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꾸며 놓은 것 같습니다. 마담의 말솜씨도 능란하고 음식도 정갈해 좋습니다. 가끔 거래처 사장들하고 와야겠네요. 지난번 만동전장 사장이 초청해서 안국동 어느 집을 갔는데 거긴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이집처럼 깊은 맛이 없었습니다.”
“여기 마담이 옛날 유명배우 장미향이라고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분 세대에서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장미향?”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크게 뜨는 것 같았다.
“장미향 알지요. 어쩐지 낯이 익더라. 장미향은 한때 날렸던 여자입니다.”
마침 장마담이 들어왔다. 송사장이 짓궂게 말을 걸었다.
“장마담이라고 하셨나? 장마담! 여기 방석은 4개 갖다놓고 어딜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거요?”
“아이고, 저도 장사해야지요. 이것도 사업이라고 신경 쓸게 많네요.”
“나, 안보고 싶었어요?”
“어머, 사장님을 언제 봤다고 보고 싶어요?”
“조금 전에 봤잖아.”
“어머, 이 오빠 참 재미있다.”
송사장은 어느새 장마담의 손을 또 잡고 있었다. 상임감사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지 헛웃음만 날리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예쁜 도우미 세 사람이 들어왔다. 각자의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었다. 이어서 가야금을 들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세 사람은 양주를 마셨다. 구건호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하지 않았다. 그대로 술만 마시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가야금 곡을 몇 번 듣고 취가 올라올 무렵 구건호는 도우미들을 불러 팁을 주었다.
“오늘은 우리 오빠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거라. 수고들 했다.”
구건호가 도우미들에게 송사장과 상임감사를 오빠라고 표현했는데 실제 나이로 따지고 보면 구건호를 제외한 두 사람은 도우미들에게 아버지뻘 정도 되었다. 도우미들은 구건호가 준 팁에 만족해하며 방을 나갔다.
구건호가 엽차를 마시며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두 분.”
“힘든 것은 없습니다.”
“매출이 늘어나면 자연히 복잡하고 인원도 많아지면 관리할 것도 많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걱정할 수준은 아닙니다.”
장마담이 목을 쏙 내밀고 물었다.
“더 필요한 것 없으세요?”
구건호가 됐다고 손짓을 하자 장마담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구건호가 상임감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벤처 인증은 바로 나오겠지요?”
“바로 나올 겁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이번엔 송사장이 말햇다.
“이번에 증자하고 벤처지정을 급하게 받으려는 것 보니까 코스닥 상장을 하시려고 하는군요. 상장하게 되면 5배 이상은 뛸 것 같은데요? 감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매출액만 좀 더 많으면 더 뛸 텐데 아직은 1천억도 못되어 그렇게 높은 가격이 형성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상장하면 주식 전체 평가액이 매출액 수준은 따라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도 5배 정도는 봅니다.”
“일단은 구사장님은 큰돈 버셨습니다. 현재 구사장님 지분이 5배 된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자본금이 190억이었던가요?”
“이번에 증자해서 그렇게 되었지요.”
‘그럼 구사장님 지분이 95억이고 5배 된다면 475억이란 소리 아닙니까?“
”논리상은 그렇습니다만.“
송사장이 엽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런데 주식분산 30% 의무 때문에 구사장님 지분 15%는 분산 시켜야겠네요.”
“실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할까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구건호가 상임감사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감사님. 벤처기업도 주식 분산30%를 적용하는가요?”
“벤처금융의 출자지분은 등록 예비심사 청구일로부터 1년 이전에 출자한 것에 한해서 달리 보기는 합니다. 발행주식 총수의 10% 이내에서 모집한 것으로 봐줍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해야겠네요.”
“사장님이 금년에 코스닥 신청을 원하시면 갖고 있는 주식 30%는 소액 주주 500명에 분산시켜야 하지만 내년에 하신다면 10%만 분산하시면 됩니다.”
“흠.”
“지금이 4월말입니다. 10% 적용을 원하신다면 내년 5월에 코스닥 예비심사 청구를 해야 합니다. 이후 각종 심사단계를 거쳐 등록 승인까지는 적어도 4개월은 걸립니다.”
“흠.”
“올해냐, 내년이냐가 화두네요.”
세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송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주식은 분산을 해야 주식시장에서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주식시장이 활성화가 되겠지만 대주주에겐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흠.”
“디욘 코리아의 주식은 한 주당 1만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자본금을 증자해 190억이 되었으니까 주식 수는 190만주입니다. 10%인 19만주는 500명에게 분산시키시죠. 주간사인 증권사 통하지 않더라도 지금이라도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디욘 코리아의 종업원이 150명이고, 모빌의 직원이 500명입니다. 이들에게 우리 사주로 나누어주시죠.”
구건호가 천천히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인데 실권주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그럼 분산도 못시키고 복잡만해지지요. 물론 증권사에 맡기면 공모를 통해 해결해 주겠지만 말입니다.”
“실권주는 나오겠지요. 650명에게 나누어 주어도 자그마치 한 사람당 292주가 배정이 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한 주당 1만원이니까 292만원이 되지요. 하지만 종업원들에게 주식대금은 분할해서 입금해도 된다고 하고 상장만 하면 튈 거라는 희망을 주면 실권주는 어느 정도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상임감사도 송사장의 말을 지지했다.
“디욘 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528억입니다. 현재 모빌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이 속도라면 금년도는 연말까지 700억대는 무난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공모가격 결정에 지금보다는 유리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1,000억을 달성하면 어떻겠습니까?”
“더, 유리하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매출이 는다고 해도 1천억이야 되겠습니까?”
“되게 할까요?”
“옛? 어떻게요?”송사장과 상임감사가 목을 길게 빼고 구건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