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
벤처기업 지정 (1)
(376)
리스캉이 다시 한 번 그림을 보면서 말했다.
“선물 주는 거면 받되 부담가질 정도의 선물은 아니야. 마음에 들면 집에 가서 벽에 걸어.”
“이런 그림들은 한국서도 노인이나 좋아해. 여기 좀 앉아 있어라. 그림 좀 방에 갖다 놓고 올게.”
구건호가 그림을 방에 갖다놓고 다시 로비로 내려왔다.
“여기 호텔 뒤로 돌아가면 상해 요리 잘 하는 집이 있어.”
구건호와 리스캉이 찾아간 집은 거창한 식당이 아니었다. 일반식당보다 약간 큰 식당이었다.
“이 집이 상해요리 중에서 유명한 송강노어(松江?魚: 송강의 농어)와 홍소회어(紅燒?魚: 구운 민어)를 잘 해. 그래서 손님이 있을 땐 이집에 자주와.”
“그래? 상해가 바닷가라 생선요리가 많은 모양이구나.”
바이주가 나오고 생선요리와 함께 먹으니 좋았다.
“흠, 맛이 괜찮은데?”
“좋지? 생선은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가격도 비싸지 않아. 많이 먹어.”
“한잔 더 줘라.”
“벌써 잔 비웠네. 구사장이 원래 술을 잘 안 먹든 사람인데.”
“이게 생선 이름이 뭐라고 했지?”
“송강 농어. 송강은 상해 옆에 있는 강이야. 송강이란 동네도 있잖아. 원래 농어가 민물과 바다를 번갈아 오가며 성장하는 물고기 아닌가? 강도 있고 바다도 있으니까 옛날부터 송강 농어가 유명해.”
“흠, 그런가?”
“구사장 삼국지 읽어 보았지?”
“읽어 보았지.”
“거기에 송강 농어가 나오잖아.”
“그랬던가?”
“조조가 연회를 하는데 연회에 나온 생선 한 토막을 보고 좌자라는 도사가 빈정대었잖아. 생선을 먹으려면 송강 농어를 먹어야지요. 하고 말이야.”
“그랬던가?”
“그랬더니 조조가 연회가 벌어진 허창하고 송강은 천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송강 농어를 먹냐고 하니까 좌자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잖아. 대왕을 대신해서 몇 마리 낚아오겠습니다 하고 바로 낚시대를 들고 연회장 앞에 있는 연못에서 이 송강 농어를 몇 마리 건져 올렸잖아.”
“하하, 본 것 같기도 해. 그게 여기 농어인가?”
둘은 열심히 생선을 발라먹고 술을 마셨다.
“어이, 구사장. 환러스지 공사 천사장이 뭐라고 해?”
“영화 만들자고 하더군. 펑아이링이란 작가가 쓴 <몽환앵화>라는 영화를 찍자고 하더군.”
“그 말 뿐이야?”
“제작비가 한국 돈으로 100억이 들어가는데 50%인 50억 투자해 달라고 하네.”
“허, 50억!”
“지금 내가 안당시에 1차 출자금 300만 달러를 보냈네. 드라마 <시광여몽> 만든다고 100만 달러 보냈고 이번에 영화제작에 500만 달러를 보내면 중국에 쏟아 부운 돈이 900만 달러네. 리국장! 900만 달러면 적은 돈인가? 많은 돈인가?”
“허, 엄청나군!”
“이게 다 리국장 인연으로 투자하였네.”
“미안하군. 좋은 결과가 있을 거네.”
“영화는 흥행 사업이야. 물론 잘되면 좋겠지만 쪽박 찰 수도 있어.”
“그건, 그래.”
둘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리스캉이 조용히 말했다.
“실은 환러스지 공사 천바오깡이 나보고 영화제작을 구사장과 의논해 달라고 했었어. 하지만내가 구사장에게 너무 미안해 말을 못했는데 천바오깡이 직접 자네에게 말을 꺼냈군. 하지만 펑아이링의 작품이 너무 아까워. 우리가 못한다면 다른 제작사에 넘겨야 하겠지.”
“펑아이링이 그렇게 유명한가?”
“유명해. 말하자면 히트 제조기지. 원래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시나리오 공모전이 당선되니까 전업 작가로 나온 여자야. 인간의 심리 묘사를 잘해. 대사도 아주 독특하고 재치가 있어. 지금 40대 중반쯤 되었나? 재능이 많은 사람이지. 환러스지의 천바오깡이 조감독 할 때부터 알던 여자니까.”
“아, 그리고 인사가 늦었네. 드라마 <시광여몽>은 방송국 편성에 리국장이 많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고마워.”
“뭘, 내가 큰 역할 한 것도 없어.”
“영화를 만들면 배급과 흥행에 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나는 공직자네.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해 준다 안 해준다 할 수 있겠나. 협력은 하지만 도와준다는 소리는 하기 어렵네. 단지 애국적 내용이 들어있는 영화 같으면 북경의 광전총국(영화산업 총괄 담당 기관)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는 할 수 있겠지.”
“흠, 그래? 그런데 네가 전보다 몸이 좀 마른 것 같다.”
“일이 너무 많아. 더구나 일들이 뒤에는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들이 많아 균형 잡기도 힘들어. 지금 약 먹고 다녀.”
“상해시 인민정부의 막강한 광파영시 국장 자리도 엄청 힘든 모양이구나.”
“남들은 막강한 권력이 있으니 좋은 자리라고 하지만 그 만큼 책임도 따르는 자리야. 그래서
가끔 여기 와서 혼자서 술 마시고 갈 때도 있어. 왕지엔이나 가까이 있으면 불러내서 한잔씩
할 텐데 말이야.“
리스캉이 술을 마시다가 왕지엔에게 전화를 걸었다.
“왕지엔? 나 지금 구건호하고 같이 상해 송강 농어집에 와 있어.”
“오, 그래? 구건호 왔으니까 영화 이야기 한번 잘해보지 그래.”
“이제 미안해서 못하겠어. 구건호가 이미 중국에 투자한 돈이 400만 달러인데 영화까지 하게 된다면 900만 달러를 투자하게 돼.”
“그렇게 많은가?”
“안당시도 내가 투자를 권했고 환러스지 공사도 내가 투자를 권했잖아. 그런데 영화까지 이야기 하지는 못하겠어. 환러스지 공사 사장이 이야기는 했지만 아무리 구사장이라도 그건 무리일거야.”
“그럴 만도 하다. 구건호 바꿔 줘봐라. 목소리나 좀 듣자.”
“그래.”
리스캉이 자기 핸드폰을 구건호에게 주었다.
“왕지엔이야.”
“왕지엔? 나다. 구건호.”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옆에 있으면 나도 달려갈 텐데 항주에 있으니 그렇게 못 하는 게 한이다.”
“아냐. 네 목소리 들은 것만 해도 반가워.”
“현재 중국에 400만 달러가 투자 되었다며? 많이도 들어왔다. 아마 리스캉이 이제는 너보고 더 투자해달라는 소리는 못할 거다.”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벅차서 생각중이야.”
“그러겠지.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영화 쪽은 고위험 고수익 분야라 나도 투자하란 소리는 못해주겠다. 리스캉 하고 사업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술이나 마음껏 마시고 가라. 그게 정신 건강에 좋아.”
“알겠어. 내일 나는 안당시로 간다. 동사회가 있어. 항주 못 들리고 바로 갈게.”
“피곤하겠구나. 그럼 잘 다녀와라.”
구건호가 왕지엔과 통화를 하고 보니 리스캉이 고개를 떨군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구건호가 리스캉의 핸드폰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고민해? 되는대로 살지. 술이나 마셔.”
구건호도 하얀 바이주를 목에 털어 넣었다.
“캬, 좋다. 고기 맛 좋고 술맛 좋다. 이런 맛이니 삼국지에서 좌자가 잔치상에 농어가 없다고 조조한테 빈정대지. 마셔 리스캉! 그리고 힘내.”
“알아서 마실게.”
구건호가 정색을 하고 리스캉에게 말했다.
“리스캉! 나는 리국장처럼 공직자도 아니고 왕지엔처럼 학자도 아니야. 자본가일 뿐이지. 돈이 된다면 투자하고 돈이 안 된다면 투자를 안 하는 사람이야. 영화 <몽환앵화>가 돈이 된다면 투자를 하지.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말이야. 일단은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을 해 줄게”
리스캉의 얼굴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도는 것 같았다.
“리스캉. 만약에 말이야 내가 영화제작에 손을 댄다면 흥행에 따른 간접 지원은 해 줄 수 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가능하겠지”
“알았다 즐겁게 마시자.”
구건호는 다음날 안당시로 가기 위헤 공항으로 갔다. 심감독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사장님이 오시면 좋은 차를 렌트할 걸 잘못했습니다. 소주시에 있는 자회사나 귀주성에 있는 버스회사 사장님들은 모두 아우디로 사장님을 모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됐습니다.“
“리국장님을 저녁에 만나셨다면서요? 리국장도 영화에 투자해 달라는 소리는 안합니까?”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 같더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현재 내가 중국에 투자한 돈이 400만 달러입니다. 영화제작에 50%만 투자해도 500만 달러입니다. 그럼 내가 중국에 투자하는 돈이 900만 달러입니다.”
“허, 900만 달러! 많기도 하네요.”
“일단 심감독님은 시나리오 번역본이 오게 되면 잘 분석하셔서 저에게 그 결과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영화제작에 프리(Pre) 프로덕션의 전 단계는 시나리오가 있고 스탭이 이미 구성되었다면 빨리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 단계가 4개월에서 6개월 걸리지만 단축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시나리오가 좋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흠.”
“문제는 스타의 몸값인데 만약에 영화도 한국배우 리아를 쓴다면 출연료를 많이 달라고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시광여몽>이 떴거든요.”
“흠.”
“하지만 북경의 광전총국에서 온 공문을 보니까 영화 제작사들은 스타들의 출연료와 작가 비용이 제작비의 30%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규정한다고 했습니다.”
“국가에서 그런 것도 통제를 하네요.”
“공산당 일당 독제 체제의 나라니까 말을 들어야겠지요. 괜히 괘씸죄에 걸리면 약도 없을 테니까요. 어? 공항에 다 왔네.”
구건호가 귀양시 공항에 내렸다. 귀양 공항에 문재식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구사장 어서와 피곤하지?”
“괜찮아. 회사는 잘 굴러가지?”
“운송 사업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 운송 사업은 교통사고만 안 나면 괜찮아.”
“터미널 공사는 파일 박는다고 했지?”
“파일 다 박고 지금 시멘트 발라놓은 것 마르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야.”
“흠, 그래?”
구건호와 문재식이 안당시로 가는 도중 구건호는 디욘코리아 상임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구건호가 해외에 나오면 보통 전화들을 잘 안하는데 했다.
“사장님이십니까? 통화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디욘코리아의 감사보고서를 수정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요?‘
“벤처 지정하는데 우리가 연구개발비 항목이 적게 잡혀서 조정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흠, 그래요?”
“제가 안창 회계법인에 조정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은 했습니다.”
“어디 관공서에 우리 감사자료 나온 것 제출한데는 없지요?”
“아직 없습니다. 임원들 가져간 것도 모두 회수해 놓았습니다. 지에이치 개발 홍과장한테 보내준 2부만 회수를 못했습니다..”
“회수한건 폐기 하나요?”
“그렇습니다.”
“벤처 지정에 필요하다면 해야겠군요.”
“그런데 안창 회계 법인에서는 사장님 말씀을 들어야 조정해 줄 겁니다. 이미 사장님께 감사보고를 드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안창 회계법인의 이낙종 회계사에게 전화 한통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벤처 지정받는데 이노비즈 인증은 구태여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노비즈는 패스 해야겠습니다. 더구나 이노비즈는 창업 후 3년 기업만 해당됩니다.”
“흠, 그래요?”
“회계법인도 수정 자료를 만들려면 우리가 제공한 자료가 맞아야 합니다. 회계 전산자료는 조명숙 차장이 밤을 세워서라도 다 맞추어 놓기로 했습니다.”
“흠, 복잡하네요.”
“원래 벤처 지정은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벤처 투지기업이나 연구 개발기업, 기술평가보증기업, 기술평가 대출기업의 유형이 있습니다. 우리는 벤처 투자를 받았거나 기술평가 대출 같은걸 받은 기업이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러지요.”
“그래서 연구 개발기업으로 신청이 들어가다 보니 연구개발비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회계법인에 바로 전화해 드리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