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71화 (371/501)

# 371

GH그룹 2세 구상민 (1)

(371)

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엄찬호에게 신사동 빌딩으로 가지 않고 괴산으로 차를 몰게 했다.

“괴산으로 가자.”

“그때 가봤던 그 도사님 사는데 말이죠?”

“그래, 가서 아기 이름 좀 지어야겠다.”

“저... 사장님.”

“왜?”

“저도 그 도사님한테 사주 좀 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라.”

“그런데 제가 오늘 돈을 안 가지고 나왔거든요? 가불 안 되나요?”

“복채 값 말이냐? 그건 내가 내줄게.”

“고맙습니다. 사장님.”

구건호가 괴산의 청학정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손님이 없는지 박도사가 마당을 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 구사장 오셨는가? 아침 일찍 웬일이신가?”

“건강하시죠?”

“건강하지 못하시네. 나이가 드니 이제 아픈데 천지야. 가는 세월 어찌 작대기로 막을 수가 있겠는가.”

“아기 이름을 지으러 왔습니다.”

“오? 아기를 낳았구먼, 축하하네. 이리 들어오시게.”

구건호는 엄찬호를 불러 같이 청학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아무것도 없고 문갑위에 옛날 서적 몇 권만 있었다. 박도사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녹차를 타 주었다.

구건호는 아기의 생년월일을 말해주었다. 구건호의 사주도 다시 말해 주었다.

“아기가 건명(乾命: 남자)이신가?”

“예?”

“사내아이냐 이 말이네.”

“그렇습니다.”

“아버지 사주로 보면 사내아이가 먼저 태어났겠지.”

“그렇습니까?”

“아버지 이름이 세울 건(建), 클 호(浩)이셨든가?”

“그렇습니다.”

“그럼 상(相)자 돌림이겠군.”

구건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먼 친척 중에 상자 돌림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아버지 이름이 삼수변이 들어가는 호(浩)자 이니까 아들 이름은 수생목(水生木)하여 나무 목(木)이 들어가야 하겠지. 그래서 상(相)이나 근(根)자 같은 글자를 쓸 수밖에.”

“흠, 그런가요?”

“그런데 이름 지으려면 시간이 걸려. 원래 내가 서울 강남역 앞에서 철학관 할 때는 이름 지으러 오면 다음날 알려주었어. 하지만 여긴 한번 오기가 힘든 곳이니 어디 가서 놀다가 한 시간 후에 오시게.”

“알겠습니까?”

구건호는 엄찬호와 함께 차를 타고 청학정사를 나왔다.

“아무데나 가보자. 한 시간 후에 오라고 했으니까.”

“저기 뒷산 계곡으로 가 볼까요? 길도 나쁘진 않네요.”

구건호가 탄 벤트리 승용차가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소나무가 울창했고 계곡물 소리도 들렸다. 도시와 먼 고장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여기 좋네요.”

엄찬호도 감탄을 하였다.

구건호와 엄찬호는 차에서 내려 계곡 아래로 내려가 바위에 앉았다.

“여긴 가재도 있겠네요.”

“있겠지.”

“여기서 살면 진짜 도사가 될 것 같은데요?”

구건호와 엄찬호는 다시 계곡 주위를 드라이브 하다가 한 시간 후에 청학정사를 가보았다. 박도사가 이름이 적힌 종이를 주었다.

“두개를 지었네. 하나는 구상민(具相珉)이고 하나는 구상철(具相喆)이네. 두가지중 하나를 아빠가 고르면 되겠지. 글자의 훈과 획수는 옆에 적어 놓았네. 복 받은 아이이니 잘 키우시게.”

“고맙습니다.”

박도사는 종이를 편지봉투에 넣어 구건호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구건호가 봉투를 안 포켓에 넣자 엄찬호가 말했다.

“저, 도사님. 저 사주 좀 봐주세요.”

“젊은이도 사주를? 생년월일을 불러보시게.”

엄찬호가 박도사에게 생년월일을 불러주었다.

도사는 생년월일을 쓰고 간지를 뽑더니 대뜸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겠구먼. 엄마와도 이별수가 있으니 초년고생이 있겠어.”

엄찬호는 얼굴이 벌개져서 박도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 종이에 쓴 글자만 보고 어떻게 그런걸 알지요?”

“그러니 내가 도사 아닌가?‘

“허, 그래도 희한하네요. 어떻게 알지?”

“자네 사주는 음(陰) 간지의 재다신약(財多身弱)에 아버지 자리가 백호대살을 맞았어.”

“예?”

“뭐,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 서른 살이 넘어 좋은 귀인을 만났으니 훈풍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야. 앞으로 좋아져. 부자는 아니더라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 결혼은 3년 후에 해.“

이때 손님들이 몰려오므로 엄찬호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구건호가 엄찬호를 보고 말했다.

“이제 좋아진다니 가자. 결혼도 한다니 좋다.”

엄찬호는 결혼도 한다는 말에 얼굴색이 확 펴졌다. 구건호는 복채가 든 봉투를 도사에게 주었다.

“이 사람 복채까지 같이 담았습니다.”

“고맙소.”

도사는 봉투의 돈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뒤에 있는 문갑 서랍에 집어넣었다.

구건호는 엄찬호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박도사가 써준 이름을 보았다. 인천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세요?”

“건호냐?”

“제가 잘 아는 한학자 한분한테 아기 이름을 받았어요.”

“내가 지으려고 했는데 먼저 받았구나.”

“돌림자 넣고 상철이 하고 상민이 하고 두 가지에요. 아빠는 어떤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상민이 한자가 어떻게 되냐?”

“서로 상, 옥돌 민이요.”

“상철은 철자가 길(吉)자 두 개 붙은 거냐?”

“예, 맞아요.”

“상민이가 좋겠다. 상철이는 집안 먼 친척 중에 그런 이름 가진 사람이 있어.”

“그래요?”

“난, 상민이가 좋은데 네가 아기엄마하고 의논해서 정해라.”

“아빠는 일단 상민이가 좋다는 말씀이지요? 알겠어요. 아빠.”

구건호가 다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았다.

“나도 상철이는 마음에 안들어. 내 동창 중에 조원철, 황병철 등 철자 가진 놈들이 많아 싫어.”

구건호도 마음속으로는 상민이 쪽으로 기울어졌다.

구건호는 집에 가서 김영은에게 박도사가 써준 종이를 보여주었다.

“내가 잘 아는 음양오행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 계셔서 이름을 지어왔어. 상민이 하고 상철이 두 개야. 당신은 어떤 것이 마음에 들어.”

“글쎄....”

“말해봐.”

“인천 아버님한테도 보여드렸어요?”

“보여 드렸어.”

“뭐래요?”

“당신 생각부터 말해봐.”

김영은이 종이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 글씨 쓰신 분이 누구에요? 요즈음도 붓글씨로 이렇게 글씨를 쓰는 분이 계시는 모양이네요. 그것도 세로로 말이에요.”

“이름을 골라보라니까.”

“저는 상민이가 정감이 가네요. 하지만 아버님이나 오빠 의견대로 하세요.”

“인천 아버지도 상민이고 나도 상민이야. 당신도 상민이고.”

“그래요? 호호. 그럼 상민이로 하세요.”

이렇게 되어서 구건호는 상민이 아빠가 되고 김영은은 상민이 엄마가 되었다. 구건호는 아기 이름도 구상민으로 하여 출생신고도 하였다.

3월 중순에 접어들자 최 화가가 양평으로 간다고 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최 화가가 몰고 왔던 승용차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최 화가가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고맙긴, 내가 늙어서 요양원 신세라도 지게 되면 영은이 신세를 지게 될지 누가 아나?”

김영은도 이모가 고마운지 농담을 했다.

“이모,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너보다도 그동안 아기에게 정이 들어서 가기가 싫다. 가사 도우미 아줌마가 오더라도 영은이가 아기를 잘 돌보아 줘라.”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4월 초순이 되면 청명절이니 아기 안고 구서방하고 같이 포천 네 엄마 산소에라도 가 봐라.”

“그렇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에요.”

“그럼 난 간다. 애기 100일 때나 한번 올게.”

“저, 이모님. 잠깐.”

구건호가 돈이 든 봉투를 최 화가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돈?”

최 화가는 돈을 받더니 도로 구건호에게 주었다.

“아, 싫어! 돈은 나도 있어.”

구건호가 다시 운전대에 앉아있는 최 화가에게 봉투를 주었다. 최 화가는 돈 봉투를 집어 들더니 다시 차창 밖으로 휙 던지고 승용차 문을 올렸다.

“나, 간다. 잘들 있어라.”

구건호와 김영은은 최 화가가 몰고 가는 승용차 뒤에서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삼칠일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아기를 보러왔다. 제일 먼저 인천에서 엄마와 아빠가 왔다.

“상민아,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다.”

“아이고, 눈이 샛별처럼 또랑또랑하네.”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는 사람이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다녔다. 아빠도 아이를 안고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상민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래? 험, 험.”

아빠는 열심히 아기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동네 노인들에게 자랑을 하려는 것 같았다.

아기는 이제 젖살이 붙고 눈의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과일을 먹고 있는데 누나 내외도 함께 아이를 보러왔다. 정아까지 데리고 왔다.

“정아야, 네 동생이다.”

정아는 신기한 듯이 아기를 쳐다보았다.

누나와 매형은 타워팰리스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문 후에 먼저 가야겠다고 하면서 일어났다. 정아의 레슨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였다. 누나는 아기용품을 한보따리 사와서 김영은에게 전해주었다.

엄마는 된장찌개도 끓여놓고 밑반찬도 몇 가지 만들어주고 밤 9시가 넘어서 가셨다.

다음날은 신림동 장인이 오셨다. 김영은은 자기 아버지가 오시니 더 얼굴이 펴진 것 같았다. 고기반찬을 직접 만들어 장인을 대접하려고 하였다.

장인도 김영은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계속해서 아기를 안고 다녔다. 김영은은 시부모가 왔을 땐 꺼내지도 않았던 고급양주를 들고 구건호에게 물었다.

“오빠, 이거 따도 되지?”

“응, 따.”

양주는 구건호가 중국이나 일본에 갔다 올 때 면세점에서 사가지고 온 것들이었다.

김영은이 거실로 술상을 차려가지고 왔다.

“상민이 아빠랑 한잔 하고 가세요.”

“그럴까?‘

장인도 기분이 좋은지 술을 많이 마셨다. 놀랍게도 김영은도 술을 한잔 마셨다.

“아기 낳았으니 한잔 마셔도 되겠지?”

“조금만 마셔라. 아기한테 술 냄새 풍기면 안 좋다.”

“아빠, 그리고 청명절에 아기 데리고 한번 포천 엄마 산소에 한번 가볼게요.”

“흠, 내가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래주면 고맙지. 사위, 고맙네. 한잔 받게.”

구건호도 휴일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마셨다.

“내가 사위라도 있으니 이렇게 술 대작할 사람이 생겨서 좋네.”

“아빠,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가세요.”

“관리사무소에 내차 여기 주차한다고 신고 좀 해 줘라. 지난번처럼 자동차 앞 유리에 딱지 붙여 놓을라.”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이 있는 직산공장으로 출근을 했다. 마당에서 송사장과 디욘 코리아의 김전무가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송사장과 김전무가 인사를 하였다.

“왜 두 분 여기 계십니까?”

“H그룹에 새로 들어가는 제품의 원재료는 디욘 것으로 해달라고 저럽니다.”

송사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해주지 그래요?”

“H그룹 계열사에 케미컬 회사가 있습니다. 이제껏 써왔던 것을 바꾸어 달라고 하니 저도 명분이 없어 난감합니다.”

김전무가 다시 열변을 토했다.

“형님, 정 안되면 H케미컬과 디욘 것을 50대 50으로 섞으란 말입니다.”

“에이, 그러다가 무슨 일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누가 압니까?”

“그 방법은 안 좋아. 내가 따로 연구해 볼게. 그런데 우리가 오더만 받아오면 즉각 김전무가 아는데 어떻게 된 거요?”

“다, 알지요. 이 바닥이 좁지 않습니까?”

“그래도 수상해. 지에이치 모빌의 중간관리자들이 전에 김전무가 여기서 상무로 있을 때 다 알던 애들이라 그런 모양이야. 정보가 자꾸 새.”

“정보가 어디 여기서만 나옵니까? H그룹 구매팀 애들도 제가 아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봅시다. 나 약속이 있어 먼저 나가야 돼.”

김전무가 송사장 팔을 잡았다.

“형님, 우리 형님. 우리가 어찌 남이가? 오늘 점심에 복국 먹으로 갈까요?”

“이거 왜이래. 징그럽게.”

구건호는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이 우스워 헛웃음을 치고 2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0